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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보고싶다

asdf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4.25 05:04:44
조회 530 추천 5 댓글 2

맞벌이에 외동인 나를 할머니가 오롯히 키워냈는데, 그 덕에 더덕이고 미나리고 쑥이고 노인정에 놀러가서 안 먹어본 음식이 없었다.

유치원이 끝나면 노인정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귀여움을 받았다.

십원짜리 몇개 받아서 할머니들이랑 화투도 치고, 화투점도 봤다.

할머니만 졸졸 쫒아다니는 손주가 할머니에게는 자랑이었던 것 같다.


어려서는 몸이 자잘하게 아파서, 속병도 잦고 감기도 한 번 걸리면 열이 심하게 났다.

매번 코를 훌쩍거리고 설사도 자주해서 부모님이랑 할머니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다.

새벽내내 아플 때면 할머니가 옆에 앉아서 이마에 젖은 수건을 얹고 밤새 기도하던 생각이 난다.

또 내 걱정은 어찌나 많은지 비가 오면 우산 안들고 갔다고 학교고 학원이고 장우산을 들고 찾아와서 나를 기다렸다.


20살이 넘어서 한 번 크게 아파서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을 했는데, 할머니가 걱정할까봐 부모님만 알고있었다.

당시 할머니는 80세가 넘어서 치매끼가 있었는데, 내가 병원에 있다는 걸 알고는 시에 있는 종합병원 몇군데를 돌다가 나를 찾아왔다.

당시에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를 안고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나를 내새끼, 손주새끼, 우리강아지라고 불렀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는 머리도 하얗게 덮히고, 뽀얀 얼굴이 주름살로 덮히고, 통통하던 옛모습은 사라지고 살도 많이 빠졌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우리 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마다 눈물이 나고 서글퍼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서 강원도 탄광촌에서 억세게 일하면서 세 아들을 키워냈다.

장남은 배가 다른 자식이었는데도 애착을 가지고 오롯히 키워낼 정도로 자식 사랑이 강한 양반이었다.

그 생명력이 나이 아흔이 가까워서도 계속되서 한 여름 뙤양볕에서 밭에 채소를 기르겠다고 호미를 들고 나갔었다.

주머니에 일,이만원 밖에 없어도 꼭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하나씩은 내 손에 쥐어주면서 과자를 사먹으라고 했다.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던 생명력 넘치는 나의 할머니.


나는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할머니와 함께 살고, 수많은 잔소리도 듣고, 같이 웃고 울면서 그렇게 살았다.

잔소리랑 걱정은 어찌나 심한지 밤에는 호랑이가 나온다고 못나가게 하고 비가 몹시 오는 날에는 떠내려간다고 못나가게 했다.

그런 내가 할머니에게 고집이라도 부리면, 내가 아니면 진작 시골에 내려가서 혼자 살면서 장사나 하면서 살거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 할머니가 반년전 당신의 방에서 조용히 돌아가셨다. 정오에 눈을 감고 있는 나의 할머니.

편안하게 눈을 감고 남향 햇빛이 창틈사이로 들어와 할머니를 비추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돌아가신것을 알고 한시간을 붙잡고 기가 막히고 너무 황망해서 큰 울음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짐승소리를 내면서 꺼억꺼억 울었다.

할머니 얼굴을 만지고 귀에 대고 연신 고맙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이제 작별이니까.

돌아가신 날은 정말 너무나도 추웠고, 그 다음날에는 12월 첫 대설이 왔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할머니 발을 씻어주고, 머리를 빗어주고, 등을 쓰다듬고 안기고 했었는데...

체온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는데... 자식처럼 아끼던 강아지를 데려와서 직접 밥을 먹이고 티비를 보았는데..

그런 강아지도 한달 뒤에 할머니를 따라갔다. 


장례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세달을 매일 울었다. 가만히 앉아있다 울고, 여자친구와 밥을 먹을 때도 순간 목이 메일 때도 많았다.

마음이 너무 서운해서 납골당에 찾아가서 유골함 앞에 몸을 기대고 펑펑 울어도 쉽게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서운했다.

집 여기저기 남아있는 할머니 흔적을 볼 때마다 눈물이 흘러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사는게 사는 것 같지가 않고 밥을 먹어도 맛이 없었다.


짐을 다 버리고 돌아가신 할머니 방에 향과 숯을 피웠다. 부모님이 그게 맞는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옷과 성경책 한권을 제외하고 모두 버렸다.


그렇게 다 버렸는데도,

벽마다 할머니의 손자국이 까맣게 남아있다. 가끔씩 청소를 할 때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나온다.

당신의 방에 내가 갈아드린 전구도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달아준 블라인드도 마찬가지..

공구를 들고 10여분 낑낑거리며 블라인드를 달아드리니 손벽을 치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할머니.


보고싶다. 그립다. 

돈이고 뭐고 다 없어도 좋으니 단 십분만이라도 다시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을 쓰다듬고 눈을 마주보고 귀에 대고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속삭이고 싶다. 

그리운 나의 할머니...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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