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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린다아 2모바일에서 작성

드뤠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3.01.17 21: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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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유법, 유세희는 눈이다

방과 후를 알리는 마침종이 울렸다. 지금은 방과 후 시간. 즉, 집에 귀가하거나 야간자율학습 준비를 하거나 할 시간이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일어나 뒷문으로 스리슬쩍 나갔다. 역시 아무도 내가 청소당번이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복도를 '파 드 불레'로 살금살금 걸어나가 교무실 복도를 지나갈 때 쯤이었다. 오늘도 성공적으로 귀가를 마칠 수 있겠지라고 기뻐했던 찰나, 나는 내 앞에 선 거대한 그림자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그림자는 바로 체육 선생님, 그리고 우리 반의 담임이었다.
"응? 너 오늘 청소 당번 아니였냐?"
위험해.
나는 도망치다 걸려 사지가 찢어질 뻔한 친구…, 아니 급우를 본 적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할 상황이었다. 저 굵은 팔에 항복이 통하지 않는 헤드 락을 당한다면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아파서요."
조용히 목소리를 내리깔고 가짜 기침을 하며 꽤 그럴싸하게 연기했다.
"그래?"
선생님이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이거…, 속아넘어갈 지도 모르겠는데…….
"잊고 있었니?"
"네?"
무엇을 잊었단 말인가. 나는 잊은 물건이 없다. 물론 잊은 친구도 없다.
"나는 체육선생이거든."
손가락을 뿌드득 대는 선생님의 말은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나는 재빨리 머리속을 헤집었다.
"오늘 마지막 교시가 체육이었지, 아마."
선생님이 나에게 점점 다가오며 말했다.
"그 때는 아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었지 않나?"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그런 시시한 과목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 실로 그러했다.
"음료수 선착순에 달려드는 네 모습은 마치 검투사를 연상케 했지."
"갑자기 오한이……."
"그럼 병원에 데려다주지. 만약 병이 없다면…."
"죄송합니다! 거짓말 했어요! 살려만 주세요!"
나는 그대로 싹싹 빌었다. Honest is the best policy라는 말도 있잖아. 정직이 최고지.
"너란 녀석은 참…."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쥐는 선생님. 아마 이런 패턴이라면 "그래, 가 봐."라는 말이 나오겠지. 성공이다.
"따라 와."
잘못 판단했나?
선생님은 우락부락한 팔로 내 연약한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행차했다. 마치 전쟁에 진 병사의 시체를 마차에 매달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 같았다.
……Honest isn't the best policy로 고쳐야 할 것 같다.

2층 중간의 2학년 교무실을 지나, 4층까지 올라왔다. 4층은 동아리실의 모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아리에 참여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시끄러운 트럼펫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니 아마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자보다 고독하게 다니는 호랑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동아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밴드 동아리에서 탈퇴된 이후, 관계가 없다기보다 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멀다. 태평양을 가로지르거든.
선생님은 늘어선 동아리실을 차례로 지나가, 복도 끝으로 날 데려갔다. 복도 끝에는 사용하지 않는 먼지 덮인 책상들이 탑을 쌓고 있었다. 그 탑 옆에, 책상에 뒤덮여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문이 숨겨져 있었다. 명패를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시끌벅적한 소리가 안 나는 걸로 보아 동아리실로 사용하지 않는 듯 했다.
"자, 여기다."
털썩.
선생님이 나를 바닥에 놓았다. 나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선생님께 물었다.
"여기에 왜 저를 데리고 오셨어요?"
대충 짐작은 갔다.
교실에서 빼 놓은지 오래 되어 보이는 책상.
먼지 쌓인 복도의 나무바닥.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난 청소를 빠졌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해서 나올 수 있는 답은 한 가지. 그것은……

청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무식한 함무라비 법전 식의 사고는 담임에게 잘 어울릴 것도 같고, 상황 상 청소를 위해 책상을 전부 빼 놓았지만 청소할 사람이 없어서 방치해 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와아…, 죽지 않았어…하고 김빠지게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청소… 귀찮아…하고 김빠지게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둘 다 김빠지는 것은 마찬가지긴 하지만.
"대충 짐작은 가겠지. 명패를 보았으면."
명패에는 2년 전 쯤 인기부족으로 사라졌을 법한 '시 동아리' 따위가 적혀 있었겠지.
"그래도 함무라비 법전 식의 사고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소신껏 주장해 보았지만 "함무라비 법전 식의 사고? 그게 뭐지?"라고 대답하는 담임에게 할 말은 없었다.
"청소를 시키시려 하는 군요."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의 추리가 빗나갔군, 나는 홈즈 역이 아니라 왓슨 역이었단 말인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나는 네가 청소를 안 했다는 죄를 물으러 데리고 온 게 아니야."
그렇담 이 외딴 곳에서 고백이라도 하실 거였단 말씀이신가요. 단도직입적으로 전 싫습니다만.
"어제, 너희 누나랑 통화했다."
…….
……….
………….
"네?"
길고 긴 침묵 끝에 단 한 마디 만을 내뱉을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누나와 선생님이 회의 끝에 결정했단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섭다구요….
"감사히 생각해라."
나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그만큼 두려웠다.
무식함의 결정체인 이 담임과 (함무라비 법전도 모르는 걸 보면 맞겠지), 명석함의 결정체인 우리 누나의 (……생략) 꿈의 콜라보레이션. 상황을 알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인간은 이 지구 상에, 아니 이 우주 상에 없으리라.
"소개하지."
선생님은 문을 드르륵 하고 열었다.
"여기는 네 공부를 도와줄 유세희라고 한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노을 때문이었을까.
흑색 생머리의 아름다운 여자 아이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
……….
………….
이 공백은 기막힘 따위가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넋을 잃고 있었다. 그 차가운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멍 하니 유세희를 바라보았다.
"뭐 하냐? 인사 해라."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상한이라고 합니다."
나는 최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유세희는 노을 빛에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한 번 가다듬고는, 나를 향해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세희라고 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봐요! (방긋)"
이거라면 전교 1등도 문제 없어. 전교 1등을 넘어서, 전교 -1등까지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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