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인류학자 캐럴 엠버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식량 수집 사회의 90퍼센트가 적과 교전 중이며 64퍼센트가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90퍼센트라는 수치도 과소 평가된 것일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약 10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폭동을 계산에 넣을 만큼 한 부족을 오래 연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어느 인류학자가 1918년부터 1938년까지 비교적 평화로운 유럽인을 연구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1972년 또 다른 인류학자 W. T. 디베일은 37개 문화의 99개 집단을 조사한 끝에, 68개 집단이 당시 전쟁 중이고, 20개 집단이 5년에서 20년 전에 전쟁을 했으며, 그 외 모든 집단이 그보다 가까운 과거에 전쟁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 민족지학적 조사를 기초로 도널드 브라운은 투쟁, 강간, 복수, 질투, 지배 성향, 남성 야합적 폭력을 인간의 보편적 특징에 포함시켰다.
(스티븐 핑커, <빈 서판>. p.114~115 발췌)
실제로 현대의 수렵-채취인 사회에서, 특히 남성이 여성을 두고 경쟁할 때 빈번하게 다툼이 발생하고, 그 다툼은 폭력으로 치닫는다.
20세기의 중반에 네칠리크 이누이트 사이에서 살인이나 살인미수는 다른 남자의 짝을 훔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주로 일어났다. 캐나다 정부가 그런 관습을 금지하기 이전에 이누이트 사람들이 여행자를 살해하면 종종 피살자의 친척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습격했고, 심지어는 금지 후에도 미국의 살인율보다 훨씬 높았다. 열여섯 가족으로 이루어진 한 코퍼 에스키모 집단에서는 모든 성인 남성이 살인에 가담했다. 1920년에서 1955년까지 남부 아프리카 쿵 부시먼 집단의 살인율은 최근의 산업사회 살인율의 20배에서 80배에 이르렀으며, 20세기 후반에 티에라 델 후에고 지방의 ‘카누족’의 야간 살인율은 미국의 10배였다.
그런 수준의 폭력이 선사시대의 수렵-채취인 사회에서 널리 나타났다는 것을 의심할만한 이유는 없다.
(폴 얼릭, <인간의 본성(들)>. p.343~344에서 발췌)
무리 사회와 부족 사회에 대해 훨씬 더 장기간에 걸쳐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살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의 하나다.
한 번은 내가 뉴기니의 이야우족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때마침 어느 여자 인류학자가 이야우족 여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이름을 물을 때마다 이 여자들은 비명횡사한 남편들의 이름을 몇 몇씩 줄줄이 읊었다.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식이었다.
“첫 남편은 엘로피 족 침략자들에게 죽었어요. 두 번째 남편은 나를 탐내던 남자의 손에 죽었고 나를 탐내던 그 남자가 세 번째 남편이 되었지요. 그런데 그 남편마저도 두 번째 남편의 동생이 복수를 하겠다고 죽여버렸어요.”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p.401에서 발췌)
여자들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을 수 있다. 남편은 불타는 나뭇조각으로 자기 아내를 지지거나, 허벅지같이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에 화살을 쏘기도 하며(끝이 작살처럼 되어 있어 뺄 때 매우 고통스럽다.), 도끼나 정글 칼로 팔이나 다리를 치기도 한다.
30살이 넘은 대부분의 여자들은 화가 난 남편에게 당한 각종 상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남편들이 화가 나서 아내를 죽인 사례도 대단히 많다.
(한국 문화인류학회. <낮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p.100~101)
남편은 아내와 간통한 것으로 의심되는 남자에게 직접 몽둥이 결투를 신청할 수 있다. 이 싸움은 보통 이 두 사람만의 싸움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개 이들의 형제들과 지지자들이 가담하여 집단 결투가 된다.
만약 결투에서 누구도 심각하게 다치지 않았다면 싸우는 정도에서 문제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투가 자주 일어나게 되면 싸웠던 두 친족집단은 분리되어 서로 독립적인 마을을 형성하기도 한다.
(한국 문화인류학회. <낮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p.101)
이러한 습격은 여자를 납치해 가거나 방문한 사람을 죽였을 때 일어날 수 있다. 남자가 화가 나서 자기 아내를 죽였을 때도 죽은 아내의 출신 마을 사람들은 복수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를 습격할 수 있다.
(중략)
복수는 먼저 축제를 치른 후에 이루어진다. 축제에서는 적에게 희생된 사람의 뼈를 빻아 플랜틴과 함께 죽을 끓여 먹는다. 이들은 자기 편 죽은 사람의 신체 부위를 먹음으로써 적에 대한 분노심을 드높인다.
(중략)
어두컴컴할 때 적의 마을에 접근하여, 마을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한 명을 생포하면 바로 후퇴한다. 남자와 그의 가족을 사로잡으면 남자는 쏴 죽이고 여자와 자식들은 납치해 온다. 습격자들은 마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돌아가며 여자를 강간한다.
(한국 문화 인류학회. <낮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p.103~104)
파유족은 평상시에는 가족 단위로 늪지대에 흩어져 살다가 1년에 한 두 번씩 모여서 신부를 교환하는 문제에 대해 협상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그가 찾아갔던 시기가 바로 그렇게 수십 명의 파유족이 회동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몇십 명 정도가 모였다면 우리에게는 단촐하고 일상적인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파유족에게는 드물고 겁나는 행사였다. 살인자들이 희생자의 친인척과 마주치는 일도 흔했다.
예를 들어, 어느 파유족 남자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남자를 발견하고서 도끼를 치켜들고 살인자에게 돌진했지만, 친구들이 억지로 땅바닥에 찍어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살인자가 나서서 꼼짝없이 엎드려 있는 아들에게 도끼를 들고 다가갔다. 그러나 그 역시 억지로 눌려 땅에 엎드렸다.
둘 다 그렇게 붙잡혀 있는 상태에서 서로 노발대발하면서 고함을 질렀고, 결국 기진맥진해지고 나서야 두 사람 모두 겨우 풀려났다. 다른 남자들도 서로 상대방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고, 분노와 좌절감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떨었으며, 도끼로 땅을 마구 찍어댔다. 이 같은 긴박한 상황은 모임이 계속되는 며칠 동안 줄곧 이어졌다.
(중략)
그들에게는 우리가 당연시 하는 것들, 즉 심각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기구가 없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p.385)
응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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