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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티대] Endless Twenty

피=닉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8.15 04:37:05
조회 181 추천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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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학! 배움의 고향! 스무 살의 청춘이 시작되는 곳!

물론 재수를 통해 몇 년 늦게 입학하는 사람이 있겠으나, 나는 그들의 마음은 갓 스물이 된 신입생들과 다르지 않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내가 스물이 되어 대학교에 입학 했을 때가 2209년 2월이었다. 입학년도도 졸업년도도 바로바로 머리에 떠오르니 틀림없을 것이다.

내가 입학한 대학은 꽤 역사가 깊은 학교였는데,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일반적인 대학들과는 무언가 다른 면이 있었다.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학도 아니었고, 전문적인 대학도 아니었으며, 거대 기업이 스폰서로 있는 대학도 아니었다. 그 점이 내 흥미를 끌었다. 취업률이 낮은 대학도 아니었기에 지금 와서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은근히 떠도는 소문이었는데, 그 대학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단 한명의 학생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소문의 주인은 입학식부터 눈에 띄었다. “저 녀석, 눈에 거슬려.” 같은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바로 알아볼 수 있는 특색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성적 우수자로서 단상에 올라가 대표로 선서를 하는 앳된 소녀가 있었으니.

“그 사람, 원래는 남자였다더라.”

방송과부 동아리 선배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소리를 꺼냈다. 재미있는 말이었기에 나를 포함한 1학년들은 그에게 이야기를 재촉했다.

“대체 누구에요 그 사람?”

“나도 몇 다리 건너서 들은 거라 잘은 몰라. 그냥 남들처럼 이 학교의 상징처럼 돼버린 사람이다~ 그 정도만 아는 거지. 그래도 학교 신문에서 옛날에 인터뷰 한 내용이 있을 걸? 한 번 찾아봐.”

대부분은 그렇게 끝날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듣고 넘기고 잊어버리거나, 학교 신문 기사 내용을 직접 찾아보거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의 나는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열정에 찬 등신 새끼였다.

“시간 좀 있어요?”

벤치에 앉아서 삼각 김밥을 까먹던 그 사람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지금 자기를 불렀냐고 되묻는 것처럼 손가락을 자신에게 향했다.

“네, 그쪽한테 말하는 거 맞아요.”

“너 신입생이지?”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서 시선을 떼고 웹 서핑을 재개했다.

“용케 아시네요.”

“매년 있단 말이야. 너처럼 신기하다고 나한테 말을 거는 녀석들이.”

아하, 그녀에겐 이것이 연례행사나 다름없어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그럼 그 선배들도 다큐를 찍고 싶다고 그러던가요?”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뭐?”

“방금 말했잖아요. 다큐 찍고 싶다고. 저 방송과거든요.”

“아니, 방송과인거랑 대가리 이상한 거는 별개의 문제잖아. 나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학생 신문이나 뒤져봐. 옛날에 인터뷰 한 게 있으니.”

짐을 챙겨들고 떠나려고 하는 그녀의 앞으로 황급히 달려가 길을 막아섰다.

“잠깐만요. 기사는 다 보고 온 거에요.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요. 일종의 계약을 하고 싶은 거예요.”

“너 같은 풋내기가 뭘 해줄 수 있겠냐. 간다.”

왼쪽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앞을 다시 막아섰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집요하게 따라붙자 그녀가 짜증을 냈다.

“야, 적당히 해라. 힘으로 밀고 가는 수가 있어.”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이렇게 보니 안드로이드 특유의 홍채가 확실하게 보였다.

“아직 점심시간 한참 남았는데 왜 그렇게 급해요? 일단 얘기라도 해보자고요. 타협점을 찾을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뱉어냈다.

“젠장, 미친놈한테 걸렸네.”

잠깐 동안 고민한 끝에 그녀는 결국 허가를 내주었다.

“알았어. 대신 마실 거 사.”




“……그래서 제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선배의 모습을 찍고 싶다는 얘기예요.”

“4년 동안이라, 확실히 아이디어는 좋네.”

계획을 들은 그녀는 재밌어 보인다는 반응이었다.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해도 좋은 걸까.

“그리고 넌 그걸 편집해서 포트폴리오에 쓸 거고?”

“뭐, 그렇게 되겠죠.”

“내 사생활은?”

“그렇게까지 세세하겐 안 찍어요. 매일 학교생활 하는 거 찍어봐야 내용이 나오겠어요? 학교 행사처럼 뭔가 있을 때를 메인으로 찍을 테니까 큰 걱정은 하지 마세요.”

“흠. 뭐, 어차피 나도 반쯤은 공인이라 별 상관없긴 해. 이런 게 처음이 아니기도 하고.”

“저 말고도 또 이런 부탁을 한 사람이 있었다고요?”

“그래, 그때는 정식 방송사에서 나왔지만. 그것도 상당히 오래전 얘기네.”

“그건 어떻게 됐어요?”“그 해에 뭔가 큰 사건이 터져서 방영도 안 되고 묻혀 버렸지. 뭐 때문이었더라? 기억이 안 나네.”

그녀는 딱히 떠올리려고 애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그래. 뭐…사실 좀 심심하기도 했으니 봐주는 거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까다로워 보이는 소녀는 어디로 사라지고 후배의 오버액션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인자한 선배가 눈앞에 있었다.

“이제 조건 얘기나 좀 해볼까.”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계약 하자는 얘길 꺼냈었지. 잘 풀린 것처럼 보여서 은근슬쩍 넘어갈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계셨나보다.

“저……제가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만 너무 무리한 건 힘들 텐데요.”

“야, 나는 콜 했는데 너는 빼려고? 와, 졸라 치사하다. 때려 쳐.”

심상치 않게 바뀐 선배의 어조에 나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래, 내 부탁이 가벼운 것도 아닌데 내가 인생 쉽게 살려고 했던 것 같다. 반성하자.

“으이구, 쫄았냐? 짜식 농담도 못하겠네.”

고개를 들자 히죽거리는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선배가 나를 놀려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 게임 뭐하냐? 이름 좀 적어 줘봐.”

내가 하는 게임 목록을 적어 문자로 보내주자 선배는 뭔가 체크를 하더니 곧이어 추려진 게임들이 답장으로 돌아왔다.

“그 게임들 아이디나 적어서 보내. 게임이나 같이 하자. 혼자서 하려니 영 심심해서 말이야.”

“네? 아, 네. 정말 이걸로 끝인가요?”

“싫어? 더 어려운거로 바꿀까?”

“아뇨, 아닙니다! 정말 좋아요! 와! 좋다! 아이, 행복하다!”내 반응이 재밌는지 선배는 시종일관 입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그럼 됐고. 오후 수업이나 잘 들어. 엠티 가기도 전에 빼먹지 말고. 뭐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없지?”

“아, 하나 있긴 하거든요. 근데 해도 되는 질문인지 잘…….”

“뭔데? 일단 물어나 봐.”

나는 얼굴을 봤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뺨에 있는 그 문신은 뭔가요? 기종 번호?”

선배의 얼굴엔 MOT-1을 적당히 변형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검색을 해보긴 했는데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계속 궁금해 하고 있던 참이다.

“이거? 아냐, 내가 새겨달라고 한 거야.”

“모트 원? 무슨 약잔가요?”

“아, 이거 그렇게 읽는 거 아니야.”

그녀의 입에서 나온 문자의 의미에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 사람의 본질은 나이가 꽤 있는 아저씨라는 것을.

“모똥이(MOTON-E)야.”




한양대학교에는 이상한 사람이 있다.

벌써 백년 넘게 한양대에 입학하길 반복하는 학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겉보기엔 어린 소녀지만 원래 몸은 이미 노사(老死)하고 복사한 기억을 안드로이드 몸체에 주입한 게 그녀(그)의 정체이다. 그(그녀)의 말에 따르면 성행위도 가능한 동체(動體)이지만 생체 안드로이드의 몸으로 바꾼 지 몇 십 년쯤 지나자 생물로서의 성욕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근데 초기엔 몸 좀 막 굴리긴 했어.”

“그거 할 거 다 해봐서 권태기 온 거 아니에요?”

“그것도 요소 중에 하나겠지. 쾌감까지 사라진 건 아닌데. 딱히 손이 안가.”

“아니, 좀! 다 들리겠네!”

“호들갑 떨지 마라. 니 목소리가 더 커.”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이 선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완전 아저씨네.

“자, 그럼 지금부터 신나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자를 보며 선배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신나긴 개뿔. 어차피 게임 좀 하다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고 하겠지.”

“심심해 보이시네요.”

“야, 내가 신입생 엠티가 벌써 몇 번째 인줄 알아?”

“그걸 왜 몇 번 씩이나 와요?”

“니가 한번 심심해봐라. 뭔들 못하나.”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어디 가시게요?”

“난 지루해서 못하겠다. 어디 적당한 곳에서 혼자 놀아야지. 넌 즐기다 와라.”

“빠지실 거면 대체 왜 왔어요?”

“니가 오자며 등신아! 와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그렇게 속삭이고는 선배는 정말 방에서 빠져나가 버리셨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조용히 빠져나와 뒤를 밟아보았다. 모똥 선배는 음식 관리를 하는 선배를 찾아가더니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술 몇 병만 줘.”

“네?”

2학년으로 보이는 이런 일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기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냥 드려. 그 분은 드려도 돼.”“괜찮아요?”

“저 친구 말이 좀 통하네. 안주도 좀 주라.”

그렇게 탄환을 장전한 선배는 구석진 빈방을 찾아 들어가더니 병나발을 불며 안주를 까먹기 시작했다.

“참혹한 모습입니다. 협동성이라고는 일말의 여지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군요.”

“야, 너 지금 찍냐?”

영상 촬영용 캠코더를 들고 방으로 들어서자 선배의 당황하는 표정이 담겼다.

“찍는데요.”

“똑같이 빠져나와 놓고선 뭔 협동성 타령이야. 나야 괜찮다만 넌 찍힌다?”

“어차피 저 없는 것도 모를걸요.”

“마음대로 하세요.”

선배가 가까이 와 앉으라는 듯 손가락질을 했다. 캠코더는 삼각대에 세워놓고 선배 앞에 마주 앉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친구 없냐?”

“없긴 하죠.”

“왜 없어?”

“이걸 제 입으로 말하면 뭐한데. 사람이 좀 이상한 방향으로 똘기가 있다 보니까 친구 사귀기가 힘들더라고요. ”

“아~ 그건 그럴 거 같다야.”

한동안은 선배가 안주를 부스럭 대는 소리만 방안에 가득 찼다.

“됐고. 너도 좀 마셔라. 처음 입에 대는 건 아니지?”

“고3 생일 지나고 몇 번 마셔봤죠.”

“잘 됐네. 노가리나 좀 까자. 내가 1학년 꿀팁 얘기나 해줄게.”




“아, 썅.”

눈을 뜨고 상황이 정리되자 입에서 자동적으로 터져 나온 말이었다. 반쯤 벗고 있는 나와 선배의 모습이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주고 있었다. 오해라고 말하기엔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발뺌도 할 수 없었다.

“잘 잤냐?”

아직 자는 거라 생각했던 선배가 턱을 괴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게 뭐에요 씨발.”

“그러게. 술이 들어가니까 이게 이렇게 되네.”

선배는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어질러진 옷을 주워 입었다.

“그래도 임신 걱정은 없으니 너무 마음고생 하지 말고.”

“선배님 원래는 남자였다 며요?”

“그런 의식은 희박해. 이 몸으로 갈아타기 전의 기억도 별로 없어.”

잡아떼거나 놀리려는 행동은 아닌 듯 했다.

“몸을 바꿀 때마다 기억의 열화가 생기는 건가요?”

“그 정도까진 아니고. 사람이 작년 일도 떠올리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당연한 거 아냐?”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경험해 본 일이 아니니 뭐라 말할 수가 없다.

“하튼 뭔가 좀 좆같네요.”

“왜? 아다 떼서 좋은 거 아냐?”

“이런 식으로 뗄 줄은 몰랐죠!”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일정표에 있는 아침 식사시간보다 일찍 일어난 셈이었다.

씻고 싶다. 아마 샤워장이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보니 문고리에 잠금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거 술에 취했을 때 잠근 건가? 내가 했든 선배가 했든 주의 한 번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씻고 방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는 방에서 캠코더가 눈에 띄었다.

미치겠네. 설마 찍혔나?

다행히도 영상 맨 끝에 찍힌 것은 묘한 분위기가 되자 캠코더를 끄러 다가오는 내 모습이었다. 영상을 되감아 보자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를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이건 뒷부분은 못쓰겠고, 쓴다면 앞부분만 잘라서 써야겠다.

“뭐야? 찍었냐?”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선배가 캠코더를 들여다보는 내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아뇨. 확인해 볼래요?”

“됐어. 걍 찍었어도 상관없어. 유출만 하지 마.”

“그러니까 안 찍었대도요.”

둘째 날 행사부터는 나도 선배도 어째서인지 두말없이 끝까지 참가했다. 엠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까지 우리는 별 얘길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2학년이 되었다.

엠티 때 일어난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어찌저찌 그때의 어색함은 풀고 지금은 괜찮은 선후배? 친구? 그런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임도 자주 같이 한다.

선배 이외에도 몇몇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성적은 나쁘지 않고 진로도 나에게 맞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 촬영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학교 축제 때 찍은 영상 중에 건질만한 부분이 많다.

“민우야.”

보이스챗을 키고 게임을 하고 있던 도중 모똥 선배가 나를 불렀다.

“왜요?”

“2학년 생활은 뭐 어떠냐?”

……맞다. 선배는 2학년으로 올라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으시지.

“할 만하네요. 아직 1학년 때 비해서 크게 어려워진 부분도 없고.”

“진로는 어때? 정했냐?”

“당연히 남들처럼 거대 방송사 입사죠. 프리랜서 영상투고가도 생각해봤지만 일단은 취업이 맞는 것 같아요.”

“뭐, 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제일이지.”

그러고 보니 선배는 대체 어떻게 백년이 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걸까? 돈을 어떻게 버는 거지?

“선배는 취업 걱정 없어요?”

“나? 나는 지금 그냥 먹고 살고 학비 낼 정도는 있어.”

그럴 것 같더라. 선배한테 한양대는 일종의 유흥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졸업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다니는 것이 목적일 뿐인 취미생활의 일종. 그에게는 눈을 뜨면 등교를 했다 하교를 하는 것이 생활이 일부가 되어있는 것이리라.

“그건 부럽네요.”

“야, 뭐가 부러워. 졸업도 못하고 계속 학교만 다녀야 하는데.”

어?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원해서 다니는 거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나는 이 때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지만 딱히 입 밖에 내진 않고 넘어갔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텐데. 왜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나를 포함한 많은 방송과 학생들이 강당문을 나서고 있었다. 성공한 방송인이자 우리 학교의 졸업생이신 박희정 선배님의 강의를 듣고 난 직후여서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역시 존경할만한 졸업생이시라는 생각이 몰려온다. 나도 꼭 저런 방송인이 되고 싶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학교가 끝나면 게임방을 가자는 약속을 잡아뒀기에 선배가 기다리고 있을 C동 로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선배가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분은……어? 박희정 선배님?

내 눈이 틀린 게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강의를 하시던 선배님이 모똥 선배와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맙소사, 대체 왜?

원래대로라면 기다리는 게 옳았겠지만 한마디라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선배, 어디서 기다릴까요?”

“어? 아니야, 얘기 거의 다 끝났어. 잠깐만 기다려.”

그런데 박희정 선배님의 반응이 이상했다. 나를 보고 놀라신 것 같았다. 아니……정확히는 내가 모똥 선배와 대화하는 것에 놀라는 듯한 모습이셨다.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 조심히 들어가고.”

“네, 선배. 안녕히 가세요.”

게임할 생각에 들떠 앞서 걷는 선배를 따라가며 나는 박희정 선배님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자 눈빛이 마주쳤다. 내 시선에 당황하신 듯 하셨지만 쳐다본 적이 없었다는 듯 몸을 돌리더니 복도를 걸어 사라지셨다.


그 분을 예기치도 않게 다시 만난 것은 며칠 뒤의 이야기였다. 하굣길에 누가 경적을 울리기에 돌아봤더니 박희정 선배님께서 차를 몰고 서계셨다.

“저를 만나러 오셨다고요?”

“그래요. 살펴보니 모똥 선배님과 꽤 친한 사이인 것 같더군요. 내 말이 맞나요?”

“친하다…고 말해도 되는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같이 노는 사이는 맞죠.”

“그렇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개 있어요. 시간 괜찮나요?”

“아, 예! 넉넉합니다!”

롤모델의 조수석에 올라탄다는 것은 기쁘기도 했고 긴장되기도 했다. 카페에 도착할 때 까지 숨소리도 내지 못한채 뻣뻣하게 시트에 등을 뭇고 손은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하고 음료수가 나오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박희정 선배님은 노년을 바라보는 연세셨지만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했고 화술에는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후배님은 선배님이 언제 졸업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3년을 알고 지냈지만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렇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은?”

“후배님은 선배님이 왜 백년 넘게 한양대를 다니는지 아나요? 그것도 1학년만 계속해서.”

“어……금수저의 이해할 수 없는 기행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런 일이었다면 차라리 나았겠죠.”

박희정 선배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가셨다.

“예전에 모똥 선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기획이 있었죠.”

“아, 그거 들어봤어요. 다른 사건에 묻혀서 결국 방송은 안 됐다던데…”

“그 방송의 기획자가 저였어요.”

“예?”

“제가 모똥 선배를 알고 있었으니 제안해 본 기획이었어요. 그 분의 기행은 유명하긴 했지만 백년이나 넘게 이어지고 있었으니 관심이 조금 시들해진 상태였죠. 그런 상황에서 다른 방송국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그의 일생을 담은 다큐’. 이거 괜찮다, 내부에서도 그런 분위기였고 선배도 쾌히 승낙해주셔서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선배님은 거기서 말을 한번 끊고 깊게 숨을 뱉어내셨다.

“하지만 선배의 옛날 자료를 조사해보는 동안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밝혀졌던 거예요. 인터뷰에서도……그런 뉘앙스의 대답이 돌아왔기에 저희는 타사건 핑계를 대며 영상을 묻어 버렸어요.”

“대체 무슨 사실입니까?”

말하기 겁나는 듯 박희정 선배님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무시고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정적이 흐른 뒤 선배님은 겨우겨우 입을 떼셨다.

“모똥 선배님도……처음에는 한양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재수를 선택하신 거셨어요. 하지만 성적과 환경의 문제가 꼬여서 번번히 재수 때마다 한양대에 재합격을 하시곤 했죠. 재수, 2수, 3수……5수 까지는 그럴 수도 있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거기서 그만 뒀어야 했어요. 10수…15수…20수……. 몇 번을 떨어져도 포기하지 못하고, 서울대에 대한 집착은 어느 샌가 재수에 대한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이 또 한 번 뒤틀려…한양대 1학년에 대한 집착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박희정 선배님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느 순간부터 선배님은 서울대에 갈 성적인데도 늘 한양대에 입학하셨어요. 외국으로 유학을 갈 수도 있는 실력과 재력인데도 매년마다 신입생이 되어 입학하고, 2학년이 되지 않은 채 반수해버리기를 반복하셨죠. 부모님께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돈을 버는 입장이 되어도, 학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학교를 사들이고, 본래 육체가 늙어버리자 새로운 육체로 바꿔 타면서까지, 그 분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건…그런…그건 마치…….”

내가 하려는 말을 안다는 듯 희정 선배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양대에 입학하기 위해 한양대를 사들이고, 입학하기 위해 매년 시험을 치고, 입학하여 1학년을 계속 반복하고, 입학하여…….

나는 모똥 선배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광기와 공포를 느꼈다. 그토록 한양대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가 결국 한양대 그 자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박희정 선배님과 헤어지고 난 뒤로 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어떻게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모똥 선배가 두려워졌다. 자연스럽게 사이는 소원해졌고, 선배에게는 사과를 하여 다큐를 찍는 것도 그만 두었다. 접점도 없어지자 만나는 빈도는 계속 줄어들어 4학년이 되고 나자 나는 선배와 완전히 남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했다. 2213년, 그의 200년째 입학을 축하해주지 못한 채.




졸업하고 30년이 넘게 지났다.

나는 원하던 대로 방송인으로서 일하고 있다. KBS에서 중역의 위치를 차지한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도 있고 직장상사·부하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그런 내가 모똥 선배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말 우연히도 대학생 때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영상의 원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보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아직도 한양대를 다니고 있다. 200수가 되자 다시 한 번 반짝 관심을 모았지만, 다시 몇 년이 지나자 그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그렇다고 뭔가 달라지진 않았다. 그는 다시 한양대의 공공연한 명물로 돌아갔을 뿐이다.

가끔씩 한양대 앞을 지나갈 때면 도망치는 바람에 그에게 묻지 못했던 의문이 미련이 되어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럴 때면 늘 고개를 털어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떠나가려다, 결국 다시 한 번 학교를 돌아보며 입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 선배시여! 영원한 스물의 영혼을 가진 이시여!

당신은 사실, 한양대를 사랑하지 않으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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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공지 판타지 갤러리 이용 안내 [977/2] 운영자 13.01.18 404717 119
14852719 판타지 갤러리 서버 이전 되었습니다. [15] 운영자 21.09.02 11926 23
14852718 역겨운 냄새만 안나면 자랑했다고 차단할 이유가 있나 망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8572 290
14852717 아니 난 라만차이거보고말한건데 [1] 재미교쓰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891 8
14852716 서버주 대우 받고싶으면 게임사에 요구하든지 그걸 왜 유저에게 요구해? ㅇㅇ(223.38) 21.09.02 1456 7
14852715 비틱질 말고 걍 전진박아도 차단먹나 [2] 창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105 0
14852713 싱글벙글 올드보이.jpg [1] ㅎ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7279 23
14852712 D.P 군대의 찐한 맛 나네 니에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352 0
14852710 커브사고싶긴한데 좀무서운게 [3] 재일교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138 0
14852707 가웨인이 댓글 다는거 불편하지 않냐? ㅇㅇ(223.38) 21.09.02 1084 2
14852706 저런 유동이 그 겜갤에서 말하는 무과금 박탈감이란거냐... [3] 라만차의기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897 1
14852705 불멸을 그대에게 마지막화 보고울었다 ㅜㅜㅜㅜㅜㅜㅜㅜ [1]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048 1
14852704 진짜 인간육신 존나 이기적인거같음 유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874 3
14852702 베넷 상시에서 나오는거 아님? 창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048 0
14852701 40대 가장 폭행 여초반응.jpg [3] ㅎ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7746 26
14852700 유산균 지금부터 먹는 게 근데 큰 도움이 될까 [2]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761 0
14852699 그냥 잘나왔다고 자랑하는게 왜 비틱질이냐 망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970 0
14852698 크로스커브 현지가는 300중반인데 [2] 보빔으로세계정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600 0
14852695 일단 코코미는 거를거임... 김아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044 0
14852694 근데 쿠죠 사라 이년 라이덴 2돌 박는동안 4돌함 창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965 0
14852693 던파 오늘 들가서 헬 돌릴 생각에 기대되다가도 한숨나옴 엘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873 1
14852691 근데 무과금 비틱도 아니고 돈 지르던사람이 잘뜬건데 [2] 창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605 0
14852690 통두만 탈조센하네 아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919 0
14852689 라이덴 돌 모아서 천장칠수있을거 같은데 2돌을 할까?? 재미교쓰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950 0
14852688 아 졸리네... [5] 유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563 0
14852686 원신늒네 다음 감우복각 뽑아야...? [8] 라만차의기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613 0
14852685 일본이랑 우리나라랑 연결시키면 수도권집중 막지않음? [4] ㅇㅇ(175.119) 21.09.02 1662 3
14852684 라만차 자짤 예쁜데 왜 차단함 ㅇㅇ(223.38) 21.09.02 973 0
14852683 이거 볼때마다 존나 웃김ㅋㅋㅋㅋ [2] 치둑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773 0
14852682 유라라이덴카즈하종려 [2] 김아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468 0
14852681 디퓌 궁금해서 넷플릭스 결제하려는데 베이식 480p는 무냐 [1] 래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454 0
14852678 저 아연이임? [6] Lui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607 0
14852677 라이덴 2돌박는데 300연 넘었나 창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3603 0
14852676 서양식 역사 얘기 중 좋은 예시가 식인이잖음 [7]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8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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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2673 아 진심수라나찰완성형 플롯 완성했다 마르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820 0
14852670 지금 정부 정치 외교 꼬라지 보면 좋은 소리 나올 [1] 샛별슈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1526 0
14852669 수영 가르치고있는데 제자가 저카면은 [1] ㅇㅇ (117.111) 21.09.02 17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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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2658 라만차 갤에 비틱질밖에 안하잖아 [5] ㅇㅇ(223.62) 21.09.02 1627 2
14852656 대학교로 돌아가게해줘 종이먹기싫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5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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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2654 크퀘 징짜 희망계가 왜 희망계임 도도가마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91 0
14852653 가테갤 안보고 치니까 카마엘 리더로 치는거 몰라씀 [4] 라만차의기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376 0
14852651 ㄴ TS신도시맘돼서 평일오전부터 카페에서 수다떰 ㅇㅇ(218.144) 21.09.02 158 0
14852650 님들 카카오페이 공모주 청약 할거임? [1] 든든허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2 2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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