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아시안게임 후 독일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독일 행 비행기에 오른 차범근이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와 가계약했다.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 진출한 한국 최초의 선수였다. 차범근이 유럽 진출을 꿈꾼 것은 1972년. 하지만 병역 의무는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고, 6년이 흐른 1978년이 돼서야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됐다.

가계약 후 차범근은 12월 23일 보쿰과의 경기에 출전했다. 행운이었다. 당시 다른 팀은 모두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가 있었지만 다름슈타트만 한 경기가 남아 있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방콕에서 곧바로 날아와 여독이 풀리지 않았고, 시차와 날씨 등을 극복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지만 유럽 진출을 위해서라며 몸을 불살라야 했다. 90분 내내 쉴 새 없이 뛰었고, 그가 가진 기량을 모두 보여줬다. 그리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다름슈타트의 정식 선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벽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는 당시 군인 신분이었다. 공군 사병의 복무 기간은 32개월. 하지만 공군은 축구 전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차범근을 영입하면서 기초 훈련 과정 6개월을 수료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었다. 이런 조건이었기 때문에 차범근은 복무 기간이 26개월인 줄 알았다. 또 1976년 10월에 입대했기 때문에 1978년 12월 말이면 만기 제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수 여권 기간도 1979년 1월 5일이라 그는 휴식 기간을 이용해 귀국했다. 제대 신고를 마친 후 다시 수속을 밟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영복 참모총장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소속 부대를 무단이탈했다며 제대를 승낙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다름슈타트와의 계약은 자동 파기됐고, 분데스리가 등록도 취소됐다. 허망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차범근은 6개월을 채우고 나서야 군 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요약
당시 공군에서 차범근에게 기초군사훈련(6개월)을 면제하는 조건으로 공군 입대를 요청함

당시 공군의 복무기간은 32개월인데 26개월을 채운 시점에서 독일로 건너가 프로계약함

공군참모총장은 차범근이 무단으로 부대를 이탈했다고 판단 자대 복귀를 명령함

결국 차범근은 1경기만 뛰고 복귀하여 6개월 마저 마치고 다시 분데스로 진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