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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 엘사, 소녀 그리고... - 1편, 잠긴 문과 호기심

겨울★왕국(222.238) 2014.04.21 11: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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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은 못 보던 방이군."


아렌델의 여왕은 침소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별안간 어떤 방 앞에 멈췄다. 햇빛이 잘 드는 쪽 방. 

하지만 오며가며 이런 방은 못 봤던 것 같은데. 엘사는 생각했다. 


누가 쓰는 방이느냐? 그녀가 옆에 붙은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은 살짝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사정이 있어서 닫아둔 방입니다.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하느냐."



엘사가 문설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반질하고 뭉툭해진 손잡이와 나무. 

시종의 말과 달리 오랫동안 쓰지 않는 방은 마치 누가 매일 드나들며 만진 것처럼 사람의 손을 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요청했다.



"들어가 봐도 되느냐?"



그러자 시종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먼지가 자욱할 겁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아랫것들을 시켜 말끔히 치운 후 들어가시게끔 하겠습니다."

"아니. 난 괜찮다."



여왕은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눌렀다. 손잡이는 스르르 내려가다 중간에 걸린 것처럼 탁 하고 막혔다. 

시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겨있군."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고."

"이 방은 볕이 잘 드는 방이고 이 층은 전부 침실로 알고 있는데."

"네. 하지만 이 방만 쓰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어째서?"



엘사는 물었다. 하지만 이내 시종은 그녀가 궁금해 하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을 눈치 챘다. 

뭔가 숨기고 있구나. 

때문에 그녀는 침소로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복도 내내 뒤돌아보며 문을 응시했다. 

왜 불현듯 이 문이 눈에 띈 걸까? 기억 저 편 아득한 곳에 잡힐 듯 말 듯한 빛줄기 한 가닥은 도저히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고 있지만 떠오르지 않는 기억. 불쾌하진 않아도 답답했다.


잠자리에 들러 비단으로 된 캐미솔 원피스로 갈아입은 후에도 방에 대한 기억은 떠나가질 않았다. 

시종에게 방을 보겠다고 했다간 모든 것을 치운 후에야 보여주겠지. 엘사는 알고 있었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 자신을 모두로부터 숨겨준 것처럼 아마 그 안의 미지의 것도 그렇게 숨겨버릴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시종들이 손을 쓰기 전에 자신이 한발 먼저 앞서기로 했다.


한밤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문틈으로 스며 나오는 빛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일순간 사라졌다. 엘사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하인 중 하나가 내가 잠이 든 줄 알고 복도의 불을 끈 것일 테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엘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몰래 방문 밖으로 나올 계획이었다. 

정확히는 아주 오랜만에 옛날에 했던 것처럼...


옛날에? 


엘사는 짐짓 고개를 갸우뚱 했다. 지금 그녀가 하는, 능숙하게 뒤꿈치를 들어 올린 사뿐한 발걸음은 처음 해본 일이 아니었다. 

밤짐승처럼 떠도는 성격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걸까?

아마도 그녀 안에 있는 소심한 성격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이끈 것이리라 그렇게 믿었다. 



더 이상 복도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여왕은 지금만큼은 밤손님처럼 살금살금 문으로 접근했다.

용수철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는 창밖의 달빛을 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고 고요한 텅 빈 공간은 마치 이 세계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유령이나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진 않을까? 갑자기 오래 전에 읽은 전설이 떠올랐다. 

세계를 떠받치는 나무와 외눈박이 신의 이야기. 거대한 뱀과 늑대의 전설.

이런 것들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비집고 들어가 엘사는 등 너머로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야, 이 성은 우리 부모님과 조상님이 계신 곳인 걸. 마주쳐도 그뿐이야. 날 해치시기는커녕 지켜주실 거야.'



엘사는 가볍게 손가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엘사의 발치부터 저 복도 끝까지 얼음으로 된 카펫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카펫은 복도바닥보다 약 30센치 정도 붕 떠 있었고 카펫 머리는 오를 수 있게 낮은 계단처럼 되어 있었다. 


엘사는 얼음 카펫을 딛고 미끄러지듯 그 방까지 걸어갔다. 


카펫은 그 방문 앞에서 끊어졌다. 카펫 끝도 카펫 머리처럼 내려오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엘사가 내려와 손가락을 아까와 반대로 휘두르자 얼음 카펫은 공중으로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다른 손 손가락으로 열쇠구멍 앞에 까딱이자 이번엔 열쇠가 만들어졌다. 

밋밋한 막대기 같은 열쇠는 열쇠구멍 안에 들어가자 자물쇠 이빨에 맞추어 돌기가 돋아났다. 문을 따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마법이란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한 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쓸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엘사는 이 경험이 굉장히 신기하고 두근거렸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방 안은 햇빛 대신에 달빛이 은은하게 깔려 새벽처럼 환했다. 

엘사는 시종의 말처럼 먼지가 많을 줄 알고 코를 막았지만 자욱할 거란 먼지는 있지도 않았다. 항상 치우는 다른 방과 별 다를 것이 없는 방이었다. 

침대 하나와 옷장, 그리고 화장대와 책상. 외국에서 들여온 듯한 꽃과 자개무늬로 장식한 가구들은 남성보다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방이 아니었다. 


침대 하나만 있기엔 조금 커다란 침실. 엘사는 조심스레 방 안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솜털이 보송한 고양이 발보다 더 가볍게 마루를 탔다.

처음 들어온 것 같은데도 어딘지 익숙한 방의 구조. 침대 맞은편의 텅 빈 공간에 마치 걸터앉고 싶은 마음이 어째서 드는 건지 그녀는 몰랐다.


그때,



"누구세요?"



침대에서 별안간 말소리가 들렸다. 

엘사의 어깨가 빠르게 움츠렸다. 갑자기 아까 복도에서 했던 이상한 생각들이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며 소름이 오싹하고 돋았다.

곧바로 그녀는 여차하면 침대를 쏘아버릴 기세로 손을 뻗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두꺼운 이불 밑에서 꼼지락 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달빛이 어스름히 그녀의 등 뒤에서 빛났다.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짙은 머리색의 여자였다.

그녀는 방금까지 자다가 무방비한 상태로 엘사와 맞닥뜨려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엘사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넌 누구지?! 내 성에서 무얼 하는 것이냐?"

"내 성이라니?...설마 당신은?"

"그렇다. 난 아렌델의 여왕, 엘사이니라! 어서 침대에서 나와 네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않는다...면..요?"



급작스런 상대의 반문에 당황했는지, 엘사의 손끝은 바들바들 떨렸다. 



"그, 그...무엇을 할 것이냐 하면...그래! 손에 얼음 수갑을 채우겠노라!"



사실 지금 엘사는 저 정체불명의 여성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한다면 얼음수갑은 고사하고,

한 순간에 그 자리에서 얼음 동상 하나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물론 되도록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침대 속 여자는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이려는 듯 양손을 들며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미루어 짐작해 엘사와 비슷한 소녀였다.



"그...저....엘사 여왕 폐하. 걱정 마세요. 전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에...것입니..다."

"사정? 무슨 사정? 내 성에 머무는 사람인데 어찌 내가 그 사정을 모르느냐?" 



엘사가 보다 엄한 어투로 추궁하듯 물었다.



"사실...저, 전 지금 희귀한 병에 걸려서 많이 위독한 상태인데...그러니까...음..."



소녀의 입술은 아까보다 파르르 떨렸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듯 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쫓았다. 



"제 뜻은...성의 사람들이...그런 절 가엾이 받아들여 이곳에 묵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희귀한 병?"



엘사는 소녀를 향해 뻗은 손을 내렸다. 병이란 말에 마음이 누그러짐과 동시에 경계가 풀렸다. 

세상에 함부로 아렌델의 여왕과 맞설 이는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병든 소녀라면 더더욱.

엘사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희귀한 병이라니 그것이 무슨 말이냐?"

"전...손끝과 발끝부터 점점 얼어가는 병에 걸렸습니다."

"얼어가는 병?"

"아무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죠."



엘사는 침대 위에 앉아 소녀가 들어 올린 양손 중 (소녀 입장에서) 오른손을 잡아 만졌다. 

엄지로 손가락 끝부터 손바닥까지 더듬거리며 쓸어내렸다.



"이리 해도 아무 감각이 없다고?"

"없습니다, 폐하."

"그런데 아까 움직이진 않았더냐?"

"움직일 수는 있지만 다른 살과 부딪히면 마치 가죽 포대가 스치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나병 같구나."

"하지만 나병은 아닙니다."

"어떻게 알지?"



엘사가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웃으면서 잘은 몰라도 확실히 나병은 아니라며 말했다. 

여왕이 만지는 소녀의 손은 다른 것 없이 분명 따뜻한 보통 살갗의 감촉이 있었다. 

엘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손톱으로 살을 눌러보았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남이 만지는 것을 보는 것처럼 소녀는 태평하게 볼 뿐. 소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엘사는 화들짝 소녀의 손을 놓았다. 소녀는 이것을 그만 손을 내려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찌하여 그런 병에 걸린 거지?"



엘사가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아시느냐?"

"전 고아라서 부모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다른 혈육은?"

"...역시 없습니다."



대답하기 살짝 힘든 듯 소녀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으며 고개는 아래로 떨구었다. 

엘사도 구태여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치챘다.


이 소녀는 지금 꾸며서 이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역시 부모를 잃은 엘사이기에 그 슬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보는 불청객 소녀와 어찌된 영문인지 동질감을 느낀 더이상 그녀에게 적의를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사는 느낌 없을 소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갠 채 이렇게 물었다.



"원한다면 여기 얼마든지 있어도 좋다. 그런 사정이라면 내게 진작 말을 해주지 그러했느냐."

"하지만...만약 저 같은 사람을 함부로 받아들인 것을 안다면 이 성의 하인들이-"

"내가 그만큼 어질지 못하다면 내 스스로에게 벌을 주겠노라."



엘사는 환하게 웃었다. 창가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얼굴로 달빛이 하얗게 반사되었다. 엘사는 익숙해진 밤눈으로 소녀가 기쁜 얼굴을 하는 것이 보였다. 

엘사는 더 이상 소녀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문을 빠져 나오기 전, 엘사가 소녀의 이름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도록 하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소녀는 어깨 너머로 창문에 떠 있는 태양같은 달을 바라보곤 고개를 돌려 이렇게 대답했다.



"...다이아나입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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