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렌델 포탈 - 통합 포탈 ]
[ 아렌델 포탈 - 11 ]
똑똑똑
아... 뭐야... 택배가 왔나?
“누구세요?”
나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서 고함치듯 물었다.
“제상씨, 일어나셨습니까?”
굵직한 남자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대답이 저래?
나는 손을 들어 잠에서 한참 덜 깬 눈을 비벼댔다.
잠깐, 방금 내가 뭐라고 그랬지? ‘Who is it?’ 이라고?
화들짝 놀라며 상반신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졸음이 달아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어제 일이 기억났다.
그럼 내가 누워있는 여긴... 아, 아렌델의 왕궁이구나.
아니,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라 분명 나는 아까 영어로 대답했다.
“시종 카이라고 합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카이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어를
듣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듣고 이해할 수가 있었다.
“네, 들어오...”
나는 황급히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영어였다.
카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뒷짐 지며 내게 걸어왔다.
“많이 당황스러우실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아니, 지금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요?”
나나 카이나 둘 다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한국어처럼 친숙하게 말하고 듣는 것이 가능했다.
“흠... 트롤의 마법 때문일 겁니다.”
그랬었지... 그런데 난 이런 옵션까지 주문한 적이 없는데?
“어... 일단 이건 됐고, 그... 돌아가는 방법은 어떻게 됐어요?”
“자세한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여왕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습니다. 준비를 마치면 여왕님께 가십시오.”
카이는 집무실의 위치를 설명해준 다음 뒤돌아나갔다.
나도 복도로 따라 나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카이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화장실엔 세면대가 있었다. 여기에도 이런 시설 정도는 있구나.
마음 같아서는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목욕을 하는 곳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간단하게 세안만하고 거울을 보며 뻗친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곳곳에 크로커스 문양이 장식되어있는 아름다운 복도를 지나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된 원형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외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유명한 해외 관광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안나가 외로이 홀로 놀던 그림이 많은 방은 어디에 있을까?
천천히 둘러보면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엘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엘사나 안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간
또 무슨 오해를 사서 낭패를 겪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집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카이가 집무실 앞에 서있었다.
“폐하, 제상씨가 도착했습니다.”
카이는 아까처럼 노크를 하지 않고 바로 닫힌 문에 대고 말했다.
넓이는 좁았지만 높이는 어마하게 높은 한 쌍의 여닫이 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방의 문은 완전히 닫혀있지 않고 한 쪽이 살짝 열린 상태였다.
“들어오세요.”
엘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카이는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 다음
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손잡이를 잡고 기다려주었다.
내가 완전히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카이가 문을 닫으려하자,
어린아이가 총총거리며 달려오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잠깐! 잠깐! 그 사람이 온 거야?”
카이가 다시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자 올라프가 눈앞에 나타났다.
“안녕, 난 올라프야!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지!”
올라프는 익숙한 대사와 함께 나와 카이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어, 내 눈구름 조심해! 이거 꽤나 민감하다니까.”
문을 닫으려는 카이의 팔에 눈구름이 부딪힐 뻔 하자 올라프가 말했다.
“카이는 이만 물러가 봐요. 필요하면 올라프를 보낼게요.”
엘사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올라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 폐하.”
그놈의 ‘Your majesty’가 ‘폐하’로 들리니까 조금 어색하네.
카이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조용히 집무실을 나갔다.
그런데 문이 딸깍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문을 똑바로 닫으려고 하자, 엘사가 손을 들며 제지했다.
“그대로 놔두세요. 안나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요.”
아, 이런 이유가 있어서 좀 전에 카이가 노크를 하지 않았던 거구나.
나는 문을 그대로 두고 엘사가 앉아있는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니까, 이젠 이렇게 빨리 말해도 전부 다 이해하실 수 있는 거죠?”
그녀는 내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던 어제와 달리 평소처럼 말했다.
“네, 폐하. 우리 나라말을 듣는 것처럼 익숙하게 들립니다.”
“우리 나라말?”
옆에 있던 올라프가 나를 올려다보며 질문했다.
“음, 올라프? 내가 지금 급하게 이야기할 게 좀 있어서 그런데...”
“좋아, 그럼 지금 급하게 이야기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런 유머는 실제로 들으면 재미없구나.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난처한 얼굴을 하자 올라프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알겠어, 나도 알아. 대신 이따가 나한테 다 말해줘야 된다?”
올라프는 토라져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기 의자를 가져와서 앉으세요.”
엘사가 가리킨 곳에는 있는 등받이가 긴 목재의자가 있었다.
보기보다 훨씬 무거워서 나는 끙끙대며 의자를 가져왔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입을 가린 채 쿡쿡대고 웃었다.
“미안해요. 그냥 거기 앉으라고 그럴 걸.”
“괜찮습니다, 폐하.”
“이제 그만 ‘폐하’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좋아요. 긴장도 좀 푸시고요.”
잠시 업그레이드된 내 머리가 번역을 잘못한 게 아닐까 싶은 말이었다.
“제상씨가 살던 세계에는 왕이 없잖아요.”
이젠 아예 ‘제상씨’라는 호칭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번역오류일거야.
“뭔가 좀... 갑작스럽네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트롤의 마법으로 제상씨가 아렌델에 오기 전 겪은 일들을 보았어요.”
엘사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으며 어제의 일로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런데 그것 말고 다른 마법도 쓴 것 같던데요?”
나는 한 손을 들어 검지로 내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날이 밝으면 저와 안나가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또 설득해야만 하는데
제상씨는 공용어에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페비가 손을 써둔 거예요.”
하긴 덕분에 편하기는 편하네. 그런데 설명은 알겠는데 설득...?
“설득이라니요? 그러니까... 제가 돌아가도록...?”
“그게... 사실은...”
그녀가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망설이는 눈치였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침을 꿀꺽 삼켰다.
“후... 좋아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상씨는 아렌델에서 다시 죽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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