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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주의 시계 칼럼 #8 - 시계 문맥 읽기. 스위스는 왜 시계 강국이?
1. 서문오늘은 시계 산업, 역사의 전체적인 “문맥” 을 읽어 보려고 해. 시계를 소비하면서 다들 스위스, 독일, 일본 등에서 시계 산업이 흥했다는걸 알고, 각각의 나라마다 다른 시계의 “기풍” 혹은 특징들이 있는걸 느꼈지만, 왜 그런지는 잘 생각을 안해본거 같아서. 왜 스위스에서 시계 산업이 발전했을까? 일본은 왜? 독일 시계는 왜 그렇지? 영국은 왜 산업혁명의 시발점인데 왜 시계 산업은 흥하지 않았지? 등등 궁금증을 풀어보자! (주의 사항: 이건 절대적인 사실이 아니라 글쓴이의 뇌피셜과 취미를 이것저것을 엮은 것이다)2. 스위스 시계 산업의 태동, 종교 혁명스위스 시계 산업의 문맥을 읽어보려면 알아야 할건 두가지, 스위스는 전란이 많은 유럽에서 중립국이 였다는 것과, 스위스, 특히 제네바가 가지는 지정학적 요소들이야.다른 많은 발명품 같이 처음 시계의 역사는 역시 당시 강대국들이 였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등 이 주도 했어. 하지만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껴가. 특히 가톨릭이 주류였던 프랑스에서는 개신교들은 많은 탄압을 받지. 결국 탄압과 종교전쟁을 피해 당시 중립국이자 개신교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던 스위스, 특히 제네바로 많은 프랑스 개신교 인들이 유입이 되.(제네바 위치)스위스 지도를 보면 알수 있지만, 제네바는 프랑스 내부로 뾰족이 튀어나와 있는 형태로 프랑스 개신교들이 잘 넘어갈수 있는 위치에 있지. 당시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가톨릭과, 당시 비 기득권 이였던 개신교의 대비로 인해 스위스로 넘어간 개신교 인들중 기술자들, 그중 워치메이커, 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이때 프랑스는 시계 관련 인재들을 많이 잃게 되고, 거기의 반사 이익으로 스위스는 양질을 인사들을 얻게 되지. 또, 마틴 루터킹을 필두로 종교 개혁의 원산지인 독일은 그 기술자들을 잘 보존했다고 할수 있지.(글라슈테 위치)독일의 종교 개혁은 북부 기반으로 동북쪽으로 갈수록 개신교가 강하고 남서쪽으로 갈수록 가톨릭이 강해. 흥미로운 점은 나중에 독일 시계 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글라슈테도 개신교가 강한 동북부에 있다는 거지. (기술자들은 많았지만, 후 공산화된 동독지역은 종교색이 많이 옅어졌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지만 나라 전체로는 가톨릭이 개신교와 비슷하거나 약간 우세한 판국이다)스위스 시계 산업의 종교혁명이라는 문맥은 여기서 끝이 아니야. 그건 바로 또다른 종교 개혁자 장 칼뱅 때문이지.(장 칼뱅)장 칼뱅은 프랑스 북부, 즉 독일 국경지대에서 태어났어. 공무원 아버지를 둔 장 칼뱅은 신학을 공부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하게 되지. 아버지의 영향과 법학도생이라는 특성때문인지 당시 보수적인 가톨릭 보다 인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독일 국경근처라는 지리적 특성과 개인의 성향으로, 독일 루터의 복음주의와 종교개혁에 칼뱅 또한 영향을 받지.아까 프랑스의 개신교인들은 박해를 받고 스위스에 많이 정착했다고 했지? 장 칼뱅 또한 마찬가지야. 공교롭게도 장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에 정착하게 되고, 칼뱅 주의 (개혁주의) 개신교가 제네바에 뿌리를 뻗게되지.여기서 개혁주의 라 하면 “개혁” 이라는 단어 때문에 왠지 더 개방적이고 세속적 일거 같은 느낌이 들잖아? 하지만 여기서 개혁이란 종교적 개혁, 구체제였던 가톨릭을 개혁하는거지 가톨릭과 비교해서 개방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았어. 오히려 모두가 죄인이다 라는 사상과, 엄격하고, 검소한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신정정치를 이어갔어.그의 일환으로 칼뱅이 요구한건 “보석 (장신구)” 를 착용하지 말라 였어. 이게 스위스 시계 산업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였어. 시계 장인들과 함께 많은 세공사들, 보석상, 기술자들이 스위스 제네바로 넘어갔지만 보석을 만들수 없으니 그 기술자들이 만들수 있었던건 무었이였을까? 바로 “시계” 였어.프랑스의 뛰어난 세공기술, 특히 보석이나 금, 은 을 다루는 기술들은 고스란히 시계 산업에 스며들지.하지만 이때만 해도 스위스가 수준급 시계로 이름을 알렸다~ 정도의 수준 이지 지금처럼 독보적인 위치는 아니였어. 여전히 독일, 영국 이 시장을 이끌었고, 역시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이자 최대 산업국인 영국이 주로를 했지. 또한 떠오르는 신흥국인 미국도 늘어나는 철도망을 보조하기 위해 정확도를 요구하는 시계산업이 만들어 지고 있었지.3. 스위스의 인재들, 지리적 특색 모든 산업이 그렇듯 한번쯤 우연인지 필연인지 수많은 인재들이 동시대에 나타나서 산업을 바꾸는 때가 있어. 스위스도 그랬지. 그 출발은 우리에게 덜 알려진 Daniel Jeanrichard 부터 시작되. 자동차 산업에 헨리 포드가 있다면 시계 산업에는 다니엘 이 있다고 봐도 되.(Daniel Jeanrichard)당시 많은 제조업이 그랬듯 시계 산업도 길드를 바탕으로 도제제도를 통해서 굴러가고 있었지. 길드가 소속된 장인들을 컨트롤하고, 각 장인들은 소수의 도제를 키우며 조금씩 기술을 전달하고, 기술유출을 우려해서 확장도 소극적이였지. 또한 가격 하락등을 우려로 시계를 조금씩 만든다던가, 혹은 신기술 (기계식 도구) 도입을 꺼려해서 제작수도 적었지.이 폐쇄적인 길드 중심의 산업에 불만을 느낀 다니엘은 분업화, 외주/하청 (지금은 안좋게 들릴수 있지만 당시에는 길드에서 독점되는 생산을 다른 기술자들한태 특정 부품들을 외주를 준거지), 신기술 도입 등으로 훨씬 더 많은, 정형화된 높은 품질의 시계를 생산할수 있게되지.이 시점부터 스위스 시계 생산, 수출은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어.그 때문인지 수많은 인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Abraham-Louis Perrelet 가 오토매틱 시계를 발명하고, 파테필릭의 창업자 Adrien Philippe 도 이 시대 사람이고. 브레게 또한 곧 나타나서 투르비용 등 많은 발명을 하지.또한 앞서 말한 지리적 이점이 또 스위스를 도왔어. 프랑스의 Jean-Antoine Lépine 이 현대에 익숙한 납작한 무브먼트를 발명했지.(장의 무브먼트)이 무브먼트는 시계를 더욱더 얇게 만들기를 가능하게 만들어 줬어. 그런데 왜 프랑스가 아닌 스위스가 이 기술의 혜택을 받게 되었을까? 그런 바로 프랑스는 아직 대량생산 체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거야. 앞서 말한 다니엘은 이미 스위스 시계 시장에 분업, 대량 생산 시스템을 정착 시켜놓았고, 더 얇아진 장의 무브가 이식된 스위스 시계 산업은 더 얇고, 혁신적인 시계를 싼 값에 대량생산 할수 있었던거지.이때부터 영국과 다른 나라들의 시계 장인들은 스위스 시계와 경쟁속에서 뒤쳐지지 시작해.앞서 말한 다니엘의 외주 방식은 établissage 스위스 만의 특이한 생산 체계로 이어져.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는 파리, 런던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모든 산업이 집중되어 있었다면 특이한 연방 체제 이던 스위스는 각 주, 도시 마다 시계 공방, 산업, 등등 이 골고루 퍼져있었어.(영화 Unrueh 중 한 장면. 무정부 주의자와 스위스 시계공들의 이야기.)장인들과 도제들이 한 공장에서 시계의 모든것을 만드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스위스는 établissage 외주 시스템을 통해 도시, 마을, 지방마다의 시계 장인들은 특정 부품을 빠르고 더 전문성 있게 공금했고, 시계 제작사들은 그 부품들을 사드려 조립 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지.이 방식이 그 조그만 스위스 안에 지금까지도 지속되어온 수많은 시계 부품 회사들이 생기게 했어.여기서 오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 품질의 인상은 다른 나라들이 경쟁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어. 1800년도에는 스위스, 영국 양 국가 모두가 약 20,000 개의 시계를 생산했다고 하는데, 1850년에는 영국은 20,000 개, 스위스는 2,200,000 개의 시계를 생산했다고 해.4. 자동화와 미국의 영향지금도 저가 대량생산품이 그렇듯, 당시 스위스 시계도 싸지만 품질은 떨어지는 이미지였어. 또, 길드와 도제 방식을 스위스식 분업, établissage, 미국에서 더 세련되고 발전된 대량생산 공정이 가격과 품질로 스위스 시계를 위협하기 시작했어.(당시 미국의 대표 시계 회사 Waltham)하지만 역시 생산력이 생겨도 워치 메이킹의 노하우 는 없던 미국은 스위스 보다 한단계 아래로 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나 1868년, 미국에서 Florentine A. Jones 가 스위스로 건너가 미국의 선진 생산 공법, 스위스의 워치메이킹 노하우와 인력을 사용해 회사를 새우니 그것이 International Watch Company, IWC 다. (왜 스위스 시계 회사인 IWC 가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이 된다)IWC 의 시작으로 établissage 에서 멀어지고 선진 생산 공법을 스위스 시계 회사들도 도입하기 시작한다. 그 후, 시계 산업도 기계를 이용한 자동화 를 시작한다.여러인물들이 기계를 이용한 자동화를 시작하려 했지만 브레게의 제자인 Ingold 는 특히 쥬얼을 놓을 자리가 있는 플레이트를 생산 하는 기계, 등 많은 시계 부품을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고, 자신의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려 산업대국인 영국으로 건너가지만 역시 영국 시계 산업의 자동화 거부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게 된다. 그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온 그는 스위스 산업의 자동화에 큰 이바지를 한다. 또다시 영국의 기득권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도운것이다.(Ingold 의 설비중 하나)5. 중립국스위스 시계 산업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롤렉스도 원래는 영국의 시계 회사였다. 스위스의 Aeglar (현재는 롤렉스의 자회사) 와 협업하여 시작한 영국 브랜드인 롤렉스는 1919년, 스위스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 1차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사치품, 시계 등에 큰 수입, 수출 관세를 매겼고, 거기서 좀더 자유로운 스위스로 옮기게 된것이다. 왜 롤렉스 시계를 차고 수영을 한 수영선수가 영국인이였는지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영국 의회 컨트리 클럽에 설치된 롤렉스 시계)중립국이라는 사실은 스위스 시계 가 일등으로 올라가는데 마침표를 찍었다 할수 있다. 이미 기술, 가격, 품질에서 앞서가던 스위스 시계 산업은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전쟁을 수행할때 양쪽 모두에게 시계를 수출 할수 있었던 것이다.(더티 다즌)더티 다즌 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군용시계 를 제작한 회사 대부분이 스위스 시계 회사이며, 독일의 플리거를 만든 회사중 IWC 도 포함된다. 이렇게 중립국이라는 특징 덕분에 스위스는 세계적인 시계 수출국이 된다.(1940년도 IWC의 플리거)6. 마치며스위스 시계 산업이 워낙 주류고 역사가 기니 길어져서 다른 얘기를 못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독일, 일본, 이탈리아 의 "문맥" 도 얘기해보도록 하겠음. 좋은시계 차고 좋은하루 보내!
작성자 : 모주에서부곡하와이한잔고정닉
동해 천연가스전 발견 요약
브리핑에서 밝힌 예상 매장량은 140억 배럴매장량으로 따지면 금세기 최대규모 유전이라 불리던 남미 가이아나 예상매장량 50억배럴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임시추 이후에는 예상매장량의 두배가 넘는 110억 배럴이 나왔고 이번 140억 배럴의 크기는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을 것임.https://www.energ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51 엑슨모빌, 가이아나에서 천연가스 개발 확대[에너지신문] 석유 발견 이후 5년만에 원유 생산량이 55만배럴 이상에 도달한 가이아나가 대규모 천연가스 자원도 개발할 계획이다.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는 국내외 에너지시장 동향을 통해 가이아나가 엑슨모빌이 가이아나 해상에서 최근 몇 년간 110억boe(석유환산배럴) 이상의 석유www.energy-news.co.kr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60328151 유전의 힘…'최빈국' 가이아나 수직성장, 노르웨이는 1위 국부펀드 운용유전의 힘…'최빈국' 가이아나 수직성장, 노르웨이는 1위 국부펀드 운용, 英, 브렌트 유전 개발로 개혁 日 언론, 지도 그리며 집중 보도 한·일 공동개발 7광구도 재조명www.hankyung.com20세기에 엑슨모빌이 해당 유전을 발굴해 가이아나를 농업국가 최빈국에서 석유 부국으로 만들어 냈음가이아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 6,000달러에서 불과 4년만인 2022년에 1만 8000달러 수직 상승시킴22년 경제성장률은 62.3%에 달했고 작년에도 38%를 기록함해상에선 하루 6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생산되고 있고 엑슨모빌은 2027년까지 추가 유전 개발 계획도 있음https://www.mk.co.kr/news/economy/11032490 美 액트지오社 지진파 탐사 후 1년간 심층분석 - 매일경제국내 전문가 5개월 검증www.mk.co.kr그리고 그 가이아나 탐사시추를 주도한 엑슨모빌 탐사전문가 리더 출신이 만든곳이 바로 액트지오고한국 산업부가 액트지오에게 매장량 평가 의뢰 맡겨서 이번 동해 가스전 기초 탐사를 진행했음대략 10명정도 되는 소기업이지만 CEO 경력으로 보면 어느정도 인정을 해도 될듯함개발되는 위치는 8광구와 6-1 광구로 알려짐 이곳이 뜬금없는 지역은 아님8,6-1 광구는 2017년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탐사권 신청을 받았던 곳임탐사권이 설정되면 10년간 탐사와 시추를 할 수 있게 되는데 문제는 탐사권 신청하는 민간 기업이 없어서 탐사가 보류되었던 지역이고이번에 매장이 확인 포항 영일만 지역은 예전부터 석유랑 천연가스가 나오던 지역임2017년 3월에 포항 공원 조성지에 지하수 개발을 위해 땅을 파다가 천연가스가 나와 굴착기에 불이 붙은 일이 있었음불이 금방 꺼지지 않자 포항시는 불길이 붙은 굴착기등 현장을 보존하고 주변에 방화유리를 설치함이 불길은 현재까지도 타오르고 있고, 해당 공원 이름을 '불의 정원'으로 바꾸게 됨매장량은 포항시민이 한달정도 쓸 수 있는 정도라 경제성이 없어 개발까지 이어지지 못했음포항 앞바타 영일만을 포함하는 포항지역 지하층은 신생대 3기 층으로 유기물과 바다 생물이 널리 분포해 있어 그동안 학계나 관련 업계에서 천연가스 및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계속 제기해왔던 지역임2020년말에도 포항시 북구에서 천연가스 매장지를 추가로 발견했지만 경제성이 없어서 개발을 포기 함이번 정부발표 매장지역과 액트지오 평가업체 보고서로 보면 천연가스와 석유가 나와도 이상이 없는 지역이라는 말임.이번 동해가스전 평균수심은 1000M가 넘는 심해유전이라 개발 난이도 높은 유전이지만현재 중국이 시추중인 카이핑난 유전의 유정의 최대깊이는 4831M로 동해가스전의 4배가 넘어가는 깊이임결국 개발 난이도보단 경제성을 결정하는 것은 유가와 매장량으로 보면 될듯함.6-1 광구 하단에 국내 유일의 천연가스전이 있었고한국석유공사가 1998년 7월 탐사 시추에 성공한 최초의 가스전으로 가채매장량이 LNG기준 500만톤 이었음2004년 말부터 하루 천톤씩 상업생산에 들어갔고 2021년 말까지 가스를 생산하다 현재는 생산시설을 철거중임철거 이후에는 이산화탄소포집,저장시설로 전환할 계획임.동해가스전은 2003년 9월 산지부 국정감사에서 큰 논란이 발생한 곳임당시 국정감사젱어스는 다음과 같은 논란이 일어남이러한 논란 끝에 2004년 말에 상업생산을 시작한 것임.고작 비닐하우스에서 기름보일러로 바나나를 재배하는 꼴이라 했던 동해가스전은 17년동안 1조 2천억원을 투자해서 2조 6천억원어치의 천연가스를 생산했음.정부수입을 450억원 정도로 내다봤지만 비용을 빼고도 1조4천억원의 수입을 회수하고 종료 됐음.물론 이번에 발견된 동해가스전은 시추공을 꼽아서 최종확인까지 한 단계라서 너무 근들갑 떨 단계는 아님하지만 위 국정조사처럼 너무 무시할 필요도 없기도 함게다가 시추선까지 이미 5월초부터 계약 때려놓은 것을 보면 진도는 꽤 나간것 같음https://blog.naver.com/ranto28
작성자 : 고생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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