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외면에 걸쳐 여러가지 부분들을 암시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왜 휴 잭맨이 더 이상 울버린을 할 수 없을까요? = 늙었기 때문입니다. 만화 캐릭터로서의 울버린을 현실 세계의 인간인 휴 잭맨이 더는 따라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배우가 영화적인 환상을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건은 이에 대한 두시간 반짜리 해명이자 휴 잭맨을 향한 작별인사입니다.

로건/휴잭맨은 시작부터 끝까지 현실적이며 현실적 한계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입니다. 리무진 택시를 돌리면서 교수님 약값 대기도 벅차고 볼때마다 바가지 긁는 동거자한테 싫은 소리도 하는 등 찌글찌글한 냄새가 화면 밖까지 풍기는 가장이라고 할 수 있죠. 초반에 로건은 이런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도 있는 탈출구/가브리엘라와 조우하지만 매몰차게 거부합니다. 늙고 망가진 몸뚱이로 아무리 용써봐야 더는 만화적 환상을 따라갈 수 없음을 자신부터가 알기 때문이죠.

영화는 이 문제를 작위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해결합니다. 로건에게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 = 선시커라는 보트를 사야 한다는 비전이 있었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로건은 가브리엘라가 돈을 제시하는 순간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로건은 현실에 사로잡힌 인간이고 로건의 입장에서 돈보다도 현실을 상기시키는 소품은 없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영화는 로건과 로라의 합류를 얼렁뚱땅하게 처리함으로서 로라의 비현실적/만화캐릭터적 특성을 부각시킵니다. 로건이 가브리엘라와 합류하기로 한 장소로 가보니 가브리엘라는 죽었고 로라는 없습니다. 그렇게 빈손으로 돌아와 보니까 어느새 로라가 거기 있었죠. 그 순간 로건은 현실적 인간이면서 만화적 차원으로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무슨 윈터솔져 짝퉁처럼 저마다 금속 의수를 차고 몰려든 나쁜놈들에게 포위당하는 비현실의 차원으로요. 그러나 현실적 인간인 로건은 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신나게 얻어터집니다. 로라가 난장부리는 틈을 타서 교수님 빼돌리기만 급급할 정도로요.

로건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로라의 가방을 뒤져 엑스맨 코믹스와 서류를 찾아내고 가브리엘라가 말한 에덴이라는 장소가 코믹스 속 허구의 설정이라고 생각한 채 만화적 캐릭터인 로라에게 "만화는 허구다. 너도 정신차려라."고 윽박지릅니다. 영화 중반에 이르기까지 로건의 목적은 자신을 조여드는 만화적 차원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에덴은 안중에도 없죠. 그건 로건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니까요. 그런 장소가 정말로 있을 거라고 믿기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으니까요. 로라는 쟤가 정말 딸일까 싶은 의혹과 최저한의 인도주의때문에 데리고 다닐 뿐입니다.

이렇게 도피하던 중간에 로건은 잠깐의 안식처를 찾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정상적인 저녁식탁에 초대받아 그들의 삶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는 로건에게 있어 또 하나의 비현실입니다. 로건이나 교수님이나 모두 쫓겨다니는 도망자 신세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로건이 누릴 수 있었던 삶이기도 합니다. 뮤턴트만 아니었다면요. 혹은 세상이 뮤턴트를 박해하지만 않았더라면요. 이 안식처가 로건의 카피인 x-24에 의해 박살난다는 점도 나름대로 의미가 깊습니다. x-24는 웨폰 x로서 완성된 작품인 로건의 카피인 동시에 휴잭맨이 지금은 연기할 수 없는 울버린, 분노와 야성으로 가득 찬 젊은 울버린, 한때 휴잭맨이기도 했던 만화적 울버린입니다. 현실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로건의 모습인 거죠. 그런 x-24로 인해 로건은 현실에 안주할 마지막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현실적 목표이자 이유였던 교수마저도 잃어버립니다 = 끝까지 살아남아 돈을 챙겨서 선시커 보트를 사야 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 시점에서 로건에게는 더 이상 목표삼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교수를 묻은 이후로 로건이 맥을 못 추다가 뻗어버리는건 그 때문이기도 한 거죠. 그래서 영화는 로라가 말문을 트게 합니다. 만화적 차원인 에덴으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요. 이때도 로건은 완강하게 만화적 차원을 부정합니다. 자기는 따라갈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요. 로라가 계속 땡깡질을 부려도 "그럼 직접 보여줄 테니 현실을 깨달아 봐라" 면서 현실적 인간으로서의 입장을 고수합니다.

때문에, 에덴으로 차를 운전해간 사람은 결국 로건이 아닌 로라가 됩니다. 에덴은 만화적 차원에 속한 현실적이지 못한 장소(진지빨면서 하나씩 짚어보면 설명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장소)며 거기까지 다다를 수 있는 인간은 같은 차원에 속한 로라뿐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에덴에 도착하고서도 로건은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틀내내 끙끙 누워 않거나 아다만티움 총알 보여주면서 옛날얘기 하거나 하는 게 전부죠. 에덴에서 아이들을 이끄는 리더는 따로 있으며 로건은 어떤 주도적인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리더도 로건에게 딱히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요. 이 모두가 로건은 이미 뒤쳐진 인물, 만화적 차원을 따라잡기에는 너무나도 힘이 부친 현실적 인물상임을 부각시킵니다. 그러는 동시에 에덴은 로건을 한창때의 울버린으로 되돌릴려고 합니다. 수염을 다듬어주는 식으로요.

에덴으로부터 캐나다로 넘어가는 국경선, 최종결전에서 로건이 어째서 에덴의 아이들과 로라를 따라갔느냐...는 부분은 말해도 구태의연하니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만화적 차원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었어도 로건은 여전히 현실적 인간입니다. 약빨로 버텨가면서 나름 선전하는가 싶지만 결국 힘이 다하고 소싯적이면 네조각으로 쪼개놓았을 도널드에게 발목이 잡히면서 자기 카피한테 다시금 개털리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활약한 것은 로라입니다. 최종결전에서 가장 많은 킬카운트를 올린 것도 로라고 아이들이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뒷치기를 걸어 판을 뒤집어놓은 것도 로라입니다. 딸내미가 날아다니는 와중에 로건은 아무 힘도 못 씁니다. 자랑인 피지컬도 아다만티움 클로도 무색하게 권총질로 기습을 걸어 흑막 연구원을 사살했을 뿐이죠.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으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전개입니다. 즉 이 시점에서 로건/휴잭맨은 더 이상(어쩌면 영화 시작부터) 주인공이 아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 다음엔 다시금 x-24에게 개털리고요. 그걸 로라가 이어받아서 신나게 털어버립니다. 피지컬 차이만 아니었다면 결국엔 로라가 x-24를 떡바르는 전개로 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엔 이 차이를 어쩔 수 없었기에 로건이 어그로를 끌어야 했고, 그렇게 시선을 묶어놓은 사이에 로라가 x-24를 헤드샷해서 완전히 끝장내버립니다. 이 헤드샷 장면도 의도되었다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구세대의 울버린/로건/휴잭맨을 신세대의 울버린/로라가 사살하도록 함으로서 직접적인 세대교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죠. 동시에 로라는 로건/휴잭맨의 죽음도 지켜봅니다. 그간의 엑스맨 영화 프랜차이즈를 관통한 젊은 휴잭맨과 늙은 휴잭맨 모두의 죽음을 로라가 행하게/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로라는 로건의 뒤를 잇는 완전한 후계자의 자격을 갖춥니다. 더 이상 환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로건을 대신해 환상으로 똘똘 뭉친 로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거죠.

저는 이 영화가 나타내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보았습니다.

1. 이 모든 것은 결국 영화적 허용이고 과장이며 비현실이다. 휴 잭맨이라는 배우로부터 갈아 타서라도 가능한한 오랫동안 유지되어야 할 비즈니스다.

2. 현실의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만화적 환상을 따라잡기란/추월하기란 결국 불가능하다.

3. 극한의 현실에 내몰렸어도 인간은 환상을 좇아가도록 되어 있다.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선과 이상이 내포되어 있는 한은.

하지만 이런 것과는 별개로 휴 잭맨의 은퇴를 기리는 작품으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습니다. 로건의 죽음에서 무심하게 구두점을 찍지 않고 쉼표 이후 로라라는 서사를 이어지도록 한다는 점, 국가의 음모로부터 비롯된 인간병기 아이들이 새로운 뮤턴트 집단으로서 거듭날 가능성(로라는 유전자 변형 음식을 아무리 쳐먹어도 힐링팩터나 클로 뽑는데 지장이 없었죠. 면역이 있는 듯?), 그러면서도 로건이라는 영화 자체는 의문의 여지 없는 완결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최근 히어로 영화의 고질병인 후속작 떡밥 풀기로부터도 자유로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선 쿠키를 넣지 않은 것도 신의 한수였죠. 괜히 여운을 흐리게 했을 테니까요.

아무튼 한줄요약을 하자면

로건 봐라 갤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