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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옛적에 쓴 단편임.모바일에서 작성

13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2.28 14:53:33
조회 255 추천 4 댓글 7


"왜?"

‘왜’ 라고 물었다 내가 아니면 당신이. 아니 아마도 당신이. 아니 사실은 당신이 물은게 맞았다. 당신과 사귀던 반년간 나는 당신에게 질문한 적이 없었고 당신의 말끝엔 항상 물음표가 달려 있었으니까.
우리가 싸운 다음날. 화해 대신 성의 없는 섹스를 한 날. 토스트기에서 올라온 두 장의 식빵에 잼을 바르며, 나는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였을게다. 당신에게 코끼리를 보러가자고 말했던 이유는... 어째서 코끼리였나. 이제와 묻는데도 할 말은 없다. 희고 곧게 뻗은 그놈의 긴 상아를 크고 당당한 포유류의 몸체를 보고 싶어서. 아니면 언젠가 당신이 잠든 새벽에 티브이 볼륨을 4로 낮추고 보았던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코끼리 특집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구워진 빵을 천천히 씹으며 당신이 아주 성가신 여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당신이 다시 물었다.

“왜?”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코끼리를 보러가고 싶다고. 당신은 황당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런 당신의 눈을 보며, 그제야 당신이 좋아할 만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너와 함께 코끼리를 보고 싶어서 그래.
긴 침묵. "알겠어." 한참만에야 당신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 뒤론 말이 없었다. 내가 주차장에 내려가 시동을 걸고 차를 예열하는 동안, 액셀을 밟아서 과천의 대공원에 이르는 동안까지는 한 시간 남짓 되었던 시간. 그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오래잖아 우리는 서울대공원에 도착했다. 퍽 오래 걸었다. 우리는 홍학 떼를 보았다. 세 마리의 곰과 표범을, 사자를 보았다. 알록달록한 꼬리깃를 부채처럼 편 공작새를 보았고, 더위와 여름의 태양에 무료해가는 한 떼의 원숭이를 보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온갖 종류의 설치류들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도 좋을만큼 먼 곳에서 온 앵무새들을 보았다. 코뿔소와 하마를 보았다. 돌고래는 보지 못했다. 모르는 사이에 아쿠아리움을 지나치고 말았으니까.
코끼리는 우리 코스의 마지막에 있었다. 장내의 순환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온 거리가 무색하게, '오늘은 코끼리가 쉬는 날'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동글동글한 필체로 보아 여자사육사가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끼리 가족이 아파요.' 라는 말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서있었다. 녹아내린 콘아이스크림이 아스팔트 위에 뚝뚝 떨어졌다.
피로했다. 공원에는 먼지가 많았고, 땀에 젖은 옷이 달라붙어 무겁게 느껴졌다. 햇볕이 뜨거웠고, 코끼리는 없었다.
그제야 나는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고.

"왜?"

당신은 그렇게 물었다. '모르겠다'. 고 나는 다시 대답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 외엔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에서 당신은 시종 조용했다.

"...왜 코끼리를 보자고 했던거야?"

당신이 말한 것은 차에서 내린 뒤였다. 모르겠다고. 어지러워져가는 머리를 꽉 누르며 내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당신이 왜? 라고 묻지 않았다. 당신은 한참동안 쓸쓸한 얼굴로 나를 보고 사라졌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안녕. 잘 살아.
작년에, 당신의 소식을 들었다. 간만이었다. 영이가 당신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당신과 헤어진 뒤, 삼 년 만에 한 영이와의 통화였다. 뜻밖의 소식에 어디로 가면 되느냐 물었더니, 어제 발인을 마친 뒤라고 했다. 편히 갔노라고도 말해주었다. 술을 마시면 언니는 가끔 당신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영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언니가 오빠를 많이 좋아했던 것 알아요?"

몰랐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제 그녀는 내겐 거의 잊혀진 사람이라고, 그녀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알아요. 오빠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치만."

수화기 저편에서 울먹이는 여자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느껴졌다. 거칠어진 그녀의 숨소리를 고조되는 공기를 알았다.
영이가 물었다.

"왜"

왜 였느냐고. 왜 당신과 헤어지자고 말한 것이냐고. 그때 왜 언니를 울게 한 것이냐고. 왜 그 뒤로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왜, 왜? 왜 그랬어요? 예상치 못한 영이의 물음에, 나는 이번에도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영이의 물음은 삼년간 묵혀온 당신의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모르겠다고 말 할 수가 없었다. 긴 침묵이 이어졌고, 한참 만에 전화가 끊겼다.
나는 술을 마셨고 취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꿈에 당신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였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코끼리에 대한 영상을 보았던 것은... 우연이었다.
코끼리는 수명이 길지만 그 긴 수명동안 관절염을 앓습니다. 코끼리의 발굽에 있는 이 해면체 같은 덩어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들고 약해지죠. 마침내 늙은 코끼리는 걸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말이에요.
나는 쓰러진 코끼리를 뒤로하고 서랍을 뒤졌다. 당신과 사귀던 동안의 앨범을 찾아내고 천천히 관찰했다. 백일날 당신이 선물해준 물건이었다.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 우리는 더러는 웃고 있었고, 더러는 무표정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헤어질 수 있는 연인처럼 보였다.
진실로 그립지 않은 사람이었다.
진실로 아프지 않은 사랑이었다.
진실로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 연인이었다.
그래도 말했어야 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코끼리를 보러가자고 해서는 안 되었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해서도 안 되었다. 당신이 묻는 왜 라는 질문에 더 이상 대답할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하겠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나는 당신의 질문에 섞인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하겠다고.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게 아닐까 생각된다고.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당신이 화를 내야했다. 싸우고 소리 지르는 편이 나았을 거다. 찝찔한 이별보다 그것이 나은 이유를 새삼스레 말하기는 어렵다.
모른다는 말은 안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Fin

다시보니깐 오류가 있는데 과천에 하마랑 코끼리는 같이 살았던거 같음. 그러니깐 하마를 보면 코끼리도 봐야 함.
암튼 공부하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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