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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가 허구인 이유제시앱에서 작성

임나(223.62) 2015.08.31 05:36:39
조회 172 추천 1 댓글 1


일본인들의 광개토왕비문 왜곡



일본인들은 광개토왕(廣開土王) 비문(碑文)도 왜곡하였다. 이 비(碑)의 발견은 A.D 1876년에 청나라 사람에 의해서이다. 이 비(碑)를 현지 답사한 신채호 씨는 <조선상고사>에서 만주인 영자평(英子平)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碑가 오랫동안 풀숲에 묻혔다가 최근에 영희(榮禧)가 이를 발견하였는데 그 비문 가운데 (고주몽)고구려가 땅을 침노해 빼앗은 글자는 중국인들이 모두 도부(刀斧)로 쪼아 내어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많고 그 뒤에 일본인이 이를 차지하여 영업적으로 이 비문을 박아서 파는데 왕왕 글자가 떨어져 나간 곳을 석회로 발라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도리어 생겨나서 진적(眞的)한 사실은 삭제되고 위조된 사실이 첨가된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비문(碑文)을 차지한 후 비문(碑文)에 석회를 발라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도리어 생겨났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비문(碑文)을 변조한 사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 <이진희>씨는 수 종류의 비문(碑文)을 비교*연구하여 결국 일본인들이 비에 석회를 발라 비문(碑文)을 조작한 사실을 밝혀내었다.



비문(碑文)은 4면으로 나누어 새겨져 있는데,



- 서문(序文) 및 대비려(對碑麗) 관계 기사(記事)가 318자,

- 대백제(對百濟) 관계 기사(記事)가 366자,

- 대왜(對倭) 관계 기사(記事)가 382자,

- 대부여(對夫餘) 관계 기사(記事)가 95자,

- 능 수묘(守墓)에 관한 기사(記事)가 641자이다.

비문(碑文)에는 왜(倭) 관련 기사(記事)에 결락자가 집중되어 있고 왜 관련 기사(記事) 중에서도 제2면 10행과 제3면 1행에 유난하게 결락자가 집중되어 있다.

(제2면9행)

00000000來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安羅人戌兵拔新羅城0城倭滿倭潰城六

(제2면10행)

00000000000000000九盡臣0來安羅人戍兵滿 0000000000000

(제3면1행)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潰

(제3면2행)

0000安羅人戍兵昔新羅寐錦未有身來000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00新羅寐錦00僕勾



비문(碑文)에서 결락자가 집중되어 있는 부분은 광개토왕(廣開土王)이 보기(步騎) 5만을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한 왜(倭)를 물리치고 왜(倭)를 추격하여 왜(倭)의 근거지인 임나가라(任那加羅:대마도)를 점령하고 이어서 대화왜(大和倭)와 구주왜(九州倭)로부터 항복을 받은 부분이다.



광개토왕(廣開土王) 비문(碑文)은 A.D 1883-1884년경에 일본군 참모본부의 장교인 "주내경신(酒내景信)" 중위가 (사코오 카케아키 : 어떤 책에는 주구경신(酒勾景信) 또는 주구경명(酒勾景明)으로도 적혀 있으나, 참모본부의 인사대장에는 酒내景信으로 적혀 있었다)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왔고,



그 뒤 약 5년 동안 참모본부 편찬과에서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연구하였으며 청일전쟁(A.D 1894-1895년)을 전후하여 참모본부의 장교들이 수차에 걸쳐 현지에 가서 비문(碑文)을 조사하였고 노일전쟁이 끝난 A.D 1905년에는 비(碑)의 일본 운반을 계획하였다.



그 후 A.D 1913년에 이 비(碑)를 답사한 일본인 학자 금서룡(今西龍)은 그 결과를 "대일본시대사 大日本時代史" 부록에 실으면서 "제2면 말행(10행)은 문자를 넣을 만한 여지가 없고 제3면 제1행은 탁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비문(碑文)에는 제2면 10행에 문자가 새겨져 있고, 제3면 1행에도 결락되지 않은 글자가 일부 보인다.



그렇다면 금서룡은 왜 "문자를 넣을 만한 여지가 없었다" "탁(拓)하지 않았다"

는 등 구구한 변명을 하며 제2면 10행과 제3면 1행을 탁본하지 않았을까? 혹시 탁본하고서도 탁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을까?



1895년 5월, 계연수(桂延壽) 님이 광개토왕(廣開土王) 비문(碑文)을 답사(踏査)한 후 그 내용을 적어 둔 것이 있었는데 그 후 1912년에 다시 답사하였을 때 비문(碑文)이 일부 훼손되어 전과 다른 것을 보고 전에 적어 두었던 내용을 참고하여 "비문징실(碑文徵實)"을 만든 것이 있다.



그러면 "비문징실"에 적혀 있는 제2면 10행과 제3면 1행 내용을 살펴본다.

(제2면 9행)

官兵섭跡而越來攻來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安羅人戍兵拔新羅城0城倭滿倭潰城六



(제2면 10행)

被我攻탕滅無遺倭遂擧國降死者十之八九盡臣率來安羅人戌兵滿假00倭欲敢戰與훼己呑卓淳



(제3면 1행)

諸賊謀00官兵制先直取卓淳而佐軍由淡路島到但馬右軍經難波至武藏王直到竺斯諸賊悉自潰



(제3면 2행)

遂分爲郡安羅人戌兵昔新羅寐錦未有身來000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00新羅寐錦00僕勾



(제3면3행)

0000朝貢



<해석문>



관병이 왜의 자취를 밟고 넘어 급히 쫓아 임나가라에 이르러 성을 치니 성은 귀복 하였다. 아라인 수병이 "신라성"을 발하였다. 0성에 왜가 가득 있었으나 왜가 무너졌고 6성이 우리의 공격을 받아 궤멸되어 남은 것이 없었다. 왜가 드디어 거국으로 항복하니 죽은 자가 십중팔구나 되었으며 신하를 모두 데리고 왔다.



아라인 수병이 가00에 가득 차 있었다. 왜가 훼기탄, 탁순의 제적과 더불어 감히 싸우고자 하여 00을 꾀하였으나 관병이 먼저 이들을 제압하여 바로 탁순을 빼앗았다.



이어 좌군은 담로도(註 瀨戶內海 동부에 있는 섬, 兵庫縣에 속함)를 경유하여

단마(註 兵庫縣의 북부)에 이르고, 우군은 난파(註 大阪)를 경유하여 무장(註 那良의 春日野)에 이르고, 왕은 바로 축사(註 北九州)에 도착하니, 제적이 스스로 무너졌다. 드디어 이를 군으로 삼았다.



아라인 수병. 예전에는 신라 매금(임금)이 스스로 와서 조공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때에 이르러 신라 매금이 스스로 와서 조공하고 (고주몽)고구려에 복속하였다.



☞ (주) 일본서기(日本書紀) 흠명천황기(欽明天 皇紀) 2년조에는 훼己呑이 록己呑으로 적혀 있다.



비문징실(碑文徵實)에 의하면 제2면 10행과 제3면 1행에 적혀 있는 문구는 광개토왕(廣開土王)이 <대마도왜, 구주왜, 대화왜> 정복한 내용이다.



그래서 징실(碑文徵實)을 만든 계연수(桂延壽)님은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들려가서 온 몸이 절단된 채 시신(屍身)이 강에 던져진 애국지사이다. 헌데 일부 [강단 사학자]들은 어이없게도 계연수(桂延壽)님이 항일투쟁을 하다가 죽은 애국지사임에 주목하여 애국심이 지나쳐 사실에 근거 하지 않은 채 비문징실(碑文徵實)을 위작(僞作)하였으며 광개토왕(廣開土王)은 일본열도를 정복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문징실(碑文徵實)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광개토왕(廣開土王)이 A.D 400년에 일본열도를 정복하였다는 비문징실(碑文徵實)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다시 한번 면밀하게 살펴본다. 먼저 앞에 나온



"관병이 급히 쫓아 임나가라(任那加羅)에 이르러......후략" 문구 중 임나가라(任那加羅)는 대마도(對馬島)라는 뜻이다.



한국의 일부 사학자들은 임나가라(任那加羅)라는 문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가라(加羅)를 경상도 지역으로만 이해하고 임나(任那)와 가라(加羅)가 붙어 있자 임나를 경상도 가야(加耶) 지역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나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임나(任那)는 대마도(對馬島)라고 적혀 있으므로, 임나가라(任那加羅)는 대마도(對馬島)이지 경상도 가야(加耶) 지역이 아니다. 고대에는 경상도, 대마도, 일본열도를 변두리에 있었다고 모두 가라(加羅)라 불렀다. 그리고



"관병(官兵)이 급히쫓아 임나가라(任那加羅)에 이르러 성을 치니 성이 귀복(歸服) 하였다"는 문구는 대마도왜(對馬島倭)가 광개토왕(廣開土王)에게 항복하였다는 뜻이고 "왜가 거국(擧國)으로 항복하였다"는 문구는 대마도왜(對馬島倭)에 이어 구주왜(九州倭)와 대화왜(大和倭)도 모두 광개토왕(廣開土王)에게 항복하였다는 뜻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에도 광개토왕(廣開土王)이 영락(永樂) 10년(A.D 400년)에 대마도(對馬島)를 점령하고 구주왜(九州倭)와 대화왜(大和倭)로부터 항복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일단 스스로 바다를 건너서는 이르는 곳마다 왜(倭)를 격파하였다. 왜인은 백제(주 : 구태백제)의 보좌였다. 백제가 먼저 왜와 밀통(密通)하여 왜로 하여금 신라의 경계를 계속 해서 침범하게 하였다......중략......때(광개토왕의 정벌이 끝난후)에 백제(百濟), 신라, 가라의 여러 나라가 모두 조공을 끊임없이 바쳤고 거란(契丹), 평양(平凉)도 모두 평정 굴복시켰다. 임나(任那)와 이(伊), 왜(倭)의 무리는 신하로서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一自渡海所至擊破倭人倭人百濟之介也百濟先與倭密通使之聯侵新羅之境......中略......以環時則百濟新羅駕洛諸國皆入貢不絶契丹平凉皆平服任那伊倭之屬莫不稱臣



위에 나오는 임나(任那)는 대마도 왜를, 이(伊)는 이세(伊勢)와 대화(大和) 등지의 대화 왜(大和倭)를, 왜(倭)는 구주 왜(九州倭)를 지칭한 말이다. 따라서 "임나(任那)와 이(伊), 왜(倭)의 무리는 신하로서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문구는 대마도왜(對馬島倭), 대화왜(大和倭), 구주왜(九州倭)가 모두 광개토왕에게 복속하였다는 뜻이다.

송서(宋書) 왜전(倭傳)을 보면 임나연정(任那聯政)의 마지막 왕 무(武)는 "동으로 모인(毛人) 55개국을, 서로 66개국 을, 북으로 95개국을 복속시켰다"고 주장하고, 자칭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7국제군사라고 주장하였다.



"왜왕 흥이 죽고 동생 무가 왕이 되어 자칭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7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하였다. 興死弟武立自稱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위에서 왜국왕은 임나연정왕(任那聯政王)이고 왜왕 무(武)가 주장한 영역은 일본열도, 대마도, 신라, 백제, 가야 지역이다. 위 문구에는 왜왕 무(武)가 마치 자기가 일본열도왜, 백제, 신라, 대마도왜, 가야를 복속시킨 듯이 주장하였으나 임나연정(任那聯政)을 설치한 사람은 광개토왕(廣開土王)이므로 일본열도 왜, 백제, 신라, 대마도왜, 가야를 복속시킨 사람은 왜왕 무(武)가 아니고 광개토왕(廣開土王)이다.



결론적으로 환단고기(桓檀古記)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송서(宋書) 왜전(倭傳), 광개토왕(廣開土王) 비문(碑文)을 종합하면 광개토왕(廣開土王)은 영락(永樂) 10년에 대마도왜(對馬島倭)와 일본열도왜(日本列島倭)를 평정하였다.



이는 비문징실(碑文徵實)에 적혀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광개토왕(廣開土王) 비문(碑文) 제2면 10행과 제3면 1행에서 결락된 글자는 비문징실(碑文徵實)에 적혀 있는 글자와 같은 글자이거나 또는 같은 내용일 수밖에 없다.



계연수(桂延壽)님이 비문(碑文)의 제2면 10행과 제3면 1행을 보았을 때 새겨져 있던 글자들이 그 후 갑자기 결락되었다는 이야기는 일본열도가 광개토왕(廣開土王)에게 정복당한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일본인 누군가가 고의로 비문(碑文)을 훼손한 것이다.



☞ (주) 광개토왕비의 왜 관련 부분을 훼손한 일본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일에 일본군 참모본부가 개입된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A.D 1884-1885년경에 일본군 참모본부 소속의 "주내경신"(어떤 책에는 酒勾景信 또는 酒勾景明으로 적혀 있다) 대위가 집안(輯安)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가지고 온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이 A.D 1889년 6월에 "會餘錄" 제5집에 게재되어 외부에 발표되었는데 그 쌍구가묵본에는 왜(倭) 관련 부분이 집중적으로 결락되어 있었다. 사코오 대위가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올 당시 그의 신분은 은밀하게 활동해야 하는 밀정이었다.



또, 사코오 대위가 만들어 가지고 온 쌍구가묵본을 참모본부 편찬과에서 학자들을 동원하여 해독하는데 약 5년 정도 걸렸는데 사코오 대위가 아무리 유능하였다고 하더라도 참모본부 편찬과에서 학자들을 동원하여 해독하는데 약 5년 정도 걸린 일을 사코오 대위가 비문을 본 즉시 바로 해독하여 청국인 모르게 비문 중 일본에 불리한 문구를 훼손하고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사코오 대위는 비문의 왜 관련 부분을 훼손하지 않고 원 비문대로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이는 사코오 대위가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온 지 약 10년이 지난 A.D 1895년("會餘錄" 제5집에 게재되어 발표된 지 6년 후) 계연수님이 광개토왕비를 보았을 때 "會餘錄" 제5집에 게재되어 발표된 쌍구가묵본과는 달리 왜(倭) 관련 부분이 거의 손상되지 않고 있었는 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코오 대위는 원 비문 그대로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왔고 A.D 1889년 6월에 "會餘錄" 제5집에 게재되어 외부에 발표된 쌍구가묵본은 참모본부 편찬과에서 변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A.D 1895년에 계연수 님이 광개토왕비를 보았을 때 비문의 왜 관련 부분이 거의 손상되지 않고 있었는데도 그 이후에 변조된 쌍구가묵본대로 비문의 왜 관련 부분이 훼손 되었다는 것은 A.D 1895년에 계연수님이 광개토왕비를 본 이후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집안으로 사람을 보내어 쌍구가묵본대로 광개토왕비의 왜 관련 부분을 훼손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문의 왜 관련 부분이 훼손된 시기는 A.D 1895년에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겨 집안에 있는 광개토왕비를 장악한 직후로 추정된다.



그 뒤 일본인들은 A.D 1899-1900년경에 비문의 전면에 석회를 발라서 글자를 만든 후 內藤 탁본 등을 만들었다.



북경의 금석학자 楊守敬이 1902년에 입수한 탁본에는 새카만 바탕에 자형이 뚜렷하고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는데 이는 A.D 1902년 이전에 일본인들이 비 전면에 석회를 칠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뒤 A.D 1907년 4월에 프랑스의 동양학자 사반누가 입수한 탁본에는 양수경 탁본에도 없던 글자가 나타나고 다른 글자로 바뀐 것도 있었다. 이는 일본인들이 內藤 탁본을 만든 후 비에 다시 석회를 발라 일부 글자를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때, "安羅人戍兵" 뒤에 "滿"자 등을 만들어 넣었는데 이는 전에 집안으로 파견된 참모본부 편찬과 장교들이 변조된 쌍구가묵본대로 왜(倭) 관련 부분을 훼손하였다가 나중에 학자들의 연구로 "滿"자 등이 임나일본부 학설을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滿"자 등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A.D 1883-1884년경에 사코오 대위가 쌍구가묵본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지고 온 때로부터 10여년 내에 비문에 관한 글을 지은 일본인들은 모두 A.D 1889년 6월에 "會餘錄" 제5집에 게재된 쌍구가묵본을 인용하였고 그들은 한결같이 사코오 대위의 신분을 극구 감추고 "某人" "某 日本人" 등으로 적었다. 사코오 대위의 신분이 노출된 시기는 그로부터 30여년 후 참모본부에서 퇴역한 장교가 술기운에 입을 경솔하게 놀렸을 때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사코오 대위의 신분을 수십 년 동안이나 극구 감춘 것은 사그가 만들어 일본으로 가지고 온 쌍구가묵본을 그후 일본군 참모본부 편찬과에서 변조한 사실이 사꼬오 대위의 신분이 노출됨으로써 들통 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담긴 ‘신라의 복속과 비문징실로 본 왜의 항복 ’

이후 문구는 왜와 관련이 되어 있는 내용이라 일제가 조작하여 깨어진 글자와 결자가 많고 문구가 많이 조작되었다. 아래는 환단고기를 엮은 운초 계연수선생이 광개토태왕 비를 보고 직접 글로 적어 전한 것이다. 이름하여 비문징실(碑文徵實)이라한다. 아래의 글자에 선이 그어져 있는 부분이 일제가 조작하거나 없애버린 글자이다.



(第2面9行) 官兵 跡而越來攻來背 急追至任那 加羅從拔城 城卽歸服安 羅人戍兵拔 新羅城口城 倭滿倭潰城六

(번역) 병이 왜의 자취를 밟고 넘어 급히 쫓아 임나가라에 이르러 성을 치니 성은 귀복 하였다. 아라인 수병이 "신라성"을 발하였다. 0성에 왜가 가득 있었으나 왜가 무너졌고 6성이 우리의 공격을 받아 궤멸되어 남은 것이 없었다.



(第2面10行) 被我攻口滅 無遺倭遂擧國降死者十 之八九盡臣 率來安羅人 戌兵滿假口 口倭欲敢戰與喙己呑卓淳

(번역) 왜가 드디어 거국으로 항복하니 죽은 자가 십중팔구나 되었으며 신하를 모두 데리고 왔다. 아라인 수병이 가00에 가득 차 있었다. 왜가 훼기탄, 탁순의 여러 적들과 더불어 감히 싸우고자 하여 00을 꾀하였으나 관병이 먼저 이들을 제압하여 바로 탁순을 빼앗았다.



(第3面1行) 諸賊謀口口 官兵制先直 取卓淳而佐 軍由淡路島 到但馬右軍經難波至武藏王直到竺 斯諸賊悉自潰

(번역) 이어 좌군은 담로도를 경유하여 단마에 이르고, 우군은 난파를 경유하여 무장에 이르고, 왕은 바로 축사에 도착하니, 여러 적들이 스스로 무너졌다. 드디어 이를 군으로 삼았다.



(第3面2行) 遂分爲郡安 羅人戌兵昔 新羅寐錦未 有身來口口 口國岡上廣 開土境好太 王口口新羅寐錦口口僕勾

(번역) 아라인 수병. 예전에는 신라 매금(임금)이 스스로 와서 조공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때에 이르러 신라 매금이 스스로 와서 조공하고 고구려에 복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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