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의 대중음악적 성취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우림으로서 데뷔 26년차, 솔로로 계산해도 22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녀의 유일무이한 음악은 두터운 팬층을 형성해냈고, 아직까지도 그녀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차가 쌓여서도 이렇게 지속적이고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가수는 몇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교수님'이나 다름없다.
그런 김윤아가 자신이 자신 없는 분야인 '사랑 노래'에 도전한다며 내놓은 정규 5집이 바로 '관능소설(2024)'이다. 그녀가 자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랑 노래'라는 게 어떤 노래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녀는 앨범 발매를 기념으로 하는 동명의 콘서트에서 그 예시로 'My Heart Will Go On'과 'I Will Always Love You'를 불러본다. 사랑에는 호르몬을 위시한 유효기간이 존재하는데 당신을 언제나, 영원히 사랑한다는 얘기는 낯간지럽다는 것 같다. 이는 그녀의 가치관인 '영원한 것은 없다'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습작'의 모습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김윤아에게 상기(上記)한 곡들과 같은 사랑 노래가 없었는가. 사랑 노래로 가득 차지는 않았지만 이미 자우림 명의의 'All you need is Love(2004)'에서 'I LUV YOU'를 삐삐문자로 뒤집어 놓은 '17171771'은 그녀가 그토록 자신 없다는 '낯간지러운 사랑 노래'의 전형이 아닌가. 낯간지럽지는 않지만 그녀의 솔로 2집 '유리가면(2004)'에서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라든지 '야상곡',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등도 훌륭한 '사랑 노래'임에 틀림없다. 타인이 느끼기에 김윤아는 그 빈도가 적을지는 몰라도 '사랑 노래'에 미숙했던 적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청자가 느낄 때, 그녀가 자신 없다는 '사랑 노래'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건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자신 없다는 '사랑 노래'는 그저 그녀 자신이 '사랑 노래'라고 명명한 무언가를 부른다는 그 자체, 그 행위가 어색하고 미숙하다고 느끼는 것일뿐 허상에 가까운 이미지인 것이다.
'관능소설'은 그렇기에 그녀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피상적이고 상투적이다.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 관점을 아우를 수 있는 주제임에도 '자신 없다'라는 기치 아래 특정한 순간의 장면만을 포착하고 있을 뿐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그녀가 즐겨 말하던 '영원한 것은 없다'만 그 기저에 떠다닐 뿐이다.
'종언'은 그녀의 세 번째 앨범인 '315360(2010)'의 '검은 강'의 멜로디와 유사한 후렴을 반복하며 상투적인 이별을 그리고 있다. '체취'는 그녀의 그 어떤 가사보다도 평면적이며 재즈의 터치 또한 미온적이다(공연에서의 연출은 대단했지만). '장밋빛 인생'은 탱고의 작법을 빌려왔지만 지나치게 늘어지고, 피아노의 선율이 뚜렷하게 느껴졌으면 좀 더 선명한 곡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반적으로 '좋은' 곡들로 채워졌지만 '인상적'인 곡들은 없다.
하나의 앨범을 평가할 때 이 앨범이, 혹은 이 앨범의 특정한 트랙이 나중에 회자될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다. 솔로 대표곡인 '봄날은 간다'는 사람과 인연의 오고 감을,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빗대어 인상적인 멜로디로 표현한 곡이고, 'Going Home'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아픈 자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집으로 돌아오라'는 얘기를 통해 전달한다.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꽃이 지는 계절과 청춘을 엮어, 수려한 멜로디와 구성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며 동명의 드라마를 파생했다.
하지만 '관능소설'은 어떤가. '관능소설'에서 '김윤아'의 대표곡으로 회자될 곡들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잘 모르겠다. 하다못해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처럼 옛 시절 2~30대 여성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 같이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노래가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야말로 '교수님의 습작'이다. 분명히 나쁜 곡들은 없다. 모든 곡들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 '교수님'이 만든 앨범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본인이 자신 스스로 그 한계를 설정하여 인상적이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교수가 본인만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주제로 논문 발표를 하여 학술지 등재에는 성공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논문으로 읽힐 결과물이 바로 '관능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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