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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신문 동문 인텁이라 함
배우 정진영(국문83-89) 동문이 2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모교 연극동문회인 관악극예술회(회장 이순재)와 부설극단 관악극회가 11월에 올리는 개교 70주년 기념 연극 ‘법대로 합시다’를 통해서다. 서울대 총연극회 출신인 정 동문은 1989년 연극배우로 데뷔 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영화 ‘왕의 남자’ 연산군 역을 비롯해 ‘황산벌’, ‘국제시장’, 드라마 ‘브레인’, ‘화려한 유혹’ 등 20여 편의 작품과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로 짙은 인상을 남긴 그다. 이번 연극이 정 동문에게는 여러 모로 ‘홈 커밍’의 의미를 갖는 셈이다.
지난 10월 20일 충정로 관악극회 연습실을 찾았다. 초저녁부터 ‘법대로 합시다’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일찌감치 도착한 이순재(철학54-58) 회장부터 2000년대 학번과 재학생 풍물패까지 20여 명의 배우와 스태프가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각자 일과를 마치고 달려왔을 시각이지만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빈틈없이 꾸민 스크린 속 모습 대신 소탈한 차림새로 마주한 정 동문도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이 관악극회 다섯 번째 공연인데 그동안 스케줄 탓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선배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이번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각색과 연출을 맡은 임진택 선배는 7·80년대 현실과 삶에 깊게 뿌리박은, 사회성 짙은 연극의 흐름을 시작하신 분이에요. 재밌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극 ‘법대로 합시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법에는 법대로(Measure for measure)'를 한국 마당극의 대가 임진택(외교69-75) 동문이 각색해 올리는 극이다. 마당극과 통하는 원작의 풍자와 해학은 그대로이되 배경과 사건은 우리 현실에 더 가까워졌다. 신명이 더해졌지만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간 왕과 장군, 교수, 검사 등 선 굵은 역할을 주로 맡아온 정 동문은 이번에 익살맞은 ‘광대’로 분한다.
“제가 맡은 ‘광대’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없는 역할이에요. 연출가님께서 각색하시면서 마당극 식으로 판을 끌어가는 인물을 창조하셨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맺어 주는 역할도 있지만 저는 관객들과 한바탕 놀면서 관객을 흥분시키는 역이라고 해석해요. 재밌게 놀아볼 작정입니다.”
민중 문화운동에 한 획을 그은 마당극의 역사에서 서울대를 빼놓을 수 없다. ‘마당극’이라는 용어 자체도 1976년 서울대 총연극회 공연 ‘허생전’을 통해 처음 불렸다. 6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 열풍의 중심에는 임진택·채희완(미학70입) 동문이 있었다. 모교 역사와 연극사적 관점에서 두루 의미깊은 공연이다.
이날 연습은 밤늦도록 계속됐다. 배우들은 갓 나온 최종 대본을 가지고 더욱 완벽한 합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임 동문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연기를 지도하기도 했다. 머리가 희끗한 장년의 배우들도 연출가의 날카로운 지적에 몸짓을 가다듬었다.
“이 곳에서는 83학번인 내가 끝에서 다섯 번째”라며 웃음지은 정 동문은 “나이와 직업, 학창시절, 정치적 이념조차 각양각색인 흔치 않은 조합이지만 우리를 묶어주는 건 젊은 날을 함께 뜨겁게 보냈던 대학 연극의 기억”이라고 말했다.
“연극이란 행위는 요즘 세상에선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에요. 하루 공연을 위해서 두 달을 연습하는 일이죠. 하지만 연극은 몇 달간 함께 연습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삶을 정면으로 부딪치는 기회이기도 해요. 20대의 젊고, 어리다고 해도 좋을 푸릇푸릇한 젊은이들이 가장 뜨겁게 만났던 게 바로 대학 연극이고요. 서로 다른 시기에 연극을 했어도 대학 연극이 가지는 공통 특질만큼은 시간을 뛰어 넘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습도 재밌지만, 끝나고 맥주 한 잔, 엠티 가서 예전처럼 밤새 얘기하는 건 더 재밌습니다.”
학생 활동이 대부분 금지됐던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정 동문은 “학내 행사 불허 처분을 받고 학교 밖 소극장을 빌려 포스터도, 팸플릿도 없이 공연을 올리곤 했다”고 떠올렸다. 극단 ‘한강’에서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W’에 출연한 김의성(경영84-90) 동문과 전국을 돌며 2인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후 영화 연출부 생활을 하다 ‘초록물고기’ 단역에 이어 ‘약속’ 출연으로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어느덧 30년차를 바라보는 배우로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와 온화하고 중후한 이미지 모두를 소화해내며 연기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오는 12월 개봉하는 영화 ‘판도라’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 동문이 더블캐스팅으로 ‘광대’역을 맡은 연극 ‘법대로 합시다’는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12일간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공연된다. 이순재(철학54-58)·심양홍(국문64-71)·지주연(언론정보03-07), 박재민(체육교육02-10) 동문 등 20여 명이 참여한다. 400여 년 전 원작에서 혼전 동거를 하는 젊은 남녀에게 사형과 같은 엄벌을 내린 뒤 자신 또한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저지르고 모순에 빠진 통치자의 모습이 오늘날의 상황에 빗대어 어떻게 변주될지 기대된다.
예매는 인터파크(www.interpark.com)를 통해 가능하며, 모교 동문이 관람을 원할 경우 제작비를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 할인 티켓을 제공 받을 수 있다. R석 4만원, S석 3만원. 공연 시간 월~금 19:30 / 토 15:00, 19:00 / 일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