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희곡 트레일러가 공개되고 난 이 후,
많은 분들에게서 연락을 받고 만났었습니다.
영상이 마음에 들어서,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기에 나 또한 흔쾌히 그 자리에 나갔었고,
술이 한 잔 두 잔, 분위기가 무르 익을 무렵이면,
본심이 드러나게 되더군요.
'감독님은 지금 자기만 좋은 예술을 하고 있어요.
예술은 나중에 하고, 일단 회사 식구들 먹여살릴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예술이 뭔데?
내가 스스로 예술을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작품이 마음에 들어 보고 싶었다던 그들은,
그 작품을 가지고 저를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상은 좋은데, 현실을 직시해야죠.
감독님은 아직 절실하지가 못해요.'
천만관객을 동원한 헐리웃 애니메이션이 나오게 되자,
아니나 다를까, 이제 '가족용 애니메이션' 대세의 분위기로 흐르기 시작하는군요.
나 또한 항상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애틋해지는 사람으로서,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왜 반기지 않겠냐만은,
그것만이 정답이고, 그 외에는, 소위 돈 안 되는 가난뱅이 예술가들 짓거리로
치부해 버리는 현실이 용납이 안되는 것이죠.
'관객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감독이 자기 혼자만을 위한 작품을 만든답니까?
어느 감독이건, 자의던 타의던 작품을 만든다고 알려지게 된 이상, 감독이라고 불러지게 된 이상,
사람들과 함께 공감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것만큼 당연한 것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천만이 좋아하는 작품은 옳은 것이고,
백만이 좋아하는, 십만이 좋아하는, 그 이하가 좋아하는 작품은,
그저 시간낭비요, 겉멋에 빠진 예술가들의 돈낭비일 뿐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사실이 분통한 것이죠.
한국애니메이션의 발전, 부활?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안 되는 것이 좋죠.
중고등학교 시절, 너희의 성공된 미래를 위해서는, 꼭 대학을 나와야 하니,
개개인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은 묵살하고, 그저 성적을 올려, 좋은 대학 아무과던 나와야 한다.
그래서 과거, 대학에 전자공학과를 들어갔고,
결국 3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서, 좋아하는 애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일단은 돈되는 작품, 무조건 많은 관객이 드는 작품을 만들어라.
너가 하고 싶은 작품은 그 이후에 가서 해도 돼.
참, 변하지 않는군요.
창작이란, 스스로 좋아야지, 즐겨야지 제대로 나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제대로 창작의 묘미를 즐겨봤을지 의심되는 군요.
지금 이게 만들고 싶어. 지금 이걸 만들어 내지 않으면 미치겠어.
이게 아니면 다 의미가 없어.
때때로 극단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그 균형을 잡아주는 도움이 필요할 때도 많죠.
창작이란, 지독합니다.
옷장 구석 깊이 넣어두고, 날이 맞으면 꺼내 입길 기다리는 옷가지와는 다릅니다.
그 냄새가, 스믈스믈, 옷장 문틈으로 새어나와, 방안 가득 퍼지게 됩니다.
또다시,
만들고 싶어 미치겠어! 가 되는 것이죠.
'맞춤희곡'을 보고 한 번 이야기 나누고 싶다던 분들.
두 가지로 나뉩니다.
진심어린 격려와 관심을 주시고, 긍정적인 희망을 전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자신도 이전에 순수한 열정과 이상을 가지고, 그랬었다. 그런데 안 되더라.
그러니, 내 말 들어봐.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며, 술 한 잔, 안주거리로 삼고 싶은 놈들.
각자, 스스로가 잘 알겠지요.
전자의 분들에게는 언제나,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오히려 그 분들은 말 수가 적고, 조용히 응원해 주시기에 더욱더 가슴 한 켠이 찡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후자,
다시는 찾아오지 말기를. 내가 무슨 힘이 있겠냐만은,
최소한, 분위기, 기분 지저분해질 정도는 해 드리겠습니다.
'감독님은 지금 자기만 좋은 예술을 하고 있어요.
예술은 나중에 하고, 일단 회사 식구들 먹여살릴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이 나라는 예술을 한다고 욕을 하는 구나.
나는 한 번도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죠.
나 역시가, 똑같은 인간이었슴을 깨달았습니다.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어렵고 고귀한 것이다 라고 생각해 왔던 거죠.
천만이 좋아하는 작품은 예술입니다. 그걸 산업으로만 치부하는 당신들의 생각은 참..
그리고 백만이 좋아하는 십만이 좋아하는 작품 역시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말입니다.
만명이 좋아하는, 천명, 백명, 열명, 한 명이 좋아하는 작품 역시 예술인 것이고.
그저 모두가 좋아서 만들어 내고, 스스로 즐기는 것이 예술인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좋아서 그리는 크레파스 그림도 예술인 것이고,
수십년을 갈고 닦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도 예술인 것입니다.
나도 잘 못 생각해 왔었죠.
작업자와, 관객.
작업자와 관객을 분리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입니다.
결국 작업자도 관객인 것을.
자신이 좋아하고, 재밌어야지, 관객이 보았을 때 공감할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업자는 만들어 내. 그리고 관객은 보기만 해.
세상이 지금 후퇴하고 있습니까?
한국의 애니메이션.
이대로 잘 되면 뭐합니까? 관두라 하십시요.
작업자는 개똥으로 취급하는 데.
최소한 작업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게 놔두세요.
짜증이 나고 답답하더라도, 그냥 놔두세요.
돈 좀 많이 못 벌어도 놔 두세요.
나중에, 행복이 덜 할지는 몰라도, 그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을 온갖 감언이설로 뺏으려 하지 마세요.
작업하는 사람이 좋아서 만드는 것을 만들렵니다.
천만 관객이 보는 작품은 만들지 않으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을 우리 식구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만의 관객이 보게 하려면, 당연히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감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작품을 재밌어 하지 않습니다.
백만의 관객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야 우리 스튜디오 식구들도 먹고 살테니까요.
백만이 재밌어 할 작품을 만들렵니다.
내가 재밌는 작품을 좋아하고, 사람이 재밌어하는 것을 보는 게 좋으니까요.
그러니,
좋아서, 재밌어서, 작업하는 사람들.
그냥 놔 두세요.
도움 같은 거 됐습니다. 그냥 거기 아무 것도 안하고 그대로 있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 브라이언즈 필름, 감독 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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