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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갤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진돗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12.05 00:03:13
조회 551 추천 4 댓글 9

기호론(記號論) 





  1. 

  그대를 호명해 보는 전두엽 4번 출구 앞. 함께한 세월의 장면들이 연말을 맞아 왁자하다. 정지선 앞에 도열한 발화(發話)들 전송대기 “주-웅~ 주-웅~” 엔진음을 울리면 스물여덟의 그대, 점멸 신호등에 쫓겨 나풀나풀 뛰어온다. 밝은 표정으로 그대, 서른여덟의 나를 관통해 계단으로 내려가고 콧구멍을 닮은 환승로 안쪽으로 들숨의 기류에 떠밀려 가는가. 아무리 걸음을 재촉해도 모퉁이 하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자음과 모음으로 가지런히 찍힌 발자국의 추격. 


  2. 

  그대를 반추해 보는 2호선 측두엽 승강장 안.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대이고 그대의 전 역사가 파노라마인 곳에서, ‘그대’들 중 한 사람 옆에 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뽀로로롱 시그널 음이 흘러들어와 긴 경구개음으로 멈춰 선 몇 음절의 객차. 두근두근 발화를 소망하며 탑승한다. 좌석에 앉아 MP3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더러 꾸벅 졸기도 하고 손잡이를 부여쥔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내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중이기도 한, ‘그대’들 사이. 초조하게 노선도를 짚으며 갈아탈 발음을 가늠해 보는 랑그의 긴 여정. 


  3. 

  다음 정차 역은 빠롤, 빠롤 역입니다. 


  출입문이 열리면 목구멍을 닮은 환승로를 따라 달린다. 날숨의 기류에 등 떠밀려 걸음걸음 울리는 계단을 올라 치열(齒列)처럼 고르게 늘어선 상가 쇼윈도 휙휙 지나치면 아, 눈부시게 열린 출구를 향해 한껏 웅크렸다가 천장으로 솟구쳐 오르면서 그대 이름을 터뜨린다. 터져서 흩어진다. 서른여덟의 그대, 유일(唯一)의 몸을 관통해서 산란한다. 종착역 앞 사거리를 메운 수천의 표정들 중 내가 꽂혀야 할 곳을 몰라 산산히








 기호론 2

- 환절기 발음 구조도




보시다시피 이것은 

spring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말해서 spr

ing입니다 정확히

'말'하는 것과 정확히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유념해 주십시오


ing는 지하 13도, 

시니피에의 적설량 아래 

웅크려 탄성(彈性)을 

비축하며 결빙의 랑그 깊숙히 

나선형으로 더듬어 가는 

뿌리


부스스 환절의 기류

지하 9도로부터 기지개처럼

몇 개의 단층을 훑으며 

꽃이파리 벌나비 부스러기 

데리고


후두를 돌파해 지하 2도,

연구개 일대로까지 기어오르고 

마침내 영점(零點)

기호의 분계선에 집결하는

시니피앙 일개 사단


일교차가 확장해 놓은 절취선을 따라

쏟아지는 빠롤들 

Sㅣ니 P R 흐드러지게 spr

ing ing ing




보시다시피 이것은 

spring spring하고 뛰어다니는

섭리의 내력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로

면면히 전승되어 온 

설화(舌話)입니다









 그 여름, 먹이사슬의 




뜨거운 콘크리트 벽면에 붙은 채 

오래 묵은 목청을 돋워 발음기(發音器)를 울리면 

태엽처럼 감겨 있던 땅 밑의 세월이 치르르- 

풀린다. 


우월한 유전자에서 길어 올린 소리만이 

번식의 계절에 도달하리라. 


필사적인 8월의 브리핑 


분주한 도시가스 공사현장을 넘어 질주하는 

편도 2차선 도로를 건너면 개업 1주년 

사은행사장을 달구는 나레이터걸의 카랑카랑한 

멘트와 앰프를 동원한 심령대부흥회 주님 

할렐루야 아멘 계란이 왔어요 소방차 사이렌과 


말매미의 절규는 

함께 달리고 엉키고 뒹군다. 


데시벨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의 음역대로 고공비행 중인 


주파수 2010MHz 

말매미 진화(進化) 통신 









처서(處暑) 즈음에





  나선형으로 강하(江河)하는 송골매,

  부리 끝의 돌개바람이 


  저공비행 중인 두견새 

  울음의 등허리를 스쳐 지나고


  종일토록 북을 치는 잠자리 

  날개의 하늘 밑에서 

  분주하게 흔들리는 처서(處暑) 즈음에



  해질녘 거미줄은 열 몇 번째 세로줄

  계절은 둥둥 무당굿으로 풀어지는데


  만개(滿開)한 쑥부쟁이 허리를 펴고

  여기가 어디쯤이야 

  요령소리로 밟아가는 서낭당 

  그림자의 구석자리쯤










 개소리 소묘(素描)





  손을 내밀면 


  즐거운 타액을 헥헥 흘리면서

  짖고 뒹굴고 꼬리 흔들고

  밥그릇은 나동그라지고


  내민 손을 향하여 냅다 달려오다 

  목줄이 허락한 반경을 음속으로 가르는


  켕!


  그 함축적이면서도 가슴 찡하면서도 

  삼천 년 만에 출토된 상형문자 같은


  이를테면 

  지난 겨우내 들이치던 바람소리랑

  주인네 가족들 두런거리는 소리가 

  곰삭아서 우러난 것 같은



  말하자면

  졸음처럼 피어오르는 마당에 홀로 묶여 있던 수백 날 

  주인네 딸의 쓰다듬는 손길과 누렁아 하는 음성을 그리던 

  긴 잠에서 느닷없이 깨어났다는 듯 


  더러는 

  누대(累代)의 핏줄에 관류(貫流)하는

  외로움과 기다림과 굴종의 DNA

  그 본능의 언어로


  황송하다는 듯

  망극하다는 듯

  통촉하시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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