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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에 대한 두 번째 푸념

시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12.14 17:42:25
조회 1784 추천 9 댓글 47

이 글은 푸념이다. 이 글은 주워 모은 푸념이다. 정확히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들으며 완 전 공 감 했기 때문에 쓰는 글이다.

그래서 이 글은 디씨에서나 소용될 법한 글이다. 그래서 아무 힘이 실리지 않을 말들이며 퍼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적어도 마이너오브 마이너, 문학 고시생, 메이저 도전자들이 눈팅 중이기 때문이며

나도 비슷한 입장, 혹은 다른 장르에서는 충분히 경험 했던 입장이기에 사견을 덧붙여 토로해 본다.



"나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글은 얼마전 내가 들었던 가장 웃겼던 말 한마디로 시작한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던 한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문장을 만들어내는(조합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 받던 아줌마가 입 밖에 꺼낸 말 치고는 되게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의 말이었다. 2015년을 살아가는 50~60대 유명 여성이 이런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유행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치매 걸린 어머니에 대한 시선을 글로 옮길 줄 알던 사람의 발언 치고는 너무 궁색했다.


'문단 권력'. 이 사건은 이 단어를 심장으로 삼고 있었다. 뭐 이런 이야기, 권력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너무 보편적인 일이라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별 동요가 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냥 실망으로 끝난 하나의 에피소드. 독자로서 '에이 씨발 뭐 이런게 다있어?'정도의 감정이면 가장 격한 반응이었을 사건.

작가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표면에 생긴 기스들이 대충 얼버무려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올해의 문학계가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있을 즈음 신춘문예 공모의 계절이 찾아왔다. 그래서 지껄여 본다. 이런 한 해를 철저히 주변의 변두리에서 겪으며 가장 큰 환멸을 느끼는 이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들이 있으니 그건 아마도 등단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뜯어 고치고 좌절하고 희망을 찾고 쓰고 또 쓰는 이들일 것이기 때문에.


신경숙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다만 세상에 신경숙보다 잘 쓰는 이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느낌은 많이 받아왔다. 하다못해 대학에서 강의 과제로 에세이만 받아 봐도 느낄 수 있었다. 하다못해 환쟁이들이 직접 쓰는 전시 서문이나 스테이트먼트나 작가노트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글쟁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많이 읽어보고 많이 써본 이들의 글은 상대적으로 능숙하다. 적어도 '문법'은 알고 쓰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법이란 음악에서의 화성학과 같다. 문법 이후에는 문체라는 문제가 남지만 그건 논외로 한다. 그런데 왜 등단을 못하는 걸까? 여러분은 잘 쓰는데. 게다가 (아직) 표절도 할 줄 모르는 순수 창작물들을 쏟아내는데?


문단에서 인정하는 등단 루트는 하나 뿐이다. 문예지에 작가의 이름이 드나드는 것. 문예지는 출판사가 운영한다. 이런 문예지에 자기 이름을 드나들게 하는 방법은 또 뭘까? 수상. 문학상 수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학상 중 책을 낸 이후에 받는 문학상은 몇 개 없고 대부분이 공모 문학상이다. 그 주체는 다시 당연히 출판사다. 출판사가 문학상을 운영하려면 돈이 든다. 그렇기에 좀 탄탄한 재무재표를 보유한 출판사들이 주류 문학 공모전을 연다. 그걸 통과해 수상을 하는 기쁨을 누린 이들만 문단에서 '등단 작가'라 인정하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문단이 곧 출판사다. 이렇게 등단한 작가들만 평론가의 과녁이 된다. 출판사가 공모전을 열고 여기서 수상한 작가들을 위해 평론가들을 소환하면 그들이 작가들을 표현해주고 자기 책을 출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거론되기 시작한 작가들은 창비나 문학동네 등에 지면을 채울 기회를 얻게 되거나 평론가들에 의해 다뤄지면서 문예지에 드나들게 된다. 최근 2년간 창비를 드나든 작가들 중 창비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스무명 중 열 여섯명이고 문학동네의 경우는 서른명 중 스물여덟명이란다.


결국 굴지의 출판사가 운영하는 등단 시스템에 등록 되어야 비로소 자기가 '문학적으로' 다뤄지는 것이다.

미술의 경우도 비슷하다. 미술 이야기를 끌어오기 싫지만 좀더 우스운 시스템이기에 잠깐만 소개한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로 등단은 공모전을 기준으로 한다. 이때 어디서 전시를 했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인사동 도처에 깔린 갤러리에 주당 얼마를 주고 혼자 개인전을 여는 것은 당연하게도 아무 의미 없다.

미술쪽도 어차피 돈이 많은 갤러리나 미술관이 주관하는 공모전-가령 이런 이름들이다. '2015 청년작가 발굴 프로젝트'-이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문학과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국가 기관이 주관하는 공모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공모전보다 국가 기관의 공모전이 훨씬 커다란 권력을 형성하고 훨씬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훨씬 커다란 힘을 작가에게 실어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고양/창동 스튜디오', 서울시가 기획하고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금천 예술공장',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난지 미술창작 스튜디오'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Arko)가 운영하는 대학로의 '아르코 미술관'이나 '인사미술공간' 역시 훌륭한 등용문이 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격의 시스템을 통해 등단해야만 미술계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은 국가가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미술계에서 작가라는 칭호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우스운 자격증이 막강한 역할을 한다. 어마어마한 내일을 보장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시스템은 각종 전시는 물론이고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연결 시켜 주는 것을 포함한 국제적 명성(?)을 쌓을 기회까지 제공한다. (프랑스나 독일 등의 국가도 이런 류의 시스템은 당연히 존재한다. 미술의 공적 역할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기 이름과 작품을 드나들게 하기위해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돈과 시간을 쏟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1차 피해자들인 그들은 서울시내의 각종 지하실이나 문래동 같은 공장지대에 기거하며 '다음 기회'들을 노리고 있다.(게 중 서울대출신이 등단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미술계는 서울대 출신과 비 서울대 출신으로 나뉘는데 서울대 출신이 주류를 이룬다.)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다. 앞서 언급한 미술의 강력한 등단 시스템이 문학에도 있다면 창비와 문학동네일 것이다. 거길 비집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런데 웃긴게 이게 마치 고시 같다. 고시생 같은 입장으로 글을 몇 년 쓰다가 창비나 문학동네 같은 굴지의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을 경우 다른 출판사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지 않다. 대부분 거기서 '아 난 안 되는 녀석이야.'하며 포기한다.


그런데 등단한 이들을 둘러보면 읽을 만한 작품이 없다. 이건 참 거지같은 일이다. 등단의 가능성을 좁히고 좁혀 마치 엘리트를 솎아 내는 식의 시스템인데 정작 그렇게 등장한 한국문학은 진짜 읽을 것이 없다. 상 받았다는 것들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니 읽지를 않는다. 나만 안 읽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실 잘 모르겠는' '의아한' '이게 정말?' 싶은 것들을 평단이 '좋다'고 수식해주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그 평단의 '좋아요'만이 메이저리그를 형성한다. 여기에 지친 이들은 다른 일을 알아본다. 사실상 직업은 널려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 비좁은 구멍을 통과하는 일에 더이상 지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대중들도 소비하지 않는다. 사실상 몇 만부 몇 십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책은 누구에게 소비 되는가?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읽었다고 한들 문단에 성토하는 대중은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책의 내용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중이 책의 내용을 소비하고 그것을 반드시 읽고 싶었다면

토렌트에 베스트셀러들이 돌아다녀야 한다고. 한국의 e북 시장이 열리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말한다.

이렇듯 대중과 문학은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문단은 지속적으로 신경숙을 잉태할 수 밖에 없다. 줄곧 표절로 일관해 왔을지 모르는 누군가들이 상을 받고 등단을 하고 평론가들의 피쳐링을 지원 받아 베스트셀러를 양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 문학은 다수를 밀어낸 엘리트들만이 살아남는 그저그런 부조리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이다. 이게 가장 커다란 문제다.

잘 쓴다고 등단 하는 것이 아닌 세상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문단이 낳은 스타의 한 마디를 재차 감상해 보자.


"나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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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너무 못쓴 이유로 몇 줄 추가하자면


거의 모든 인프라를 출판사가 운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마치 영화 제작사가 영화관, 영화 평론 잡지, 영화 홍보/배급사를 가진 것과 같은 것. 그런데 이런 생태계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스타조차 제대로 매니지먼트 하지 못한다는 것. 거길 뚫고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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