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없는 사람이다

부모님 농장에 가도 그저 무책임하게 어버이를 '도울'뿐이고

집에서 집안일을 해도 그저 무책임하게 어무이하시는 집안일을 '도울' 뿐이다

또한 택배상하차 일용직 노동을 해도 그저 무책임하게 말 없이 '운동'하고 오면 그 뿐이다

그래서 농장일 집안일 택배일을 전부다 아울러 엄청난 각고의 노력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 없이 지내고 노니는 '일 없는' 이다

때로는 한적한 대공원에 가서 말 없이 공원을 거닐고

때로는 아무 버스나 타고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온다

때로는 기약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사찰에 가면 반겨주는 이 드물게 하나, 둘 있고

때로는 어여쁘게 생긴 도서관 여자애 앞에서 공부하는 척하며 교감을 나눈다

아아 이러할 진대 도가의 무위이화 소요유 안빈낙도가 나에게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아아 나는 누구인가

도가에서 내려오는  장자인가 보리밭인가 장자가 보리밭이 되었는가 보리밭이 장자가 되었는가

아아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와같이 모든 일을 해내도 실로 행한 바 없이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