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욕망의 기록

지은이: 김어민

섹스를 하고싶다

풀 잎사귀, 나뭇잎과 섹스를 하고 싶다

봄바람에 스쳐 실려오는 식물혼과 섹스하고 싶다

혼

혼을 느낄 수만 있다면

한 여인의 혼이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여인의, 實體같이 까만 두 눈동자에 담긴 혼

입술 끝 입꼬리올림근을 당겨 미소짓게 만드는 혼

시 같은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목소리

솟아나는 샘물

소녀에게 주어진 인생의 서사가 강물처럼 시작되고

흐름 속에 반짝이는 물결

물결이 물결을 치고 나간다

경계에 다다라 부서져가는 포말 위로

어둠은 텅 빈 곳을 검은 숲처럼 가득 채우고

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한 늑대의 울음 소리가

깊이 잠들어 있던 혼을 불러 깨우면

천공을 가로지르는 빛줄기 따라

가만히 고개들어 시선을 고정시키니

정해진 궤도 위를 운행하는 달과

북극성을 향해 정렬한 별무리

환한 달빛은 수만갈래의 마음을 밝혀

두근대는 심장의 핏줄에 붉은 혼을 일으키고

미쳐버린 혼이 맺힌 흰 손가락 끝으로는

희망이 담긴 뭇 별들을 하나하나 가리킨다

꿈을 외치고 사랑을 토해내던 밤이 만리성같이 지나고

동 트는 하늘 속 달과 별이 풀 잎사귀 위 푸른 이슬방울에 녹아들면

태양 아래 대지에는 색색깔의 생명들이 제각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니

아아,

천명을 안 자, 그 인생이 짧기도 하구나.

하늘아래 펼쳐지는 비밀의 드라마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진 시공간의 틈들

눈물이라는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