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2024.04.27.

문갤러(110.14) 2024.04.27 05:18:15
조회 70 추천 0 댓글 0

학창 시절의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말했습니다. 진지한 이야기였지만, 저에게는 우스갯소리로 들렸습니다. 사춘기라는 자연스러운 시기 아래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는 병역 이전에 반드시 스스로 삶을 포기하리라 말했습니다.


우울감은 언젠가부터 제 삶의 뒤를 밟아왔습니다. 제가 앞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이 우울감은 저를 앞서 가고자 하였습니다. 계기는 알 수 없습니다.


계기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일 수 있고 계기는 괴테 일 수 있고 계기는 헤르만 헤세 일 수 있고 계기는 에밀리 브론테 일 수 있고 계기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 일 수 있습니다. 혹은 호메로스, 혹은 니체나 카잔차키스, 단테 혹은 모든 이가 계기일 수 있습니다. 사실 계기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짧은 삶을 살아오는 동안, 몇 번은 우울감이 저를 앞선 기억이 있습니다.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은 자연스럽게 웃어넘겼고, 이후로도 갖은 이유를 붙이며 웃어넘겼습니다.


자력으로 일어선 경험도 있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일어난 경험도 있습니다. 일어나서 돌아보면 어느새 우울감은 한참이나 뒤에서 저를 보고 있었고 저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걸어갔습니다.


이런 우울감이 저보다 빠르게 걷는다는 것을 알아챈 건 꽤 최근의 일입니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가도 우울감은 언젠가 저를 추월합니다. 갖은 이유는 원인이 아닌 결과입니다. 우울감이 저를 앞지르면, 갖은 이유들이 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 때는 그런 것에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모두 한 때의 꿈입니다. 지금 제가 원하는 것은 마치 비참하게 팔 다리가 잘린 채 양분을 주입 받는 식물인간입니다. 책장의 책을 볼 때마다 저를 옭아매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한 때는 다른 사람의 밧줄을 끊고자 하였습니다. 한 때는 다른 사람에게 숟가락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싫다. 더는 필요 하지 않다. 제 몫마저 토해 내게 해주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미워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저를 미워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힘든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일은 종종 있습니다. 행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강변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랜만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와 크게 의미를 두진 않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크게 의미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었던 것도 결국 변명이었을 지 모릅니다. 역시 저는 단 한번도 릴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290801 비에도 지지 않고 이해하지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17 45 0
290800 무슨...아랍어 9가 tisa라서 [6] a(39.7) 05.17 36 0
290799 아 미친년 사람 자고 있는데 전기 먹여 a(118.235) 05.17 36 0
290798 음양을 이야기하는 때 양은 태양이냐 a(118.235) 05.17 37 0
290797 견과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1] a(118.235) 05.17 40 0
290795 Pidgeonhole 분류하다 a(118.235) 05.17 31 0
290794 마그네슘 추출 공정을 나한테 돌리고 있다는 거지 a(118.235) 05.17 36 0
290791 그지? 산화마그네슘 MGO NGO비율 높지 니들이 a(118.235) 05.17 38 0
290790 ㅁㅁㅁㅁㄹㄹㄹㄹㄹ3333333 ㅁㄹ(182.212) 05.17 41 0
290768 가장 중요한 것 ㄱ..(223.33) 05.17 66 0
290767 의사시험 합격 다음에는... [16] a(118.235) 05.17 64 0
290766 카이스트 전산과 나와서 해킹할줄 알면 [1] 하남자(218.52) 05.17 96 0
290763 서울대 찬양 하남자(218.52) 05.17 99 0
290762 연세대 다닐때 스누라이프 들어가서 많이 배웠고요 하남자(218.52) 05.17 84 0
290761 정신과 약 십오년 먹어서 간수치가... 하남자(218.52) 05.16 71 1
290760 넌 여자 많이 만났잖아 그럼 됐지 하남자(218.52) 05.16 60 0
290759 설대생은 스누라이프 있으신데 하남자(218.52) 05.16 69 0
290758 금강경 하남자(218.52) 05.16 64 0
290757 서울대 최고 하남자(218.52) 05.16 80 0
290756 아니 서울대 인정한다니까 왜그래 [1] 하남자(218.52) 05.16 111 0
290755 질투는 너의힘 하남자(218.52) 05.16 57 0
290754 지렁이 문갤러(39.115) 05.16 50 0
290753 제전복 계속 입어 안 좋으면? 전기고문은 중성자 폭탄 쏘아 a(39.7) 05.16 39 0
290752 아덴만 아데노 오딘, 이냐 [3] a(39.7) 05.16 48 0
290751 아...하라는 대로 공부 욜씨미 해 아랍 어린이집 가면 되겠네 a(39.7) 05.16 38 0
290750 개폐전류 정도 측정해 맞춰버리기만 해도 나 엿먹여, a(39.7) 05.16 39 0
290749 아데노 바이러스 방식이다 쓰고 그냥 활동전압인데 a(39.7) 05.16 33 0
290748 ~일 리 없다 하남자(218.52) 05.16 55 0
290747 빛나는 [1] 문갤러(116.121) 05.16 89 4
290746 틴더에 에이섹슈얼, 데미섹슈얼 용어 아는 사람만 연락하라고 적어놨는데 시티팝f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16 52 0
290745 버스에 사실상 중성자탄 터트렸네 a(39.7) 05.16 44 0
290744 SK 이천 하이닉스...현수막 많이 붙어있기에 뭔가, [1] a(118.235) 05.16 69 0
290743 정신과 의사의 모순 하남자(218.52) 05.16 107 0
290742 Castle을 니네 애너그램 규칙 돌림 Cast 계급이냐 [1] a(118.235) 05.16 46 0
290741 지들이 카프카도 아닌데 의자는 대놓고 고문도구겠죠 a(118.235) 05.16 42 1
290739 엄경희 씨 재밌구나 [2] a(118.235) 05.16 87 0
290738 무아 참나에 대한 생각 하남자(218.52) 05.16 95 0
290737 국문과 졸업 18년이라 국문과 락낀이든 말든 상관 없죠 a(118.235) 05.16 43 0
290734 RAT 애너그램 돌림 MEN이구만 [1] a(118.235) 05.16 52 0
290733 찰스가 왕립협회 어쩌구 하더니...2세니? 1600년대 a(118.235) 05.16 39 0
290732 머리 못 건드리게 하니까 겨드랑이로 산소 뽑겠죠 a(118.235) 05.16 41 0
290731 와...우뇌 막으니 좌뇌라도 뚫겠다? a(118.235) 05.16 43 0
290730 #권성은님이_너의기침소리를_싫어합니다 a(118.235) 05.16 43 0
290729 창작이 원래 중력 없이 노는 짓인지라 [18] a(118.235) 05.16 70 0
290728 문학평론 등단하려면 어느정도로 글을 써야할까 문갤러(58.238) 05.16 53 0
290727 너네 태양이 인공 태양열이죠 [1] a(118.235) 05.16 48 0
290726 나는 니네 국문과 드립이 진짜 웃긴 게... a(118.235) 05.16 47 0
290725 인체 전반을 음극관 활용해 도대체 a(118.235) 05.16 41 0
290724 마왕족발 2차 [1] 런던공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16 72 0
290723 포스텍 화학과 소름끼치는 게... [4] a(61.73) 05.16 69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