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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 며칠도 안 됐는데 망했다구?

진돗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2.12 19:13:33
조회 105 추천 0 댓글 6

쩝...

나름 교내 문학상 타서 후배들 술턱 쏜 시 한편과 주절주절 글 쎄움...


 

   (전략)
  나는 이처럼 문명적 세계관을 직선적, 방향성, 발전지향성 등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다분히 기계적이며 일회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회적이라는 말은 좀 애매한 표현이지만 내게 그것은 순환 불가능성이나 비유기성에 해당하는 의미다. 자연계에서 생산된 모든 구성 요소들은 유기적 관계 속에서 순환한다. 이 관계는 직선적인 게 아니고 원의 형태로 계속해서 순환되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생명체가 죽으면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거나 미생물의 분해작용에 의해 유기물로 변형되어 토양에 흡수된다. 유기물을 흡수한 토양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체계화된 것이지만, 직감에 의해 오래 전부터 내 세계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던 것들이다. 그 중심에는 역시 ‘바람’이 있다. 문명적 세계관이 학문적인 그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라면 나의 순환적 세계관은 종종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모든 걸 감안하고서 「바람숲 신화」라는 제목을 단 것은 아니다. 시 제목을 짓는 것은 ‘번쩍’하고 스쳐 지나가는 의식의 소산일 뿐, 꼭 시 전체 내용을 대표하는 그 무엇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숲”으로 상징되는 내 눈앞의 세계, 이 세계 안의 이야기가 내게는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신화”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것은 사실이다.




  바람숲 신화 2



  서투른 봄햇살의 줄기들이

  마른 가지 사이로 툭툭 떨어지면

  굵은 나이테로 겨울을 견뎌 온

  느티나무의 뿌리를 훑으며

  진달래꽃 유채꽃 향기 깨어난다.

  그래, 이 계절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향기로 밝아 오곤 했지.


  어둠 속에서 목관 악기의 소리를 내던

  바람숲의 모든 생명들은

  봄의 즈음이면

  본능처럼 향기와 색깔로 연주하는 법을 알아채고는

  일제히 아지랑이의 박자에 맞춰 하늘거린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낮은 음계의 노랫말로 바람숲을 울리면

  망각의 퇴적층 아래 잠들어 있던

  사슴의 발자국이 달린다.


  허리춤에 날개를 달고

  스스로 발하는 빛을 몰고 가단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의

  뿌리가 뻗은 길목마다 한줌씩 흘리면서

  부신 빛의 한 점으로 봄의 땅 밑을 달린다.

  벌, 나비의 오랜 길을 따라

  계절의 마지막 산자락

  움츠린 능선의 서릿발을 걷으며

  숨차게 뛰어 오른다.


 

  詩와 言

  1.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이 세계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순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때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으로서 나는 ‘바람’을 상정했다. 바람은 곧 소통이며 그래서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바람숲 신화」는 생명의 소통을 다룬 시다. 내가 보는 세상은 항상 그렇다. “봄햇살”의 작용은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기어코 “느티나무”의 잔가지를 흔들어주고, 또 이 느티나무는 자기들만의 채널-사슴 발자국이 잠들어 있다는 땅 밑-을 통해 자기들만 알아듣는 언어-뿌리의 언어-로 온통 꽃나무들의 잠을 깨우는 것이다.


  2.

  꽃나무들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재잘재잘 향기로운 수다를 떨어낸다. 진달래나 개나리 같은 꽃들이 이제 막 피어나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으레 열 두세 살 짜리 여자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연상된다.


  3.

  봄의 아침이면 겨울 밤새 숲 속에서 ‘우-우’하는 발음으로 울었던 게 바람의 합주곡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눈 덮이고 얼어붙은 대지로부터 낮게, 낮게 엎드린 생명들은 급기야 땅 밑으로 숨어들었다가, “봄의 즈음이면” 어느새 대지 위로 솟아나 온통 “향기와 색깔”을 발한다. 이건 거의 숨막힐 지경이다. 나도 낮게 엎드려 눈 높이를 맞춰 보면, 아지랑이 같은 것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마치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극단의 뮤지컬 공연 같다.


  4.

  저것들은 도대체 무슨 수로 이맘때만 되면 작정을 하고 일제히 피어나는 것일까. 예비군들이 군복을 입고 하나 둘 훈련장에 모여드는 것은,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집집마다 날아들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다. 때만 되면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가 땅 위에서 배달되는 것처럼, 땅 아래에서는 이들 역시 자기들만의 채널을 통해 열심히 교신하고 있는 것이다. 내 시를 읽고 “사슴 발자국”의 의미를 묻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사실 이건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가 선 저 자리, 그 밑에선 사슴이 자기 발자국을 어지럽게 찍으며 봄의 통지서를 배달하고 있겠구나 싶다.


  5.

  봄은 또 벌과 나비의 계절이다. 이 녀석들은 또 무슨 수로 꽃을 찾아다니는 걸까. 아마도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 게다. 이들에게도 자기들만의 길이 있다. 인간이 길이라는 걸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벌과 나비는 보이지 않는 그 길로만 다녔을 터이다. 그 길을 따라 사슴 발자국은 달린다. 발자국이 찍히는 곳마다 “서릿발”은 걷히고 잔뜩 움츠린 산은 그제서야 능선을 길게 펴며 잠에서 깨어난다.           

    

  자연이 위대하다는 것은 이걸 인간이 기계로 재현한다면 얼마나 완벽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자명해진다. 재미있는 상상 아닌가. 남보다 늦게 몽우리를 틔운 진달래에게 독촉장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라.


  “귀하는 법정 개화기간보다 일주일 늦게 개화하셨기에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이의를 제기하시려면 본 통지서를 지참하시고 관할 경찰서로 출두하십시오.” 


  나는 생명이 죽고 사는 모습들에서 자꾸만 신화나 전설 같은 그 무엇이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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