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환상기> -1

구울과몽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4.14 02:38:35
조회 84 추천 1 댓글 0
														


viewimage.php?id=21b4c423f7d32cb37cba&no=29bcc427b08577a16fb3dab004c86b6f620008c1cd8d09c94ee6c40dbf97a4f11c988a1c8ddac71580a42df425015e5b92155c7e0bece8b345530d




1.


 초승달이 자정 높은 곳에 걸려있던 그날 밤, 아내와 나는 야식을 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원숭이의 두개골을 우거적우거적 씹어대고 있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에 그녀가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나 북극에 가고 싶어."

“왜?”

 

그녀는 옆모습의 자태가 특히 아름답다. 그녀는 생선요리를 잘한다. 1979년에 그녀는 나와 결혼했다. 1984년에 그녀는 친오빠를 죽이고 나와 함께 먹었다. 1989년에 그녀는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장례식을 치룬 다음 함께 먹어치웠다. 고등학교 졸업 사진 속에서, 백합처럼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모습. 신혼여행 때 제주도의 경마장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말위에 올라타 있었던 그녀.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녀는, 턱을 괸 채 식탁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아름다운 그녀는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을 계속 이었다.

“북극 같은 아름다운 곳에서 죽고 싶거든.”

“북극이 왜 아름다운데?"

“북극은 말이야. 가장 완벽한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야.”

“가장 완벽한 자살? 그게 뭐야?”

“가장 완벽한 자살이란 말이야......”

 

생각을 정리하게 위해 그녀는 식탁의 아래쪽을 응시한다. 나는 그 모습을 가장 사랑한다. 사색에 잠기는 그녀의 다소곳한 눈동자가 식탁의 아래를 파헤치고 있다.

“가장 완벽한 자살이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죽음이야.”

“완전한 단절이라니. 어차피 자살이란 세계와의 단절이 아니야?”

“아니야.” 그녀는 강조했다. “대부분의 자살자들은 이 세상에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죽는 거야. 하지만 오직 죽어야 하기 때문에, 단지 죽기 위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없어.”

“죽기 위한 자살?”

“우리는 자살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고 잇어. 자살이란 한 사람의 완성된 자유, 완전한 해방과 동의어가 되어야 해. 외지에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가는 것과 똑같이 받아 들여야 해. 즉, 완전한 자유 의지에 따른 결단이 되어야 해. 그렇지 못한 자살은 자살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어.”

 

내가 말했다.

“완성된 자유, 완벽한 자살. 일본 전국 시대의 사무라이들이나 품을 수 있는 생각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완벽한 자살은 하지 못했어. 그들도 사회적인 타살을 당했던 거야”

“난 완벽한 자살을 이뤄낼 거야. 추방이 아닌 스스로가 원한 소멸. 나는 완전한 격리와 단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 그러한 소멸만이 완벽한 자살이고, 오직 그런 죽음만이 아름다운 죽음이야.”

“그렇군. 그런데 왜 하필 북극인거지?”

“상상해봐.” 그녀의 어감 속에 크나큰 흥분과 긴장이 깃들어졌다. “순백으로 덮인 창백한 설원을. 모든 것이 다 흰색이고 그것에 걸맞게 온도도 차갑겠지. 차가움과 흰색은 청결과 순수를 상징해.”

“그런 건 단지 우리들의 관념 속에서나 그렇겠지.”

“아니야. 순백의 새하얌에 비추어진 모든 사물은 자신의 형체를 숨김없이 드러내기 때문이야. 때에 탄 옷을 입고 눈 오는 날 밖으로 나가는 사람을 본 적 있어? 순백은 선명한 자의성을 가지고 있어. 다른 색과는 결코 섞일 수가 없지. 그러므로 순수의 땅인 북극에서 죽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죽음이라고 할 만하지 않아?”

 

그녀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순백의 설원을 질주하는 그녀를 떠올렸다. 나의 그녀가 지나간다. 색체 한계라는 비관적인 경계를 넘어서, 하늘과 땅의 채색을 찢어버리고, 자유로운 순백의 바다 위를 순록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질주해 나간다. 그녀는 눈의 나라의 여왕이다. 그녀는 선이 사라진 무한대의 저편으로, 극치의 환상 속으로 사라져 갔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81558 소설 방과후 에서 밀실살인 트릭이뭔가요 ? 핫동균(112.146) 15.04.17 132 0
81556 권태롭고 무료하다 혀의풀(121.144) 15.04.17 58 0
81551 넌센스 문제 나간다 ㅇㅇ(220.121) 15.04.17 62 1
81550 넨센스 수수깨끼 [1] ㅇㅇ(211.36) 15.04.17 111 1
81549 마시자 막걸리를 안 마신 날이 오늘로 나흘째면 [45] (183.99) 15.04.17 326 1
81548 지금 이 순간 (211.109) 15.04.17 57 0
81545 책 가격 [2] (211.109) 15.04.17 325 0
81544 요즘 세상에 가장 잘팔리는 소설 장르가 뭘까 [1] 심~치킨(49.175) 15.04.17 148 0
81541 오디션 때 불렀던 노래 [5] 1939(39.118) 15.04.17 164 1
81539 오늘 숭실대에서 이성복 시인 특강한다고 하더라 [19] (175.252) 15.04.17 372 1
81537 미래에 부자들이 인류 멸종시키는 이유 [1]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7 119 1
81535 나도 짐승일 뿐이었으면 [10] (183.99) 15.04.17 142 2
81533 솔직히 요즘은 누구나 창녀져 [25] 1939(39.118) 15.04.17 376 1
81529 낮잠을 자본 지 오래당 [2] 1939(39.118) 15.04.17 155 0
81528 이 소설 아는 사람? [1] 알약소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7 139 0
81526 내 야설가로서의 전력을 보호키 위해 [2]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7 151 1
81523 할아버지 제 눈물 좀 닦아 주세요 - 영화, `은교' 보는 중 [4] (183.99) 15.04.17 234 2
81522 연금술사 읽고있는데 또람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7 68 0
81519 예명을 짓게되면 [4] 1939(39.118) 15.04.17 400 2
81518 쥐스킨트 비둘기 읽고 왔는데 이해가 잘 안된다 [3] 잘알못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7 138 1
81515 고소먹었다던분 어떻게됐나요? [1] ㅇㅇ(115.137) 15.04.17 139 1
81514 0. 여기에 뻘글 쓰면 되는 건가요? [2] 홍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290 6
81513 오늘 저녁은 조용하네여 1939(39.118) 15.04.16 68 0
81512 자작소설 초반 부분 재밌는지 평가좀 [1] 키득키득(110.12) 15.04.16 147 2
81510 자러가자 [1] (119.192) 15.04.16 60 0
81509 나는 크툴루 세계관을 기초로한 소설을 또 하나 쓸 생각이다. [3] 구울과몽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108 0
81508 어디 괜찮은 장르 문학 공모전 없나? [1] 구울과몽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175 0
81507 갑자기 시가 싫어졌다 [1] 구울과몽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134 2
81506 벌써 사월 중순 [1] 공ㅁㄴㅇㄹ(203.226) 15.04.16 86 0
81505 오늘 연습 끝끝! [2] 1939(175.255) 15.04.16 100 0
81504 시씀 [3] ㅁㄴㅇㄹ(121.188) 15.04.16 109 1
81497 문갤러들아 너네들 성욕은 어떻게 해결하니? [5] ㅇㅇ(88.150) 15.04.16 200 0
81495 퇴근이 곧이다 [4] (119.192) 15.04.16 101 0
81494 white stripes - icky thump 1939(39.118) 15.04.16 50 0
81491 딸통법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19금 글들은 팔리고 있네.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99 0
81490 내 글들이 널리 읽히게 하려면 어케야 할까.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165 0
81487 계속 77 거론하는 것들 77이냐?? 의심스럽다 77 [1] ㅇㅇ(183.106) 15.04.16 118 2
81485 요즘 대출갤에서 힐링하는데 ㅇㅇ(110.70) 15.04.16 84 1
81484 방금 쓴 엽편. '니체 초인' [1]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4.16 126 1
81481 빗 속을 걸었다 [2] A(183.108) 15.04.16 109 2
81478 ㅎ 늦었다고 딲였다 [4] 1939(39.7) 15.04.16 156 1
81475 77 사칭하고 모함하지마라 이것들아! [2] 77(115.21) 15.04.16 308 9
81471 난 일하러 간다 문갤러들 오늘 저녁에 비오니까 우산 챙겨라 [2] (119.192) 15.04.16 100 0
81470 나갑니당/04.16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 [4] 1939(39.118) 15.04.16 134 1
81469 오늘 만큼은 모두 추모하자. [3] (119.192) 15.04.16 130 2
81468 사랑은 왜 이렇게 또 힘드냐? [2] (119.192) 15.04.16 127 0
81467 산다는 것은 참 비참하고 어렵다 [7] (119.192) 15.04.16 109 1
81465 으앙 늦잠잤다ㅋㅋㅋ [4] 1939(39.118) 15.04.16 120 1
81464 ㄴㄲ는 참 애가 뛰어난 게... 로미오(121.179) 15.04.16 84 0
81461 ㄴㄲ는 소설보다는 시가 낫겠다. 로미오(121.179) 15.04.16 12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