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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초반 부분 재밌는지 평가좀

키득키득(110.12) 2015.04.16 23:21:12
조회 148 추천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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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 너머로 들리는 잡음을 오랫동안 들었다. 엄청난 분노를 못 이겨 주먹으로 힘껏 전화기를 내리쳤다. 수화기를 내동댕이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곤 멍청하게 다시 일어나 멀쩡한지 다시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망가지진 않았다.

20여분 째 지지부진했다. 저녁비가 창가를 강하게 때리는 것을 보며 나는 회상에 잠겼다. 화분엔 물이 흘러넘쳤고, 나는 유리를 따라 또르르 흘러내리는 물방울의 궤적을 훑으며, 용케 매달려 있는 한 방울의 물처럼 희미한 기억을 붙들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내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건부터 말해보고자 한다.

.” 문형이 핸드폰을 건넸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긴 전화번호부를 내렸다. 문형은 다른 손님들을 받느라 바쁜 눈치였다. 나는 복도 구석 의자에 앉아 계속 핸드폰을 주시했다.

선형, 유라, 정현, 유진, 민우, 혜성, 동혁... 동혁이라. 나는 동혁의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010-****-6857. 선명하진 않지만 머릿속을 훑고 지나갈 듯한 기억이 스며들었다.

이 번호가 맞는 거 같은데.” 나는 손님이 뜸한 틈을 타 동혁에게 다가갔다. 그는 폰을 받아들고는 유심히 그 번호를 바라보았다. 나는 초조했다. 설령 그 번호가 맞다고 해도,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한 방안이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해 볼까?” 그가 물었다. 나는 당시 극구 만류했지만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호를 수첩에 적어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내겐 먼 과거와도 같은 한 순가의 기억. 필기로 빼곡하게 차고 모자라 너덜너덜해진 수첩을 뒷주머니에 넣고, 가랑비가 내리는 거리 위를 내달렸다.

머릿속은 아련해지고 있었다. 희미한 아지랑이가 현기증처럼 눈앞에 도사려왔다. 나는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다.

찾아가봐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망설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소름끼치게 차가운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우연찮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옥 입구에서 문형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바짝 쳐들고 창문을 열었다. 그는 빠르게 멀어져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쫓아왔다. 나는 몸을 내밀고, 수첩을 꺼내들어 톡톡 가리켰다. 전화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빵빵대는 경차를 피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세차게 창을 때리는 빗물들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빗방울처럼 무언가 눈가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선 유일하게 번호를 아는 동혁에게 전화를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집어들다 놓기를 반복했다. 결국은 010까지 누를 용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다시 수화기를 놓았다. 이번엔 전화기가 아니라 내 머리를 있는 힘껏 때렸다. 욱신거리는 느낌을 피하지 않고, 다시 드러누워서 느꼈다.

창밖으로 엠뷸런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거세져가는 빗방울이 창문을 툭툭 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도시 속 찬가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듣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결심하곤 벌떡 일어났다. 이젠 더 이상 손이 떨리지 않았다.

010-****-6857. 다이얼음이 1, 2초 흐를 때마다 시간은 그렇게 더디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말했다.

, 동혁씨 전화번호 아닌가요?”

맞는데 누구시죠.”

뭐라 말해야 할까. 아둔하게 그걸 정해두지 않았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 끊을 게 뻔했다.

그 때 물산택배인데요, 재고물품이 다 떨어져서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택배 시킨 적이 없는데요.”

나다, 남기.” 나는 최대한 분노와 떨림을 억누르고 말했다. 더 긴 침묵이 흘렀다. 기침 소리 후에 그는 어어 라며 어색한 효과음을 냈다.

잘 지냈냐?” 그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너한테는 확실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만날 수 있냐?” 내가 간신히 물었다.

그런데 나를 용케 기억하고 있네?” 그가 말했다. 나는 제발 빈정대는 것이 아니길 바랐지만 어투는 내 바람을 부정했다.

내일 아침에 시간 되냐?” 내가 물었다.

내일 아침은 안 되지, 많이 바쁜데.” 그가 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고요한 침묵은 바람 소리마저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를 연상시키게 했다.

뭔 일 있었지?”

그는 뜸을 들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나한테 뭔 짓 했냐?” 라고 물었다. 그것은 질문도 아니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한 되물음이었다.

니가 정 만날 시간이 없다면 내가 내 시간 쪼개서 찾아갈게.”

아 알겠어, 거 참. 다음 주 일요일에 만나.”만나기 싫으면 여기서 직접 말해. 나한테 뭔 일이 있었는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통화내용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그는 그 자신의 혼란에 못이겨 고민하고 있었고, 나는 기회를 잡았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게 더 속 편하고.”

나는 곧바로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끊었다. 핸드폰을 끄지 않고 곧바로 문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잡았다. 잡았어. 이 새끼만 파면 나머지를 잡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 같아.”

신중하게 이어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걔가 마당발인데 개를 놓치면 다시 추적해 가는데 시간이 배는 들거야.”

첫 단추를 잘 꿰자 그 다음 단추들을 꿰는 것은 쉬웠다. 나는 일단 삼청동 비짓카페에 가서 내 행적들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사장님?” 앳돼 보이는 여직원이 놀래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가게 안은 드문드문 손님들이 책을 펴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워질까 잠시 여직원의 어깨를 잡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내 가게가 맞는 거지?”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미세한 떨림에도 작은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녀 역시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척하면 척이었다.

아닙니다.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손님.”

방금 사장이라 그랬잖아.” 나는 친절하지만 다급하게 부추겼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서 몸을 이리 저리 흔들었다. 곤란했다. 다른 직원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남자 직원은 여차하면 육탄전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손님, 무슨 문제라도?” 남자직원이 달려왔다. 틀렸다. 이 사람은 나를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마 내가 익숙했더라면 이 여직원처럼 사장님이라는 존칭을 쓰는 실수를 범했을 것이다.

, 내가 여기 전 사장인데, 잠깐 여기 점장 좀 볼 수 있을까요?”

?” 남자 직원이 답답하게 되물었다. 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사장님은 현재 집에 계십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오시거든요. 죄송하지만 나중에 다시 오시는 게 나을 듯 싶습니다.” 그는 친절하게 말했지만 내게 경계심과 혐오감을 품고 있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일주일이나? 그럴 시간이 없어요. , 그럼 일단 커피나 한 잔 하고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테라스 쪽으로 나갔다. 다행히 사색을 방해할 손님 따위는 없었다. 기분 좋게 화분 몇 개가 발코니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주방 쪽을 슥 바라보았다. 분명히 지들끼리 뭐라뭐라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해서는 물론, 점장에 대해서도 말이다. 분명히 뭔가 있었다.

뭘 드릴까요?” 나는 손을 들어 아까 남자 직원을 불렀다. 적당히 카푸치노를 시키고, 책꽂이에 꽂힌 이방인을 읽고 있었다.

손님? 저를 찾으셨나요?” 한창 두 번째 페이지를 읽고 있는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종이 너머로 향수 냄새와 신발 그림자 때문에 그의 접근을 미리 깨닫고 있었지만, 모른 체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우람했다. 육체적 해결은 절대적으로 피해야만 했다. 나는 생각보다 내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예, 안녕하세요. 제가 예전에 여기 사장이었던 사람입니다.” 나는 일어나 멋쩍게 인사했다. 그는 , 그런가요.” 하고 어영부영 대답했다.

혹시 제 요청을 받고 나오신 건가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그냥 가게에 와 봤는데, 직원들이 그 쪽에 대해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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