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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온 봄 날이었다. 백주대낮에 제멋대로 서있는 건물들 사이로 가로수잎들을 지져대는 땡볕은 흔히 삶의 희망으로 일컬어지는 그런 것들과는 다른 가혹한 햇살이었다. 저기 저 아지랑이를 대동해 도로를 활보하는 자동차들을 보니 마치 달리는 그릴과도 같았다. 이 것도 나름 에너지의 낭비가 아닐까? 감히 고개를 들어 처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저 당신에게 쓸데없는 짓은 관두시길 빌고 싶었다. 이런 날씨에도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오늘은 중요한 가정방문의 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제 시작되는 봄볕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금동빌라 B동 20..."
지친기운에 힘이라도 내보자고 크게 소리내 읊어보려니 도리어 기운이 빠지고 뜨거운 햇살이 액정에 반사되 눈에 잔상이 남을 정도가 되니 더 이상은 읽지 않았다. '금동빌라 B동 202호 정금례 씨' 속으로 되내어 기억했다. 찻길을 등지고 골목에 들어와 걸은 지 한참이 되어도 자비없는 볕은 거침없이 쪼아댔다. 주택가로 들어오니 점점 가벼운 차림을 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더위를 맞았다. 보통은 노인들이었지만 어린아이들 몇명은 공을 차며 놀기도 했다. 어린이들에게는 이 날씨가 아직은 견딜만 한가보다. 곧 주소지에 도착하고 동을 확인했다. 흰 건물에 검은 색으로 칠한 글씨가 거의 벗겨져 있었다. 2층규모의 연립주택인 금동빌라는 딱봐도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서둘러 B동을 찾아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들어가니 그나마 열기를 덜 수 있었다. 정금례씨를 만나기 전에 우선 짜증스럽게 멱살을 잡아 털고는 팔다리도 툴툴 털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니 여름을 어떻게 날까?
- 똑 똑 똑 -
"실례합니다. 정금례 할머니?"
기다린지 한참이 지났다. 다시 한번 노크해볼까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그렇다고 돌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아니고 마치 등떠밀린 기분으로 문앞에 서있으면서 잠시 마음을 쉬우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조금은 넋놓고 기다려보자 마음을 먹고 충분히 기다리고나서 인기척이 들렸다.
"... 누구세유?"
"아, 복지부에서 온 김학선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키가 아주 작은 할머님이 주름진 작은 눈으로 방문객을 맞이 했다.
"안녕하세요"
"아아~ 응, 그래 그래. 청년이 왔구나"
"아, 저 기억하세요?"
"아, 그럼"
소용없는 기대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더운 기운이 나를 덮쳤다.
"후..."
신발을 벗고 금새 사라지신 할머니를 찾아 몇걸음 더 집안으로 들어서자, 컵에 가득 보리차를 들고 나타났다.
"응, 한잔 쭉 드셔. 응"
난 컵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와, 이렇게 더운데 사세요?"
"덥긴 뭐가 더워? 혼자 사는데 더울것도 없지"
곧, 방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예전에 왔던 기억대로 혼자살기에는 충분한 좁은 집이었다. 할머님이 계신 작은 방에는 TV가 켜져있었고 먼저 들어간 할머니께서 TV밑에 있는 버튼을 눌러 끄셨다.
"리모콘은 없으세요?"
"고장났지, 뭘"
물을 다 마시고 컵을 든 채로 엉거주춤있으니 할머니가 컵을 받아 싱크대로 가서는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서 선반에 다시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싱크대 옆에 작은 계란이 한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요즘은 군계란이 저렇게 하나씩만 나오나봐요?"
"날겨란여, 날겨란"
"아... 편의점 같은 데서 사오셨나봐요?"
"영감이 사왔지, 난 몰라"
나는 그 말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께서 영감이라 부르는 사람은 2주 전 고인이 되신 분이시다. 그 말은 저 계란이 최소한 2주이상은 지났다는 것이기도 하고 고인 생전의 흔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날계란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묻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눈에 띈 탁상을 펼쳐 방에 놓고는 가방을 뒤져 양식을 꺼냈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되도록 말을 아끼며 절차를 밟았다.
"할머니, 여기 있는게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이 유형전환되시면서 몇가지 조사차 적으셔야 될 게 있거든요? 제가 도와드릴태니까요. 여기 이거 보시고 항목에 체크하시고 하시면 되요. 제가 읽어드릴께요?"
"저 날겨란이 말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말씀이 일찍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저그 영감이 생전에 허~구언날 술만 처먹고... 내가 50먹고 술 그만 먹으란 소리는 관뒀어. 그래도 돈벌어다 줄때는 그냥 어째저째 알아서 해라 그냥 뭐 그래도 손찌검은 안하고 그러니까, 어디서 뒤지던 말던... 응... 언제는 그냥 술이 개판이 되도록 술을 처먹고는 경찰에서 전화도 오고 막 그냥... 그러다 보니까 간이 안좋다고 막 병원에서 술 그만 안먹으면 죽는다고... 죽는다고... 그래도 그냥 사람이 그렇게 철썩같이 어떻게 사람이 그래... 내가 저번에는 술 그만 안처먹으면 모가지에 탁~ 칼놓고 나도 죽는다고 그랬는데 그 때만이여. 왠수같은 인간이"
할머니가 말씀을 멈추자 한참 정적이 흘렀다.
"미안해, 총각. 내가 그 인간이 하등 그립지는 않아. 그립지는 개뿔이 왠수여, 왠수! 그래도 사람이 정이 있지 그렇게 급작 죽으면 그래도 짠해. 불쌍해 사람이 응? 저, 이 영감이 이제 돈도 못벌고 빌빌 거리니까 나한테 심부름값이라고 돈받아가서 동네 쓔퍼가서 술사처먹고 막 그러니까는 인제. 내가 동네마다 찾아가서 술주지 말으라고 그래도 어디서 또 술을 꼭 사서 처먹고는 들어와 그래... 그러다보니까 언제부턴가는 그냥... 저기 멀리 시내까지 가서 이십사시하는데까지 가서 술주정 부리고 오는거야. 차도 나다니고 그러는데를 술먹고 그냥 신호도 안보고 신호도 없는 데서 막 왔다갔다 하고 그냥... 그러다가 영감이 죽기전에 내가 계란이 다떨어졌다니깐 계란 사온다고 하는데 그래 내가 니를 누굴 믿고 응? 누굴 믿고 또 어디가서 술처먹다가 자빠져잘지 알고 그걸 내 돈주고 시키나? 어? 그랬더니 내가 콩.. 저기저... 그 있어 여기 밑에 세탁소 옆에서 거기 콩팔어 거기 집 노인네가 거기서 어저께 그거 메주한다고 쪄놓으라고 한게 있단말이여. 그거 받으러 갔다가 오는데 어디서 영감이 나이가 어? 여든 둘인가 먹고 그 딸애 그 손녀애가 갖다준 그 빨간거 프라스틱으로 댄 저금통 있는데 생전 그건 안건들더니 기어코 거기서 돈을 오천원짜리 하나를 그냥 가져다가는 술을 어디가서 처먹고 손에 쥐고 온게 아직도 저기 있는거여..."
나는 조용히 내가 체크해도 상관 없는 부분들을 대충 체크했다.
"이 쪽에 잠시 여기에 사인만 좀 해주세요."
"나한테 사인이 어딨어 그냥 손꾸락으로 찍는거지"
"그냥 성함 쓰시면되요"
"그냥 자네가 써"
"그냥 쓰세요. 간단하니까"
"으구, 그냥 노인네 잔소리가 많아서 미안혀"
"아이구, 그런거 아닙니다."
나는 가방 안에서 과일주스를 하나를 꺼냈다.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제일 좋은 것이 역시 작은 선물인 것이다.
"아이구, 이런걸 어떻게 먹으라고 이렇게 큰걸 사왔어? 또?"
"냉장고에 두셨다가 천천히 드세요. 몸에 좋으니까"
할머니는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마중을 하셨다.
"여기에 나 말고도 이런 사람들 있나?"
"네?"
"아녀, 그냥..."
"뭐.. 사연들은 다들 있으시죠"
"그야, 그렇겠제"
집밖으로 나오니 한층 열기가 가신 바깥공기가 불어들었다. 난 다시 가볍게 옷을 털었다. 그럭저럭 시원한 바람이 온몸에 흘렀다.
"에, 안녕히계세요."
"응, 그려. 가~ 총각"
"예~"
계단을 모두 내려오자 아직도 볕은 뜨거웠지만 적당한 속도로 걷기 시작하니 시원한 바람이 맺힌 땀방울들을 쓸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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