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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이유/키위

공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6.12 00: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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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둥글다

시계가 둥근 것만 봐도 안다

어떤 학자는 하루가 왕복 운동을 한다고 하고

어떤 학자는 하루는 돌아오지 않고 계속 멀어지기만 한다고 하고

어떤 학자는 하루는 계속 닥쳐오지만 결코 당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나는 하루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밤을 샌 적이 있다

하루는 자정을 넘겨 25시로 달려가는 듯하더니, 다시

어제가 사라져간 동쪽으로 굽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직 해가 솟기 전이었는데 하루의 곡률은 점점 달아오르더니

엿가락처럼 질질 늘어나서 아침에 영영 닿지 않을 듯하더니

아슬아슬 아침의 한쪽 자락을 덥석 물었다, 그로써

둥근 하루가 완성되었다 밤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척추를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는 척하다가

잠이 덜 깬 아침의 한쪽 자락을 물었던 것인데

아침은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느라

자꾸 눈을 깜박이다가 급기야 꺼칠한 손바닥으로 마구 얼굴을 비볐는데

비늘 같은 어제가 한 꺼풀씩 떨어져나간 아침의 얼굴은

어느새 감쪽같이 말개지는 것이었다. 장식이 없는 파란 빛의 보석

밤이 아침을 물자 물린 아침은 파랗게 질리고 말았는데

정오로 다가갈수록 점점 붉어지는 빛의 오묘한 그라데이션의 둥근 팔찌를 손목에 차고

집을 나섰다 저녁이 되어 핏물 빠진 누레진 얼굴은 다시 지친 듯 자정 쪽으로 넘어졌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하루가 둥글기 때문이다 하루가 둥그니까

하늘도 둥글게 지구를 감싸는 척하다 우주에 널브러져 있는 모양인데

하루가 둥근 이유는 지구가 날마다 한 바퀴씩 저 혼자 돌기 때문이다

지구는 왜 그러냐 하면, 마당에서 혼자 맴을 도는 강아지처럼

제 꼬리를 덥석 물고 싶기 때문인데, 그건 다 외롭기 때문이다

외로운 고양이가 제 새끼를 덥석 물고 망명 가듯 집을 뜨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외로운 어미들은 제 밑으로 낳은 새끼를 도로 반쯤 입에 물고, 울음도 반쯤 물고는 자식을 물고 늘어진다

네가 내 욕망이야. 내 욕망으로 널 낳았고 이젠 내 욕망으로 널 길러.

너는 자라서, 다 너를 위해서, 그러니 이 악물고, 죽었다 생각하고,

엄마에게 머리를 물린 새끼 고양이처럼 축 늘어진 자식들

처분대로 하소서

책상 위로 둥글게 엎어져 제 속을 갉아먹는 아이들

엄마 절 더 세게 물어 주세요, 둥글게 취한 눈동자

 

하루가 둥근 이유는 외로움이 둥글게 웅크리기 때문이고

하늘이 둥근 이유는 하늘도 제 발등을 물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물웅덩이를 보면 안다, 나무 빌딩 전봇대 심지어 길까지도

모조리 제 끝을 물고 있어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데

무덤이 둥글게 엎드린 이유도, 죽음으로도 생을 이해할 수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아, 죽음으로도 이해할 수 없어

돌고 돌 수밖에 없는, 끝을 알 수 없는, 욕망의 둥근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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