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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태어나 가장 완벽한 시를 ㅀ은 이거라 본다

(183.99) 2015.06.22 16:42:46
조회 119 추천 0 댓글 3



허공과 구멍
 

오규원


나무가 있으면 허공은 나무가 됩니다. 나무에 새가 와 앉으면 허공은 새가 앉은 나무가 됩니다. 새가 날아가면 새가 앉았던 가지만 흔들리는 나무가 됩니다. 새가 혼자 날면 허공은 새가 됩니다. 새의 속도가 됩니다. 새가 지붕에 앉으면 새의 속도의 끝이 됩니다. 허공은 새가 앉은 지붕이 됩니다. 지붕 밑의 거미가 됩니다. 거미줄에 날개 한 쪽만 남은 잠자리가 됩니다. 지붕 밑에 창이 있으면 허공은 창이 있는 집이 됩니다. 방 안에 침대가 있으면 허공은 침대가 됩니다. 침대 위의 남녀가 껴안고 있으면 껴안고 있는 남녀의 입술이 되고 가슴이 되고 사타구니가 됩니다. 여자의 발가락이 되고 발톱이 되고 남자의 발바닥이 됩니다. 삐걱이는 침대를 이탈한 나사못이 되고 침대 바퀴에 깔린 꼬불꼬불한 음모가 됩니다. 침대 위의 벽에 시계가 있으면 시계가 되고 멈춘 시계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허공은 사람이 되지 않고 시체가 됩니다. 시체가 되어 들어갈 관이 되고 뚜껑이 꽝 닫히는 소리가 되고 땅속이 되고 땅속에 묻혀서는 봉분이 됩니다. 인부들이 일손을 털고 돌아가면 허공은 돌아가는 인부가 되어 뿔뿔이 흩어집니다. 상주가 봉분을 떠나면 묘지를 떠나는 상주가 됩니다.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페트병과 신문지와 누구의 주머니에서 잘못 나온 구겨진 천 원짜리와 부서진 각목과 함께 비로소 혼자만의 오롯한 봉분이 됩니다. 얼마 후 새로 생긴 봉분 앞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달라져 잠시 놀라는 뱀이 됩니다. 뱀이 두리번거리며 발을 멈춘 빛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을 가까운 나무 위에서 보고 있는 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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