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오늘.

비눗방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7.16 16:19:27
조회 114 추천 2 댓글 1


   오전 열한 시 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어디엔가 내렸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기에, 나는 어디에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버스에서 내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적어도 내가 한 시간 가량 우리 동이랑 떨어진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대로 어디론가 걸었고, 그럴 때마다 오늘따라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입고 있던 원피스가 하늘하늘 휘날렸다.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에 생각이 그쳤지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치맛자락을 꼭 손으로 쥐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놀이터에 나는 서 있었다.


   놀이터에는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린 꼬마 아이 하나. 금방 자고 일어났는지 떡이진 머리, 자신 앞에 있는 모래를 열심히 눈에 담는 작은 눈망울. 그 남자 아이에게 다가 가 말을 건다. 너는 왜 학교에 가지 않았냐며, 아이는 말 없이 웃었다. 나도 말 없이 그 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 보았다. 순간 아이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묻는다. 그럼 왜 누나는 하교에 안갔냐고, 그 때의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내게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하교에는 안가도 된다 그랬어, 라며. 아이는 학교를 '하교'라 말했다. 그 단어가. 왠지 모르게. 모래 묻은 손끝으로 내 가슴 끝을 툭툭 민다. 여기서 떠나라고. 


   그때는 무슨 마음이 들어서 일까. 지갑을 꺼내 아이에게 오만원을 내밀며 흔들었다. 아이는 멍하니 바라 보았고, 답답한 마음에 나는 아이쪽으로 더 내밀었다. 그러나 아이는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이에게 말했다. 날이 더우니까, 누나랑 같이 아이스크림 먹자. 난 여기 처음이라 어딘지 몰라. 그제서야 아이는 돈을 받고 여기 꼭 있어, 라고 말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아이가 오기 전에 몸을 일으켜 놀이터를 빠져 나왔다. 


   다시 집으로 향한다. 우리 집이 어느 방향인지 모르지만, 무작정 걷는다. 버스를 탔던 것 처럼. 정말 모르겠고 힘이들면, 택시를 잡는다. 


   하늘이 파랬다. 누군가의 손에 잡혀 목이 졸린 듯 마냥. 그 역시 스멀스멀 올라 오던 붉음에 물든다. 노을이 오는 것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아쉬운 마음에 무언가를 태운다. 세상의 일부분이 타들어 가면. 마천루들도, 길을 걷던 원형탈모가 있던 아저씨의 머리도, 창문에 몸을 걸터 밖을 내다 보던 나의 눈동자도. 붉게 물든다. 소산한다. 아스팔트 사이에 핀 이름 모를 꽃이 바람에 흔들리다. 누군가의 발에 짓이겨지는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명하도록 찍혀 있다. 마시기 위해 높이 쳐든 녹색 병. 소주병은 초록색이다. 다 마신 소주병을 눈에 대어 세상을 보면, 세상은 숲이다. 초록숲에는 색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사람들이 바삐 자신과 같은, 혹은 닮은 색으로 세상을 나눠 갈 때, 나는 한 가지 색으로 세상을 바라 본다. 어쩌면 나도, 이 초록색으로, 나의 잣대로 세상을 나누어버린 걸지도 모르지만. 


   오늘 하루는, 인형 같이 방에 장식되어 있지 않았다. 나름, 만족스러움에 미소를 그린다.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94677 글 잘 쓰고 싶다.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9 63 0
94674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47 0
94673 은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asd(1.219) 15.07.28 122 0
94668 ㅀ은 자자 [1] (14.34) 15.07.28 69 1
94664 전에 77이 두번 등단했다는 말을 한 갤러가 있었다. [1] ㅇㅇ(85.10) 15.07.28 123 0
94660 내 글자 [1]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68 0
94659 드라큘라라는 캐릭터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생명력있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냐 [5] 스타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87 0
94658 이야기 [1]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57 0
94655 도망갈 용기가 아니라 ㅇㅇ(180.228) 15.07.28 44 0
94654 기운 쭉 빠지네 [3] ㅇㅇ(180.228) 15.07.28 70 0
94651 메이저 문예지 등단작을 2010년때부터 쭉 봐왔는데 ㅇㅇ(121.169) 15.07.28 479 3
94648 ㅇㅇ(211.36) 15.07.28 51 1
94647 요샌 운동을 6시간 한다 [1] .(220.84) 15.07.28 80 3
94645 한 고추 (14.34) 15.07.28 49 0
94644 에픽하이 - BORN HATER(feat. 빈지노, 버벌진트, BI, 송 바디블로(121.169) 15.07.28 55 0
94642 술이나 담배를 소재로 한 소설 좀 추천해주세요. [2] 스타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94 0
94635 해바라기 연가 [3] ㅋㅋ(203.212) 15.07.28 178 0
94628 고닉부심 부리는 몇명이 있는데 [3] ㅇㅇ(176.31) 15.07.28 131 4
94626 기다려라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63 0
94625 5.254의 지적은 합당하지 않은가? [2] ㅇㅇ(199.68) 15.07.28 219 7
94623 선민의식 찌든애들 너무 싫다 ㅇㅇ(175.223) 15.07.28 87 1
94621 안녕하세요 인격실격 보신분 계신가요? [4] 씨앗(220.88) 15.07.28 251 0
94619 간단한 절교 [1]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79 1
94613 ..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42 1
94606 .. [1]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84 2
94604 SF소설은 한국에서 천대받나요?? [2] ㅇㅇ(106.248) 15.07.28 153 0
94603 뜻이 깊은 시를 쓰고싶은데 본받을 만한 시인이 있으려나요 [2] ㅇㅇ(165.229) 15.07.28 132 0
94602 에스콰이어.. 문학상.. 위래(218.238) 15.07.28 176 0
94601 소설을 한달만에 쓰는게 가능??? [7] ㅇㅇ(106.248) 15.07.28 201 0
94600 Bram Stoker - Dracula 다 읽었다... [2] 스타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63 0
94599 중앙일보는 고루하게 쓰는 사람이 주로 뽑히더라 [1] 123(121.169) 15.07.28 349 1
94598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3] 기만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87 2
94596 중앙신인 문학상 응모 질문좀 [32] ㅁㅁ(121.172) 15.07.28 615 1
94594 문갤 수준 평가 ㅇㅇ(91.109) 15.07.28 88 0
94593 지금 나의 느낌은 [1]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65 0
94592 먼지 때문에 잠에서 깼다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57 0
94591 오랜만에 마음이 되게 편하다 [6] .(110.70) 15.07.28 142 0
94588 여름이라 좋은 점 [2]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104 0
94587 커피 괜히 마셨다 [5]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104 0
94585 민지는 귀엽다.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74 3
94584 먼지가 무섭다. [2]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80 2
94581 [검은사막] 꺄야아아아아악 ! [8]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98 0
94580 「노무쿤─!」 [1]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157 3
94579 보기 싫은 뿌리 <유영철> [29]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588 1
94578 모기마저 없어 [7] (14.34) 15.07.28 119 1
94577 문갤이 싫어졌다. 다 싫어졌다. [1]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244 5
94576 '작업'이 있는 척이라고 말한 먼지에게 [3]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98 3
94573 진실. [8] 흑단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97 0
94572 오늘도 올려욧 시! 그란도시즌 [2] 나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84 2
94566 .. [1] 沙狗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07.28 77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