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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미국 파인애플의 역사...jpg
오래 전 남아메리카 파라나-파라과이 강 유역에서 자라나던 과일이 있었다.. 남미 일대에서 나나스(맛좋은 과일)이라고 불리던 과일은 자연과 인간에 의해 점점 북상하여 멕시코와 카리브 해 일대까지 이르렀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곳곳에서 재배가 이루어져 1493년 신대륙을 탐험하던 콜럼버스도 우연히 이 과일을 접한 뒤 스페인으로 가져왔는데 콜럼버스: 원주민들은 나나스nanas라고 부르던데 우린 이걸 piña de Indes(인디언의 솔방울)이라고 부르죠? 스페인인들: 아나나스(ananas)? 피냐(piña)? 아몰랑 아무거나 씁시다! 이후 북아메리카의 영미계 탐험가들은 이걸 솔방울의 모양에서 따서 Pineapple이라 부르게 된다 당시 신대륙 종자라면 무엇이든지 호기심에 넘쳐 수집하던 스페인인들은 이 기묘한 과일에 관심을 보이고 그것을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생산지를 찾아다녔다 16세기는 스페인 함대가 전세계를 구석구석 싸돌아다니던 시절... 스페인 선원들은 괌, 짐바브웨를 포함해서 파인애플 종자를 가는 곳마다 뿌려댔고 태평양의 한적한 섬 하와이에도 그렇게 파인애플이 도착 일년 내내 따뜻한 하와이의 기후에서 파인애플은 나름 잘 자랐지만 여러 소규모 부족들이 난립하는 하와이에서 대규모 재배가 이루어지진 않고 있었는데.. 1795년 하와이 통일왕국이 성립되었지만 여전히 파인애플은 주요 수출물도 아니었고 어차피 그거 배로 실어날라봐야 푹푹 찌고 습한 환경에서 상하기 일쑤였다 당시 하와이의 주력 작물은 사탕수수였는데 19세기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수요증가가 이루어지던 설탕의 원료 19세기 중반부터 미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하와이로 몰려오기 시작했고 설탕 플랜테이션을 미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차지하면서 이들은 플랜테이션을 기반으로 하와이의 주요 산업들을 독점하며 그 재력을 바탕으로 정계에까지 진출해 사회지도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칼라카우아 왕 대에 이르면 미국,유럽 출신 사업가들이 대놓고 폐위 협박까지 할 만큼.. 하와이 왕도 개길 수 없는 세력이 되어 있었다 백인 유력자들의 기득권을 제한하려는 여왕의 움직임을 눈치챈 백인 유력자들은 공안위원회를 결성하고 미국 해병대를 상륙시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1893년 1월 17일 공안위원회는 민병대까지 동원하여 여왕을 강제로 폐위 미합중국에 편입을 요청했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클리블랜드가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하와이 공안위원회는 샌퍼드 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시켜 하와이 공화국을 선포하게 된다 하와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던 시기.. 미국에서 파인애플의 인기는 계속해서 상한가를 치고 있었고 1893년 천조국에서 파인애플을 원통으로 돌려 깔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는데 1분에 4개의 파인애플 껍질을 깔 수 있었다 아직 냉장기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터라 맛좋은 파인애플을 장기보관하는 방법으로 통조림이 선호되었고 이 기계의 발명으로 파인애플 통조림 산업이 활기를 띈다 이 시기 미국 파인애플 통조림의 주요 원료는 카리브 해 인근 국가에서 수입해 오고 있었는데.. 주요 파인애플 산지였던 플로리다 농부들이 거세게 반발 플로리다 농민들: 이 씨발!! 미국 파인애플 놔두고 외국꺼 쓰는 이유가 뭡니까 대체! 사업가: ?? 뭐래 단가가 싸니까 그렇잖아 미친놈들아 억울하면 가격을 낮춰!! 플로리다 농민들: 거대 자본주의가 사람잡는다~ 가격 후려치기 때문에 농민들 다죽겠다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수입 파인애플에 대해 35%의 관세를 매겨버리고 통조림업자들은 관세 때문에 값이 오른 카리브산 파인애플을 더 이상 이용하기 힘들어져 미국 현지의 통조림 생산공장들은 수지가 악화되어 줄줄이 문 닫고 사업가들은 파인애플을 현지조달해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다.... 한편 비슷한 시기 1896년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윌리엄 매킨리가 취임 하와이 공화국은 다시 한번 러브콜을 보내는데 샌퍼드 돌: 미국응디가 그렇게 따뜻하다는데 우리도 좀 넣어주면 안 됩니까 윌리엄 매킨리: 안될거 뭐있노? 클리블랜드와 달리, 매킨리는 팅기지 않았고 1898년 하와이는 속주형태로 미국에 합병된다(아직 정식 주 아님)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샌퍼드 돌이 총독으로 임명되고 동시에 하와이 농산물에 대한 관세가 철폐 하와이에서 파인애플 통조림 산업을 할 경우 1. 관세가 없어서 카리브해 파인애플보다 유리했고 2. 하와이 원주민과 해외 이주민의 값싼 노동력으로 파인애플 경작이 가능 3. 하와이 속주정부로부터 싼 값에 농장&공장부지를 살 수 있었던 등 지원이 많음 여러모로 개이득 미국 사업가들이 하와이로 몰려들어 파인애플 농장과 통조림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갓 하버드대 농학부를 졸업한 22세의 젊은이 제임스 돌 그도 파인애플 사업에 대한 꿈을 품고 차곡차곡 모아둔 돈을 갖고 하와이로 왔는데... 전직 공화국 대통령이자 현직 하와이 총독인 샌퍼드 돌이 사촌형이었다 제임스 돌은 모아둔 돈으로 하와이 주정부로부터 64에이커의 파인애플 농장부지를 구입 사촌형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사업준비에 착수한다 우여곡절 끝에 1901년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Hawaiian Pineapple Company)를 창립하게 되고 당시 하와이에서 파인애플 재배업은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하와이에서 재배되던 Smooth cayenne종이 통조림 가공용으로 제격이었고 기후가 파인애플 재배하기에 딱딱 좋았고 경쟁지이던 플로리다에 서리가 자주 끼었던 데다가 파인애플 품질이 하와이산에 비해 좋지 않았다..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신생회사였지만 크게 두 가지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성장해 나갔다 1) 광고 공격적인 광고전략으로 미국 본토에까지 파인애플 통조림을 대대적으로 선전 라디오&신문을 이용해서 파인애플이 생소한 미국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여주고 2) 기술개발 1911년 1분에 100개의 파인애플을 돌려깔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자 통조림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미국으로 더 많은 파인애플이 실려나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파인애플을 접하고 달콤새콤한 맛에 이국적인 정취가 곁들여졌고 소화에도 좋아 파인애플만 보면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22년에 이르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세계 최대의 파인애플 유통기업으로 등극 하와이 주정부로부터 다시 여의도 면적 27배에 달하는 땅을 사들여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 때 회사의 주요 경작지였던 라나이 섬에서만 세계 파인애플 생산량의 75%가 쏟아져 나왔다 바야흐로 파인애플 사업계의 정점으로 군림하던 시기 그렇게 돈다발을 쓸어담으며 잘나가나 했는데.. 1929년 대공황이 터져버리고 당장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파인애플 통조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파인애플 소비량은 바닥을 치게 되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의 실적은 급격히 악화되고 그동안의 무리한 사업확장&실적악화로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1932년에만 5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파산 직전에 이르렀고 경영자였던 제임스 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지켜보던 Castle&Cooke사에서 지분을 21% 추가로 매입하면서 지배권을 장악한 뒤 제임스 돌은 쫓겨나게 되고.. 하와이안 파인애플 컴퍼니는 사실상 Castle&Cooke사의 계열사나 다름없게 되어 청운의 꿈을 품고 파인애플 사업을 개척했던 한 젊은이의 외길인생은 여기서 끝이 난다 그래도 Pineapple=Dole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이후 생산되는 주요 파인애플 제품에는 Dole이라는 이름이 계속 들어가게 된다 한편 castle & cook 사의 자금지원으로 여유가 생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구상할 필요가 있었는데 통조림은 아직 냉장기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는 유용했지만 이제는 통조림 위주였던 파인애플 제조업에도 변화가 필요했던 것 이미 1920년대에도 가정용 냉장고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사진은 100만개가 팔려나간 모니터탑 냉장고) 1928년 프레온 제조기술이 발명되면서 냉장기술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는데.. 경영진은 냉장보관이 필요하고, 시원하게 먹으면 좋고, 운반 및 가공이 편리하고 누구나 먹기 쉬운것을 알아냈다 파인애플 주스!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곧바로 파인애플 주스의 대량양산에 착수했는데 마침 1933년에 금주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칵테일 제조용으로 파인애플 주스가 무지막지하게 팔려나가게 되고 대박을 치게 된다 이 기회를 포착한 경영진은 미국 전역에 라디오와 항공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주스 광고를 선보여 1936년에 마침내 적자를 탈출하고 회사경영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미국은 경제호황을 누렸고 쑥쑥 늘어나는 파인애플 제품 매출량 속에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려 1961년 마침내 Castle&Cook은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를 완전히 인수했는데 Castle&Cooke사는 이후 필리핀에서 바나나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1968년에 스탠더드 프루트 회사(바나나 제국에 등장했던 그 회사임)마저 합병해서 델몬트와 쌍벽을 이루는 바나나 업계의 제왕이 되어 1991년에 Dole Food Company로 이름을 바꿔 오늘날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 Dole 회사가 된다 엄밀히 말하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가 Dole로 이어졌다기보다는 더 큰 회사(Castle & Cooke)에 흡수당해서 지금에 이른 것이지만 하와이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총독 사촌형이 탄생했고 그의 후원 아래 사업감각으로 파인애플 사업을 일궈내어 한때 하와이를 세계 파인애플 생산량 3/4를 책임지는 생산기지로 만들어냈던 한 사업가의 이름이 우리가 먹는 파인애플과 바나나에 남겨진 것을 보면 이런걸 알고 먹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날 하와이는 예전의 파인애플 생산기지로서의 명성은 무색해진 지 오래 돌의 현지 통조림 공장은 수익악화로 1991년에 문을 닫았고 델몬트마저도 생산기지를 2008년 이전했다 그렇지만 하와이 곳곳에 남아있는 파인애플농장과 관광지들은 한때 화려했던 파인애플 생산지로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스압) 5월 26일 COMITIA148 후기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bill137/221340341272)만화가 어떤 특성의 매체인지, 어떤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가치를 응당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만화는 즐기기 위한 매체라는 시각 그 자체에 이견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화에 대한 의견만큼이나 만화를 즐기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만화를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 만화를 모으는 것을 즐기는 사람, 만화를 발굴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만화를 연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그런데 그 와중에 조금 정신머리가 빠져있는, 그래서 이상하고 기이한 방법으로 만화를 즐기려는 인간들이 있다. 즐거우라고 존재하는 만화를 붙잡고서 매일 허덕이고 질질 짜고 머리를 쥐어뜯는 인간들이 있다. 빈 손으로 만화책을 펼치고 편하게 즐거움을 향유하면 될 것을, 기어코 그 종이 위에 펜대를 들이미는 정신나간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정신병자들을 모조리 그러모아 맞부닥치고 터트리는 제전이 있다. 그 제전에 다녀왔다. 올해로 개최 40년을 맞이하는 동인행사 COMITIA148이다.※ COMITIA : 1년에 4번 개최되는 일본 최대의 1차창작 동인 행사. 2차창작이나 코스프레 등은 완전히 금지되며 오로지 오리지널 창작물만 판매가 가능하다. 많은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는 행사로, 최근 화제작인 《던전밥》의 작가 쿠이 료코와 《여학교의 별》, 《가라오케 가자!》의 작가 와야마 야마가 발굴된 행사로도 알려져 있다.오오사키 역에서 린카이센을 타고 약 20분에 걸쳐 이동하면 나오는 국제전시장 역. 상당히 외진 곳이지만 행사일에만 오다 보니 붐비는 역처럼 느껴진다.역 한쪽 구석에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나가이 고, 요코야마 미츠테루 등 거장 작가의 캐릭터들로 추정되는 판넬이 있다. 근데 항상 일행과 함께 바쁘게 지나가다 보니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아닐수도 있음인파를 따라 걷다 걷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오타쿠들의 만신전 도쿄 빅사이트 홀.2월에 있었던 코미티아 147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맑은 날씨.코미티아는 행사참여자를 판매자/소비자가 아니라 서클 참가자/일반 참가자라고 부른다. 동인 활동은 만드는 쪽과 즐기는 쪽 양쪽이 함께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나.서클 참가자는 9시부터, 일반 참가자는 11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나는 참가 도와주신 일본 지인분의 안내 받으며 9시 40분경에 입장.월첩 팁) 코미티아 서클 신청에는 일본 주소지가 필요하므로 부스 개설을 위해서는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부산히 준비를 하고 있는 서클 참가자들.일반참가가 시작되고 나면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보니 본인의 자리가 정리되는대로 노리던 부스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수많은 창작자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며 명함 대신에 본인의 책을 주고받는 모습에는 괜시레 감동스런 면이 있다.지금 이 장소에서 본인이 그린 만화보다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말해주는 게 있을까뇌의 일부를 떼어내서 그 내용을 정성을 다해 종이 위로 옮기면 그 물건은 아마 b5사이즈의 24페이지 중철본이 될 것나도 자리에 물건들을 부리나케 디스플레이 해 둔다.월첩 팁) 코미티아위원회에서 서클참가자에게 지원해주는 물품은 오로지 책상과 의자 뿐이다. 식탁보/전시대/포스터거치대 등등의 물건은 전부 직접 들고 와야 함《카렌에게 물어봐!》 일어판 약 20부와 한국어판 약 10부이미 오호호가 넘쳐흐르는 이 세상에서 또 굳이 하나 얹어진 오호호 아가씨 개그만화...그렇게 안 보일수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 살아오며 느꼈던 인간관계에서의 아쉬움이나 서먹함 등을 녹여내어 풀고 싶은 마음으로 그렸다장르와 컨셉은 《오가베베》작가인 오키라쿠 보이おきらくボーイ작가의 《빌리어네어 토요코인레이카ビリオネア東横院麗華》를 파쿠리한 것.원래도 금발 엘리트 자존감충만 귀티 어쩌구 하는 캐릭터들을 참 좋아했는데 이 만화를 본 순간 '이런 무대와 설정이라면 나도 직접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다.그림도 너무너무 매력적이고...그게 벌써 3년전 일이라고 하니 아득하구나?근데 오키라쿠보이가 내 부스로 찾아옴덤으로 내 신간도 하나 사가심오키라쿠가 참가하는 건 사전에 조사해서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내 쪽에서 때를 보다가 찾아갈 생각만 했지 찾아오실 줄은 전혀 예상 못했는지라 너무 깜짝 놀랐다.저쪽에서 "이 만화 그린 본인이세요?" 하시길래 "넵 맞아용~"하고 대답했더니 갑자기 품에서 쑥 토요코인레이카2편이 나옴그거 보자마자 머리가 펑 터져버려서 너무너무반갑다, 당신 그림 너무 좋아한다, 내 만화는 다 당신 꺼 베낀거다, 빌리어네어 토요코인레이카가 만화를 시작한 계기였다, 어쩌구 저쩌구 속사포처럼 나혼자 떠들었다지금 생각해보니까 좀 후회되네...대화나 똑바로 할 걸 내 얘기는 왜 했담그러다가 가방 뒤져서 '한국 정발본이면 사인 잘해주겠지?'하는 약아빠진 생각으로 한국서부터 가져온 《오가베베》단행본 1권 꺼내서 사인 요청했음...물론이죠! 하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는데 감사인사박고 만년필 꺼내서 쓰려니까 잉크 굳어서 안나옴ㅋㅋ(ㅄ)"그러면 가져가서 제 자리에서 사인 해드린 뒤에 돌려드릴게요~"하시길래 하잇!!!!!!!! 나중에 받으러 가겠습니다!!!!!! 하고 인사 박았다.자리 정리가 얼추 끝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 50분...위에서도 말했듯 11시가 되면 일반참가자 입장이 시작되는데, 그 뒤엔 모치코미(持ち込み, 편집자에게 만화를 가져가는 것)가 꽤 힘들 거라는 일본 지인의 말을 듣고서 잠시 자리를 부탁드리고 당장 출장편집부 쪽으로 출격이동하는 도중에 보였던 이벤트장 패널나중에 《이거 그리고 죽어》작가인 도요타 미노루가 본인 트위터에서 말하길 '이그죽 캐릭터들이 초 인기작 캐릭터들을 앞에 두고서 쫄아있는 거 같아서 웃기다'고. 듣고보니 그래보인다ㅋㅋ안쪽에선 이그죽 파일을 공짜로 배부하고 있었음근데 그건 내 목적이 아니었고...(받아가긴 함) 내가 찾던 곳은 별관에 있던 출장편집부이번 코미티아에 출전한 잡지가 100개를 훌쩍 넘어가는지라 어디에서 피드백을 받을지 많이 고민했다. 한번 쭉 돌아본 뒤 장르도 비스무리하고 너무 좋아하기도 하는 만화인 《유가미 군에게는 친구가 없다》가 연재된 선데이 계열사 + 마침 사람도 없던 [월간 선데이 GX]쪽으로 결정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해당 모치코미에서 받은 피드백은 적자니 너무 길어져서 그냥 생략하겠음기본적으로 개그만화인데 읽는 내내 편집자분 입꼬리가 미동도 안 해서 마음이 아팠다...그러나 그 또한 나의 실력피드백이 꽤 오래걸려서 이야기하는 도중에 11시 반쯤이 되어버렸다. 피드백 끝나는 길로 부리나케 자리로 복귀해 일본인 지인에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그 사이에 7명이 찾아와서 사가셨다고 함(씨발)지금 생각해도 피눈물나게 후회가 된다...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음현지 프로 편집자의 조언도 너무 귀중한 시간이었지만 내 만화를 발견해주고 자리까지 찾아와주시는 분과 인사를 나누는 것에 비할 수 있을까...이 뒤로 그냥 밥이고 서클탐방이고 다 쌩까고 폐관될때까지 계속 자리에 처박혀있기로 결심함정말 감사하게도 그 뒤로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다.기억에 남아있는 분들한국 출신의 서클 참가자분들. 대뜸 "안녕하세요?"하는 한국어가 들려서 흠칫 놀랐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적지 못하지만 두 분 모두에게서너무 좋은 조언과 많은 응원, 그리고 선물(아이스커피 등의 먹을거리와 본인 서클의 만화)을 받았다. 이 먼 타지에서 나와 같은 생각으로 먼저 발을 들이신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또 감동적이었던.한국인 일반참가자 분. 행사에서 첨으로 사인을 신청하셨는데 사인을 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지라 '어떡하지? 어떡하지?'하다가 그냥 날짜+행사명+트위터 닉네임+감사합니다 적었다ㅋㅋㅋ...마운트 세레브 카네다상マウントセレブ金田さん의 작가 냐로메론ニャロメロン상. 트위터를 통해 느슨하게 이어져있는 금발롤빵빡대갈아가씨 그림쟁이 지인 중 한 명. 팔로워 12만의 거물 작가인데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직접 말해주셔서 넘 기뻤다...인사 나누고 둘이서 롤빵머리에 대한 열성적인 토론을 했다(진짜함)중동계로 생각되는 여성분. 유창한 일본어로 사인을 부탁하셨다. 익숙치 않은 일본어로 닉네임 적어 사인하고 아리가토고자이마스 적었다.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나라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원래라면 스쳐지나갈 일조차 없었을 누군가와 접점이 생길 수 있다는 거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닌지.전 회사 동료분들. 여행 일정이 겹치길래 몰래 찾아와서 서프라이즈 해주신 거라고...한국어판 한부씩 나눠드렸다. 그리고 원하는 서클 작품이 있으면 대신 구매해주신다고 하시기에 염치불구하고 사전에 적어뒀던 리스트 건네고 부탁드렸음.현지의 그림쟁이 동료들. 그림과 프로필 사진밖에 몰랐었던 분들과 실제로 만나뵈어서 너무 좋았다. 개중 한 분은 4살배기의 본인 아이와 같이 왔는데 애기가 진짜 너무나도 깜찍하더라...무럭무럭 자라서 좋은 씹덕이 되거라그 외에 쿨하게 한 부 주세요 하고 사가셨던 다양한 일반참가자 분들. 사주시는 문들 한분한분 붙잡고서 어떻게 절 찾아주신 건가요 하고 묻고 싶었는데 너무 찐따같을 거 같아서 참았음...기본적으로 한국 분들께는 다 무료로 드리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시면서 제값 쥐어주시며 응원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먼 타지에서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몸둘바를 모르겠는데 응원까지 해 주시니 그저 감사한 마음 뿐...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폐장 약 1시간 30분 전인 오후 2시 32분에 준비해둔 약 30부의 만화 완판많은 분들의 관심 덕분에 이벤트 첫 참여에 완판이라는 귀한 경험을 했다사실 완전한 완판은 아니고 한국어판은 5부정도 남았는데 한두권이나 나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며 기대 버린 맘으로 들고왔던 거라 절반이나 팔려서 오히려 좀 놀랐다여기에 적는다고 찾아와 주신 분들께 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함...아래는 그 외에 자잘한 에피소드나중에 오키라쿠 보이에게 찾아가서 사인 요청했던 단행본 받았는데 그림까지 그려주셨음............보고 기절할뻔함당장 그 자리에서 신간 3권 더 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민폐였나 싶기도 하다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작가였던 《존못그림쟁이쨩일기ザコ絵師ちゃん日記》작가 부스에 찾아갔다. 내 만화 하나 들고서 작가분에게 넘겨드리며 '저는 이런 만화 그리는 사람인데 평소부터 만화 잘 보고 있었기에 꼭 인사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다'하고 드리려는데 갑자기 작가님 책상 뒤쪽에서 내 만화가 나옴;시발 뭐지 마술인가? 하고 벙쪄있는데 알고보니 내가 편집부에 모치코미하고 있는 사이에 자리 와서 사가셨다고...당장 아리가또 박고 그자리에서 신간 한부씩 다 달라고 해서 싹 쓸어옴.기념품으로 아크릴 키링을 하나 주셨다...너무 귀엽지 않나요 존못그림쟁이쨩행사 도중에 아침에 찾아와주셨던 한국인 서클참가자분께서 부르시길래 가 봤더니 《건스미스 캣츠》로 유명한 소노다 켄이치상의 부스가 있었다...하나의 만화를 넘어서 이제는 레트로 아니메 스타일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전설 속의 전설 같은 분이라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음.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던 판타지의 세계가 갑자기 내가 사는 현실과 연결되는 느낌이라 해야하나...닌자 리얼리티 쇼크는 실제 존재한다별의 별 호들갑을 떨고서 있는 책자 다 달라고 했더니 서비스라면서 화과자점 쇼핑백 + 비닐봉투도 하나씩 주셨다그렇게 판매 끝난 뒤 자리를 마무리하니 얼추 오후 3시. 폐관이 오후 4시다 보니 사람들도 꽤 줄어있었다. 보통 2~3시 정도가 되면 서클참가자/일반참가자 가리지 않고 50% 정도의 인원이 빠진다고 함.어차피 더 팔 수 있는 것도 없겠다 딱 한 권 남아있던 비판매 샘플용 책자를 들고서 다시 부리나케 출장편집부 부스로 모치코미하러 이동.잽싸게 쭉 돌아보는데 역시 오후시간대라 그런지 개장 전보다는 훨씬 사람이 많았다. 짧은 줄 + 비슷한 성격의 만화가 많이 연재된 부스를 찾다가 《히메노 양에게 사랑은 아직 일러》, 《오늘부터 시작하는 소꿉친구》, 《일하지 않는 두 사람》, 《사바에랑 하면 끝난다》, 《극주부도》등이 연재된 쿠라게번치로 결정.오전에 찾아간 월간 선데이 GX쪽의 편집자 분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만화를 빨리 읽었는데(거진 한 페이지에 1~2초), 반대로 쿠라게번치의 편집자분은 내가 생각하던 속도의 3~4배의 시간을 들여 천천히 또 세세하게 읽으셔서 또 한 번 놀랐다. 중간에 미소짓는 등 반응도 약간 더 좋았던 느낌. 다만 총 5화 중에 2화까지만 읽으시고선 "죄송하지만 시간 문제때문에 여기까지만 읽고서 피드백 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으시길래 당연히 괜찮다고 말씀드림. 내 뒤에도 사람이 다섯 명인가 더 있었기에...그리고...명함을 한 장 받음시작하자마자 명함을 건네면서 정식 연재에 대해 생각이 있으면 연락 주라고 하심...일본 여행 오기 전부터 침대에 누워서 'ㅋㅋ근데 편집부 갔다가 막 명함받은거 받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을 떠올렸다가도 곧바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쪽팔려서 '지ㅋㅋ랄ㅋㅋ'하면서 베개에 얼굴 묻고 그랬는데 실제로 일어나니까 엄청 얼떨떨하더라...그 후에 내 만화의 장점과 개선점 등에 대한 알찬 피드백을 받았다. 몇 번이고 정말 재밌고 마음에 든다고 말씀해 주셔서 하늘 날아갈 듯 기뻤다. 글 쓰고 있는 지금도 기쁨...하지만 프로가 될 생각은 없기 때문에...그냥 마음의 기념비로 삼으려 생각.피드백이 끝난 뒤 '못읽은 부분도 꼭 읽어보고 싶은데 혹시 이 책 받아가도 되겠냐'고 물어보시길래 엄청 갈등하다가(막권이라서 드리면 다른 편집부에 못 감)폐관시간도 가까워졌고 이왕이면 좋게 봐주신 분께 드리고 싶은 마음에 넘겨드리고 왔다.그렇게 일본어 판은 진짜로 완판!!그렇게 행사를 성황리에 끝마치고 도쿄 빅사이트를 뒤로 함.책은 거진 다 털어냈는데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짐이 하나도 안 줄어듬ㅋㅋ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맥락'을 만드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열정을 뿐는 장소에 한 순간이나마 나도 발을 들이고 손을 얹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한 기분이다돌아오는 길의 라멘집에서 꺼내 본 그날의 수입...이지만 이미 비행기값에 숙소값에 소액제본인쇄비에 부스 개섫비용에 이거저거 따지면 손해만 수십만원임애초에 이딴 부르마불 돈이 무슨 소용이랴 우리나라 돈도 아니고....이따위 거 다 갖다버리고 내 부스 찾아주신 분들 다시 하나하나 만나뵈어서 인사드릴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함여행은 어느 것이든 언제나 특별한 추억이겠지만 이번 코미티아 참가는 그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각별한 선물이지 않았나 싶다.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과분할 정도로 많은 응원을 받았다고맙습니다 코미티아 고맙습니다 만화인 여러분그리고 이 긴 글 읽어주신 월첩분들도 감사합니다이 경험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만화를 그려야겠읍니다감사합니다------------아래는 요청이 있었던 본편 포스타입 링크https://www.postype.com/@ask-to-karen/series/1269664 이따위 만화로 돈 벌 생각은 없지만 코미티아에서 구매해가신 분들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 3/4/5화를 유료로 책정해 놨음한화에 2000원씩 받아처먹는 문동 싸다구 왕복으로 갈겨먹는 개창렬 가격책정이므로 각오가 된 분들만 사시기 바랍니다근데 웬만하면 그냥 그 돈으로 《유가미 군에게는 친구가 없다》나 《여학교의 별》, 《히나마츠리》,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이런 쟁쟁한 띵작일상개그만화 보세요ㅇ-----------마지막으로 만지갤과 납치당했었던 실베 게시글 댓글들에서 뽑은 간단한 Q&A (또 납치될까봐 미리 적음)Q. 일본인임?A. 김해김씨 토종 김치맨입니다. 군대도 현역으로 다녀왔습니다. 일본어는 씹덕질로 배웠고 대사 검수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받았습니다.Q. 프로지망 아님? / 왜 자꾸 프로 안 한다고 함?A. 프로는 일정한 주기로 일정한 퀄리티를 내야 성립하는데 양립시키지 못할 게 뻔해서 목표삼지 않을 생각입니다. 굉장히 유감스럽게도 제게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마 이미 충분히 낮은 퀄리티를 더욱 낮춰야 할텐데, 프로를 시켜주고 말고를 떠나서 스스로 만족 못하는 걸 주기적으로 찍어내다 보면 만화가 싫어질 것 같거든요. 만화를 굳이 싫어하는 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즐기고 싶어요. 그러니까 프로데뷔를 전제로 한 업계 트렌드 조언 그만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트렌드 따라가려고 그리는 만화가 아니라서...애초에 인터넷 댓글 분석평론과 조언들을 믿을 만큼 순진무구한 인간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응원해주시는 마음은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Q. 프로지망 아니라면서 편집자는 왜 찾아감?A. 출장편집부는 취미인들에게도 피드백을 해 줍니다. 접수증에 대놓고 '프로를 지망하시나요?'라는 항목도 있어요(저는 아니오 찍고 갔습니다). 근데 이런 질문이 아니라 '왜 프로 할 것도 아니면서 잘 하고 싶어하는 거임?'이라고 묻는 거라면 그냥 머리 어디 한 군데가 맛이 간 인간이라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음...뭐 개중에서도 유난히 심각하게 맛이 간 사람들이 프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Q. 왜 국내 행사(서코 등)이 아니라 먼 나라의 코미티아를?A. 국내 행사를 찾아봤는데 코미티아만큼 아마추어리즘과 오리지날리티를 양립시킬 수 있는 행사가 없더라고요. 있어도 예전에 망했고...사실 코미티아 신청하고 나서야 '칸새'라는 국내 1차창작 행사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알게 된 시점에서는 이미 개최가 끝났더라고요. 미리 알았으면 정탐을 가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근데 겉핥기로 약간 조사해보니 찐따쉑인 제가 가기엔 너무 기쏀곳인가 싶기도 함... 그리고 국내의 이벤트와 별개로 코미티아 자체가 너무 매력적인 행사이기도 해서, 아마 국내 행사 유무와는 별개로 코미티아는 무조건 참가했을 거 같네요.피차 나 좋으라고 그리는 만화니 남들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는데(사실 지금도 같은 마음이고), 그거랑 상관없이 관심을 받으니 역시 기쁘긴 기쁘더라고요. 응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정말 기나긴 길 읽으시느라 수고하셨고 다들 좋은 하루 되시길나중에 내키면 전리품들 간단한 소개글도 올리겠음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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