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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무관심 왕랑

철리길 2006.05.10 09: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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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랑의 자는 경흥(景興)이고, 동해군(東海郡) 담현(郯縣) 사람이다.15) 경전에 통달하였으며 낭중으로 임명되고, 치구(菑丘)의 장으로 임명되었다. 태위 양사(楊賜)를 스승으로 섬겼는데, 양사가 세상을 떠나자 관직을 버리고 복상(服喪)의 예를 다했다. 나중에 효렴으로 천거되고 공부(公府)로 초빙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서주자사 도겸(陶謙)은 왕랑을 관찰하고는 무재(茂才)로 천거했다. 당시 한제(漢帝)는 장안에 있었고 관동지역에는 병사들이 일어나 왕랑은 도겸의 치중이 되었으며, 별가 조욱(趙昱)등과 도겸에게 권하는 말을 했다. “춘추의 뜻은 제후가 봉토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근왕(勤王)이 수레를 구하려고 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천자는 떠돌아 서쪽 수도 장안에 이르렀으니, 당신은 마땅히 사신을 보내 왕명을 받들고 계승해야만 합니다.” 도겸은 그래서 조욱(趙昱)에게 상주문을 받들고 서쪽 장안으로 가도록 했다. 천자는 도겸의 마음을 가상히 여기고 도겸을 안동장군(安東將軍)으로 임명했다. 조욱을 광릉태수로 왕랑을 회계태수로 삼았다. 손책은 양자강을 건너 땅을 침략했다. 왕랑의 공조(功曹) 우번(虞翻)은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으므로 그를 피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왕랑은 자신이 한 왕실의 관리이므로 응당 성읍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고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손책과 싸웠는데, 패배하여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동야(東冶)에 이르렀다. 손책은 또 동야까지 추격하여 왕랑의 군사를 크게 격파시켰다. 왕랑은 곧 손책에게 나아갔다. 손책은 왕랑이 유학(儒學)의 교양이 있고 곧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문책만 했을 뿐 죽이지는 않았다. 왕랑은 비록 유랑과 곤궁한 생활을 하여 아침에 그날 저녁을 계획하지 못하게 되었을지라도 친척과 친구를 포용하여 위로하고, 나눈 것이 많든 적든 간에 도의에 기초한 행위는 매우 빛났다. 조조는 상주하여 그를 초빙하도록 했다. 왕랑은 곡아(曲阿)로부터 장강과 바다를 전전하면서 몇 년 만에 도착했다. 그를 간의대부 참사공군사(參司空軍事)로 임명하였다. 위나라가 처음 건국되었을 때, 군좨주(軍祭酒)가 되어 위군태수를 겸임하였고, 소부(少府) 태상(泰常) 대리(大理)로 승진했다. 왕랑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관용이 있었고,19) 의문이 있는 죄질에 대해서는 가볍게 따랐다. 종요는 분명하게 살펴 법을 합당하게 집행하였으며, 옥을 잘 다스려 세인들에게 칭찬받았다. 문제가 왕위에 즉위하자, 왕랑은 어사대부로 승진하였으며, 안릉정후(安陵亭侯)로 봉해졌다. 그는 문제에게 상주하여 백성을 양육하고 형벌을 살필 것을 권유했다. '병란이 일어난 지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천하는 들끓고 엎어졌으며, 만국은 부서지고 초췌해졌습니다. 선왕(조조)께서는 도적을 소탕하고, 외롭고 약한 자를 부축하고 양육하며 마침내 중국으로 하여금 다시 기강이 있게 했습니다. 태조(조조)께서는 우리 위나라 땅에서 억조의 백성들을 규합하여 봉토와 변방 안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게 하고, 그 소리가 사방의 경계에까지 이르며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태평성대를 맞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먼 곳의 적은 아직 복종하지 않았고, 전쟁이라는 부역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여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고, 어진 관리가 폐하의 덕과 은혜를 전할 수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길은 모두 닦여지고, 서쪽 백성이 융성하게 된다면, 반드시 과거 시대를 뛰어넘어 보통 때보다 풍부해질 것입니다. 역경에서는 ‘법을 경계 한다’고 하였고, 상서에서는 ‘형벌을 상세히 한다’라고 하고, ‘한 명의 사람(천자)에게 선행(善行)이 있다면, 온 백성이 그것에 의지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형벌과 재판을 신중히 한다는 뜻입니다. 옛날 조상국(曹相國:전한 시대의 재상 조참-曹參)은 재판과 시장 일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간주했고, 노온서(魯溫舒:전한 시대의 관리)는 감옥을 다스리는 관리를 증오했습니다. 무릇 감옥을 다스리는 자가 그 사정을 안다면 억울하게 죽은 죄인이 없을 것이고, 건장한 남자가 밭에서 힘을 다한다면 굶주려 죽는 백성은 없을 것이며, 빈궁하고 늙은 사람이 관부의 창고에 의지하여 먹는다면 들녘에서 굶주려 죽지는 않을 것이고, 시집가는 것을 적당한 때에 할 수 있다면 남자도 여자도 원망하는 한은 없을 것이며, 태아의 양육이 반드시 보존된다면 잉태한 부녀가 그 몸을 상하게 하는 슬픔은 없을 것이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노역의 면제 혜택을 준다면 어린 아이가 교육 받지 못하는 해로움이 없을 것이며, 장성한 이후에 노역을 하면 미성년자가 가정을 떠나는 그리움이 없을 것이고, 반백(班白)의 사람을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 노인들에게는 가다 엎어지는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 약품으로 그 질병을 치료하고, 관대한 노역으로 그 본업에 편안히 머물도록 하고, 위엄 있는 형벌로써 강자를 누르고, 은혜와 인자함으로 약한 자를 돌보고, 복지 정책으로 빈궁함을 돌봐줍니다. 이렇게 하여 10년 후면 성년이 된 젊은이들이 반드시 거리에 가득할 것이고, 20년 뒤에는 승리할 병사가 들녘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제위에 오르자, 왕랑은 또 사공으로 임명되고, 나아가 악평향후(樂平鄕侯)로 봉해졌다. 당시 황제는 항상 수렵을 하러 나가 어떤 때는 황혼에, 어떤 때는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왕랑이 상소하였다. '제왕이 머무는 곳에는 밖으로는 주위에 호위병을 배치해야 되고, 안으로는 문을 몇 겹으로 하여 지켜야만 합니다. 장차 외출할 때에는 호위병을 둔 이후에 장막을 나가고, 먼저 경계하라고 하신 후에 지대(址臺)위의 땅을 밟고, 활을 당긴 이후에 수레에 오르고, 길을 깨끗이 한 후에 받들어 모시고 가도록 하며, 호위병이 열을 서서 통행인을 가리게 한 이후에 수레를 움직이고, 방을 밝고 조용하게 한 이후에 수레를 멈춥니다. 이런 것은 모두 제왕을 빛나게 하고 경계에 힘쓰도록 하고 법령과 교화를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어가가 궁궐을 나가 호랑이를 잡는 데 임하고, 해뜰 때 나가서 밤이 되어야 돌아오셨는데, 이것은 군왕이 출행 시 경계해야 될 상법(常法)을 위반한 것이고, 만승(萬乘) 군왕의 신중한 행위가 아닙니다.' 문제가 대답했다. '그대의 상주문을 보았소. 위강(魏絳)이 우(虞)의 잠언을 칭찬하여 진도공(晉悼公)을 풍자한 것과 사마상여가 한무제를 맹수처럼 충고한 것으로 그대의 충심을 충분히 표현할 수는 없소. 지금 두 적(오나라와 촉나라)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장수들은 멀리 정벌 나가 있소. 때문에 나는 때때로 평야로 들어가 전쟁을 준비하는 훈련을 하고 있소. 밤에 돌아오는 것에 대한 충고는 이미 담당 관리들에게 명하여 시행하도록 했소.' 건안 말년에 손권이 비로소 사자를 파견하여 위나라에 대하여 번국(藩國)이라고 일컬으며 유비와 교전했다. 황제는 조서를 내려 의논했다. '군사를 일으켜 오와 함께 촉을 공격해도 되겠소?' 왕랑이 상주했다. '천자의 군대는 화산(華山)과 태산보다 존경받아야 하므로 진실로 응당 하늘의 위세를 빛내고 산처럼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손권이 직접 촉나라와 서로 대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싸움을 벌인다 하더라도, 지혜는 같고 힘은 필적할 만하므로 승패가 빨리 결정되지 못할 것입니다. 군사를 출동시켜 이길 승산이 있는 형세일 때가 된 연후에 신중한 장군을 선택하여 적군의 강한 공격을 기다렸다가 시기를 본 후에 움직이고 지형을 선택한 후에 나아가면, 단 한 번의 출동으로 되므로 그 이상의 행동은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손권의 군사는 아직 출동하지 않았으므로, 오나라를 원조하는 군사가 먼저 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비도 많이 내리고 있으므로 군대를 나가게 하여 무리를 움직일 때가 아닙니다.' 황제는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황초 연간에 사다새가 영지지(靈芝池)로 모여들었다. 문제는 이것을 상서롭게 생각하고 조서를 공경들에게 내려 품행이 특출 난 군자를 추천하도록 했다. 왕랑은 광록대부(光錄大夫) 양표(楊彪)를 추천하고, 아울러 병을 핑계 삼아 양표에게 자리를 양도했다. 문제는 양표를 위해 이졸(吏卒)을 설치하고, 관위를 삼공 다음으로 정하고 조서를 내렸다. '짐은 그대에게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기를 요구했지만 얻지 못했고, 그대는 오히려 질병을 칭하고 있소. 짐은 비단 현명한 사람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명한 사람을 잃는 길을 열었으므로 옥고리의 기움을 더했소. 군자가 기거하는 방에서 하는 말이 좋지 않아 군자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겠소! 그대는 더 이상 사퇴하지 마시오.' 왕랑은 맡은 일을 계속했다. 손권의 아들 손등(孫登)을 보내 천자를 가까이에서 모시도록 하려고 했는데, 손등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때 문제는 허창으로 옮겼으며, 대대적으로 둔전을 설치하고 군사를 일으켜 동쪽을 정벌하려고 했다. 왕랑이 상소를 올렸다. '옛날(前漢) 남월(南越)은 선량한 태도를 지키고, 태자 영제(嬰齊)를 보내 천자를 가까이 모시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영제는 후사가 되어 돌아와서 그 나라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강거(康居)는 교만하고 교활하며 감정이 말과 서로 부합되지 않으므로 도호(都護)가 상주하여 가까이서 모실 왕자를 파견하도록 하여 무례함을 처벌해야만 된다고 의논했습니다. 또 오유(吳劉)는 화를 만들어 아들을 들어가게 하는 싹을 만들었고, 외효(隗囂)20)가 모반한 것 또한 아들을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이전에 손권이 아들을 보내려 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도착하지 않았고, 지금 육군(六軍:천자의 군대)은 경계가 삼엄한데, 신이 걱정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 천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가 손등의 지연을 두둔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군사를 출동시켜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설령 군대가 출동하여 손등이 도착하였다고 하더라도 움직인 자는 지극히 많고 도달한 자는 지극히 적으므로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오만하고 흉악하고 근본적으로 들어와 모실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페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적국의 일반 백성들은 그들의 읍을 그리게 될 것이 두렵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별도로 정벌하는 여러 장수들에게 조서를 내려 각자 금령을 분명하게 받들어 부서를 신중하게 지키도록 하십시오. 밖으로는 위엄을 빛내시고, 안으로는 농경을 널리 행하여 산같이 조용하고 연못 같이 고요하게 하시면 위세는 움직일 수 없고 계책은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문제는 군사를 편성하여 출행하였는데, 손권의 아들은 도착하지 않았고, 문제의 수레는 장강을 눈앞에 두고 돌아왔다. 명제가 즉위하자, 왕랑은 난릉후(蘭陵侯)로 승진하여 봉해졌으며, 식읍 5백 호를 더하여 이전 것과 합쳐 1천2백 호가 되었다. 왕랑은 사자로서 업성으로 가 문소황후(文昭皇后:문제의 妃)의 능묘를 참배하고, 백성들 중에서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자들을 만났다. 때마침 궁실을 건축하고 있던 터라 왕랑이 상소를 올렸다. '폐하께서 즉위한 이래, 은혜를 베푸느 조서를 여러 차례 발표하시어 백성들 모두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신은 이전에 명령을 받고 북쪽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역이 많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면제하고 삭감할 수 있는 경우도 매우 많았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겸손하게 듣는 인내심을 가지고 적을 제압할 일을 계획하십시오. 옛날 위대한 우임금은 천하의 큰 우환을 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먼저 그의 궁실을 작게 하고, 입고 먹는 것을 절약하였으며, 이것으로 구주(九州:中國)을 지배하고, 천하를 오복(五服:王城 밖 5백 리 이내의 땅을 甸服, 전복의 밖으로 5백 리 이내의 땅을 侯服, 후복 밖의 2백 리 이내의 땅을 綏服․  服․荒服이라고 함)으로 나누어 보필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구천(句踐)은 어아(御兒) 일대의 국경(吳나라와 연접한 국경)을 넓히려고 고소대(姑蘇臺)에서 부차(夫差:吳王)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또한 그 자신과 식구들에게 절약하도록 하고, 그 집안에서 절약하는 것으로써 국가에 베풀었으므로 오호(五湖)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삼강(三江)을 석권하고 중원에 권위를 세우고, 중화(中華)에 패권을 확립했던 것입니다. 한나라의 문제와 경제(景帝) 역시 선조의 사업을 널리 날리고, 국력을 증대하고 고양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금이 백 냥이나 드는 누각을 세우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단조로운 옷을 입어 검소함을 나타냈습니다. 안으로는 태관(太官)의 의식(衣食)을 줄이고 공헌을 받지 않았고, 밖으로는 부세를 줄이고 농업과 양잠에 힘썼으므로 그가 제위 하던 때를 잘 다스려진 시대라고 부를 수 있었으며, 형벌기구를 한가롭게 놓아두게 되었습니다. 효무황제가 그 군대의 위풍을 떨쳐 국경 지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진실로 조부와 부친 두 황제가 평소 충분하게 축적하였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곽거병(霍去病)은 평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장수인데도 흉노가 아직 멸망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어 저택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멀리 대업에 이른 사람은 눈앞의 이익을 홀시하고, 밖에 일이 있는 자는 집안에는 간소함을 요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한나라 초년부터 중흥할 때까지는 모두 전쟁이 멈춘 뒤로 연후에 봉궐(鳳闕:궁문)이 높아졌고, 덕양(德陽:경제가 세운 궁전)이 아울러 세워졌습니다. 지금 건시전(建始殿) 앞은 줄을 서서 조의를 하기에 충분하며, 숭화전(崇華殿) 뒤는 내관(內官:天使의 호위관)을 배열하는 데 충분히 이용할 수 있으며, 화림원(華林園)과 천연지(天淵池)는 충분히 연회를 열어 놀 수 있습니다. 만일 잠시 먼저 창합(閶闔:궁문)의 상위(象魏:궁문 안의 법령을 걸어 나타내는 곳)를 완성한다면, 먼 곳에서 와서 조공하는 자를 참열(參列)할 수 있고, 성과 연못을 수리한다면 적의 침입을 끊어 국도를 지키고 위험한 곳을 방어하는 곳을 이루게 됩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풍년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만일 오로지 농경에 힘쓰는 것을 부지런히 하고, 전쟁 준비를 급한 일로 간주하여 연습한다면, 나라에는 백성들이 원망하는 마음을 넓힐 수 없고, 호구 수는 증가할 것이고, 백성들은 병력이 강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적이 복종하지 않고 아름다운 기운이 부족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왕랑은 사도로 전임되었다. 당시 황자(皇子)를 자주 잃었으므로, 후궁에는 학관에 나아가 공부하는 황자가 갈수록 적어졌다. 왕랑이 또 상소를 올렸다. '옛날 주문왕은 열다섯 살에 주무왕을 낳았으며, 열 명의 아들을 갖는 행운을 누렸고, 희씨(姬氏)의 자손을 넓혔습니다. 무왕은 늙어서 성왕을 낳았으므로 성왕은 형제가 적었습니다. 이 두 왕은 각자 성덕을 세우고 서로 지나침이 없는데, 그 자손 복을 비교하면 서로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낳아 기르는 나이의 이르고 늦음과, 낳은 아이의 많고 적음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주무왕과 주성왕의 덕과 복을 겸하고 있으며, 연세는 주문왕이 주무왕을 낳았을 때보다 많지만, 주무왕 희발(姬發)처럼 황후의 궁전에서 낳아 기르지 않고, 번국(蕃國)의 왕은 액정(掖庭:후궁)의 많은 방에서 번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성왕으로 비교하면 비록 늦지는 않았지만, 백읍(伯邑:문왕의 맏아들)과 비교하면 이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주례(周禮)에는, 육궁(六宮:후궁)의 내관(內官)은 1백2십 명이 있을 수 있는데 여러 경전의 통설로는 모두 12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진한대(秦漢代) 말기에는 후궁의 수를 천 명 혹은 백 명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후궁의 수가 갈수록 많아졌을지라도 때가 맞아 길관(吉館)으로 가는 자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시경의 근본 요지는 진실로 일관된 뜻에 있지, 많은 것을 탐하는 데 힘쓰는 것은 아님을 설명한 것입니다. 나이든 신하인 저는 삼가 우리나라가 25명의 아들을 낳은 헌원(軒轅)처럼 융성하기를 원하지만, 지금 주문왕의 10명의 아들에 미치지 못하므로 제나라를 근심하는 원인입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는 항상 요와 이불이 지나치게 따뜻하여 고통스러웠습니다. 지나치게 따뜻하면 편한 것을 느낄 수 없고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몸이 약해집니다. 때문에 질병으로부터 방어하고 보호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탄을 안겨주기는 쉽습니다. 만일 어렸을 때 항상 면솜을 너무 두텁지 않게 입혔다면 반드시 모두 금석(金石) 같은 본성을 지키고 남산(南山:長安의 남쪽에 있는 산맥)과 필적할 만큼 장수할 것입니다.' 명제가 답장을 했다. '무릇 충성이 지극한 사람은 언사가 돈독하고, 중후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이 의미심장하오. 그대는 수고롭게 사려하고, 또 친히 붓을 들어 문사를 순리에 맞게 하고, 덕의 소리를 재삼 중복하여 기쁨을 헤아릴 수조차 없었소. 짐이 후사를 세우지 않은 것이 그대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였소. 지금 그대의 지극한 충언을 받아들이고, 그대의 좋은 충고를 듣기 원하오.' 왕랑은 주역(周易),춘추(春秋), 효경(孝經), 주관(周官)의 전(傳)을 지었으며, 그의 주(奏:상주문) 논(論:논의문) 기(記:기사문) 모두가 세상에 전해졌다. 태화 2년(228)에 왕랑은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성후(成侯)라고 했다. 아들 왕숙(王肅)이 뒤를 이었다. 그 이전에 문제는 왕랑의 영지를 나누어 그의 한 아들을 열후로 봉했는데, 왕랑은 형의 아들 왕상(王詳)을 봉하기를 원했다. 파성에 번역본 올라온지 20일이 지났는데 조회수 55...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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