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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 정략결혼 외전 An Informal Tourney

구름패랭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5.25 17: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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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Tourney(중세 기사들의 마상 시합)



비공식 마상 시합 An Informal Tourney




-작가의 말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마상시합을 재연하려고 합니다. 엘사는 마지못해 참여합니다.

정략결혼(안나와 엘사가 어린시절 추억을 언급함)과 같은 세계관이나, 정략결혼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남매지간으로 코로나의 공주와 왕자이며, 엘사는 아렌델의 유일한 공주라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안나는 아홉 살, 엘사와 크리스토프는 열두 살입니다. 약간의 엘산나 포함.


-번역자의 말

이 외전의 제목 An Informal Tourney는 본편 제목 A Formal Arrangement에 대한 일종의 대구법이라고 볼 수 있다. 본편 제목은 “정략결혼”으로 의역되었지만, 직역하면 “공식 합의”정도가 되는데, 이에 대비해서 Informal Tourney는 “비공식 마상시합”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Tourney에는 (명)토너먼트라는 뜻과 (동)마상 시합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본문에 자주 나오는 joust라는 단어도 비슷한 뜻이어서, tourney와 joust를 (마상)시합 및 토너먼트 등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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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나,”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무도회장에 왜 조랑말이 들어와 있는거지?”

안나가 흥분해서는 작고 빨간 토끼처럼 앞꿈치로 폴짝폴짝 뛰었다. “마상(馬上) 시합을 할거야! 나는 잔 다르크가 될거고 크리스토프는 그 영국왕, 그, 이름이 뭐더라 ㅡ”


 “헨리 6세.” 엘사는 여전히 눈을 조랑말들에 고정시킨 채 무심코 대답했다. 그 무도회장은 다른 무도회장보다 작고 잘 사용되지 않는 곳이었으며, 어딘가에서 주워온듯한 갑옷, 조랑말, 그리고 안나와 크리스토프를 제외하면 완전히 비어 있었다. “네가 그 전의 소년왕 헨리 5세를 말하는게 아니라면 말이야.” 엘사는 덧붙였다. 말을 애매모호하게 하는 것은 그녀의 정확한 성격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전 안나의 선언과 눈앞에 놓인 사물들을 봤을 때…


 나이가 많은 쪽의 공주는 썩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다. “이걸 정확히 어떻게 할건데?” 엘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가 성급히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안나는 엘사의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엘사는 견디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이 시합을. 


 “그러니까, 우린 갑옷을 입을 거고, 오! 랜스(lance:기사들이 쓰던 긴 창)랑 방패도 있어!” 엘사는 안나가 가리키는 모퉁이를 보고,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벽에 기대어놓은 빗자루와 나무통 뚜껑들을 발견했다. 랜스와 방패라니. 세상에. 그녀의 성급한 결론은 안나에 관한 것이라면 언제나 들어맞았다. 제발 이번만은 자신이 틀렸으면 하고 바랐었다. 즉, 이 순간만이라도, 안나가 뭔가 안전한 행동을 했더라면, 하고.


“ 그리고 우린 조랑말에 올라타서 시합을 할거야!” 안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백년전쟁(영국과 프랑스가 1337-1453년까지 간헐적으로 벌인 전쟁) 같겠지만, 더 멋질거야.”


 멋지다니. 도대체 어떻게 더 멋질거라는거지?


시합을 열겠다는 이 생각에는 잘못된 점이 너무나 많았으며, 방금 안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엘사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그녀는 닥쳐올 것이 분명한 재앙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가장 명백한 오류부터 말하기로 했다.


“잔다르크는 마상 시합을 한 적이 없어, 안나. 그녀는 평민이었다고. 기사 작위를 서임받은적도 없고.”


“그래서?” 안나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그래도 영웅이잖아! 전쟁도 이겼고 용감했고 대담했고 또ㅡ”


엘사는 안나의 열정적인 변론을 막기 위해 한 손을 들어올렸다. 보아하니 역사적 정확성은 상관이 없는듯했다. 그녀는 작전을 바꾸어 보았다.


“안나, 이 조랑말들 안장도 없잖아.


“아, 글쎄, 서두르면서 안장도 챙기지는 못하겠더라고,” 안나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크리스토프가 마부 아저씨 시선을 끌 동안 내가 말을 데려왔는데, 안장까지 달 정신은 없었어.” 그녀는 마치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이치에 맞는 일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끌고 들어온 거야?” 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사과로 꼬셨지, 당연히!” 마치 말에게도 인격이 있고, 엘사가 그들의 동의를 받았냐고 물었다는 듯한 안나의 대답이었다. “고삐도 있고.”


“아니, 내 말은, 어떻게 들키지도 않고 성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는거야?” 분명 지나가다 그들을 발견한 하인이라도 있었을텐데? 안나가 조랑말 두 마리를 끌고 지나가도 들키지 않을만큼 하인 수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말들에게 시선을 돌려,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와있는 문제의 짐승들을 무도회장에 조화시키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도자기 가게에 있는 코끼리 같았다. 아니 황소였나? 그 속담에 나오는 동물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은 벌어지는 일은 실제상황이었기에 더욱 심각했다. 한 마리는 심지어 머리를 쳐들고 비웃듯이 히힝거렸다. 엘사는 그 말을 노려보았다.

 

“오! 동쪽 건물에 옆문 기억해? 마구간 근처에?” 안나가 말했다.


“그 잠긴 문 말이니?”


“그래! 그 문! 크리스토프랑 나랑 그 문 자물쇠 풀고 말들을 데리고 들어왔어.”



 충격을 받은 엘사는 눈을 감았다. 안나에게 그 문을 보여준 것은 엘사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 시합에 기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녀도 공범이었다.


무도회장에. 조랑말들이. 시합을 위해서. 엘사는 그 단어 각각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단어들이 한 문장 안에서 연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엘사는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듯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양 행동해야할지, 아니면 눈을 하늘로 돌려 길을 알려달라는 기도를 올려야할지 몰랐다. 두 가지 다 소용없을 것이므로, 엘사는 안나를 계속 응시하면서, 이 시합이 끔찍한 아이디어임을 인정하고 양쪽 부모님 중 누구에게라도 들키기 전에 말들을 끌고 나가라고 마음속 의지의 힘으로 명령했다.


안나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우리 갑옷 입는 것 좀 도와줄래?”

그래, 안나는 분명히 텔레파시를 수신하는 능력이 없는듯했다. 아니면 수신은 하는데 잘못 해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거나.


“안나, 안돼. 네 아이디어는…정말…”

“훌륭해? 신나지? 재미있지?” 안나는 여러 제안을 퍼부었다.

엘사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나는 ‘무모하다’고 말할 생각이었어. 부모님이 알면 우린 죽음이야.” 맙소사. 그녀는 ‘우리’라고 말했다. 지은 죄라고는 역사학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다말고 안나에게 이끌려 무도회장에 들어온 것밖에 없었던 엘사는 정말로 공범이 되어버린 것이다.

안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에이, 괜찮을거야! 여기 오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그래. 조용히 놀면 진짜 재미있을거야!”

 


“안나, 난 네 생각에 절대 반대야.”


“엘사!” 안나가 입술을 내밀고 징징댔다. “아, 좀! 멋진 말에 올라타 랜스와 방패를 든 빛나는 기사가 되고 싶지 않아?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고 큰 상을 받고 싶지 않아? 아니면 용을 잡으러 떠날래?”


엘사에게는 그런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넌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었어,” 엘사가 말했다. “크리스토프는 뭐래?”


금발 소년의 머리가 갑옷더미 뒤에서 삐져나왔다. “재미있을거야, 엘사!” 그가 씨익 웃었다. “야, 그리고 이 흉갑(胸甲 breastplate:가슴을 보호하는 갑옷)은 나한테 거의 딱 맞는데. 체인메일(chain mail:쇠사슬을 엮어 만든 갑옷)도 카이가 다른 데 둔건 아닐까? 아니면 클레이모어(claymore)같은 진짜 칼은?”



엘사는 다시 눈을 감았다. 크리스토프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더니 눈을 번쩍 떴다. “잠깐, 그 갑옷 어디서 났어?”


“초상화 갤러리 옆에서,” 안나가 말했다. “찾을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작은 크기였어. 알지, 그 난쟁이 기사들?”


엘사는 알았다. 그 갑옷들은 난쟁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내(城內)를 지켜주는 다른 갑옷들보다 작을뿐이었고, 안나는 그들을 난쟁이 기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홉살 안나에게는 너무 컸지만, 그보다 세 살 많은 크리스토프에게는 거의 맞는다고 한다.


“그건 내 조상님들의 갑옷이야,” 엘사가 맥없이 말했다. “우리 가문의 유산ㅡ”


“오, 엘사, 초상화 갤러리 밖에서 먼지만 쐬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야?” 안나가 대꾸했다. “갑옷이 좀 쓰이면 조상님들도 분명히 기뻐하실걸.”


이런 일에 쓰인다면 기뻐하실 리 없어, 엘사가 생각했다. 그녀는 한번 더 시도했다. “안나, 이건 정말 안 좋은 생각이야.” 그녀는 특히 신경에 거슬리는 관리를 대할 때 아버지 얼굴에 나타나곤 하는 표정을 따라했다.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너희 부모님께 말씀드릴거야.” 그녀는 자신의 말을 강조하기 위해 양손을 엉덩이 위에 얹기까지했다.


“이미 늦었지롱,” 안나가 해맑게 대답했다. “어떤 하인 남자애한테 문을 잠가달라고 했거든.”


엘사의 입이 벌어졌다. “ 뭐?” 그녀는 문으로 걸어가서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문은 꼭 잠겨있었다. 엘사는 볼을 붉히며 몸을 휙 돌렸다. “ 지금 여기에 우리를 가둔거야?! ” 목소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높고 날카로워졌지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런 데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아아, 그냥 한 시간 정도만,” 안나가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좀 있다가 다시 오라고 얘기해놨어.”


엘사의 장갑 낀 손이 불끈 쥐어졌다. “내가 찬성할 리 없다는 걸 뻔히 알았으면서!” 그녀는 안나를 비난했다.


“당연하지,” 엘사가 굳이 물어보기까지 했다는 데 놀란 어린 소녀가 대답했다. “그리고, 넌 방 안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었고, 이렇게 재미있게 논지도 너무 오래됐잖아. 공부보다는 우리랑 놀고 싶지 않아?”


엘사는 인상을 팍 쓰며 벼락이라도 내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안나는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엘사를 마주보며 한 눈썹을 반항적으로 치켜올리고 있었다. “아 왜 이래,” 안나가 꼬드겼다. “설마 재미없는 사람이 되겠다는건 아니겠지?”


오, 안나는 엘사의 약점을 알았고 그 점에 대해 엘사는 매우 예민했다. 고민 끝에, 엘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좋아,” 안나가 박수치며 껴안는 와중에도 그녀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안나, 장담하는데, 들켰다간ㅡ”


“걱정하지마!” 안나가 자신있게 미소지었다. 그녀는 엘사의 손을 잡고 크리스토프와 갑옷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다음엔 내 대신 하든지, 아니면 나랑 대결해도 되고. 오, 그리고 갑옷 입는 것 좀 도와줘!”


 엘사는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갑옷 입는 것을 도와 주었다. 그녀는 이 무도회장 안에 한 시간 동안 갇혀있는 한, 자신이 참여를 원하든 원치 않든, 어차피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이 우스꽝스러운 시합을 열게 되리라고 합리화했다. 이렇게 그들을 도와주면, 다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갑주를 잘 입었는지는 최소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핑계거리를 지어내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만큼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갑옷 전체를 입을 수는 없었다. 크리스토프에게는 투구, 흉갑, 장화, 장갑들이 얼추 맞았지만, 안나는 투구와 흉갑 속으로 그대로 사라졌다. 장갑과 장화는 그녀의 손발에 비해 한참 컸다.


“괜찮아,” 결연히 말하는 안나의 목소리가 투구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녀는 얼굴 앞 어딘가를 더듬어 바이저(visor: 투구의 얼굴 가리개)를 들어올렸다. “난 방패 있어.”


“나무통 뚜껑이잖아,” 엘사가 체념한듯 고쳐주었다. 안나의 체격이라면 방패로 쓸 만한 크기였지만, 아무리 보아도 진짜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딱따구리들이 쪼아댄 것처럼 보였다. 안나가 도대체 어디서 저런 걸 찾았을까? “나무통 뚜껑이야, 안나. 네 랜스는 빗자루고.”


“엘사는 상상력이 너무 없어,” 어린 소녀가 불평했다. “난 잔이고, 크리스토프는 그 영국 왕 이름이 뭐더라ㅡ”


“헨리,” 엘사가 다시 고쳐주었다. “5세인지 6세인지는 모르겠지만, 잔 다르크가 살아있었을 때라면 아마 6세일거야.”


“그래, 맞아. 어쨌든, 날 프랑스의 구세주, 잔 다르크라고 칭하도록!” 안나는 가슴과 턱을 내밀었다.  엘사가 보기에는 안나가 나름대로 영웅적인 자세를 취하려는 것 같았다. 안나가 그 자세를 잠시 유지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이저가 흘러내려 쾅 하고 닫혔다. “아야. 엄청 시끄럽네.”


“그래, 잔.” 엘사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랜스도 대령할까요? 나무통뚜껑 방패도?”


“엘사! 그냥 ‘방패’라니까!” 안나는 일어서서 엉거주춤하게 섰다. “나 어때?”


엘사는 그녀를 훑어보았다. “궁정 광대 같은데. 잔 경(卿 , Sir Joan), 제가 기사님의 종자로 선발되었으니, 허락하신다면 랜스와 방패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궁정 광대가 무슨 갑옷을 입어. 진짜, 나 어떻냐니까?”


엘사는 한숨을 쉬고 다시 안나를 보았다. 갈색 승마바지와 승마용 장화를 신은 다리 위에 흉갑이 힘없이 둥둥 떠다니는듯했다. 흉갑의 양 옆으로 흰색 소매가 삐져나와 있었고 지나치게 큰 투구가 맨 위에 얹혀 있었다. 갑옷에 비하면 안나의 팔다리는 너무 가늘고 말라 보였다. 완전히 솔직하게 말하면, 어린 공주는 무쇠로 된 땅딸막한 두꺼비를 닮았다. 아니면 닭을. 그래, 투구 위에 우스꽝스러운 빨간 깃털 장식이 있으니 닭이 더 좋은 표현이었다.


“잘 안 어울리는군요(Unflattering)”가 엘사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형용사였다.


“진짜? 크리스토프는?”

둘은 고개를 돌려 크리스토프를 보았다. 안나는 돌리려고는 했다ㅡ그녀는 뒤뚱거리며 몸을 돌리고 나서야 오빠를 볼 수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폐하?” 종자 역할을 계속하던 엘사가 물었다.


“어?” 크리스토프는 균형을 잡기 위해 몸을 뒤쪽으로 휘청했다. “아, 맞아, 나 왕이지. 아냐, 됐어! 우와, 옛날 기사들은 이걸 입고 어떻게 움직였대?” 그는 옆쪽으로 비틀거렸다.


엘사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밀어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좀 나아?” 그녀가 물었다.


크리스토프는 투구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이저를 밀어올렸다. “고마워, 엘사.”


엘사는 왕자를 쳐다보았다. “넌 이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 알지?” 크리스토프는 여동생의 생각에 맞춰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그가 씨익 웃었다. “미친 짓이긴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이왕 이렇게 된거, 뭐 어때?”


“우리가 둘 다 아니라고 하면 안나가 그만둘 수도 있어. 하지만 넌 그러지 않을거지?”


크리스토프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 엘사, 2대 1이야.” 


“보통 내가 1이더라.” 엘사가 맥없이 말하며 크리스토프가 조랑말에 오르는 것을 돕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들은 바닥과 안장 없는 말의 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달그락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그들은 고개를 돌려 안나가 자기 말에게 비척대며 걸어갔다가 몸을 바로세우기 위해 말 목을 붙잡는 모습을 보았다.


“의자를 찾아볼게.” 엘사가 한숨지었다. 그녀는 어두운 구석에 남겨져있던 것을 하나 찾아서 크리스토프에게 먼저 가져갔다. 맙소사, 갑옷을 걸친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엘사는 자신이 여기에 동의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다수결에서 졌으니까. 좌우지간에 다수결 자체가 말도 안되는 개념이었던 것이, 그들은 왕족이었고 그들이 있는 데서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꺼리는 화제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는 의자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엘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말의 귀가 뒤쪽으로 움찔거리며 불안감을 나타내는 동안, 그녀는 조랑말의 고삐도 쥐고 있어야 했다. 말은 자신의 등 위에 앉으려는 이상한 물체에게서 도망치려고 했다. 엘사는 아마도 요즘 말들은 갑옷 입은 사람들을 태우는 데 익숙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


크리스토프는 한 다리를 조랑말의 너른 등 너머로 넘기고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장갑 낀 손가락으로 갈기를 꼭 붙든 채였다.


“괜찮아?” 그녀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끄러운 말 등에서 자리를 더 잘 잡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엘사는 안나를 돕기 위해 의자를 들기에 앞서 그에게 고삐를 쥐어주었다. 안나는 의자에 올라가는 것을 더욱 힘들어해서 엘사가 반쯤 던져올리다시피 해야했다.


“너 무거워,” 엘사가 바람개비처럼 팔랑거리는 안나의 팔을 피하면서 낑낑댔다. “크리스토프는 최소한 갑옷 입고 혼자 움직일 수는 있었다고.”

“내 잘못 아니야!” 안나가 꽥 내질렀다.


“당연히 네 잘못이지, 누구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엘사가 성질을 부리며 말했다. “자, 고삐 잡았어. 혼자 올라탈 수 있겠어?”

안나는 조랑말의 갈기를 부여잡고는, 등을 가로질러 미끄러지더니 반대쪽으로 떨어질 뻔했다. “엘사!” 안나가 말을 붙잡으려고 다리를 정신없이 움직여대며 소리질렀다.


엘사가 손에 잡히는 가장 가까운 것을 붙잡고보니 안나가 입은 승마바지의 엉덩이 부분이었고, 그녀는 안나를 똑바로 끌어당기기 위해 몸을 뒤쪽으로 날렸다.


머리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놀란 조랑말은 혼란에 빠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안나는 그 등에 반쯤 매달려 있었고 한 팔은 말의 목에 둘러져 있었다. 흉갑이 그녀를 끌어내리고 있었으며, 엘사가 채워준 턱밑의 버클 스트랩(buckle strap)으로만 고정된 투구는 비뚤어져 있었다.


좀 움직여 봐, 안나,” 매끄러운 바닥에 자신의 신발 뒷굽이 미끄러지는 것을 느낀 엘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 어떻게 좀 해봐!


움직이고 있어! 더 세게 당겨봐! ” 안나가 투구 때문에 불분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엘사는 어렴풋이 웃음소리를 들었고 신음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이런 일을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 멍청한 시합에 찬성했고, 방조했고, 안나의 놀림을 무시하고 나갈 수 있을 때까지 한 시간 동안 어디 구석에 앉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는 조랑말이 그들에게서 도망치려는 동안 꼼짝없이 안나의 바지 엉덩이를 붙잡고 있었다.


다시는 안나의 어떤 장단에도 맞춰주지 않겠어, 라고 그녀는 험악하게 생각했다.


위로가 되는 그 생각을 하면서 엘사는 굉장한 힘을 주어 당겼고, 안나는 드디어 조랑말의 목에 얼굴을 대고 엎어졌다. 그들은 헐떡대며 땀을 흘렸고 크리스토프가 근처에서 요란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닥쳐, 크리스토프.” 안나가 헐떡거렸다.


“다시는 하지마,” 손바닥을 무릎에 붙이고 몸을 숙인 엘사가 숨을 돌리려고 하면서 쏘아붙였다. “이ㅡ이건 내가 한 가장 멍청한 짓이야. 널 떨어지게 놔둘걸 그랬어.”


“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아직도 팔을 조랑말의 목에 꼭 두르고 있던 안나가 웃었다. “성공이야! 잠깐만…기다려봐. 그리고 시작하자.” 그녀는 조심스레 똑바로 앉고는 투구를 제대로 맞추었다. “아, 엘사, 말들을 가운데로 끌어서 나랑 크리스토프랑 마주보게 해 줄 수 있어? 진짜 마상 시합처럼?”


엘사는 안나를 노려봤지만, 바이저가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안나가 그것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부탁받은대로 한 후 빗자루와 나무통 뚜껑들을 가져와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손에 밀어넣었다.


“다시는 안 하는거다,” 좀전의 분투로 인해 아직도 얼굴이 발그레한 엘사가 위협적으로 경고했다. “한번만 하고 멈추기야, 알았어?”


둘이 끄덕이자 머리 위의 깃털 장식이 까딱이는 앵무새처럼 움직였다. 엘사가 비켜서려던 그 때 안나가 품행이 방정한 숙녀, 그것도 공주가 절대 할 리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엘사는 머리가 쭈뼛하고 설 뻔했다. 안나가 사용한 끔찍한 프랑스식 억양은 엘사를 더욱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크리스토프의 대답은 마찬가지로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며, 다른 점은 단지 여동생의 프랑스 억양 대신, 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영국식 억양이 사용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두 남매가 가끔 낄낄대고 코웃음을 치며 욕설을 주고받는 동안, 입을 떡 벌린 엘사는 자신의 턱이 얼굴에 붙어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엘사는 그 단어들 대부분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며, 신체 어느 부위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대부분은 사람의 신체를 가리키는 것 같지도 않았다.


너희 대체 뭐하는 거니?” 놀라움으로 얼굴이 붉어진 엘사는 일단 충격에서 회복되자 소리를 질렀다.


남매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캐릭터를 살려야지!” 안나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아빠가 영국이랑 프랑스가 서로 엄청 싫어한댔어,” 크리스토프가 덧붙였다. “전쟁도 하고.”           


“너희ㅡ그런 말은ㅡ”엘사는 그런 단어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말하면 안돼! 부모님한테 죽어!”


“부모님이 모르시면 안 죽어,” 안나가 말했다. 그리고는 크리스토프에게 엘사의 머리가 정말로 쭈뼛 설 정도로 거친 말을 날렸다.


“도대체 이런 말을 어디서 들은거야?” 엘사가 마지못해 물었다. 왠지 어디서 배웠는지 알 것 같았다.


“오, 코로나에서 마구간 아저씨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안나가 대답했다.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코로나 마구간 사람들과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다, 하고 엘사는 생각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도저히. 방금 둘 사이를 오간 욕설에 아직도 귀가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 것을 즐겼지만, 그녀는 그런 말들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제발, 그냥 시작하자.” 엘사가 피곤한 듯 말했다.


말을 탄 왕자와 공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엘사, 음, 손수건을 흔들거나 해봐! 그럼 우리가 돌진해서 서로를 떨어뜨릴거야!” 안나가 말했다.

체념한 엘사는 습관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을 찾아 치마 속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녀는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말없이 손수건을 작은 깃발삼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준비됐어?” 그녀가 물었다.

안나가 다시 키득거렸다. “네가 이야기에 나오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된 것 같아. 그 왜, 기사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크리스토프도 웃었다. “ 맞아, 아리따운(fair) 아가씨가 꼭 나오잖아! 게다가 너는 말그대로 금발(fair)이니까.”


엘사는 그 둘을 노려보았다. “자, 잔, 헨리, 그럼 준비되셨는지요.”그녀가 신랄하게 말했다. 둘은 바이저를 내리고 랜스를 겨누었다. 엘사는 다시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둘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나는 여전히 지루해하는 조랑말에 올라탄 금속제 닭처럼 보였고, 그나마 사람같이 보이는 크리스토프는 진짜 난쟁이족 기사 같았다.


“준비완료!” 그들은 합창했다.

엘사가 손수건을 든 팔을 떨어뜨렸다.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각자 조랑말에게 박차를 가하자 말들은 약간 움찔하더니 앞으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고, 얼기설기 입혀진 아렌델의 유산들은 큰 소리를 내며 덜거덕거렸다. 빗자루를 불안정하게 높이 든 안나의 투구는 곧바로 술 취한 것처럼 비뚤어졌다.


“악! 안보여!” 안나가 외쳤다.


반면, 크리소토프는 놀랄만큼 안정적이었는데, 다만 그의 말이 다가오는 동족에게서 멀어지려고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왕자는 방향을 원래대로 돌리려고 고삐를 헛되이 잡아당기다가 나무통 뚜껑을 떨어뜨릴 뻔했다.


엘사는 그들을 응시했다. 잘못될 수 있을만한 것들은 모두 잘못되고 있었다.


안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비명을 질러댔고 큰 소리로 크리스토프는 어디있냐고 물었다.  크리스토프는 방패를 겨우 붙잡고 있었고, 말을 통제하기 위해 고삐를 잡아당기자 겨드랑이에 끼웠던 빗자루가 떨어져 말의 귀 사이를 때렸다. 그 짐승은 분한 듯 코를 힝힝거리면서 뛰어다니기 시작해서 크리스토프가 거의 옆으로 떨어질 지경이 될 때까지  위아래로 흔들었다.  왕자는 진드기처럼 달라붙게 되었다. 안나의 말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꾸준히 전진함으로써 안나가 든 랜스를 크리스토프의 어깨에 정통으로 밀어넣었다. 빗자루는 흉갑의 끝부분에서 미끄러져 위를 향하더니, 크리스토프의 투구를 때리면서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처럼 울리는 소리를 냈다.


“아야야!” 크리스토프가 고함쳤다. “안나, 아프잖아!”


“뭐가? 뭐야? 어떻게 된거야?” 안나가 외쳤다. “내가 이긴거야?”


그리고는 대단원이었다. 크리스토프는 결국 끝까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고, 갑옷이 놀라울 만큼 큰 소리를 내서 조랑말 두 마리를 다 놀래켰다. 크리스토프의 말은 안전한 무도회장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안나의 말은 히이잉 하고 울더니 춤추듯 몸을 틀었다. 이젠 지긋지긋해진 말이 자기 위에 올라탄 소녀를 떨어뜨리려는 게 분명했다. 안나는 즉시 랜스와 방패를 떨어뜨리고 고삐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오, 하느님. 엘사는 안나처럼 말과 함께 자라지 않았음에도 안나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조랑말은 겁먹고 불안해하고 있었으며, 무거운 갑옷에 깔린 안나는 앞도 보이지 않았고 몸을 고정시킬 안장도 없었다.


엘사는 손을 내뻗은 채로 안나가 조랑말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것을 무기력한 두려움 속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필요하다면, 얼음 마법을 쓸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다른 생명체에게 일부러 마법을 쓴 적은 없지만, 안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할 것이다.


“진정해!” 안나가 낮게 말했다. “괜찮아, 그냥 진저ㅡ”


조랑말이 몸을 비틀자, 몸을 지탱해줄 등자(stirrup:안장 양쪽에 달려 발을 끼우는 부분)가 없는 상태였던 안나는 가속도에 의해 한쪽으로 기울었다.


엘사는 숨을 멈추었다. 안나가 떨어지는 광경에 신체의 모든 근육이 그저 축 늘어지면서 방 안의 공기가 사라지고, 허파 속 숨이 사라졌다. 쿵쾅거리는 말발굽 옆 인정사정없는 바닥에 떨어지는 그녀는 너무나 작고 무력해보였다. 어린 공주는 기절한듯 쓰러져 있었다.

기적적으로 기력을 회복한 엘사는 곧바로 조랑말에게 달려가서 느슨해진 고삐를 잡고는, 안나에게서 떼어놓았다. 안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본 그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안나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오 하느님, 하느님. 안나가 죽을 수도 있었어. 짓밟힐 수도 있었어. 나는…나는…


엘사는 고삐를 놓고 안나에게 뛰어갔다. 안나에게 닿자마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녀는 피멍이 들 정도로 무릎을 바닥에 세게 부딪히며 꿇어 앉더니, 안나에게 손을 대려다가 바로 손을 뺐다. 다쳤을지도 몰라.


“안나? 괜찮아? 내 목소리 들려? 다쳤어?” 공포와 희망으로 장식된 낱말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으으,” 안나가 말했다. 그녀는 등을 바닥에 대고 사지를 뻗은 채로 누워 있었다. “멍청한 투구 같으니. 바이저 좀 올려줄래?”


엘사는 조심스럽게 바이저를 당겨올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푸른 눈 한 쌍이 그녀를 보고 깜빡거렸고 구릿빛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삐져나와 있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무도회장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크리스토프의 움직임을 희미하게 인지하면서 엘사가 물었다. 그녀는 아직도 안나를 건드리지 않았고, 안나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괜찮은 것 같아.” 잠시 후 안나가 말했다. 그녀는 시험삼아 팔다리를 꼼지락거리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멍청한 투구 같으니.” 그녀가 반복해서 말했다. 어린 공주는 평생을 말들과 함께 지내서 말에서 추락하면 어떤 부상들이 생길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감각은 다 살아있어. 등이 좀 아프긴 하네,” 안나가 덧붙였다. “내가 등으로 떨어진 것처럼 돼서 그런 것 같아. 깜짝 놀랐네.”


엘사는 안심해서 맥없이 몸을 뒤로 기울였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발뒷꿈치에 앉으며 숨을 고르려고 했다. 그녀가 무사했다. 안나는 무사했다. 등이 아프지만, 무사했다. 이어서  엘사는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분노는 기력을 되찾아주어 안나 위로 몸을 기울여 그녀를 쏘아보게 했다.


“너 죽을 뻔했다고, 이 멍청아.” 엘사가 쏘아붙였다.


엘사가 이렇게 화내는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안나는 당혹스러워하며 그녀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나 괜찮은데.”


“그 말이 너를 밟아 죽일 수도 있었어!” 그 생각에 눈앞이 일순 붉어졌다가, 안나를 잃는다는 생각을 하자 순식간에 얼음장 같은 공포로 뒤덮였다. 세상에, 가끔 보면 안나는 너무나 멍청했다. 엘사는 그녀를 잡아 흔들고 싶은 마음과 껴안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느꼈고, 안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 행동임을 잘 아는 엘사는 그  두 가지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잘 됐잖아.” 안나가 지적했다. 그녀가 잠시 멈추었다. “무슨 소리지?”


두 사람 모두 말을 멈추었고 무도회장 밖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군가 열려고 하는 듯이 문이 덜컹거렸고, 곧 모두의 피를 얼려버린, 섬뜩할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사의 아버지, 알렉산더 국왕이었다. “이게 무슨 소동인가? 안에서 소리가 났다고?” 그만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토프는 크게 한숨쉬었다. “우린 죽었다. 아빠가 우릴 먼저 죽이실 거고, 그 다음엔 알렉산더 삼촌, 그리고 아마 우리가 충분히 미안해하는 것 같지 않으면 엄마도.”

안나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엘사,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 혼나게 생겼ㅡ”


엘사는 벌 받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나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었지만, 동시에 안나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낸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이 밀어붙이기만 했다면 다수결에 상관없이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조랑말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안나를 막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랬다면 안나가 말을 통제하지 못하지도, 떨어져서 엘사의 눈 앞에서 거의 짓밟힐 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이 활짝 열리고, 아버지 그리고 아마도 성 안의 모든 직원들이 눈앞의 아수라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에도, 안도감과 죄책감이 엘사의 어깨를 동등한 무게로 짓눌렀다. 그녀의 눈길은 안나의 얼굴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신경을 쓰지도, 문 쪽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안나가 아무리 설득하고, 요구하고, 회유해도 이번 시합처럼 전혀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면 들어주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맹세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사건을 소중한 교훈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절대로 다시는,” 엘사가 안나에게 말했다. “ 다시는 네가 그 어떤 멍청한 짓도 하게 놔두지 않겠어.”


안나가 한숨을 쉬었다. “숨 쉬는것도 포함이야?”


“내 눈 앞에서 죽으면 너를 죽여버릴거야.” 엘사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가 죽임을 당하면, 내가 쫓아가서 또 죽일거야. 맹세해, 안나.”


이는 안절부절 못하는 열두 살짜리 공주가 최대한 위협적으로 낸 목소리에 실렸을 뿐, 어떻게 보면 사랑 고백이었지만, 엘사는 그 부친의 딸답게 참으로 무서운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완강한 감정을 알아챈 안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른들이 쓰러진 잔 다르크와 헨리 왕을 돌보러 무도회장 안으로 몰려오던 그 순간, 그녀가 조용히 수긍했다. “알겠어.” 


번역자 주석================================================================================



1. 바이저(Vi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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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렸다 내릴 수 있게 된 얼굴가리개 부분이 visor  http://www.elvenforge.com/helms.shtml


2. 투구에 달린 빨간 깃털 장식(red plume)

viewimage.php?id=3eb3df31f5db3db46dbac4e7468077&no=29bcc427b18b77a16fb3dab004c86b6fb2a09527f01c968383b5511cf388f755bbef5c7b2c865b05f7133c6a827bb00bec4c3d94cdebb510b0cb8520e9b9cbc567 

http://s436.photobucket.com/user/knnthskr369/media/ist2_9124605-knight-helmet-with-plume-1.jpg.html


3. 크리스토프가 올라타려고 할 때 귀를 뒤쪽으로 움직이는 장면에서:

말의 귀는 180도 회전가능해서 모든 방향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고 함.  

http://wiki.answers.com/Q/What_does_it_mean_when_horses_ears_are_constantly_flicking?#slide=3


4. 도자기 가게에 있는 코끼리/황소에 관해 작가에게 질문한 내용

http://requetude.tumblr.com/post/85421733134/hi-im-translating-informal-tourney-into-korean-i


요약: 이 속담은 사물(조랑말)이 전혀 엉뚱한 곳에 있는 엘사의 상황을 빗대어 사용했음. 하지만 원래는 조심성 없이 좌충우돌 어설픔을 나타내는 표현임.



5. 안장(saddle)과 등자(stirrup) ㅡ 안나는 이것도 없이 말을 탔음

viewimage.php?id=3eb3df31f5db3db46dbac4e7468077&no=29bcc427b18b77a16fb3dab004c86b6fb2a09527f01c968383b5511cf388f755bbef5c7b2c865b05f7133c6a827bb00bec4c3d94cde4bc46e3ce8570bdb9cbc53e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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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발 거는 부분)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ppykra&logNo=10095579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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