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점심을 먹고 허가된 산책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온 공주는 오랜만에 정원 밖으로까지 나왔어. 눈부신 햇빛을 맞은 공주에겐 상쾌함보단 불쾌감이 들었겠지. 길 옆에 심어진 나무의 가지를 어루만지던 공주는 아까 들어온 입구를 봐.

여왕은 오늘 참 한가로운가봐. 직접 공주의 뒤를 밟고 행차까지 할 생각까지 하고. 여왕은 공주의 눈물이 신경쓰였던 거겠지.지금은 눈빛에 잔뜩 날카로움이 서있겠지만. 여왕은 아직도 공주의 눈물 때문에 제 복부가 축축하다고 느꼈어. 단지 그런느낌이 들 뿐이겠지.

공주가 몰려오는 작은 오리떼를 보고 무릎을 굽혀 손을 뻗었어. 정확히 공주쪽으로 오던 오리떼들이 공주를 봐. 곧 오리떼들은 위험한 것이라도 본건지 방향을 틀어서 타다닥 도망가버려. 공주는 빈 손에 무안해져서 손을 거두었어. 여왕은 그걸 안타깝게 봐.

공주곁을 지키는 건 여왕이겠지만 공주는 제 곁에 누군가 있다고 느끼지 못했어. 공주는 여왕이 싫어. 권력을 차지하려고 언니를, 가족을 앗아가버린 것 같으니까. 공주가 여왕을 마주하고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 정원 다른곳으로 가. 여왕은 제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그 뒤를 따랐어.

대체 왜 따라오는거야.

홀로 두었으면 좋겠는데 여왕은 그러기 싫은가봐. 어차피 있어봤자 위로도 안 해주고, 안 될 존재일텐데. 혼자 생각하게 두는 편이 더 도움이 되겠지. 공주는 초록빛 드레스를 펄럭이며 잔디 위에 앉았어. 햇빛이 내리쬐어. 기분좋은 빛이 아니야.

혼자 둬.

적어도 공주는 여왕에게 혼자 두라고 말은 하지, 공주가 봐왔던 여왕은 지금처럼 입도 열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어. 사연이 있겠다 싶었는데, 여왕은 제게 괴물을 옮겨놓고 다시 옮겨질까봐 조마조마하며 지냈던 거겠지. 오히려 여왕의 괴물이 다시 깨어난게 공주에게는 기쁜 일 일수도 있겠어. 허나 반대로 공주의 슬픔은 커지기만 하지.

여왕은 잔디에 앉은 공주의 뒤에 섰어. 제 드레스를 살짝 들어서 주저앉으려다가, 흘끔 뒤를 보면서 여왕을 위아래로 보는 공주의 시선을 피하며 드레스 자락을 꾹 잡기만 했지. 여왕이 저와 같이 앉기를 허락하지 않은 공주는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봐.

공주가 어찌하든 여왕은 그 뒤를 지켰어. 제 존재가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중요하지 않아. 왠지 공주의 곁을 지켜줘야 할 것같았지. 공주는 산책 허가 시간이 한참 지나도 계속 정원에 앉아있었어. 뒤에 서있는 여왕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