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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Argos Ch.11 - 1

치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7.13 23: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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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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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쳐서 올렸었는데 읽어보니까 너무 긴 것 같아서 일단 반 자르겠음
















The Archer – Part III



메리다는 혼자서 휘파람을 불며 성 복도를 걷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걷고 있었다. 절대 뜀박질이 아니었다. 메리다의 발걸음이 톡톡 튀긴 했지만, 이건 몸을 가볍게 하는 훈련용 운동의 일부일 뿐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뛰는 건 사랑에 빠진 바보 아가씨나 머리에 꽃을 꽂은 채 예쁜 정원에서 야단법석을 떨며 하는 짓이니까. 메리다는 확실히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조금도.



아니, 어쩌면 조금은. 완전히 그렇다는 건 아니고. “사랑”이란 단어는 가벼웠으니까. 메리다가 느끼는 감정은 활기찬 우정에 애정을 뿌리고 경쟁심으로 양념을 친 것에 가까웠다.



크리스토프는 사근사근한 친구였고, 느긋하고 태평했으며, 메리다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은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크리스토프는 쉽게 웃음을 터뜨렸고, 웃긴 이야기가 많았으며, 언뜻 진담을 던질 때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남자는 친구가 되기 쉬웠고, 경쟁이 붙었을 때나 같이 있을 때 즐거웠다.



그 남자가 활을 당기는 걸 거부해서 메리다의 어깨가 무너졌더라도 말이다.







“너 같은 사람한테 그런 팔을 주다니, 하느님도 미치셨군.” 어느 날 메리다는 정기적으로 크리스토프와 만나는 장소인 사격장에서 크리스토프에게 말했다. “건장한 여자가 너만 한 몸집이었다면 아마 장궁 정도는 당겼을 텐데. 어울리지도 않는 걸 쓰는구나.”



“사람들 모두가 요람 안에서 모빌에다 화살을 던지며 시간을 보낸 건 아니잖아.” 크리스토프는 총구에 탄약을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네가 20보 밖에서 사과를 꿰뚫을 때, 난 호수에서 얼음을 캐고 있었다고. 인제 와서 활을 잡아 봤자 네가 운이 좋으면 일 분에 화살 두 개 이상 쏘는 걸 보게 될걸. 그중 하나는 적 근처 어딘가로 날아갈 테고. 그 적은 내가 신발 가죽이라도 긁으면 분명 큰 충격을 받을 테지.”



“숙련된 포수보단 차라리 초보 궁수가 낫지.” 메리다는 콧방귀를 뀌며, 몸을 고정하고 활에 실을 매었다. “석궁도 그것보단 나아. 머스켓은  연기나 내뿜으니까, 전투에서 쓰느니 우리 아빠 담뱃대를 그걸로 바꿔주는 게 낫겠다.



“난 우두머리니까, 우두머리다운 일을 해야 맞는 거야.” 크리스토프는 고집을 부렸다. “글자도 읽을 줄 알지, 쓰는 것도 나아지고 있지, 어쩌면 공식적인 만찬에서 스프를 먹을 때 알맞은 숟가락을 사용하는 적절한 방법도 배우는 날이 올지도 몰라. 안타깝게도 왕실에서 식기랑 펜은 사나이다운 남자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 같지만. 다행히 사격술은 재미있을 것 같아. 왕실 포준어는 별로지만.”



“왕실 표준어겠지.” 메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고쳐주었다가, 얼마나 자기 엄마처럼 말한 건지 깨닫고는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다음엔 옷깃도 고치라 하고 신발 상태가 그게 뭐냐며 괴롭혀대겠군.”



크리스토프가 그 말에 웃었다. “거 봐. 차라리 내 머스켓한테 말을 시켜야겠다. 보라구,” 크리스토프는 말하면서 약실에 화약을 톡톡 집어넣었다. 크리스토프는 프리즌을 닫고는 메리다에게 보라는 듯 두 손으로 머스켓을 내밀었다. “얘는 나보다도 깨끗하고, 냄새도 나보단 좋고, 네가 비칠 정도로 윤이 나는 데다 왕실 출신이야. 왕실 출신에 방금 가루도 드신 귀족 나리께서 더 바라실 게 뭐가 있겠어?”



활을 준비하던 메리다는 깔깔대며 크리스토프를 찰싹 때렸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엄마한테 네 머스켓이랑 결혼해도 되냐고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 ‘보세요, 엄마, 멋진 신랑감이잖아요! 깨끗하고, 다루기 쉽고, 길고, 반짝거리고, 게다가 한 시간에 한 발 넘게 쏠 수 있어요! 더 바라시는 게 있나요?’”



크리스토프는 너무 열심히 웃느라 머스켓을 떨어뜨릴 지경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머스켓 장전을 끝마쳤다. 쇠막대로 화약을 총열 아래쪽으로 밀어 넣으면서 크리스토프는 메리다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더니 빠르게 움직이던 동작을 늦추었다.



“국왕폐하껜 왕실에서 쓸 총이 필요하실 테지. 과연 그 자리를 대신할 게 있을까?”



“차암 귀족스럽네. 두 번 딸깍거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빗나간다니 말이야. 여기 계신 내 아가씨랑은 다른걸.” 메리다는 빈정거리며 대답하고는 자기 활을 들어 올렸다. “여기 우아하신 분은 자기 시위를 당겨 줄 예쁜 손짓이 필요하시다는데. 그냥 홱 쏘고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게 아니야. 따스한 사랑도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숙련된 손가락이라면 아가씨를 계속 붙잡아 둘 수 있지.”



“우리 이야기는 이젠 비유에서 헛소리로 아주 넘어가 버린 것 같네.” 크리스토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쇠막대를 제 자리에 쑥 집어넣은 후, 크리스토프는 머스켓을 휙 들어 올려 개머리판을 제 어깨 덩어리에 얹었다. “하이랜드의 공주마마, 진정한 산이 명사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지 볼 준비가 되셨습니까?”



메리다는 그 말에 픽 웃고는 화살통에서 화살을 매끄럽게 꺼냈다. 메리다가 활을 홱 쳐들자 손가락이 실을 타며 미끄러졌고 화살 깃이 손가락 끝을 쓸었다. 그러면서 메리다는 산 사나이에게 거만하게 웃어주었다.



“호수 건너편에 저 조그만 돌들 보여? 부드러운 눈처럼 새하얗고 귀여운 돌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잖아. 이 정도는 보통이야. 하이랜드에선 훨씬 어려운 과제를 내줄걸.”



“저 귀여운 걸 내가 맞히기만 하면 이기겠군.”



“웃기시네. 네가 저걸 맞힐 수만 있음 아렌델 병대의 자랑이 됐겠다.” 메리다는 활을 쏠 준비를 하며 미소 지었다. “너 먼저 열 발 쏠래?”



“그 열 발이 공주마마께서 기다리실 수 있는 한곈가 봅니다.” 크리스토프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찡긋했다.







메리다는 떠오른 그 기억에 씩 웃었다. 둘이서 쏜 건 열 발 수준이 아니라 60발 정도였다. 날이 저물 무렵, 짙은 연기가 공중에 둥둥 떠다녔고 과녁은 화살과 머스켓 총탄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쑤시는 어깨에 얼음팩을 대고 있었고, 메리다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리넨 천으로 감싸면서 장갑을 두고 온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바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주 들뜨고 흥분된 분위기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즐거움 속에서.



그리고 화약 속에서. 연기엔 화약이 아주 많았으니까.



메리다는 휘파람을 불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만 했다. 메리다는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행복감을 느꼈다. 5일 전만 해도, 메리다는 그 남자를 쏘려고 했었다. 지금의 그 남자는 메리다가 아렌델에서 사귄 절친이 되어있지만 말이다. 메리다가 안나 공주와 친한 친구가 되기를 바랐던 메리다의 어머니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메리다는 다른 왕족을 향한 어머니의 기대를 평소에도 곧잘 무너뜨리곤 했다. 희망차게 찾아왔다가 더 나아진 게 없는 전망을 가지고 집으로 되돌아간 구혼자의 수는 하늘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메리다는 공주와 세 마디 정도는 나누었었고, 여왕은 재앙과도 같은 첫 번째 만남 이후로 열심히 피해다녔으며, 쾌활한 왕실 얼음 채굴꾼이자 배달업자인 (“너 진짜 저거보단 좀 나은 이름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게 저거랑 ‘얼음 대장’이었어. 그리고 저거 진짜 이름 구리다고.” “‘얼음 대장’은 안 구리고?”) 믿음직한 친구를 이 스코틀랜드 공주가 찾아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마상 경기가 끝난 후 메리다는 슬퍼하며 다른 길로 가게 될 테고, 그 날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흘이면, 마상 경기가 종료된다. 나흘이면, 왕국 간 회의가 끝난다. 닷새 후 메리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배에 다시 타게 된다. 비록 짜증 나는 악동들이긴 해도, 메리다는 어린 남동생들을 다시 보게 되는 걸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다시 아렌델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니면 크리스토프가 던브로치 왕성을 찾아오도록 초대할 순 없는지 궁금해했다. 메리다는 떡대 괴짜를 그리워할 터였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해 보자면…







“얼음 캐는 곰탱이, 나 왔어!” 메리다는 사격장으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며 불렀다. “간밤에 잘 쉬었기를 바라. 오늘은 네가 화약을 다 쓰고 내 손가락이 뼈까지 망가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거든. 힘들 것 같으면 살살해줄게. 네가 일찍 포기하더라도 이해해. 그 정도는 나도 예상했-“



엘사 여왕은 한 손에 고드름을 든 채 옆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왕실 근위병들이 곧장 경계 태세에 들어가면서 병사들이 기둥처럼 여왕의 측면에 서서는 혹시 모를 위협을 감시했다. 크리스토프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메리다는 거대하지만 곧장 덮치진 않는 위협 앞에 서면 시간이 기어가듯 천천히 흐른다는 걸 배웠었다. 그 위협이 자신을 곧장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고 인지력이 열 배로 뛰면서 단 몇 초간의 세세한 장면을 보게 된다. 그래서 메리다의 시야에 여왕의 모습이 잡혔다. 움직이기 편하게 치맛단과 어깨가 넓은 헐렁한 옷을 입고, 머리는 간단히 뒤로 묶어 늘어뜨려 놓았으며 풀려나온 앞머리 몇 가닥이 눈꺼풀 위로 하늘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린 고드름은 날카롭고 매끈했으며 그 길이는 수리검과 비슷했다. 여왕의 건너편으로 사격장 끝에는 과녁이 세워져 있었다. 과녁의 한복판에는 얼음송곳 몇 개가 박혀 있었고, 대부분 한복판에 가까웠지만 정 가운데를 맞힌 건 없었다.



메리다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화약 연기 냄새도, 짠맛의 땀 냄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오기 얼마 전까지 크리스토프가 훈련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들 흘리는 땀을 엘사 여왕이 정말로 흘리지 않는 게 아니라면 여왕 역시 여기서 오랫동안 훈련하진 않았을 터였다. 순간적으로 메리다는 소리에 집중했다. 우레와 같은 특유의 머스켓 소리도, 화살이 휙 소리를 내며 날아가 푹 박히는 소리도 없었다. 여왕 말고는 근처에서 그 누구도 연습하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주 분명한 사실이 메리다를 강타했다. 엘사 여왕이 메리다의 바로 건너편에 서서 묻는 듯한 표정으로 메리다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메리다는 급하게 몸을 굽혀 경례를 올리면서, 예절 수업 때를 떠올려 제 경례를 고치려 했고, 결국 단단히 꼬인 용수철을 밟고 튀는 듯한 모양새로 어색하게 끝마쳤다.



“정말 죄송해요, 엘사님! 그러니까,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여왕님! 그러니까-“



뭐, 이 아가씨는 머저리를 숙녀로 바꿔주려고 시간을 완전히 낭비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게 다행이군. 아니 잠깐만.



메리다는 과호흡을 막으려고 숨을 크게 빨아들였다가, 뭔가 무례하고 웃겨 보이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숨이 기관의 절반을 지났을 때 숨 쉬는 걸 멈추려 했고, 제 숨에 목이 막혀버렸다. 숨을 쉬는 것과 숨을 참는 것을 동시에 하려 했던 메리다는 쿨럭거렸다. 그다지 좋은 순간은 아니었다.



눈물이 고여 흐릿한 데다 반쯤 접히기까지 한 눈으로 본 걸 확실하다고 말하긴 힘들었지만, 엘사 여왕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머스켓을 꽉 붙잡은 여왕의 근위병들은 총구는 치켜들지 않은 채, 숨 쉬는 법을 까먹은 듯한 하이랜드 야만인을 아주 당혹스럽게 쳐다보았다.



“메리다 공주가 맞나요?” 여왕은 확신은 없었지만 과감하게 나섰다. 여왕은 근위병더러 물러나라는 듯 손짓하고는 몸을 들썩거리는 하이랜드인에게 머뭇거리며 다가갔다. 얼음 단검은 수천 갈래 조각으로 부서져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고, 고운 입자가 빛을 쪼개면서 아름답게 반짝였다. “의사가 필요한가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지만, 의사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네요. 메리다는 생각했다.



커흑,” 메리다는 기침으로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



엘사 여왕은 혼란의 나락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는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만약을 대비해서 데려온 의사가 한 명 있을 거예요. 리온, 메리다 공주에게 의사 좀 불러주세요.”



“즉각 따르겠습니다, 여왕 폐하.” 왼쪽의 근위병이 짧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근위병은 동료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간신히 기침을 억누른 메리다를 빠르게 흘겨보면서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죄송해요, 여왕님.” 메리다는 목이 트이자마자 헐떡이며 말했다. “저- 전 여왕님께 폐를 끼치려 한 게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건…” 그 망할 직명이 뭐였지? 장인? 선생? “크리스토프 대장을 찾으러 온 거예요. 저희는 사격장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데이트하기로 했다고? 상호 합의 하에 조롱을 기반으로 한 경쟁을 하기로 했다고? “약속이 있거든요.” 방금 전의 정적을 가리기 위해 급하게 말을 내뱉은 메리다는 말을 이어나갔다. “방해하려 한 게 아니었어요. 불편하게 해드린 것에 다시 사과드릴게요. 전 의사가 필요하지도 않고, 또 여왕님의…” 메리다는 이번엔 정말로 곤란에 빠졌다. 여기서 뭐라 말해야 하지? 연습? 스트레스 해소? 얼음 공연? 주술?



마지막은 말하지 말아야-



“주술을 방해하려는 것도 아니었어요.” 메리다의 입은 뇌가 입을 닫게 하기 직전에 말을 내뱉었다.



방금 말해버렸네, 이 배신자. 이제 도망쳐서 가장 높은 탑을 찾아. 그리고 뛰어내려. 이 미친 저능아야.



엘사 여왕의 표정에서 아까 전의 걱정이 지워졌다. 그 대신, 그 표정에 여러 감정이 빠르게 휘몰아쳐 지나갔다. 놀람, 불신, 짜증, 혼란, 난처함, 이해, 그리고 눈썹을 추켜올림으로써 완성된 짓궂은 미소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내뱉는 나쁜 습관이 있으시네요. 안 그래요, 메리다 공주님?”



메리다는 큰 잘못을 또 터뜨릴까 봐 두려워 입을 열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여성분이 분명 실이랑 바늘을 갖고 계실 거야. 네 입을 영원히 꿰매버리라고 설득시킬 수도 있어.



엘사 여왕은 곤혹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 그래도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공주님께서 꽤… 무례한 추파를 던지셨던 건 설명이 되네요. 제가 잘 몰랐더라면, 방금 게 전부 절 사격장에 몰아넣으려는 치밀한 음모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이리 오세요.” 여왕은 손짓하며 말했다. 손목을 까딱이는 동작 한 번에 여왕의 손안에서 얼음이 자라나며 얼음 단검이 생겨났다. “결국 공주님의 궁술 실력을 보게 됐네요.”



여왕이 무슨 말을 한 건지 메리다가 이해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고, 입을 여는 데 또다시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잠깐만요, 뭐라구요?” 메리다가 불쑥 말을 뱉었다. “여왕님.” 그러고는 빠르게 덧붙였다.



“크리스토프에게서 공주님의 재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듣기로는, 궁술의 달인이라던데요. 전 공주님 옆에 서서 연습하고 싶어요.”



“어…” 메리다가 말했다. 메리다는 또다시 입을 닫고 싶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어서 죄송하지만, 엘사 여왕님, 왜 제가 활을 쏘는 걸 보고 싶어 하시고, 거기다 왜 제 옆에서 연습하고 싶으신 건가요?” 특히 난 그 달인이란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으니까.



“곧장 그렇게 물어보실 거라면,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어서 죄송하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죠. 안 그런가요?” 엘사 여왕은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 젠장.



“정말 죄송해요, 여왕님.” 메리다는 말을 더듬으면서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고, 메리다는 그 느낌이 싫었다.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니에요.” 엘사 여왕은 편안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제 쪽이죠. 제가… 부적절하게 반응한 탓이에요. 화내려는 의도가 아니었어요.”



“네? 아니에요!” 메리다가 성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건, 어, 부적절했던 쪽은 저였어요. 제가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뭐, 제가 그 말을 못 하지는 않았겠지만, 좀 더 나은 쪽으로 말을 해야 했어요. 그러니까-“



“메리다 공주님.” 엘사 여왕은 손을 들어 하이랜드인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다 이해해요. 우리 양쪽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던 거에요. 물론, 공주님께서 그렇게 말을 하지 말아야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공주님께서 긴장하신 걸 알았어야 했고, 그렇게 반응하지도 말았어야 했어요. 어찌 되었든, 잘못은 저의 쪽이 더 무거워요. 전 공주님 특유의 긴장상태에 익숙하고, 그럼으로써 공주님의 말이 거칠긴 하지만 나쁜 의도는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말을 더 조심스럽게 해야 했어요.” 메리다가 대답했다. “제가 생각 없이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고 말씀해 주셨다 해도, 여왕님과의 만남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명거리가 되지 못해요.”



“그럼, 그렇지 않다는 데 우리 둘 다 동의하는 거니까 그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죠. 이렇게 된 김에 저 이야기를 해볼까요.” 엘사 여왕은 고갯짓으로 과녁을 가리켰다. “메리다 공주님, 제 훈련에 공주님을 공식적으로 초대할게요. 훈련 중이던 저를 이미 보셨으니 단정함 뒤에 숨을 필요는 없겠군요. 전 사격장에서 동료가 한 명 필요해요. 특히나 아주 숙련된 동료가요.”



“어어, 하지만, 음…”



네가 여태 온갖 난장판을 만들어 놨잖아. 다음엔 또 충동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지를 건데? 젠장, 이번에야말로 네가 이걸 기회로 만들 수 있단 말이다.



메리다는 등을 똑바로 세워 굳건한 자세로 아주 예의 바르게 엘사 여왕에게 절을 올렸다.



“여왕 폐하, 아렌델의 엘사 여왕님, 제게 가장 큰 영광이자 기쁨으로 여왕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고는 등을 굽힌 상태에서, 경례 자세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메리다는 위를 쳐다보며 여왕에게 눈을 찡긋했다.



메리다의 선제공격이 먹혀들었다. 여왕은 분명 웃음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작게 웃긴 웃었다. 우아하게 손으로 가리긴 했어도 그 미소가 보였다. 자신감이 차오르는 걸 느낀 메리다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럼, 괜찮으시다면 이 사격장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여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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