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극장가 ‘여름 악몽’ 재현될까.

올 상반기 극장가는 어느 때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흥행이 돋보였다. 할리우드의 여름 블록버스터가 본격적으로 개봉했던 지난 5월은 한국 영화의 블랙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이더맨3’를 시작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슈렉3’ ‘트랜스포머’ ‘다이하드4’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에 이르기까지 여름 극장가는 할리우드 영화가 도배했다. 5월의 첫날 전세계 최초로 개봉한 ‘스파이더맨3’가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이후 두 달 이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1위 행진이 계속됐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경우 서울 스크린 점유율이 60%를 넘기도 했다. 이 시기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영화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모은 ‘밀양’(171만) 정도였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분석자료를 살펴보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 영화 점유율은 46.4%(서울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 62.3%에서 크게 하락한 반면, 해외 영화는 53.6%로 37.7%에서 무려 16%포인트 정도 상승했다. 여름시즌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욱 좋지 못하다.

전통적으로 한국 영화의 흥행성적이 좋았던 12월 극장가는 예년과 달리 지난 5월과 비슷한 조짐을 보이고 있어 충무로 관계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12월 극장가는 그야말로 다양한 할리우드의 ‘영화 밥상’이 차려진다.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판타지 액션은 기본이고 스릴러와 가족물도 관객을 찾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영화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할리우드 영화의 ‘대항마’라고 할 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할리우드 대규모 공세에 맞서기보다는 틈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느낌이 강하다. 장르 역시 로맨틱 코미디나 스릴러 장르에 편중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 대 한국 영화, 결국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인가.

12월 주목해 볼 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윌 스미스 주연의 SF 대작 ‘나는 전설이다’(13일 개봉)와 니콜 키드먼 주연의 판타지 영화 ‘황금나침반’(18일 개봉),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액션 어드벤처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19일 개봉), 가족 애니메이션 ‘앨빈과 슈퍼밴드’(20일 개봉), 마지막으로 더스틴 호프먼.나탈리 포트먼 주연의 가족 판타지 드라마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24일 개봉), 리들리 스코트 감독.덴젤 워싱턴.러셀 크로 삼각편대가 이끄는 범죄 액션극 ‘아메리칸 갱스터’(27일 개봉) 등이다.

이들 영화 대부분은 미국과 동시 개봉하는가 하면 벌써부터 공격적이고 다양한 이벤트와 마케팅으로 영화 관객을 유혹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여름 상황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이들 할리우드 영화가 주요 스크린을 차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한국 영화는 설경구.김태희의 ‘싸움’(13일 개봉)과 화장실 코미디 ‘색즉시공 시즌2’(13일 개봉), 한예슬의 스크린 데뷔작 ‘용의주도 미스신’(19일 개봉), 사랑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 ‘내사랑’(19일 개봉), 그리고 스릴러 ‘가면’(27일 개봉)과 천정명 주연의 ‘헨젤과 그레텔’(27일 개봉). 대규모 제작비와 ‘티켓파워’를 지녔다고 할 만큼 대단한 스타가 출연하는 작품은 없다. 다만 ‘싸움’은 김태희의 변신이 주목되고, ‘색즉시공 시즌2’는 전편이 420만명을 동원한 흥행작이라는 점, ‘가면’은 ‘식객’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강우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영화다.

이런 상황으로만 볼 때 12월 극장가는 ‘골리앗’ 할리우드 대작에 맞서는 ‘다윗’ 한국 영화의 대결구도다. 하지만 12월 개봉을 앞둔 영화 관계자들은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와 상대가 안되겠지만, 국내 관객의 눈길을 끌 만한 독특하고 한국적인 소재,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재미를 갖추고 있어 해볼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한국 영화의 흥행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영화 팬들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극장가의 푸짐한 성찬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홍동희 기자(mystar@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