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밀린 홀도를 보자. 레이아 오가나가 중태에 빠진 가운데 아밀린 홀도는 저항군 최선임자로 등장한다. 해군 중장에 상당하는 계급의 저항군 지도부이며 힘든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결연한 의지를 갖춘 장교다. 배우 로라 던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그녀는 부드러운 말씨로 이야기하지만 언제든지 정의를 위해 망설임 없이 자기 희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투사로 표현됐다. 저항군의 관록 있는 여성 지도자라는 입지가 레이아와 겹칠 법도 하지만 캐리 피셔의 캐릭터와는 구분되는 개성도 가지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은 제도미디어를 중심으로 재생산되는 주류문화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악습, 강요된 성역할의 문제를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 제도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극히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여성을 위한 다양한 역할 모형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를 면치 못했다. 뚝심, 배포, 결의 같은 것은 남성성으로 상찬되어왔다. 그러므로 아밀린 홀도 같은 인물상이 [스타 워즈]처럼 미국을 대표하여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화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것은 작으나마 여성주의의 한 성취일 것이다.

[라스트 제다이]는 이처럼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캐릭터를 형편없이 망쳐버렸다. 전편 [깨어난 포스]에서 포 다메론은 엑스윙 한 대를 몰고 타이 파이터 열 대를 수 초만에 날려버리는 경이로운 기량의 전투조종사로 등장했다. 눈부신 전공과 호쾌한 성격으로 저항군 내에 큰 인망과 영향력을 가진 포는 저항군 최고선임자의 계획이 궁금해서 두 번이나 그녀를 직접 찾아가지만 홀도는 전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포는 결국 홀도의 진의를 사실상 적전 도주인 것으로 오해하고 이를 막고자 내란을 일으켰는데 심지어 이 내란에는 동조자가 여럿 있어서 포는 함교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것은 명백히 지휘 실패다. 포가 사리사욕을 추구해 쿠데타를 벌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므로, 올바른 동기를 가진 부하들의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집중시키지 못한 것은 지휘관의 책임이다. 이 무모한 내란에 여러 명의 동조자가 있었다는 것은 이 사태가 충동적인 포의 일탈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홀도의 총체적 불통 탓임을 증명하며 홀도가 저항군의 인적 장악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인원이 내란을 일으켜 전함의 통제권을 탈취할 수 있었다는 것은 홀도가 인적 보안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홀도는 무능하고 오만한 똥별이 되어버린다.

군의 원칙상 홀도는 계획을 알려줄 필요가 없었고 쿠데타는 명백히 포의 범죄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명령을 발하기에 앞서 지휘관은 부하의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도, 또 일견 무모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작전을 지시할 때에는 지휘관은 부하를 납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도 원칙이다. 때로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어야 하는 군 조직엔 특히 중요한 원칙이다. 온갖 병영부조리로 몸살을 앓는 한국 육군조차도 야전교범에서 이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저항군은 애초에 민주정을 수복하고자 결성된 조직이다. 홀도의 지휘철학은 그냥 까라면 까라는 것인가? 왜 홀도는 지휘의 기본도 모르는 싸가지가 되었는가? 제작진이 군대의 ㄱ자도 모르는 문외한들이라서? 아니다.

제작진은 홀도를 의도적으로 망쳐놓은 것이다. 애초에 쿠데타 자체가 어떻게든 줄거리를 비틀고자 봉산탈춤을 춰댄 결과다. 관객이 아밀린 홀도라는 처음 보는 인물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명백하게 밑밥을 뿌린다. 홀도는 선하지 못한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 포에게는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다. 설명은커녕 홀도는 최고지휘관다운 품위도 지키지 않고 플라이보이 같은 속어를 쓰며 포의 강등을 조롱해서 포의 (그리고 관객의) 울화통을 긁는다. 지금 압도적 전력차 앞에 저항군은 풍전등화다. 이 판국에 아무 조치도 없는 홀도의 속셈은 뭔가? 영화가 관객이 이런 의심을 품게끔 만들어놓으니, 결국 포가 홀도를 블래스터로 위협하며 그녀의 발을 묶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은 드디어 저항군이 저항군다운 저항을 재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렇게 관객을 속여넘기기 위해, 여성주의의 탁월한 전범이 될 수도 있었을 홀도의 캐릭터를 내려앉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하를 면전에서 모욕하는 싸가지 상관, 자기 전함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머저리 장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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