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 반에 일어났더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출발하고 없다. 이 알베르게는 아침밥도 따로 주지 않아서 찬물에 커피가루 타마시고 씨리얼바 질겅질겅 씹어먹으면서 길에 나섰다.

아직은 해가 낮아 그리 덥지 않다.

오늘 코스는 주로 이런 시골길

밭에서 만난 고양이. 들에 스스스슥 쥐들이 움직이는게 가끔 보이는데 아마 그런 들쥐 사냥하러 나온 모양이다.

이 근방 와인을 바이하다 와인이라고 하고 나름 와인 트레일도 만들어서 지자체에서 밀고 있는데 하나도 들리지 못하는게 매우 슬픔.

언덕 위의 묘지.

동네 개들은 다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포르투갈 양식으로 타일로 덮인 교회.
도자기 타일은 마치 포르투갈 건축양식의 상징과도 같은데, 사실은 원래 아랍인들이 포르투갈을 지배했던 시절에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아라베스크 양식에서 흔히 그렇듯이 이런 타일의 무늬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꽃, 식물의 그림으로 이루어져있다. 단순 멋뿐만 아니라 태양열을 반사해주기도 한다고.

중세시대 순례여행자처럼 임야에서 채집해서 먹고 산다.

무화과도 득템.

물론 나도 철칙은 있는데 절대로 남이 기른 것은 취하지 않고, 딱 한 움큼만 가져간다는 것. 블랙베리 덤불은 원래 도로변이나 숲에 잡초처럼 자라고, 무화과나 포도 같은 경작용 식물은 자생하는 경우는 드물고 폐가 주변에서 운이 좋으면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맙시다. 특히 성난 포르투갈 농부의 총구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면 더더욱.

블랙베리는 가시덤불에 자라서 따다가 팔토시 다 찢어질뻔하고 열매도 작아서 시간도 오래걸리는데 도착해서 뭉개진거 빼고 헹그고 나면 그 고생해서 따도 한 줌 밖에 안나온다

게다가 다니면서 계속 과일만 찾아다니고 하는건 길도 놓치기 쉽고 까미노의 의미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아 다음 날부터는 무화과나 사과 같은 큰 과일만 가끔 나오면 취하기로 했다.

무슨 단체순례라도 있는지 오늘따라 반대방향 파티마로 가는 순례자들을 적어도 5~60은 본 것 같다. 여기는 아빠와 두 어린이 가족 순례단.

포르투갈에는 곳곳에 이렇게 성모나 성인을 기리는 작은 사당?들이 많다. 특히 시골에는 집집마다 성모/성인 그림이 문 위에 붙어있기도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아게다 초입. 로컬들은 아그다 아그다 이래서 처음에 못알아먹었다.

웰컴투 악다

사실 다른건 별 볼일 없는 도시인데 거리 위에 이렇게 우산 달아놓은게 예쁘다고 이거 사진찍는다고 동양인 관광객들이 꽤 있다.

이런 거리도 있고

여기도 또 우산.
하여간 머리 참 잘쓴 것 같다. 역시 관광자산은 개발하기 나름이다.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동네에 뭐 없나 어슬렁거리다가 별거 없어서 결국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 해결했다. 그래도 동네사람들도 꽤 와서 먹는거 봐서 호구된 느낌은 아니다.

호박수프

오늘도 돼지고기 먹으면 올라올 것 같애서 참치크레프 시켰다. 담백해서 나쁘지 않음.

국민간식인 에그타르트를 먹는건 포르투갈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어로는 파스텔 디 나타.

오늘 온 호스텔은 시설도 좋고 아침도 나오고 다 좋은데 도미토리에 민폐가족이 하나 있어 빡침.

얼라들이 대여섯살 정도 되는데 소리지르고 서로 때리고 그러다가 울고 침대 칸막이에 주먹질하고 정말 난리도 아님. 남자애들이었으면 한 대 쥐어박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심지어 여자애들이다. 애들 추억만들어주고 같이 여행가고 다 좋은데 통제가 안되면 이런 공용숙소는 쓰질 말아야지 아오 시발 호텔 가란말이야

심지어 자면서도 계속 끙끙대고 또 몇번씩 깨서 칭얼대고 애비는 온방이 울리게 코골고 정말 가관이었음

그리고 오른발에 큰 물집이 올라와 걷는게 고통스러워지고 있었다. 이걸 더 방치하면 다음날 걷지 못할 것 같고, 도구도 약도 없고... 괜히 터뜨렸다가 감염되서 까미노 gg칠까봐 두렵지만 어떻게든 계속 걸어야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키친에 있던 이쑤시개를 냄비에 삶아 소독한 다음에 물집을 찌르기로 함. 그것도 이쑤시개 끝이 날카롭지 못해서 한 방에 안들어가고 몇차례나 시도 후에 성공.

급조도구로 셀프치료하니 람보가 된 기분이다.

물집 물 다 빼고 자려고 누우니 호스텔 아주머니가 '너 아까 바늘 필요하다고 했지? 뒷집 할매한테 빌려왔어~' 하고 갖다주시네 허허허

만땅이었던 체력 게이지도 슬슬 고갈되기 시작하고, 고독과 물집과 민폐가족 때문에 멘탈이 산산조각 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