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이었나?

기숙사 생활 땡치고 자취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사무실 창고에서 들어온, 독립한지 얼마 안돼보이는 어린 야옹이를 봤어

어린 나이에 충동적으로 납치해서 데려왔지

사람 따르는 길냥이가 아니어서 첨에 정말 무쟈게 고생했다

집에 잠깐 풀어 놓으니까 냉장고 뒤에 펌프랑 배관 있는 곳에 약간있는 공간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거야

길에서 살던 애니 우선 병원을 데려가야 하는데 안 나오니 억지로 당겨려다가 손 찢어 먹고 암튼 개 지랄 발광을 하다가

얘가 얼굴에 바람 부는걸 싫어하길레 세게 부니까 못 참고 튀어 나오는걸 잡아서 병원에 갔지

가만 있으면 귀여운 애가 어찌나 내가 못살게 굴었던지 가는 내내 전설의 고향 같은데 나오는 한 맺힌 처녀귀신 같은 눈깔로 노려보고 때때로 하악질 하는데 무섭더라

암튼 병원가서 검진을 받는데(의사 선생님도 존나 고생했다. 다칠 까봐 용접 장갑끼고 다루더라)

갑자기 의사쌤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다리에 다치고 곪아서 썩은 상처가 있데

이거 안 자르면 애 죽는다는거야

수술비는 30만원이고

당시에 월급 110 받아서 75 저금하던 내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어

적금이라 깰 수도 없고 모아둔 비상금이 있던 것도 아니고 얘 수술했다간 내가 굶어 죽을 판이었지

근데 얘 수술 안시키면 죽는데잖아

잠깐 시간 달라하고 병원에서 30분 정도 혼자 존나 고민했어

그제서야 생명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더라

나 하나의 한순간의 선택이 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실감

수술을 해도 내가 얠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양이들 평균 수명이 얼마더라 암튼 씨바 존나 별 생각이 다들더라

하지만 결국에 내가 안 잡고 잠깐 만져보고 놔줬으면 모를까 기르고 싶다고 병원까지 데려온 애 아니냐

몰랐으면 모르되 내가 안 순간엔 얘를 죽게 냅두는건 도리가 아니다란 생각이 들어서 결국 수술을 맡겼지

다행히 적금은 안 깨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다음 월급 때 까지 진짜 뒤질 뻔했다

암튼 수술은 무사히 질 되서 다시 1주 후에 데려 왔는데
(간호사가 그러던데 수술 끝나고 얘가 한번 바이탈이 위험 수치까지 가서 죽을뻔 했다더라. 아마 야생에만 있다가 수술 받으면서 약같은데 들어오니까 기생충 같은게 발광하면서 애를 잡을뻔 했다고)

얘 입장에선 길에서 나름 잘 살다가 다쳐서 신경 날카로운데 왠 미친놈이 납치해다가 존나 괴롭히고 어디 데려가선 다리 짤라논 셈이잖아

집에서 나만 보면 기겁해서 도망 다니고, 얼굴 보면 하악질 거리고, 한번 쓰다듬을라 치면 한 10분 정도 조금씩 움직이면서 눈치 존나 보면서 슬로 모션으로 가야 그나마 공격 안 당했다

그렇게 2년을 살았어

나도 중간 중간 존나 빡치지

돈 존나 들여 살려놨는데 2년 넘게 바뀌질 않으니까

한번씩 물리거나 햟(맞춤법 맞냐 이거)키면 3-4번은 참다가도 한번씩은 나도 승질 폭발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겁주고 지랄 많이했다

그렇게 살다가 한 3년 정도 됐을 때 술먹고 들어와서 얘가 또 그러니까 화나서 강제로 목욕을 시켰어

물 싫어하니까

그러고 나서 물기 말리하다 잘하면 손가락 찢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침대에 매트 켜주고 냅뒀지

그러다 천천히 술 깨면서 애가 걱정되서 보니까 추워서 그런지 미친놈이 무서워서 그런지 덜덜 떨더라

내가 진짜 무슨짓을 한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손 어찌되던 얘를 말려줘야 한단 생각밖에 안들었어

수건 갖다가 꼭 안아주면서 살살 눌러서 물기를 말려주는데

난 존나 물릴 각오했는데 의외로 안 그러더라

그렇게 몇 시간 정도 안아주고 그 이후론 다시는 애들이 뭔짓하던 뭐라 안했던거 같아

애교는 걍 포기하고 같이 사는데 의의를둔다 생각하고 그냥 살았어

근데 그렇게하니까 얘가 언제부턴가 누워있거나 쉬고 있는 위치가 나랑 조금씩 가까워 지더라고

그걸 눈치채고 쓰다듬으려고 시도하니까 얘가 지 머리를 내 손에 스윽 밀면서 쓰다듬어달라 하더라고

그대로 만져주니까 얘가 거의 몇 년만에 고로롱 고로롱 거리더라

난 얘 모터소리가 그렇게 큰줄 그 때 알았네

그 이후론 나도 수시로 쓰다듬어주고 하니까 급속도로 사이가 좋아져서 이젠 같이 마루에 있으면 얘가 나한테 놀아달라고 30분에 한번씩 와서 울고 보채는 지경(?)까지 왔어

이게 한 4-5년 걸린듯



암튼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면

사람을 안따르는 고양이, 특히 사람한테 상처받은 고양이는 절대, 절대 절대 맘을 쉽게 열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 애들을 입양했다면 애들한테 어떤 보상을 바라지 마

\'나는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고 아끼고, 해칠 의도가 없는데 너는 왜?\'

이런 마인드가 있으면 너도 지치고 그게 야옹이들 한테도 전해진다

그냥 같이 살아줘

뭘 바라지 말고

남들처럼 낚시줄로 놀아주고 싶고, 이쁜 사진찍어 올리고, 쓰다듬어줘서 고로롱 거리는거 들어보고 싶고, 싫어해도 한번쯤은 안아보고 싶고, 한 이불 한 침대에서 같이 자보고 싶고 이런거 전부

그렇게 살다보면 니가 죽기전엔 반드시 맘을 연다

그전까진 그냥 묵묵히 지켜만 봐주고 사고쳐도 용서해주고 밥 잘주고 화장실 잘 치워주기만 해

그허다가 애가 맘을 열면 다른 고양이가 아무리 이뻐도 니눈엔 니 새끼가 제일 이뻐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