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드라마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치밀한 감정선. 효과적인 감정의 반전과 폭발.
결코 억지스럽지 않은 전개.
특히 두 회의 엔딩과 요양원씬들이 좋았던 한 주,
동훈이는 마음으로 지안이를 가족처럼 받아들인 느낌이고(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
반면 지안이는 제 감정을 각성하지만
그 고마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바로 내려놓는 결심을 한다.
이지안 그렇게 인생의 사수를 만났다.
판타지 같으면서도 현실에 살 것 같은 남자 박동훈,
가여운 동시에 참 이쁘고 아까운 아이 이지안.
캐릭터를 마음에 담게 한다는 것.
그 성의야말로 의심할 수 없는 진정성.
이런 보석같은 드라마를 한 해에 한 편만 만난다 해도 기쁠 것이다.
마치 지안이가 아저씨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할머니께 고백한 것처럼
두 회차의 전개는 이 드라마의 만듦새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안이는 쓰레기 도준영의 말에서 제 감정을 깨닫게 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감정선이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연심이다.)
잠시 동훈이 지안에게서 멀어져가는 순간 그녀의 손에 들렸던 슬리퍼 선물.
동훈은 형 상훈의 안타까운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어 상무후보에 오른 것을 털어놓고 말고
이는 아내 윤희의 오해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시작된 가족들의 각각의 마음은 동훈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상무직에 도전하게 만든다.
한동안의 동훈과 지안의 흔들리던 관계는
동훈이 춘대노인을 찾아가면서 극적으로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동훈에게는 극도의 연민을 갖게 하고
지안에게는 제 감정을 정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10회 요양원씬을 거치면서 그런 생각은 더 확고해 진다.)
9회는 덕분에 마치 하나의 완결된 에피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동훈이 광일과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는
지안의 폭로로 진실을 알게 된 윤희의 죄책감을 더 자극하고 그 불똥은 준영에게로 튄다.
동훈은 아내를 용서하려 애쓰지만 번민은 깊어간다.
10회 엔딩의 뜬금없을 수도 있는 지안의 고백은
동시에 결심의 선언이고 또 그 실천으로서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지안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진 동훈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법도 하다.
너무도 매끄럽고 섬세한 감정선의 전개다.
제작진과 연기자들은 너무도 쉽게 우리를 웃기고 울리며 따스한 동시에 가슴아프게 한다.
캐릭터들은 아름답고 아련하며
대사들은 허투루 씌이는 법이 없다.
10회 요양원씬은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걸고 있는 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드라마에서 흔한 것이 사랑이라지만 이런 사랑도 세상에 있을 거라고.
그 아저씨가 '요즘 같은 세상'이라 더 판타지 같다지만
박동훈은 우리와 같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김원석 감독의 '요즘 시대에 오히려 더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십분 공감하게 된다.
오해나 매도는 짧고 작품은 오래 선명히 기억될 것이다.)
그런 박동훈을 지안이가 인생의 사수로 만난 것이다.
요양원씬의 아름다움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이 그저 요즘 쌍욕을 먹는 개저씨들을 두둔하기 위해
'불행한 소녀'를 의도적으로 셋팅한 선정적인 이야기였다면
이런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지안이는 기능적인 캐릭터라기에는 너무 '예쁜' 아이다.
지안이할머니의 이야기에 나름 공을 들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박동훈은 속보이는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시대에 가려 놓치고 있었을 지 모를 우리 곁의 누군가다.
난 그렇게 믿고 싶다.
그 믿음은 점점 확고해져 가고 있다.
나름 이유있는 혐오와 증오라 해도
그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세상과 이 드라마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말한다.
우리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서로 가여워하고 사랑하자고.
마지막으로 10회를 보며
박작가님과 김피디님이 존경스러워졌다.
각자의 생각에 골몰하는 두 사람
도준영 덕분에 제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지안
8회 엔딩과 이어지는 이 장면들에서
지안이는 도준영의 헛짚은 말 '좋아하는 거야.'를 듣고부터
기분이 미묘해진다.
아저씨가 그럴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들뜨기 시작한 마음은 점점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한 정류장을 더 가게 되지만
그 돌아오는 다급한 발걸음은 제 감정을 말하고 있다.
이후 9회의 여러 장면들은 그 감정을 암시한다.
반면 나란히 서있었던 동훈은
아내로 인한 번민과 상무진급후보자가 된 상황으로 인해
지안이를 알아 보지도 못한 채 혼자 내렸다.
지안이의 변화 역시 알아채지 못한다.
기훈이가 드디어 작은형에게 참치회를 쐈다.
우연히 이루어지는 동훈의 '상무후보' 고백
'꿈은 이루어진다.'
기훈이의 소박한 꿈 하나가 실현되었다.
덕분에 형제들은 모처럼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듣게된 형의 푸념과 소망 앞에서
비밀로 하려 했던 상무후보가 된 일을 털어놓고 만다.
이 고백은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인해 동훈으로 하여금
임원직 도전이라는 하나의 중요한 결심을 하게 하고
남편 대신 시어머니께 전해 듣게된 윤희는
새삼스러운 쓸쓸함을 느낀 채 동훈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또다시 등장한 '어머니 장례식'이라는 이 남자들의 로망.
어이 없거나 한심하다 할 수도 있고
결국 제 자존심 아니냐 욕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 효도'라는 말에 일리 있다 여길 수도 있겠다.
삼형제가 보는 화려한 장례식의 환상을 깨며 등장한 유라 특유의 미소.
왜 이 손녀와 할머니의 장면들을 보다보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는걸까.
이 이야기의 진심을 상징하는 그들의 관계.
괜찮은 요양병원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할머니께 전하는 손녀.
그 눈에는 기쁨이 담겨 있고
그런 손녀를 쓰다듬는 노인의 손길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묻어난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성의껏 쌓아간다면
좋은 장면들에 굳이 대사가 필요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저도 모르게 그의 귀갓길을 쫓는 지안이의 모습
'마음의 병'이 점점 깊어감을 확인시키던 9회.
동훈의 귀갓길을 몰래 뒤따르던 그녀는
차마 따라갈 수 없던 그 현관 앞에서 침울해진다.
또 한 번 그의 마음에 잠시 금이 갔다.
지안이가 버린 돈의 진실을 알게되는 동훈.
금새 변화를 눈치채는 지안이
그리고 그 손에 들린 슬리퍼 선물.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
의도는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지안이가 버린 돈의 진실을 그가 알게 되었다.
하필 그 때 부하직원들이 확인한 건물 안의 금은 우연일까.
이런 작품이라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동훈의 낡은 슬리퍼를 눈여겨본 지안이가
할머니 일에 답례하려고 새 슬리퍼를 사들고 '밥 좀 사주죠?' 말을 걸지만
오늘따라 그는 싸늘하다.
예민한 지안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고
금새 이유를 알아낸다.
엔딩크레딧에 일부러 넣어준 그 낡은 슬리퍼.
동훈의 희생적인 삶을 상징하는 느낌이었고
동훈이 모르는 채 외면해버린 그 선물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 날 밤 따라 커피믹스로 배를 채우던 지안이가 더 가엾어 보였다.
윤희의 짜증에 당황하는 동훈의 상처
동훈이 말하곤 하는 '필요한 거 없어?'와 '미안해!'는
그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남편 잡는 일은 진작 포기했다는 윤희에게
그것은 정말 스트레스였을 수 있다.
물론 지금의 그 말은 참 아니었지만
(이 장면은 10회 후회하는 윤희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덕분에 동훈은 떨어져 구르는 빈 캔들을 보며 울컥하고 만다.
지안과 광일의 통화.
'도둑년' 소리가 오늘따라 아픈 지안과
기댈 언덕이 생긴 지안을 견딜 수 없는 광일.
'도둑년'이라 그랬다며
지안의 추궁에 되려 헛꿈 꾸지 말고 열심히 돈이나 벌라 말하는 광일.
동훈이 무엇을 알게 되었는 지 듣고서는
어둡게 굳어버린 지안이는 제 감정까지 깨달은 후라 더 충격이 컸으리라.
광일이는 확고한 악역이지만(만일 로맨스가 등장한다면 오히려 캐붕으로 보이기도 한다.)
좋은 연기는 이 이야기의 어둠을 보여주는 데 충분히 기여한다.
물어보면 뭐할꺼야. 내려 와서 밥 먹어.
동훈의 어머니가 겸덕이 지내는 사찰을 다녀왔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정희.
결코 돌아올 리 없는 사람을 기다리며 그녀의 마음의 병도 깊어 보인다.
'내 얘기는 해요?'
이어지던 요순의 대사는 그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나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훔쳐듣기를 멈추어버리는 지안이의 상심.
'인생 왜 이렇게 치사할까?' 제 실망에 오히려 실망하는 동훈,
직원들의 자신에 대한 뒷담화 끝에 이어진
아저씨의 '내가 아냐?'는
지안이로 하여금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게 한다.
'달리기! 내력이 세 보여서.'
그 순간 그녀는 근래 자신을 버티게 하는 내력이 그 사람이었음을
슬프게 깨달았을 것이다.
알바하는 식당에서 주방 직원은 그녀가 음악을 듣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럴 만했을 것이다.
정말로 음악을 들으며 허기를 채우던 지안이의 텅 빈 눈.
그 순간 그 소리는 얼마나 의미없는 소음이었을까.
'이제 가냐?'
동훈의 어쩌면 어렵게 건넨 말은 대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이 왜 이렇게 치사한걸까?'
사실은 자신이 치사하다고 말한 것이다.
지안이에게 실망하고 마는 자신.
그 자신에게 그는 지금 실망하고 있다.
지안을 집으로 부른 윤희.
덕분에 동훈의 비밀을 알게되는..
우연히 동훈이 가지고 있던 지안이의 이력서를 발견한 윤희는
지안이를 집으로 부른다.
'니가 하는 짓이 너무 무식하고 무서워.'
지안이를 추궁하고 자신들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며 이리 말하지만
되려 그녀는 반격을 당한다. 그것도 무참하게.
'아줌마, 용쓰지 마요. 박동훈 다 알아.'
이렇게 윤희는 진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 씬의 뒷모습은 그 격정의 감정선을 드러낸다.
앞으로의 전개에서 궁금한 하나는
그리 지안이를 무시하고 싫어했던 윤희의 마음이
바뀌는 상황이 올 것인가
그런 대목이다.
이 지안이의 장면과 박동훈이 노인을 찾아간 장면은 거의 한묶음으로 처리된다.
그러면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윤희는 지안에게서 동훈의 비밀을 듣고
동훈은 춘대로부터 지안이의 비밀을 알게된다.
(골목길을 걸을 때 흐르던 잔잔한 비쥐엠도 그대로 좋지만
이 긴장감을 위한 특유의 비쥐엠도 근사하다.)
9회의 하이라이트였던 춘대어르신을 찾아간 동훈의 장면.
그 꽃다발과 졸업사진의 뭉클함.
마음이 어디 논리대로 되나요?
어르신, 존경합니다.
잠시 흔들리던 동훈의 지안에 대한 연민과 정이 극도로 깊어지던 순간.
동훈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는 오천만원의 진실'을 알기 위해
춘대노인을 찾아간다.
그리고 놀라운 사연을 전해듣게 된다.
지안이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 지.
노인은 지안이와 어떤 관계인 지.
(다만 그는 지안이가 광일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다.
그래서 라스트씬의 극적인 감정선이 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지안이 모친의 채권자였던 노인이
다른 이들과 달리 초등학교 졸업식 날 혼자인 채 버려진 지안이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도 분하고 억울하련만
원망이 그 아이에게 향하는 대신
그는 꽃다발을 사서 건네며 사진까지 찍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에 이른다.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가.
잠시 지안이에게 실망했던 박동훈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동안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주체하기 어려워진다.
이 감정선의 표현도 참 좋았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는 노인에게 깍듯이 인사를 드린다.
존경한다는 찬사와 함께.
'마음이 어디 논리대로 되나요?'
이 이야기 자체가
그 논리대로 흐르지 않는 마음의 드라마다.
정확히 말하면 요즘 세상의 논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 '논리의 관성'에 익숙히 살던 우리가 고맙게 만난 작품이다.
박동훈은 이광일의 사무실을 전해 듣게 되고
노인은 지안이에게 전화를 한다.
나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놈들은 다 죽여.
은연중에 동훈의 지안이에 대한 마음이 그 '식구'에 담겼던 것은 아닐까.
가장 아픈 치부가 밝혀지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신을 이해하고 대신 맞서주는 그 아저씨의 음성 앞에서
마음의 빗장은 완전히 부서져 버린다.
정말 이 엔딩을 위해 9회가 진행된 느낌이었다.
동훈이 광일이의 사무실을 향해 가는 도중
지안이에 대한 연민과 광일이에 대한 분노는 점층되어 간다.
지안이는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달리는 중이다.
광일은 초반부터 엄청난 적의를 드러내고
어떻게 그런 애를 팰 수가 있냐고 울부짖으며 맞받아치던 동훈.
하지만 광일이의 고함소리가 그를 잠시 얼어붙게 만든다.
'그 년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고.'
지안이의 발걸음이 뚝 멈춘다.
심지어 돌아선다.
'나였어도 죽여.
내 식구 패는 놈들은 다 죽여.'
망연자실해 있던 동훈은 광일이 비웃으며 돌아서자
그렇게 말하며 다시 덤벼든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가진 박동훈이라서
그 순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흡사 '식구'는 지안이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지안이를 포함한 것으로 들리기도 했다.
4회의 건축업자를 찾아간 장면과 이어지기도 한다.
생각지 않은 아저씨의 울분에 찬 음성과
치고 받는 그 소리들이
돌아섰던 지안이를 눈물짓게 하다가
결국 주저앉아 아이처럼 목놓아 울게 만든다.
잠시의 원망과 슬픔은 그 울음 속에 깨끗이 씻겨 내려간다.
감독의 공들인 연출과 더할 나위 없는 연기가 강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내 식구 패는 놈들은 다 죽여.'를 외칠 때의 균횽의 연기도
그저 감탄을 자아냈다.
광일이에게 엄포를 놓던 '3형제의 싸움실력'에 대한 대사는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결기로 들리기도
참기만 하며 오래 드러내지 않던 깡을 담은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9회가 끝난다.
너 아직 대답 안 했어. 빚이 얼마냐고.
동훈을 다시 오해하는 광일
아무 대꾸도 없이 가버렸지만
저 동훈의 말 앞에 광일이는 좀 멍해졌을 것이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는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지안이가 그저 빚을 갚고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살았다면
그는 증오의 힘으로만 견뎌온 놈이니까.
(반면 도준영을 살게 하는 건 욕망이다.)
지안이가 결국 갚아버린 남은 빚 역시
동훈에게서 받은 것이라 오해하게 되기도 한다.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 두 남자 사이의 앞으로의 장면들도 궁금해 진다.
피투성이가 되어 온 동훈을 걱정하고 대신 분노하는 사람들.
안 그래도 울고 싶던 윤희의 뺨을 엉망이 되어 나타난 동훈이 때려준다.
지안이가 듣는다. 그의 신음 소리를.
한 다리 건널 필요도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그 동네의
유별난 조기축구회 멤버들이 보여주는 의리를
이 장면은 잘 드러낸다.
그러는 와중에 터지게 하는 대사들도 재미를 준다.
'우리 형. 우리 형이라고.'
기훈은 동훈의 참 대단한 동생이다.
동훈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무너져내린 윤희의 눈에
참담한 동훈의 몰골이 들어온다.
그나마 동훈은 축구하다 다쳤다고 둘러대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그녀는 눈치도 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울고 싶은 그녀다.
하긴 이 드라마가 그렇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을 견디다 울고 싶은 우리의 뺨을 때리고 있다.
하지만 아프기보다 시리면서 따스한 싸닥션이다.
동훈이 걱정되어 '정희네'를 훔쳐보는 지안은 눈치를 본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켜놓은 그의 일상 속에
자신 때문에 피투성이가 된 고통이 오롯히 들려온다.
이제 지안이가 절대 외면할 수 없게 된 타인의 소리다.
그녀의 충혈된 눈가가 촉촉하다.
지안이가 드디어 슬리퍼를 아저씨께 선물했다. 공손한 인사와 함께.
사랑 때문에 흔들리던 소녀가 달라졌다.
덕분에 할머니를 좋은 병원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며 슬리퍼를 선물했다.
요전날 기회를 놓쳤던 그 선물이다.
공손한 목례와 함께.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를 만나 건넨다.
연출은 이 '기다림의 시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안이는 전날 밤의 사건을 겪으며
이제 차분해 보인다.
행여 자신이 욕심내다가 해를 끼쳐서는 결코 안 될 사람인 것이다.
돌아서 가려는 지안이를 아저씨가 불러 세운다.
네 빚 얼마야?
다 갚았어요.
그랬다.
'더러운 돈'일망정 바로 갚아버린 것은
행여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까 봐서였다.
(하지만 이 '더러운 돈'과 '더러운 일'은
앞으로 남은 가장 험난한 숙제다.)
가족애와 인간애가 빛나던 아름다운 요양원씬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들리던 그 '선생님'이라는 호칭.
그렇게 마음을 주고 받는 사람들.
9회 엔딩과 함께 가장 좋았던 장면이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가족애와 인간애가 오롯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에 주고 받을 수 있는 그윽한 정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해서다.
우리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도 대단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은
10회까지 성실하고 진득하게 쌓아온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에서 온다.
동훈이 또다시 할머니를 업고 그 계단을 내려온다.
택시에 모시는 손길을 자상한 기사가 열심히 돕는다.
왠지 그 아저씨께도 눈길이 잠시 머문다.
요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
할머니가 손녀를 향해 웃어주자 지안이도 따라 웃는다.
그들은 웃는데 보는 우리는 시리다.
지안이가 수속을 밟는 동안
동훈은 할머니의 군것질거리를 챙긴다.
그 바른 사람의 손길을 보며
할머니가 펜을 놀리기 시작한다.
'내가 이제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심이 되요.
우리 지안이 곁에 선생님처럼 좋은 분이 계셔서.'
그를 동훈이 바라본다.
할머니의 포근한 미소는 우리에게 그렇듯
고통스러울 동훈의 마음에도 잠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그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마치 축복의 기도를 하시는 것도 같고
입맞춤을 하시는 것처럼도 보인다.
황송해 하면서도
동훈의 눈길이 그 눈빛을 마주받는다.
날서지 않은 마음과 마음이 교차한다.
'선생님'이라는 그 호칭이 새삼스럽다 싶다.
하긴 아저씨는 이미 지안이의 인생 선생님이다.
그녀의 사수다.
이어지는 씬의 두 사람이 그를 잘 보여준다.
어차피 손녀가 자주 할머니를 뵈러 올 테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이별의식이 이루어진다.
마주 보며 머리를 맞대는 그들.
다시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런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순간을 영원처럼 살기도 한다고.
우리의 시간은 저들 못지않게 진득한 지 돌아보게 된다.
지나간 거 아무 것도 아니야.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거야.
이름처럼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
일부러 한참 거리를 두고 앉던 지안이.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생각하면
남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게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그거 아무 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이름대로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
누군가의 리뷰처럼
동훈과 지안이 주고 받는 대사들은
굳이 겸덕을 거치지 않아도
선문답 같다.
하지만 또 어렵지 않다.
'평안함에 이르다. 편안하게 되다.' 정도일
지안이의 이름.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의 굴곡을 실감해 버린 지안이
그 스승을 만나
조금씩 편안해져 가는 게 보인다.
성숙해 가는 여정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버팀목'이란 것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실감하며 보게 된다.
잠시 '동녘 동'에 웃고 말았다.
지나치려는 버스를 보고
처음으로 동훈이 지안과 함께 뛴다.
지안은 일부러 한참 떨어져 앉는다.
그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허락된 거리라고
결심했을 것이다.
'사랑의 방식과 색채'는 단답형이 아니다.
너 내가 망하게 할꺼야.
눈치 보느라 안절부절이던 도준영.
지안이 때문에 싸우다 다친 동훈의 사건이
엉뚱하게 윤희를 통해 도준영을 옥죄인다.
반면 동훈에게 준영은 그런 수고를 할 가치가 없는 존재다.
그를 듣는 준영은 열등감으로 인해 자멸해 간다.
준영이 나가고 난 뒤에도
지안이는 소중한 식사를 열심히 할 뿐이다.
그녀에게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어났다.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배려하는 동훈
윤희와 동훈의 어색한 식사시간
부부를 보는 지안.
김대리가 총대를 메고
팀원들은 지안이와 어울리려 애쓰기 시작한다.
물론 지안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장님을 위해서지만.
동훈이 그들을 거들어 지안이는 회식에 참석한다.
1차뿐이었다지만.
아들들의 개업축하를 하러온 며느리 윤희와 다친 동훈을 위해
어머니가 김치찜을 차려 내신다.
상훈은 못마땅해하는 어머니께 이거 술 아니고 약이라고 둘러댄다.
한편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군가들에게 그것은 '약'이다.
어느덧 동훈과 윤희 사이에 어색함이 흐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시 어색함이 지워진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퀴즈를 경쟁하듯 맞추는 두 사람.
그 목소리를 지안이 듣고 우연히 지나쳐가는 차를 지켜본다.
그건 외로움일까 부러움일까.
마음을 다잡으려 마음은 먹었지만 쉽지는 않다.
한동안 그럴 것이다.
(회식 자리에 아저씨가 있었다면 지안이는 몇시에 갔을까. 궁금해진다.)
두 개의 분할장면
비상금을 숨기려던 상훈과
유라의 전화에 잠이 깬 기훈.
웃음을 자아내던 장면이다.
'방바닥에 돈이라도 숨겨뒀냐.' 이 대사도.
흥신소를 하는 전직형사에 의해
광일과 준영이
지안이할머니를 업고 내려오는 동훈의 사진을 본다.
혹 광일과 준영이 대면할 일이 있을까.
그는 불길한 징조가 될 것이다.
그로 인한 위기를
지안이는 사뿐히 돌파한다.
영리함이란 면에서도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다.
조금씩 펴지고 있는 유라의 구김살.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기훈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아니 잘 될 것 같애.
가끔 '노팅힐'도 생각해.
네가 줄리아 로버츠 같은 탑스타가 되서
내 생각에 여길 찾아와 주면 어떨까.
아무도 없을 때 '정희네'서 술 한 잔 하고 갔다는 소릴 들으면 어떨까.
내가 널 붙잡으면 어떨까.
그냥 잘 날려 보내야지.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널 보면
되게 쓸쓸할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을 것 같애.
여기서 이렇게 살아도
내 인생이 영화 같을 것 같애.
송배우의 목소리라서 덜 닭살 돋던 저 대사.
조금씩 유라의 구김살이 펴지는 것도
기훈이 스스로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보게 된다.
'그냥 걸었어.'를 부르며 기훈을 놀리던 상훈의 장면과
저 말도 안 되는 주차차량 때문에 좌절하던 기훈의 장면이 재미있던.
아무리 그래도 우리 이웃 간에 기본매너는 지킵시다.
민망함도 얼얼한 뒷통수도
김대리의 몫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