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책이 되라는 것.

책을 읽는 사람은 책에 밑줄을 긋는다.

책을 읽는 사람이 책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국을 여기 저기 남기는 것.

그리고 책에 그어놓은 밑줄 또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어느 샌가 들어와 다정한 자국을 깊이 새긴다.

책은 언제든지 접어두었다가

어느 날 또다시 펼치는 것이고

언젠가 책에 밑줄쳤던 그 자국들이

책이 자신의 마음 속에 새겨두었던 마음의 자국과 다시 만나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그렇게 사람이 사람과 책으로 만나는 것은

일회적 관계가 아닌

지속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현대 사회에서 잃어가는 낭만의 가치를 이야기한다고 봄.

그것은 예전에

"최시인 에피소드(시인의 죽음)과 은호-단이의 느릿느릿한 사랑법"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우리 드라마는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낭만'(=시)의 가치를

은호와 단이의 서사를 통해 아름답게 보여주었던 것이고

은호와 단이는 앞으로도

최시인이 쓰다 만 시를 삶으로 써내려가며

강병준 소설가의 유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책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자국들을 새겨 나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작가가 우리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려 한

'책이 되어 만나는 사람과 세상'.

좋은 메시지라 생각하고

세상에서 거짓된 모습으로 잊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작가 연보를 완성해

세상과 다시 만나

새로 출간된 0423(푸른 밤)으로 '두고두고 읽힐'

차은호와 강병준의 이야기(새로 출간된 판본에 실린 강병준과 은호의 사진, 그리고 은호가 작성한 새 연보는 감동적임)

를 통해 이 메시지를 잘 보여준 거 같아 좋았다.

4월 23일은 위대한 문학가가 죽은 날이지만 동시에 세계 책의 날이기도 함.

세계 책의 날은 스페인 등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을 선물하는 날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0423 소설 제목은 단순히 강병준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만 담은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책이 되라는 강병준의 유언을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적으로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좀 했었고 다른 흑염소들도 많이 이야기들 했으니 좋은 부분만 씀. ㅋㅋ

16화는 많이 좋았음. 마지막이 좋으면 흑염소가 매우 너그러워지고 다정해짐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