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내 손목에 수백 수천의 시계를 찬다고
그 시계가 내 가치를 반영해주지 못한다.

오늘 대학교시절 은사님을 우연히 뵙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안경을 낀
흰 터럭머리를 가진 그 노인네는 십년 전보다 더 늙었지만 해맑게 웃으며 옛 제자를 맞아주는 그 얼굴은 한결 같았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를 하다 고위관료까지 하신, 재산도 남부럽지 않을만큼 모았을 노인

나는 노인의 팔목에 달린
너덜너덜 헤져서 속이 다보이는 가죽시계를 본다.

아마 수십년은 차셨을, 허름한 은통 시계.
그래도 관리를 잘하셔서 아직도 광이나는 시계

나는 그 시계를 보며 나의 왼손에 자랑스럽게 달려있는 시계가 몹시 부끄러웠다.

보너스로 받은 돈에 수중에 있던 얼마 안되는 돈을 합쳐서 무리해서 산 600만원짜리 시계.
나는 그 돈으로 부모님의 30주년 결혼기념일 여행을 보내드릴까 했으나, 한번 차보기나 해야지 하고 들어갔던 부띠끄에서 그날 바로 결제를 하였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허영심에 가득차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시계를 샀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옷도 시계에 맞춰서 입고 다녔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마음 어느 구석에서 내 시계를 의식하고 있던 것이다.

커피를 들때도, 전화를 할때도, 나는 내 시계를 항상 의식했었고 내 시계가 나의 정체성의 표상이었다.
나의 삶은 내 시계가 지배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수십 년동안 주인의 손목 위에서 이쁨받았을 은사님의 은통 시계 앞에서 나의 허영심으로 똘똘뭉친 시계가 부끄러웠다.

그렇다. 시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것을 차고있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었다. 저 허름한 은통시계를 내가 차면 그 시계는 중고로 팔 수조차 없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시계가 사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계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시계를 풀어 장농 깁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아마 내 자신이 저 시계에 어울릴 만큼 사회적으로, 인격적으로 떳떳해질 때

그 것이 오년이 되든 십년이 되든
그 때 다시 꺼낼 것이다.


외유내강. 겸손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