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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Memories Of October - 03

여우같은꽃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9.12.21 22: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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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안의 분위기는 경쾌했다. 말수 없는 친구가, 바 안에만 서면 수다스러워지는 것이 흥미로워서 기섭은 자주 이 곳을 찾았다. 경재가, 플레어 바에 취직했다고 했을 때 기섭은 무어라 말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경재의 어깨만 두드렸다. 그래도 고등학교 다닐 땐 싸움꾼으로 소문났던 그가 그래도 한 곳에 정착했다는 것이 기섭은 흐뭇했다. 첫 출근 날 여자 손님들이 하는 얘기에 맞장구를 쳐줄 줄 몰라 멀뚱히 보고만 있던 경재는 좀 웃겼지만 일 년여가 지난 지금은 또 달랐다.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불쇼를 선보이곤 했다. 선이 딱 떨어지는 블랙 진에 운동화를 신고, 유니폼인 흰 와이셔츠와 베스트를 맞춤하게 갖춰 입은 경재가 고등학교 때의 그 김경재와는 사뭇 달라서 기섭은 가끔 놀라곤 했다. 윽박지를 줄만 알던 그가 부드럽게 속삭일 줄도 알게 되고, 잘 웃지 않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을 띄우며 손님들을 손 안에 가지고 노는 김경재는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술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졸업 전시회에 내야 할 작품을 퇴짜맞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섭은 우드락에 붙인 사진을 옆구리에 끼고 경재가 일하는 바를 찾았다. 테이블은 꽉 차 있었고, 바에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시계를 보니 쇼는 이미 끝났을 시간이었다. 그럼 좀 얘기할 시간이 나겠군 싶어서 기섭은, 남은 한 자리를 꿰어 차고 앉았다. 낯이 익은 매니저와 바텐더들이 기섭에게 요란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하나하나 답해주며 기섭은 작품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데낄라 선라이즈를 주문했다. 경재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었다. 오늘은 술을 진탕 마시고 싶었다. 경재는 기섭의 옆에 그린 듯 앉아 있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어 그런지 이야기가 잘 들렸다. 남자는 이미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경재가 기섭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차가운 얼음물을 만들어 남자에게 건넸다. 컵을 받아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남자의 목이 곧았다. 기섭은 말없이 앉아 잔 안의 시럽과 주스와, 데낄라를 저었다. 그레나린 시럽이 잔 안에서 휘적휘적 맴돌았다.

 경재가 잠시 자리를 떴다. 고개를 숙인 남자가 어깨를 들썩였다. 우는가 싶어 기섭은 곁눈으로 남자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우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김경재! 기섭이 다급하게 경재를 불렀다. 이 쪽을 돌아본 경재가 남자의 동태를 보곤 재빨리 다가왔다. 남자는 곧 게워낼 것 같은 표정이었다. 경재가 남자를 부축하려 하자 남자가 경재의 손길을 뿌리쳤다. 됐어요. 경재가 다시 남자의 팔을 붙들자 남자가 날선 몸짓으로 경재를 밀쳐냈다. 뒤로 주춤 물러난 경재가 기섭에게 눈짓을 했다. 기섭이 스톨에서 훌쩍 내려섰다. 제법 힘이 좋은 경재였지만 술에 취한 성인 남자를 가누기에는 좀 모자랐다. 경재가 스톨에 앉아 있는 남자의 등허리를 감싸안았다. 됐다니까! 남자가 버둥질을 치려 했지만 이미 기섭이 남자의 어깨를 잡은 뒤였다.

 됐다는 사람치곤 참, 시원스럽게 게워내고 있었다. 화장실 끝 칸에 주저앉아 먹은 것을 게워내고 있는 남자의 등을 보며 기섭은 담배를 한 대 꺼내물었다. 화장실에 담배 연기가 차올랐다. 남자가 켁켁댔다. 등을 두드려 주던 경재가 기섭의 담배를 나꿔채 꺼 버렸다. 기섭은 뜻밖의 행동에 놀라 경재를 그저 멀거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행동이 과했다 싶었는지 경재가 미안, 하고 짧게 한 마디를 던졌다. 기섭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남자의 이름은 김기범이라 했다. 그는 오늘 실연당했다 했다.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바의 문 앞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던 기범을, 오픈조였던 경재가 거두어 저녁도 먹이고 술도 조금 준 모양이었다.

 "실연당한 사람한테 술을 왜 줘 미친 새꺄."

 대강 이야기를 듣던 기섭이 내 기범 앞에만 서서 셰이커를 흔들던 경재를 타박하자, 경재가 오른쪽 눈을 스윽 밀어 올렸다. 심기가 불편할 때면 으레 그렇게 표정으로 드러내는 경재를 잘 알고 있었기에 기섭은 더 이상 말을 않고, 기범이 횡설수설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잘 것이지 술은 왜 먹습니까. 제일 추한 꼴인 거 몰라요?"

 기섭이 다그치자 기범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얇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첫 기념, 히끅, 기념일 때 여기서 파티, 끅, 파티했었, 히끅, 했었어요."

 게워내고 나니 정신은 조금 들었는지 아까보단 또렷한 발음이었다. 벌써 새벽 한 시였다. 꽉 찼던 테이블이 드문드문 비기 시작했다. 가장 구석자리에 있는 테이블을 치우고 온 경재가 기범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기섭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양을 보았다. 애교살도 뵈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은 기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

 
 기섭은 소파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쓰러져 잠들어 있는 기범을 멀거니 보았다. 성형이라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똑한 콧날에 얇은 입술이 어찌 보면 예뻤지만 또 어찌 보면 참 잘생겼다 싶은 모호한 얼굴이었다. 바 안이 한산해지고 있었다. 분주히 뒷정리를 하고 돌아다니던 경재가 기지개를 크게 켜더니 기섭의 옆으로 다가와 풀썩 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뱃갑에서 어느새 한 개피를 꺼내 문 채였다.

 "너 임마."
 "왜 임마."
 "나 그냥 가냐?"
 "왜?"
 "새꺄 오늘 좆돼서 술이나 한 잔 할까 하고 온 건데 이게 뭐냐 이게."

 하며 기섭은 턱 끝으로 작게 코를 고릉거리며 잠들어 있는 기범을 가리켰다. 경재가 어깨를 으쓱했다. 와이셔츠에 가려진 탄탄한 어깨가 기섭은 내심 부러웠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니 근육이라도 키워야지 싶은, 그런 마음 때문에 더 눈길이 갔다. 목을 두어 번 휘휘 돌린 경재가 피곤한 얼굴로 눈을 두어 번 끔뻑였다.


 -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는지, 경재는 긴 한숨을 쉬었다. 잠든 기범은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렇지만 굳이 경재가 그를 집 안에 들일 필요까진 없었다. 그냥 어디 모텔이나 하나 잡아 주고 집으로 와 버리면 될 일이었다. 사실은 그러려고 했었다. 안쓰러운 것과 귀찮은 것은 별개였다. 그래서 경재는 하나밖에 없는 침대에 기범을 뉘어 놓으면서, 씻고 이를 닦으면서, 잠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내내 이 남자를 자취방으로 들인 이유를 찾아내려 애썼다. 그리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불쌍한 새끼. 경재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냉장고에 있던 캔맥주를 왈칵왈칵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여자한테 차였다고 저렇게 찌질하게 구는 새끼도 드물지. 경재는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냉장고에 있던 캔맥주를 거덜내고 나서야 경재는 맨바닥에 덜렁 드러누웠다.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었다. 이불을 몸에 돌돌 감은 채 잠든 기범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경재는 저도 모르게 그 숨소리에 맞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이불 덮고 싶다. 경재는 고민했다. 같이 잘까? 그러나 싱글 침대는 성인 남자 혼자 눕기에도 벅차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경재는 팔을 머리 뒤로 고여 베고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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