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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디까지나 소꿉놀이니까. (6화)

라갤러(1.11) 2024.05.11 11:13:18
조회 630 추천 17 댓글 3
														

제6화 허구에 집착하는 그녀


"그런 고로 나 이번엔 일주일쯤 안 돌아오니까. 싸우지 마라 니들?"

"안 싸우거든. 그치, 소이치로?"

"그럼."

사진가인 아야 형이 또 외근을 나가기 때문에 한동안 나와 미쿠 둘이서만 지내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남녀가 셰어하우스에서 단둘이.

이런 건 완전 두근두근 시추에이션――――일 리가 없다.

나와 미쿠는 진짜가 아니지만 진짜 남매니까.

뭐 한순간 착각할 뻔하긴 했지. 그 저녁놀 진 곶에서 미쿠와 몇 년 만에 키스를 해 버렸을 때……나는 미쿠를『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었다.

그때는 허구와 현실이 조금 뒤죽박죽되었을 뿐이다.

즉 미쿠의 연기가 너무 굉장해서 우리들은 정말 연인 사이라고 착각했을 뿐.

실제로 나는 그 뒤 바로 원래 정신상태로 돌아왔다. 연인역의 연습을 칭한 소꿉놀이도 그 후로 몇 번이나 하고 있지만 이미 내성이 생겼는지 묘한 감각이 된 적은 두 번 다시 없었다.

그보다 당연하지.

애시당초 가족 상대로 진짜 사랑에 빠질 리가 없으니까.

"그럼 잘자.""그래 잘자라."

"후와암~……안녕.""엽. 안녕."

서로의 웃는 얼굴로 하루가 끝나고, 그리고 또 서로의 웃는 얼굴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런 관계를 가족이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느모로 어떻게 봐도 매우 평온한 가족이었다.


그날 밤도 서로 1층 거실 소파에 있었다.

미쿠는 전병을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대화는 특별히 없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차분함이 가정이란 거다.

왠지 모르게 TV로 눈길을 주니 때마침 이런 장면을 하고 있었다.

『카나짱, 립색 바꿨구나. 되게 잘 어울려.』

『눈치채셨어요!? 주임님이 좋아한다고 했던 색으로 바꿔 봤거든요!』

『그건 기쁘네. 그런데 카나짱은 립스틱이 왜 있는지 알아?』

『네……?』

『립스틱은 말야――남자 입술에 밀어붙이기 위해 있는 거야.』

『아, 잠깐 주임님……안 돼, 요…….』

쭈웁.

……뭐야 이 개썰렁한 드라마는. 거실이 얼어붙겠네.

그치, 미쿠? 하고 동의를 구하며 옆을 보니.

그 녀석은 먹다 만 전병을 든 채 입을 떡 벌리고 TV에 몰입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소름끼치는 미소.

"……립스틱은 남자 입술에 밀어붙이기 위해 있는 거래."

왠지 모르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하. 그걸 현실에서 말하는 놈이 있으면 전력으로 촙 나가지. 채널 바꾼다―?"

"그런데 나, 최근 연기가 좋아졌다고 하거든. 사랑에 빠진 여자의 표현력이 오르기 시작했대. 소이치로랑 키스를 한 게 연기의 힌트로 이어진 것이올시다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그리고 그 말투 그만."

"한 번 더 키스가 해보고 싶소이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맞았다.

그 곶에서 키스를 한 이후로 우리들의 연인놀이에 키스는 없었다.

당연하다. 그날만이 특별하게 이상했다.

그 후 우리들이 하고 있었던 것은 팔짱을 끼고 걸어보거나 즉흥적으로 연인스러운 대화를 해본 것뿐. 늘 하던 소꿉놀이와 대차 없다.

하지만 미쿠는 역시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또 그 특별하게 이상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고로 잠깐만 있어봐!"

소파에서 일어난 미쿠는 2층으로 달려올라갔다.

립스틱을 한손에 들고 거실로 돌아온다.

"이거 시제품인데 남겨두길 잘했다. 나, 평소에 립스틱 같은 거 안 쓰니까."

반전시킨 핸드폰 카메라를 거울 삼아 그 핑크색 루주를 입술에 발라 간다.

정말로 또 할 셈인가――――나와 키스를.

"야, 미쿠……."

"응―?"

이제 키스는 그만하자.

그 단 한마디가 어째선지 나오지 않았다.

미쿠는 립스틱을 바르면서 곁눈질로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아, 혹시……싫어?"

싫지 않아.

결코 싫지 않아서 곤란한 거라고.

"아니면 미안한데 이 이상 키스하면 어쩌다 진심이 돼 버릴 것 같다든가? 그럼 나는 딱히……."

"하, 하핫. 무슨 소리야."

의기소침해진 미쿠를 안심시키듯 나는 말했다.

"어릴 때 말했잖아.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매라고. 그런 의미로『좋아』하진 절대 않는다고. 진심이 될 리가 없잖아."

"그럼……키스해도 괜찮아?"

그것은 이야기가 별개다. 당연히 안 되지.

미쿠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있잖아. 아카이 선배랑은 한 적 없다고……했었지."

"키스 말야? 응. 그런 분위기가 된 적도 없어. 그러니까 소이치로가 아니면 안 되는데……."

"왜 나랑은 그, 그렇게 태연하게 키스를 할 수 있는 거야."

"어? 왜냐니. 남매니까 아니겠어?"

미쿠는 신기하게 고개를 갸우뚱한다.

"남매면……괜찮은, 거야?"

"반대로 왜 안 되는디?"

……왜일까.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확실히 남매끼리 아무리 키스를 한들 서로 진심이 될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남매 간의 키스라면 바람조차 아니……겠지?

그러니 나는 웃으면서 말해 주었다.

"조, 좋아, 알겠어! 나로 괜찮으면 얼마든지 연습대로 사용해!"

애당초 이 흐름에서 키스를 거절하면 미쿠에 대해'진심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꼴이잖아. 자신은 이성으로 보이고 있다고 생각되면 끝, 우리들은 남매로 있을 수 없게 된다. 이 절대적 신뢰관계에 금이 간다.

"……정말 키스해도 되겠어? 싫지 않아?"

"야, 야. 자기가 말해놓고 왜 사양하는 거야. 그치만 이건……소꿉놀이잖아."

그렇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꿉놀이. 연인놀이. 미쿠의 표현력 향상을 위한 연습.

"그럼……사양 안 한다?"

핑크색 립스틱을 다 바른 미쿠가 몸째로 이쪽을 돌아본다.

립스틱을 바른 미쿠는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미소만 지었는데 벌써 빨려들어갔다.

이 녀석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엄청난 동화(허구세계) 속으로.

아카이 선배의 얼굴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 거짓된 세계에선 진정한 연인의 존재 따위 무대 밖으로 튕겨나가 버린다.

"아까 드라마처럼 해 보자? 처음엔 소 군의 대사부터 부탁해."

"그래……어, 어어, 미짱, 립색 바꿨구나. 되게 잘 어울려."

"눈치챈 거야!? 소 군이 좋아한다고 했던 색으로 바꿔 봤어!"

"눈치채고 자시고 내 눈앞에서 발랐으니까."

"우후. 그랬지. 하지만 남친이 어울린다고 하니까 거짓말이라도 기쁘다."

"…………………."

일부러 찬물을 끼얹어 봤는데 미쿠의 강고한 허구세계는 이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남매가『진짜』이고 연인은『거짓』이다. 그 점은 절대로 착각하지 마라.

"소 군, 알아? 립스틱은 있지, 남자의 입술에 밀어붙이기 위해 있는 거야."

"어, 어라? 그건 내가 할 대사가……?"

"이제 대사 같은 건 됐어. 이 립, 소 군의 입술에 밀어붙여 주·울·게♪"

또 현실과 허구의 구별이 안 되게 하는 말을 하고――.

미쿠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쳐왔다.

심지어 그것은 이전 같은 가벼운 키스가 아니었다.

"으응……! 자, 잠깐, 미쿠, 왜……으움!?"

"밀어붙이겠다고……하앗……했잖아……쭈……."

입술로 쪼아먹듯이 끼우거나 살포시 빨아오거나.

내 입술에 어렴풋이 달콤한 립을, 듬뿍 발라댄다.

내 뺨이나 콧등, 눈썹 등, 얼굴의 도처에도 그 부드러운 입술로 빨아온다.

머리가 바보가 될 것 같았다.

"좋아해, 소 군……정말로 좋아……좋아……."

그리고 그 단어가 다시 내 뇌를 사정없이 범한다――.


나는 중학교 시절, 남들처럼 사랑을 해왔다. 친구에게 등을 떠밀려 여자에게 고백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 나를 좋아한다니……농담이지, 마쿠라기 군?

――후하하하! 역시 들켰어? 물론 농담이지.

――아하. 차암, 그렇게 깜짝 놀래키지 마~. 그래도 거짓말이라 다행이다. 차는 것도 신경 쓰이는걸.

사실은 일생일대의 고백이었다.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나는 그 진실을 거짓으로 덧칠하여 웃으며 흘려넘겼을 뿐.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자애로부터'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기에.


"좋아……좋아……좋아……좋아……좋아……좋아……좋아……."

비록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말을 사용하면 머리가 버그 난다.

여자애로부터『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남자에게 있어 그것은 뇌를 녹이는 악마의 주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전까지는 미쿠에게 그 말을 들어도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역시 나, 이미 미쿠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야, 아니야. 그건 지금뿐인『거짓』된 감정이다.

하지만――이 이상은 위험하다. 이 이상은 거짓이 현실을 잡아먹을 것 같아서 무섭다.

내가 여동생 상대로 진심으로 ■을 해 버린다――――.

덜덜덜덜…….

무서워서 손끝이 작게 떨린다. 미쿠는 그런 것도 깨닫지 못한다.

"좋아해, 소 군……음쭈……좋아해……하앗……."

미쿠의 거짓말에 통째로 집어삼켜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감.

하지만 머리 한켠에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다복감.

공포는 비대화된 행복에 짓눌려 나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키스를 갈구한다.

"……미짱, 좋아해……나도 좋아해……우움……."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입술을 서로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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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짱은 간신히 몸을 떨어뜨리고 나를 해방해 주었다.

"……응. 이번에도 굉장히 참고가 됐네……소이치로, 고마워!"

"………………."

"소이치로?"

다시 한 번 부르기에 환상의 저편에 있던 나는 간신히 현실로 돌아왔다.

"그, 그래. 그……참고가 됐다면 다행이야."

"응! 지금 감각 잊지 않았을 때 메모해두고 싶으니까 나 방에 돌아갈게! 그럼!"

미쿠는 한손을 들고 함박 웃음으로 퇴장해 갔다.

딥하고 농후한 키스를 한 직후인데 떠날 때는 싱겁다. 진짜 연인이 아니니 여운에 잠길 필요도 없다.

거실에 남겨진 것은 나와, 내 안면에 칠해진 허구세계의 잔재뿐이었다.


얼굴을 씻은 후 그대로 혼자 거실에 멍하니 있었다.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입술을 볼록 누른다. 그것만으로 방금 전의 키스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가슴이 격렬하게 뛴다. 굉장히 두근거린다.

그것은 달콤하고 애틋한 맥동이라――――아니, 그러니까 틀리대도.

"이건 연인놀이의 연장선적인 거짓된 감정이야. 진심으로 받으면……안 되지."

우리들은 둘 다 연애감정이 일체 없었기에 사이좋은 남매로 있을 수 있었다. 한쪽이 진심이 돼 버리면 이제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로는 있을 수 없어진다. 그것만은 절대로 싫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혹시나'하는 이야기인데.


오히려 미쿠 쪽이야말로 나를 좋아한다는 가능성은 없나?


왜냐하면 보통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남자와 그렇게 키스를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녀석 아카이 선배랑은 키스를 한 적이 없다고 했었잖아.

미쿠가 그런 짓을 하는 상대는 나뿐……그럼 이건 역시.

"……에둘러서……어떻게 확인할 수 없으려나……."

미쿠는 나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어떻게 확인하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판명됐을 경우에도 역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떨떠름했던 나는 뭐든지 좋으니 미쿠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야, 미쿠. 잠깐 괜찮아?"

2층 8호실, 미쿠의 방을 노크했지만―――――반응 없음.

뭔가 메모로 정리한다고 했으니 그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 연다.

"미쿠? 있잖아, 잠시 얘기라도……아니, 진짜로 없구나."

불은 켜져 있다. 하지만 미쿠의 모습은 없다.

어디에 간 거지. 일단 안에서 기다릴까.

주인이 없는 그 방에서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벽 한면에 놓인 커다란 서가다.

만화나 소설, 그림책 등에 섞여 두꺼운 전문서가 죽 늘어서 있다.

『메소드 연기론 고찰』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개론』

『배역으로 살아간다』

어느 거나 어려워 보이는 제목의 등표지. 아마 연극 관련 책이리라. 나머진 영화 블루레이나 DVD가 드문드문.

"……여전히 굉장한 양이네. 썩 훌륭한 오타쿠방이잖아."

"거의 중고나 받은 거지만."

돌아보니 방의 입구에 미쿠가 서 있었다.

"멋대로 남의 방에 들어와서 팬티 뒤지는 게 맞아? 필요하면 순순히 그렇게 말해."

"팬티는 안 뒤졌어. 그보다 어디 갔던 거야."

"오줌."

태연자약하게 말한다. 우리들은 새삼스럽게 그런 일로 부끄러워하는 사이가 아니다.

"아 참. 아까는 립 안 닦아줘서 미안해? 얼굴에 키스마크 묻혀 버렸으니까."

"그건 뭐……별로 상관없는데."

쑥스러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가에 늘어선 영화 블루레이로 눈을 돌렸다.

적당한 한권을 손에 들어본다.

"이런 건 구독하면 전부 볼 수 있는 거 아냐?"

"없는 게 더 많다구. 네가 들고 있는 그것도 마이너한 캐나다 영화라서 스트리밍으로 못 봐. 그래도 진짜로 명작! 정말『아가가~』하고 허리가 빠지는 수준!"

"헤에. 신경 쓰이네. 담에 같이 보자."

"괜찮은데 그거 수입판이라서 일본어 더빙도 자막도 없다?"

"아아, 실수로 사 버린 거야? 그럼 반품하면 되는데."

"으응. 제대로 보고 있어. 나 영어 아니까."

……응?

"야, 야. 미쿠가 영어 할 줄 알았냐. 언제 공부한 거야."

"연극을 시작하고 조금 지나서부터니까……반년쯤 전?"

고개를 갸웃하면서 미쿠는 선뜻 말했다.

"왜, 배우 대사는 더빙 없이 이해하는 편이 연기 공부가 될 것 같잖아? 그래서 영어를 습득해 봤습니다. 나는 이제 외국 오페라도 번역 없이 볼 수 있다궁."

잠깐. 잠깐 있어봐.

"……고작 반년 만에 자막도 더빙도 없이 외국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응."

간단히도 말한다.

"참고로 지금은 프랑스어를 공부 중이야. 프랑스는 무대 예술이 굉장하니까. 그리고 유럽은 고전 영화도 좋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표범』에 나오는 명언 알아? 영원히 변하고 싶지 않다면 계속 변화해야 한다――이걸 이탈리아어로 하면 쎄 볼……."

"하, 하하. 대사 같은 것도 완벽히 외웠구나."

"물론이지. 나는 본 영화 대사는 연기 주석 달아서 노트에 쓰고 있으니까. 슬슬 서랍이 위험하단 말이지."

나는 아직 얕보고 있었다.

히메바쇼 미쿠라는 천재――아니, 이차원인을.

"하긴, 워크숍에 오는 사람들한테도『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라고 들은 적 있는데 솔직히 신물이 나. 왜냐면 그 사람들 연기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뭐든지 한다고 장담하거든? 뭐든지 한다면서 뭘 하는 걸까."

이 녀석은 결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미쿠는 진심으로 무언가에 집착했을 때 이상할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잘 시간도 아껴 가며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어지고. 그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며 집요하게 집요하게 단조로운 반복연습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몇 단씩 점점 성장해 간다.

그것이 히메바쇼 미쿠라는 여자였다.

"……미쿠가 그렇게까지 연극에 필사적인 이유가 뭐야……?"

"어? 진심으로 배우가 되고 싶어서인데?"

당연하지, 라고 하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뭐, 과시하고 싶어서란 부분도 있을지도. 여자가 생겨서 나간 아빠랑 간단히 그걸 받아들여버린 엄마한테. 당신네들 때문에 외롭게 자란 미쿠짱은 지금 무대 위에서 이렇게나 빛나고 있습니다~ 하고."

미쿠의 집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모자가정이 되었다. 그 후 뒤는 모른다.

"여자가 생겨서 나갔어……?"

"응. 이혼의 원인은 결국 아빠의 바람이었어. 그때 엄마는『진심으로 좋아하니까 헤어지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이해를 못하겠어. 그랬으면 자기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상대 여자를 헤어지게 만들어야지. 그게 됐다면 분명 엄마도 그렇게는……."

거기서 일단 말을 멈추더니 생긋 웃었다.

"엄마는 말야. 아빠랑 이혼하고 나서 이상해져 버렸거든. 새 남자를 만들곤 헤어지고, 만들곤 헤어지기를 반복하게 됐어. 딸인 나를 제쳐 놓으면서까지 자기 사랑이란 걸 쫓아다니는 이상한 여자게 돼 버렸지. 진짜 대단하다? 집안이 온통 비린내가 나는 때도 있었으니까. 뭐, 아무리 남자랑 사랑을 나눠도 결국엔 꼭 헤어지고 울지만 말야, 우리 엄마."

"그, 그렇구나……미쿠네 엄마가……."

"깜짝 놀랐지? 참고로 남자랑 헤어졌을 때 엄마의 대사는 항상 똑같아.『진심으로 좋아하니까 헤어질 수 밖에 없었어』래. 이게 진짜 뭐람? 그럼 처음부터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러면 헤어져서 울 일도 없잖아?"

"………………."

"그래도 엄마는 질리지도 않고 또 새 남자를 좋아하게 돼.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좋아해서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 같아서 엉엉 우는 거야. 정말 이해 못하겠지. 저기, 소이치로. 좋아한다는 게 도대체 뭘까?"

"그, 글쎄……? 그건 미쿠 쪽이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긴, 나한텐 일단 아직 남친이 있으니까?"

미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엄마 같은『좋아』는 전혀 모르겠어. 물론 아빠의『좋아』도 전혀 모르겠어. 왜냐면 둘 다 맛이 갔는걸. 아빠의『좋아』는 가정을 망가뜨리고, 엄마의『좋아』는 자신을 망가뜨리고. 굉장히 폭력적이고 자제도 안 되는 괴물 같은 감정이야. 가령 그런 불쾌한 걸 사랑이라 부른다면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르고 평생 알고 싶지도 않으려나아."

괴물 같은 감정.

그 말은 묘하게 귀에 남았다.

"아무튼 나는 꼭 배우가 될 거니까! 딸인 나보다 자기들의 이상한 사랑을 우선해 버린 아빠랑 엄마한테 무대에서 빛나는 내 모습을 과시해 줄 거야! 그러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면 어학이든 역사든 전부 만점을 받아 보이고, 사랑에 빠진 여자 연기도 반드시 극복할래! 나는 뭐든지 하겠어! 정말 뭐든지 해 보이겠어!"

"하하……아, 알아……아까도 나한테 쭈웁 하고 키스했을 정도니까……."

나는 이제 확실하게 알게 되어 버렸다.

미쿠는 나를 좋아하는 걸지도, 라고 생각했지만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응. 쭈웁 하고 했지? 확실히 기분 좋았으니 사랑에 빠진 여자는 그걸로 행복을 느끼겠네. 그렇다면 표현 방법은 알 것 같아졌어. 연인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키스할 때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똑바로. 눈 깜빡이는 횟수도 적은 편. 조금 눈을 촉촉하게 만들어도 좋겠다. 맥박의 상승은 호흡을 얕게 하는 걸로……아, 손 위치도 중요하지. 이쯤?"

이 녀석은 나에게 연애 감정 같은 건 추호도 없다.

연기의 거름이 된다면 정말 뭐든지 하는 여자였다.

"그……미쿠는 나랑 거기까지하는 데 조금 정도는 저항감 들지 않아……?"

"전혀?"

미쿠는 정면에서 미소지었다.

"내가 머리가 이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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