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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 붉은 군대의 군수 발전사-1

이제큐터(121.132) 2011.12.07 02:38:05
조회 282 추천 1 댓글 5



현재 문서 작성이 가능한 상황 하에서 근무하고 있는 덕분에 중편 연재 하나 달릴려고 합니다. 번역하는 논문 중 그라함 H. 터르비빌레(Graham H. Turbiville) 박사의 <Soviet Operational Logistics. 1939~1991>(원문:<U>http://www.history.army.mil/books/OpArt/russia4.htm)의</U> 번역이 끝났는데 이 논문에서 2차세계대전 파트만 다루어 연재하려 합니다. 그 이후는 현대의 영역인데다가 훗날 연재할 붉은 군대 작전술 발달사에 들어가는 핵심 내용이 있어서 스포일러 연재가 되버리기 때문입죠.

사실 소련군의 군수/보급 체계에 대해서는 저도 이 논문 보기 전에는 극히 추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소련군이 군수에 대해서는 별반 신경 안쓰는 군대이며 독일보다는 낫고 미국보다는 떨어지는 위치에 있다고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터르비빌레 박사의 논문을 보니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_- 논문에 나온 소련군 보급 발달사와 터르비빌레가 출처로 한 소련 내부에서 군수 문제를 얼마나 중대하게 다루고 있었는지를 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ㅠㅠ

군수/보급을 전면적으로 다룬 최초의 저서인 마르틴 반 크레벨트 교수의 <Supplying War>(국내 번역명 \'보급전의 역사\'>에서도 바르바로사 작전 때의 독일군 병참 문제, 아프리카 전역에서의 독일군 병참 문제,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서부 전선의 진행에서 서방 연합군의 병참 문제 해결(이 파트는 보급전의 역사의 대미라고 보실 수 있습니다. 30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1차대전, 2차대전에서 끊이지 않고 나오던 병참 문제를 결국 서방 연합군이 해결한 걸로 귀결을 맺으니까요.)은 자세히 저술했지만 소련군의 병참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았습니다. Supplying War가 세상에 나온 연도가 냉전이 한참인 1977년이니 소련군 군수 문제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죠.

하지만 터르비빌레 박사가 아쉽게도 단행본은 아니지만 한 편의 논문으로 소련군의 군수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소련군의 군수/보급을 알 수 있는 문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1980년에 당시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의 총 편집으로 출판된 <소연방 군사학 백과사전>은 군수(또는 보급, 병참)을, 정확히는 \'후방 지원 업무\'(tylovoy obespechenie)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후방 지원 업무는 3가지 중요한 요소로 구성된다.
1.탄약 지원, 유류 지원, 기타 군용 소비재를 비롯한 군수물자 지원
2.장비 유지, 보수와 이를 위한 장비의 지원
3.다양한 형태의 의료 지원"


군사학 백과사전에서 나오듯이, 소련군은 모든 종류의 비전투 지원을 후방 지원 업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소련군/러시아군의 군사 교리/장비/개념이 다 그렇듯이 소련의 후방 지원 업무 또한 독소전쟁을 거치며 발전을 이루었고 현대에도 러시아 군수 지휘관/참모들은 대조국전쟁의 사례를 연구하며 현제 러시아가 직면한 군수/보급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종심 작전의 기동전을 수행하는 소련군에 있어서 군수 체계의 발달은 필수 중의 필수였고 이는 현대까지 러시아 군수 장교들의 주요 연구 과제이기도 합니다. 


1부:전간기와 대조국전쟁 극초반의 붉은 군대의 후방 업무 지원


전간기 붉은 군대의 군수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최초로 한 사람은 다름아닌 소련군의 유명한 군사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스베친이었습니다.  스베친은 <작전술> 용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더 유명한 책인 <전략>에서 제정 시절의 보급 체계를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제정 시절 러시아군의 군관구 사령관들은 중앙에서 오는 군수물자를 받기 보다는 관할 군관구를 봉건 시대 영주들처럼 자신의 \'개인 영지\'처럼 사용하며 전시에는 그 영지에서 대부분의 군수 물자를 징발하는 식으로 보급 묹제를 해결했습니다.

이건 산업 혁명 이전까지는 나름 합리적인 방법이었지만 러시아가 급격히 산업화되며 이런 방법은 비효율적인 것이 되버렸습니다. 이런 식의 군수물자 징발과 보급은 20세기식 산업화 시대와 근대 무기체계 발전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제정 러시아군의 군수/보급이 대량생산된 근대식 무기들을 쏟아내는 국가 경제 주도의 군수물자 보급이 아닌 각 군관구 사령관들이 관리하는 군관구 재량에 따라 수행하게 됨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큰 비효율을 초래했습니다. 스베친은 이를 비판하며 스베친 스스로 미래 전쟁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은 소모전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붉은 군대의 군수 체계는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경제와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국방 인민 위원장 프룬제는 스베친의 주장을 칭찬하며 스탈린에게 스베친의 주장대로 할 것을 제안했고 스탈린도 이를 수긍했습니다. 그리하여 스탈린은 스베친의 안건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주지만 아직 완벽한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소련군의 군수/보급이 국가 경제로 상당히 통합되긴 했지만 군관구 사령관이나 야전군 사령관이 각 관할지에서 직접 군수품을 조달하는 관습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참고:위 내용은 터르브빌레 박사의 논문에는 없고 제이콥 킵 박사의 <소련군 작전술의 기원>에 있는내용입니다.)

그리고 스베친의 제안 이후에는 주목할 만할 수준의 인물이 군수체계 발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장하는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트라인다필로프와 투하쳅스키가 종심 작전 이론을 발전시키는 가운데서도 군수 문제는 혁신가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습니다. 종심 전투 교리가 더 효율적인 보급 지원을 크게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투하쳅스키는 군수 문제를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숙청 당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군수 문제에도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겠지만요.)

그리하여 1930년대 소련군은 보급 문제에서 구조적인 문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붉은 군대에서 후방 지원 책임은 중앙의 총참모부 군수국부터 기타 다른 독립적 위치의 관창들까지 광범위하게 분산되 있었습니다. 비슷한 크기의 군수/보급 기관들은 그 권한이 너무 분산되 있어서 핵심적인 전술적, 작전술적, 전략적 수준의 보급을 할 수 없었고 참모진이 부족했으며 모든 종류의 군수품 배치와 분배는 심히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에서 소련군의 군수는 전반적으로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겨울 전쟁 초기에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열차들은 잘못된 계획, 정확히는 총참모부의 계확과 각 야전 제대들의 계획이 뒤엉켜버리는 바람에 엉망으로 꼬여 버렸고 철도 노선 배치도 적절하지 못해 대부분의 열차들이 야전 부대에 보급품을 전달하지 못한 채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주요 해상 보급 기항지인 아르항겔스크는 아직 대규모 물자를 하역하기에 충분히 큰 항구가 아니었던지라 해상 보급에도 큰 혼란이 일어났고 결국 북서 전선군 사령부는 해상 보급 기지를 아르항겔스크에서 훨씬 떨어진 무르만스크로 옮겨야 했습니다. 붉은 군대의 모든 군수품들, 탄약, 수리 장비, 통신 장비 등은 중앙의 전체적인조율 없이 제각각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국방 인민 위원회에는 중앙의 군수 계획이 작전적 수준에서 불규칙하고 가끔 부정확하다는 보고서가 날아왔습니다.

겨울 전쟁에서 나온 소련군 군수의 비효율성은 독소전쟁 개전 때까지 해결되지 못했고 해결책을 찾아 개선하려는 방안 추진 또한 전쟁이 터지며 죄다 흐트러져 버렸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소련군의 주요 군수 기지들은 대부분 최전방에 몰려 있었는데 이는 스탈린의 측근이자 그 무능함과 정치적 음흉함으로 악명 높았던 레프 메흘리스의 무단 개입으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어디든 간섭하기 좋아하는 메흘리스는 군수품은 전방에 쌓야 있어야 맞다고 주장하며 보급 기지들을 죄다 전방으로 돌려 버렸고, 이 보급기지들은 대분 전쟁 발발 첫날에 독일군에게 접수당하거나 포격으로 소실되었습니다.  소련군의 잡다한 군수 지원 기관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후퇴하는 아군에 될수 있는 한 지원을 해 주고 보급소를 후방으로 소개하려 사력을 다했습니다. 추가로 동시에 많은 소련군 부대들을 유지시키고 전투에서 작전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1,300개의 군수 공장들이 집단 농장들과 함께 후방으로 몰려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소련 군수체계의 조직적 문제과 겹쳐 소련군의 작전 수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형태의 보급품-무기, 장비 탄약, 유류, 수리 공구, 전투 식량 등-은 국방 인민 위원회의 다양한 통제를 받았고 군관구 사령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물자 관리는 작전 대형에 신속한 보급 수송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물자들을 중앙에서 통제할 부서인 총참모부 군수참모국의 권한 부재로 인해 모든 수준의 군수 지원은 위험한 수준으로 불규칙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총참모부의 유류 비축분은 군수참모국의 통제 없이 각 군관구가 요청하는 데로 할당되거나 국가 경제의 편의에 따라 분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총참모부는 유류 보급을 필요한 곳에 집중시켜야 하는지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탄약 재고는 중앙 포병 사령부 소속에 있는 각 구경 수준에 맞는 탄약 지원 부서에 달려 있었는데 중앙 포병 사령부, 군관구, 야전군 소속의 탄약 보급 기지가 있었습니다. 전쟁시에는 야전군의 탄약 보급소에서 하위 제대로 탄약을 전달할 동안 중앙 포병 사령부의 탄약 보급소에서 각 야전군으로 탄약을 보낸다는 계획을 수행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선군과 중앙 포병 사령부를 연결할 경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였고 이는 전쟁시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야전 제대들의 보급 구조에서도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전선군, 야전군, 사단의 군수 물자 통제는 전문적인 병참 장교가 아닌 지휘관과 작전 참모들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는 지휘관과 참모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 상황에 집중하느라 군수 문제에 추상적인 관심만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붉은 군대의 군수/보급 문제의 총체적인 구조적 비효율과 이에 따라 터져나오는 모든 문제들은 이 상황을 해결하고 붉은 군대의 후방 지원을 책임지는 한 걸출한 인물의 등장을 예고하게 되었습니다.


출처:그라함. H. 터르비빌레, <소련의 작전적 군수 1939~1990>
더 자세한 주석본을 보고 싶으시면 제 블로그 참고(http://blog.naver.com/humans13/8014743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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