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보고 놀라실 분들 많으실 겁니다. 퓰러의 PLAN 1919를 비롯한 기계화전 이론들이 투하쳅스키의 종심 전투 교리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든 \'사실\'은 좀 안다는 분들에게는 상식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목과 같이 투하쳅스키는 퓰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그는 저작 <미래의 전쟁> 3부작 중 2권에서 한 파트를 할애하며 퓰러를 비평하고 있습니다. 투하쳅스키가 퓰러를 공격하는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습니다.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전장은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다. 양군은 모두 완전히 기계화되어 있다. 그런데 영국군은 퓰러가 좋아하는 18개 사단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180개 사단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전차 5,000대와 항공기 3,000대를 가지고 있고 후자는 전차 50,000대와 항공기 30,000대를 가지고 있다. 규모가 작은 영국군은 손쉽게 무너진다. 기계화, 기동화됐지만 규모가 현저히 작은 부대가 미래 전쟁을 주도한다는 것이 망상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은가? 오직 멍청한 자들만이 퓰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투하쳅스키가 이렇게 퓰러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퓰러의 기계화전 사상이 소련의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퓰러의 PLAN 1919나 기계화전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퓰러 사상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퓰러는 군의 기계화, 차량화가 1차 대전의 소모전 양상을 극복하고 더 적은 부대로 더 적은 피해를 거두며 승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이론으로 계승됩니다.) 그래서 18개 사단이면 영국을 지키는 데 충분하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국적인 관점이고 투하쳅스키가 본 퓰러의 사상은 러시아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그저 망상이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경악스럽게 긴 국경을 고려하면, 아무리 붉은 군대가 최정예가 되어도 18개 사단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투하쳅스키 입장에서는 병력과 장비를 뽑고 유지하는 데 무리 없는 산업 능력을 가졌으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데 왜 병력을 소규모로 제한하려 하느냐는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투하쳅스키는 퓰러의 전략을 망상으로 치부해 버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퓰러와 리델하트가 소련군 기동전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서방 군사학계의 옛날에 끝난 자위질을 반박하는 중요한 문건이 되겠습니다. (사족으로 트리안다필로프가 프룬제의 영향으로 충격군 이론을 만들 때는 소련이 전차에 주목하던 때가 아니었고 투하쳅스키가 종심 작전의 초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은 그저 전차가 그들 이론을 실현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기계화를 추진한 겁니다.)

추신:이건 투하쳅스키가 옳느냐 퓰러가 옳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둘의 차이를 설명한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