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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남편, 아빠 그리고 아크다르-48

ㄱㅁㅅs(14.52) 2015.04.19 00:08:49
조회 644 추천 21 댓글 3

너무 양이 많아 개인통합링크를 만들었습니다.

개인통합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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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쉴게요. 말해야 할 타이밍을 못 잡아서 지금 이렇게 말하게 되네요. 3주 기다렸는데 하나 올라오고 또 3주 기다리게 하다니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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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TZSJ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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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하다... 어두워...

두 단어들은 나의 심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이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나타내는 단어들이기도 했다. 단 한 줄기의 빛도 없었고 그냥 보이는 모든 것이 그 어떠한 형상도 이루지 않았고 그냥 검은빛, 아니, 빛이 아니지. 그냥 암흑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고개를 돌려서 어디를 봐도 암흑으로 둘러싸인 풍경은 마찬가지였고, 그건 왼쪽, 오른쪽뿐만 아니라 위아래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지금 서 있는지 누워있는지조차 헷갈려서 어쩌면 둘 다 아니고 어디론가 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눈을 감아보니 똑같이 암흑뿐이었다. 더 밝아지지도 더 어두워지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소리도 없었고 무언가 그 밖에 느낄 수 있는 감촉도 없었다. 그나마, 감촉이 없다는 것을 느끼자 역설적이게도 손과 다리 그리고 몸이 다 잘 붙어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고개를 움직여 군복으로 덮인 팔과 맨손, 다리와 암흑보다는 그래도 덜 까만 검은 구두를 보았다. 또, 나의 의복을 보자 내가 볼 수 있긴 하다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빛이 없는데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건 아무리 고민해봤자 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애초에 여긴 무엇이며 어떻게 왔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걸 알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나의 뒤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소리가 난 뒤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암흑뿐이었던 곳에 어느새 세 개의 문이 나타나 옆으로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왼쪽에는 성인 두 명에 아이들 한두 명 정도는 같이 나란히 들어가기에 알맞은 크기의 화려한 적갈색과 테두리는 황금색으로 덧칠된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오른쪽에는 왼쪽 문의 반 정도 크기에 문 양끝에는 꽃을 연상시키는 초록색으로 칠해진 무늬 몇 개가 꾸며지고 문고리가 문의 아랫부분에 있는 흰색 문이 닫혀있었다.

가운데에는 왼쪽과 오른쪽 문의 크기를 합한 것보다 크고 위아래로 특히 기다란 밝은 갈색의 문이 오른쪽 문처럼 닫혀있었다.

모두 어디선가 본 문들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유일하게 열린 왼쪽 문에서 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왼쪽 문을 향해 걸어갔다. 유일하게 열려있었고 저 문 건너편에서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빛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금방 도착할 것처럼 보이던 문들과 나의 거리는 좁아지지 않았다.

안 되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또다시 뒤에서 아까와 같은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문을 기대하며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암흑이 어느새 나의 시야를 모두 덮는 실내의 풍경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움직이는 풍경. 그런데 마치 잘 그린 수채화 그림에 화가가 실수로 물을 엎질러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이 된 것처럼 쉽게 알아볼 수가 없는 풍경이었다. 풍경에선 소리도 들려왔는데 소리도 풍경만큼이나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게 희미했다. 풍경을 뒤로하고 또다시 뒤를 돌아 아까 보았던 문들을 보려하니 이제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몸이 굳은 채 풍경을 보는 수밖엔 없나?

혹시 싶어 눈을 감았지만 암흑을 보았던 것처럼 눈을 감으나 뜨나 보이는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꼼짝없이 풍경을 보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편, 알아볼 수 없던 움직이던 풍경과 희미하던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져서 얼마 안가 제대로 보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난 알게 되었다.

이 풍경은 내 기억이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또 이것을 기억의 회상으로나마 겪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생각하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생각해봤자 괴롭기만 하니까.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려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 자신이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이 꽤 많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던 나는 목소리가 들리자 정말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
.
.
“엄마”

목소리를 낸 것은 나였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의 나. 그때의 나는 침대위에서 옆으로 누워있는 엄마의 머리 옆에 앉으려고 동화책을 들고 엄마에게 달려왔었다. 아닌가? 원래 침대에 있었나? 동화책을 끼고 침대에서 자다가 깼던가?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동화책을 마침 다 읽었던 참이었나?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서 그 이전은 기억이 안 난다.

“왜 아키?”

반면, 그때의 내가 직접 보고 지금의 내가 기억이란 풍경으로 보는 얼굴의 주인공은 나의 엄마 엘리샤였다. 아버지와 같이 나에게 갈색의 눈을 물려주셨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물려받은 눈은 아버지의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갈색 눈이 아니라 엄마의 에메랄드의 초록빛이 섞인 갈색 눈이었다. 엄마의 눈매는 남자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순했으며, 본인은 보지 못한 손녀 엘사에게 물려준 백금발의 아름다움을 침대 위에 풀어헤치셨던 사람. 코는 굉장히 오똑하셨으며, 뺨은 아렌델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보다도 부드러웠으며, 누구라도 홀릴 수 있을 아주 진한 입술을 가지셨던 분. 흡사 백조를 연상시키는 엄마는 옆으로 누워 이불을 덮은 채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그 때 왜냐고 물었다.

“엄마는 왜 침대에만 있어?”

엄마는 나의 질문에도 미소를 유지한 채 나의 볼을 손으로 살짝 꼬집으며 나의 귀에 대고 속삭이셨다.

“글쎄... 왜? 아키는 엄마가 침대에만 있는 게 싫어?”

“어 싫어, 나도 침대가 좋은데 내가 맨날 침대에 있는 건 게으른 사람만 그러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근데 엄마는 왜 하루 종일 침대에 있어?”

나의 볼을 꼬집는 엄마의 손을 그때의 내가 가진 작은 손으로 치우려 했던 것이 기억난다. 여러모로 난 그 손길을 귀찮아했었다. 그 때는.

“호호호, 그건 엄마는 게을러도 되기 때문이란다.”

“피이, 나도 엄마할래!”

나의 앙탈에 엄마는 기품있게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으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가 아프도록 꼬집으셨다. 

“안돼, 넌 나중에 국왕이자 아빠가 될 사람이야, 지금...”

“너희 의사란 놈들은 전부 ... ... ...들이야! 할 줄 아는 건 없으면서 자신이 가진 ... ... 지식이나 뽐내는 ... ...들!... ... ... ...”

갑자기 들려온 아버지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중간에 끊기다가 나중에는 아예 들리지 않게 되었다.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그 고함에 깜짝 놀라 소리 내어 운 것, 그리고 엄마는 여전히 옆으로 누운 채 그런 나를 끌어당겨 안아주고는 잘 자라고 자장가를 부르셨다는 건 잘 기억한다.

그 때 엄마의 품은 참으로 따뜻했다.



“엄마, 아빠”

풍경과 소리가 바뀌고 이제 나는 침대 위에 누워 고개는 왼쪽에 있는 엄마를 향하고 오른쪽에는 아버지를 두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 왜 아크다르?” 대답한 것은 오른쪽이자 뒤에서 누워있던 아버지였다.

“시종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데 진짜에요? 거짓말이죠? 책에서 봤는데 공주 카트리나는 많이 아프면 울었거든요? 근데 엄마는...”

“누가 그런 소릴 했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일어나는 느낌이 나더니 무거운 목소리가 무섭게 되물었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아버지의 표정이 어땠을지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보았던 엄마의 표정도 잘 기억나지 않아서인지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고 흐릿하게 보였다.

“몰라요” 사실을 말했다. 왜냐면 시종들의 이름은 그 때나 지금이나 제대로 외운 적이 없었으니까.

“아크다르” 엄마 엘리샤의 얼굴이 다시 선명해졌다. 엄마는 이번에도 싱긋 웃고 있었다.

“엄마 뽀뽀~”


뽀뽀하라고 해서 뽀뽀했는데 평소에 해맑던 엄마의 표정이 왜 잠깐이나마 울상이 되었는지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은 거고.

“엄마는 곧 여행을 떠나게 된단다.”

“와! 진짜로요? 어디로요? 나도 가요? 예전에 갔던 오세리 벤진에 다시 가는 거에요? 아니면 다른 곳에 가는 거에요?”

엄마의 시선이 잠시 나의 몸 뒤 너머로 향하더니,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우리 아크다르가 뜻을 모르는구나...”

“모르다뇨? 나 여행이란 단어 잘 알아요! 나 이제...”

“아크다르, 엄마는 요즘 많이 피곤하단다. 엄마 방해하지 말고 이제 그만 잠에 들렴.”

엄마가 목소리를 떨며 말하자 뒤에서 이미 일어나셨던 아버지가 흐트러진 이불을 다시 가지런히 펼치면서 엄마와 나를 덮으면서 말하셨다.

“피이~ 나 엄마 방해한 적 없는데, 그쵸 엄마?”

“응... 아빠가 잘 모르는 것 같다... 엄만 아빠랑 우리 아키가 있으면 항상 행복하단다...”

잠깐 나의 얼굴을 간질였던 이불과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린 엄마는 조용하게 속삭였다.

“나도 엄마랑 아빠랑 있으면 행복해요. 아빠는요?”

그러나 질문을 마치고 계속 엄마를 향하던 고개를 아버지를 향해 돌렸을 때는 아버지 크누트는 이미 방을 나간 뒤였다. 곧이어 밖에서는 탄식 섞인 고함이 들려왔고 엄마는 다시 나더러 자라고 자장가를 불러 주셨다.


풍경이 다시 바뀌었다. 나는 어렸다는 것 이외에는 생김새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아 얼굴이 아주 흐릿하고 일반 시종들과 같은 복장으로 차려입은 어린 시절의 젤다와 마주하고 있었다.

한편, 방의 풍경이 처음으로 바뀌었는데, 왕과 왕비의 화려한 황금색과 적갈색이 번갈아 만드는 무늬로 둘러싸인 방에서 수수한 느낌이 드는 흰색 벽지로 둘러싸인 방으로 바뀌었다.

“엘리샤 왕비님께서 이제 아크다르 왕자님께서 다 크셨다고 왕자님이 앞으로 따로 지내실 방을 마련하시라고 하셔서 이렇게 방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나 아직 유령이 무섭단 말이야! 엄마가 그런 건 다 거짓말이랬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떡해! 아빠가 매일 밤 와 준댔지만 아빠는 싫단 말이야!”

“왕비님과 폐하께 직접 말씀드려 보셨나요?”

“당연하지! 근데 울 엄마랑 아빠가 내 말을 안 듣더라. 참, 우리 엄마가 여행간다는데 어디 가는지 알아?”

“여행이요?”

짜증을 내다가 갑작스레 주제를 바꾸는 나에게 젤다는 궁금해하며 되물었다. 그 때 젤다는 알고 있었겠지?

“응! 엄마가 여행간다고 했는데, 나보고 데려간다는 말은 안했지만, 엄마는 날 사랑하니까 내가 이렇게 얌전히 굴면 분명히 날 데려갈거야!”

“글쎄요... 저는 들은 바가 없는데...”

“하긴, 너 시종이지? 너가 알 리가 없지.”

내가 깔보며 말하자 젤다의 검은 눈빛이 오싹하도록 결연하게 변했던 것이 기억난다.

“저의 이름은 젤다, 고작 시종에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저의 은인이신 엘리샤 님의 말씀대로 아크다르 왕자님께 죽는 날까지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이 와도요.”

당황한 나는 살짝 말을 더듬다가, 나 자신이 그럴만한 위치라고 생각하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마쳤다.

“어... 그래, 알았어, 응, 음, 그래, 그럼, 그래야지, 내가 왕잔데”



풍경이 다시 바뀌면서 다른 날의 기억으로 바뀌었다.

그 날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 날 평소처럼 아주 늦게 일어나고는 엄마를 보러 후다닥 뛰어다녔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 침실에 갔을 때는 침실이 비어 있어서 다시 침실에서 나와 엄마를 찾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동안 나를 보는 눈빛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마침내 불안한 마음과 시종들의 안내로 엄마를 찾았을 때 누워있던 엄마가 있던 곳은 말로만 듣던 물건 속이었다.

엄마를 향해 뛰어가던 나는 엄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걸음이 느려져서는 엄마 바로 앞에 있던 아버지를 지날 때에는 아기가 기어가는 것만큼 느리게 걸었다. 그렇게 걸어가는 동안, 나의 손가락으로 가릴 수 있었던 엄마는 나의 시야에서 계속 커지고도 여전히 누워있기만 했다.

“엄마, 왜 여기 누워있어?”

마침내 엄마를 만질 수 있을 만큼 다가가자, 물건의 모서리를 움켜쥐며 물었지만, 누구라도 홀릴 수 있는 입술에서는 오래전에 굳어버린 미소만이 있었을 뿐, 나에게도 미소를 짓게 해줄 대답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 입술이 보랏빛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응? 엄마아~ 왜 여기 누워있냐고오~”

말을 길게 늘어뜨리면 엄마가 어눌하다고 꾸짖으시면서도 나를 귀여워하시면서 좋아하셨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어렸을 적부터 나름 교육받은 대로 왕실의 체면과 명예 때문에 엄마가 있을 때만 하던 대로 그때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엄마는 감은 눈을 뜨지 않으셨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말없이 엄마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비록 희미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엄마의 짧지 않은 머리카락만큼이나 창백해 보였고 엄마의 전신을 감싸던 새하얀 백합들과 소름끼치도록 어울렸다.

“어머니? 저 점점 불안해져요, 있잖아요... 혹시 제가 뭐 잘못한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이상한 곳에 누워계시지만 말고요...”

그렇게나 말하면서 누구라도, 아무나라도, 제발!

“왕비님께서는 지금 주무시고 계신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해주길 바랬지만 내 오른쪽 뒤에 서 있던 아버지 크누트를 포함해 모두 서 있기만 할 뿐,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고 엄마를 그 어떠한 초점과 영혼없이 엄마를 내려다보는 아버지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다.

“크누트 폐하... 나의 아버지...”

정말, 아무 말이라도 좋아, 하다 못해 손짓이라도, 아니면 제발! 그냥 고갯짓이라도 하라고! 아빠! 크누트! 당신의 아내가 살아있다고, 나의 엄마가 살아있다고! 표시를 해봐! 좀!

속으로 애타게 부르짖었고 겉으로는 그저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잠깐 다시 영혼빨린 눈길을 돌렸다가 그마저도 다시 엄마에게 집중했다. 틀렸다.

결국 아버지의 대답은 포기하고 다시 엄마에게 직접 확인받으려고 고개를 다시 관으로 돌리고 말을 하려 했는데 목이 울렁거렸다. 그다음은 코가 뜨거워지더니, 눈이 간지러워지면서 그곳에서 액체가 나오고 보이던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결국 애써 부정하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입을 열었다.

“여행 근드면서... 왜 으기 누어이써...”

‘아크다르’

“관 속은 주근 스름들만 가는 그르고 엄마가 그랬잖아...”

‘엄마는 곧 여행을 가게 된단다.’

“응? 엄마...”

‘와! 진짜로요?“

“엄만 느보고 그짓말은 느쁜 거라면서... 엄만 그짓말쟁이야...”

‘우리 아크다르가 뜻을 모르는구나...’

내 바로 오른쪽 뒤에서 나와 엄마를 내려다보는 아버지를 등지고 관을 움켜쥐던 양손을 움직여 엄마의 작은 머리를 끌어안았다. 따뜻하던 엄마의 얼굴은 어디가고 그저 아름답지만 차가운 여인의 얼굴만이 느껴졌다.

이제 없다.

나에게 ‘아키’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내가 어리광을 부려도 그걸 받아줄 사람은
귀신이 무섭다고 하면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은

이제 없고 난 마침내 터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날은 정말이지... 아주 많이 울었다란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후는 기억이 안 난다.


풍경과 소리가 다시 바뀌었다. 그 날도 잘 기억한다. 여러 의미로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던 날이었기에.

그 날은 장례식을 치르던 때였다.

새하얀 눈이 평소 찾아와야할 때에 비해 굉장히 빨리 아렌델을 찾아와 들판의 색깔을 바꾸고도 계속 흩날리던 날, 왕립 묘지의 작은 언덕의 한 쪽에는 거대한 회색의 비석이 세워졌고, 나와 아버지 크누트, 그리고 각자에게 우산을 씌워주던 시종들은 비석 뒤에 서서 멀리 각자 우산을 쓴 조문객들을 마주했다.
 그 때 내가 본 광경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꼼짝도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던 걸 보는 건 그 때가 처음이었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을 빼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고요했던 적도 처음이었다. 비가 왔으면 빗소리에 많은 것이 묻힐텐데, 눈은 그러기 보다는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엄만 잘 있어요...? 계속 웃던 엄만데, 여전히 웃고 있겠죠?

하늘을 향해 외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조용히 해야 한다고 단단히 말해서 그냥 하늘을 향해 올려다보고는 속으로 물었다.

오직 조문객들과 네 명 사이의 추기경만이 엄마의 영혼을 조심스럽게 달래주며 울려퍼뜨리는 말과 쉬지 않고 계속 내리는 하늘의 눈을 보고 엄마가 잘 있냐는 내 마음 속 질문에 천사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마음대로 정하기로 했다.

장례식 자체는 너무 지루했고 몇 시간이나 서있어서 다리도 아플뿐더러 계속 가만히 있어서 아무리 두텁게 입었어도 결국에는 추웠지만, 엄마를 배웅하는 자리이고 춥고 지루할거라면서 그래도 끼고 싶으면 본인을 따라하고 절대로 소리를 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 모든 걸 참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내가 있는 걸 반드시 원할테니까.

추기경의 말이 끝나고 장례식이 끝나가는 와중에도 나와 아버진 여전히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옆에 있던 아버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올리자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보기 싫었다. 딱히 아버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보기 싫었다.

아버지의 울면 안 된다는 소리를 단단히 들었기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성 안에서 탈진하도록 울어서 밖에선 울 힘조차도 별로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세고 싶은 것들을 세고, 보이는 것들을 보면서 애써 생각을 미뤘지만, 나중에는 다 지루해지면서 엄마가 나에게 잘해주던 말들을 곱씹 이제 그런 것들은 기억 속에나 있다는 생각에 애써 참던 눈물이 다시 소리없이 흘러나와서 나는 어느새 두꺼운 모피로 만들어진 외투의 소매로 계속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장례식 후 아버지와 그 옆에 붙어있는 나를 스쳐지나가면서 각자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그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말은

“힘을 내십시오, 크누트 폐하, 아크다르 왕자님.”

라는 간단한 말이었고, 대충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눈 덮인 들판을 보면서 일부로 피했다. 그때까지도 볼에 눈물을 흘린 자국을 제대로 지우지 못 해서.

사람들이 대부분 왕립묘지를 떠나고, 눈물을 흘리던 자국도 마르게 될 때쯤 아버지와 나도 마차를 타고 성으로 돌아갈 때, 결국 추워서 몰래 기침을 했다.

“잘 참았다, 많이 춥고 지루했을텐데.”

아버지와 같이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 아버지가 창 밖을 보며 졸려서 자려던 나에게 말했다.

“괜찮았어요”

바깥에서 기침을 한 건 아버지 몰래 해서 모를테니 의젓하게 보이고 싶어서 졸린 눈으로 대답했다.

“안 괜찮았던 거 다 안다”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내 속을 간파한 게 불쾌해서 대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 바깥을 보며 말하셨다.

“여러모로”

대답하지 않던 나는 지친 나머지 마차 안에서 잤고 마차는 나와 아버지를 엄마로부터 성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잠들려고 할 때 아버지가 매우 희미하게 휘파람으로 자장가를 부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의 자장가와 똑같은 곡조로.

다만 훨씬 더 음울하고 구슬프게.


나의 백조는 그렇게 나를 떠났다. 자기 새끼가 고작 4살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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