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문학/퓨전?/장편] 아래대 표류기(雅騋垈 漂流記) - CH. 21

프소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4 19:01:02
조회 287 추천 17 댓글 20


CH. 21

1843.5.29(月) 낮

계엄령 선포 이후 안나, 크리스토프, 진우는 하루도 쉴 새 없이 준비에 매진했다. 징병검사 및 노덜드라 자치군 합류로 인한 부대 재배치, 훈련, 외교활동, 무기 검수 등이 이어졌다.
첫 하루 이틀은 안나나 크리스토프나 일에 밀려 밤을 샜지만, 그랬다간 막상 당일에는 쓰러질 거라는 카이와 진우를 포함한 참모진들의 거센 만류에 이후로는 조금씩 더 자게 됐다.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안나가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떴고, 날짜는 바로 다음날이었다.

“미쳐 돌겠네...”
"왜? 지금 몇 시길래?"

안나가 중얼거리고 있는 와중에 옆에 있던 크리스토프도 깼다. 그는 비몽사몽 한 목소리로 말하며 일어나다가 해가 중천에 뜬 것을 보았다.

“아...아니야..”
“응.”

둘은 몇 초 동안 침대에 멍하니 앉아 벽을 바라보다가 바로 일어나 후다닥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둘은 복도를 뛰려다가 밖을 내다보았다.
성 앞의 곶을 막던 벽은 바위거인들을 동원한 공사로 전보다 수배는 높아져 있었고, 바닥도 돌로 막아놔 이제는 그 어떤 배도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마무리 작업으로 바위 거인들이 돌을 쌓고 있었고, 게일이 왔다 갔다 하면서 서신을 총리에게 주고 있었다.
성 앞 광장에서는 수도방위군 주도로 민간인들을 훈련시키고 있었고, 거기서 진우가 몇몇 장교들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막으려고 힘쓰지 하지 말고 흘리면서 피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잘리는 건 여러분들의 팔이나 어깨에요. 알겠죠?”
“예!”
진우는 그 때 뛰어나오는 안나와 크리스토프를 보았고, 장교들은 바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안나는 괜찮다며 손짓을 했고, 그들은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왜 안 깨웠어?”
안나는 진우에게 물었다. 그녀는 진우에게 점점 미안함만 쌓여가는 것만 같아 답답했다. 진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웃었다.

“자고로 무슨 일 전날에는 푹 쉬어야 하는 법이니까.”
“진우 너도 못 쉬지 않았어?”
“아냐, 잘 때는 푹 자니까 괜찮아.”
그 때 카이가 지나가면서 볼멘소리로 말했다.

“일주일 내내 밤을 새는데 잘도나 쉬셨겠습니다!”
“…” “…” “…”

둘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게 가능해? 정말로 괜찮아?”
“아이, 괜찮다니까. 카이가 못 봤지만 돌아다니면서 쪽잠도 자고 그ㄹ..”

그 때, 안나가 진우의 입을 틀어 막았다. 그리고 나서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제발 좀 쉬어달라고 진우에게 연신 부탁을 했고, 그 등살에 못 이겨 결국에는 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진우는 약간 피곤하기는 했지만, 손의 문양이 확실해진 이후 점점 잠이 줄었기 때문에 이게 긴장감과 준비에 의한 피곤함이지 잠부족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30분 정도 잔 뒤, 다시 일어나 엘사의 방에 노크를 하고 잠깐 올라프와 이야기를 나눈 뒤 마을로 향했다. ​

///

마을은 그저께부터 피난을 시작해 이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현재 징병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수도 뒤에 있는 산들에 피난 가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는 수도 거주민들이 최대 1년은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이 비축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가능 했던 것은 아그나르 왕 재위 초창기시절부터 꾸준히 구축해 온 전쟁/재난 대비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국민들은 근처 산이나 지하에 마련한 동굴에 피난 가 있기로 했다.
노덜드라는 자치군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이 근처 산에 마련해 놓은 피난 시설에 가 있기로 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인구가 적은 것도 도움이 되는군.’

조선이었다면 애초에 전국민 피난소 대피라는 전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조선 주변국들도 해당 되는 말이었기에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순식간에 텅 빈 마을을 보자니 정말로 신기할 나름이었다.
진우는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을 발견했는데 안에 노파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해 안에 뛰어 들어갔다. 전통 아렌델 복장을 입고 있던 그녀는 진우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해줬다.

“어서 와요.”
“피난령이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어르신은 왜 아직도 여기에 계세요?”
“지하실에 내가 마련해 놓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떠나기가 힘들더라고.”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았고, 긴 치마 밑에 삐져 나온 의족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손주 녀석들은 딸과 사위랑 같이 피난소에 갔으니 괜찮네. 무엇보다 남편이 여기 있는데 가기도 그렇고.”
거울 위에는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젊었을 적 웃고 있던 그는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 역시 아기를 안은 채 웃으며 앉아 있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처음 보는 옷차림인데, 젊은이는 머리라도 자르러 왔나? 아니면 이 노인네랑 얘기라도 하고 싶어서 온 건가?”
노파는 홀홀 웃으며 빗자루로 바닥을 마저 쓸고 있을 때, 진우는 거울을 봤다. 그는 엘사가 만들어 줬던 방검복 위로 조선식 무복을 입고 있었고, 아직 상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여기서 자신의 마지막을 볼 수 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더라도 이제 그는 조선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손등의 반짝이는 문양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둘 다겠네요.”

그러면서 진우는 상투를 풀고 노파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진우의 머리가 이 정도로 길 줄은 예상을 못했는지 새삼 놀라며 머리를 빗질하기 시작했다.
“여기 장교들처럼 단정하게 잘라주십시오.”
“알겠네.”
그러고는 그녀는 머리를 크게 한 웅큼씩 자르기 시작했다. 미용실 안에는 조용히 그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소리 밖에 나지 않았다. 진우는 머리가 짧아지는 자신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은 혹시 여기 출신이신가요?”
“응? 아니, 나는 원래 서던아일랜드에서 태어났어. 지금은 그 쪽 사정이 그나마 나아지기는 했는데, 그 때는 특별히 앞서 가는 산업도 없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많이 힘들었었지.”
노파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너무 많아져 잠시 가위를 내려놓고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니까 그쪽이 쑤시는지 자그맣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15살 때 우리 오빠들을 데리고 여기에 왔어.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지.
그 때는 아렌델도 지금처럼 타국 사람들에게 열려있지가 않아서 차별도 은근히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들 직업이 대형 어선 같이 험한 데에서 일하다보니 들을 소리는 다 들었지.”
노파는 가위를 집어들었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해. 세월이 지나면서 분위기도 유해졌고, 무엇보다 아그나르 선왕폐하 이후로는 여기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나아졌거든.”
“그럼 혹시 서던아일랜드에 다시 가보신 적은 있으세요?”
“없지.”
“그래도 15살 때 오셨으면 친구들이나 추억들이 남아 있지 않으신가요?”
노파는 머리를 자르다 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런 그녀를 진우도 빤히 바라보았다. 노파는 머릿속에서 결론이 났는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추억이래 봤자 거기서 다리 없어진 거 말고는 기억도 잘 나지도 않고, 여기에서 산 세월이 더 길다 보니 크게 개의치가 않아. 무엇보다 나는 여기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니까.”

노파의 마지막 말에 진우는 웃었지만, 표정만큼은 어두웠다.
“그렇군요.”
가슴으로는 공감이 됐지만, 머리로는 회의적인 말이었다. 진우는 그 생각을 떨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서 노파와 얘기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해 본 일상적인 대화였다.

///

“어? 머리 자르고 왔나 보네?”
크리스토프가 돌아온 진우를 보며 말하자, 안나도 돌아봤다. 그의 구레나룻은 밀려 있었고, 앞머리는 겨우 이마를 가릴 정도로 잘려 있었다.
이런 적은 난생 처음이여서 그런지 진우는 어색함을 못 참고 인상을 찌그린 채 연신 머리를 비비면서 왔다.

“갑자기 왜?”
“혹시나 상투 풀려져서 잡히면 죽을까 봐.”
“어…그건 그렇지?”
셋은 안나의 말에 피식 웃었고, 장교들과 주요인사들을 성으로 모아 마지막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전령이 수도와 숲 사이에 있는 평야지대에 만든 나무 방벽공사가 완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임시로 만들어 놓은 벽이기는 해도, 이것 역시 바위거인 등을 포함한 전령들이 없었다면 이 짧은 시간 안에 다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셋에게도 전과는 다른 긴장감을 주었다. 이제 전쟁이 코 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럼 이제 병사들을 그쪽으로 보내놓겠습니다.”
한 장군이 안나를 보며 말했고, 안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사람들을 전보다는 조금 일찍 해산 시켰다.
다들 나가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안나가 진우를 불렀고, 크리스토프 역시 남게 되었다.
“또 할 말이 있어?”

“응.”

갑자기 안나는 두 손을 잡아 들었고, 인상이 험해진 크리스토프를 보며 진우는 자신이 먼저 잡은 게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려는 듯 고개를 연신 저으며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안나가 그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듯 꽉 잡자, 진우는 곧 힘을 풀었다. 안나는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진우를 빤히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난 언니를 따라 갈 거야. 아니, 사실 지금도 여왕이고 나발이고 그냥 언니랑 같이 싸우러 가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 해. 한 나라의 여왕으로서 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무시하고 언니만을 좇을 수 없게 됐어.”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 조소를 지었다.
“내 가족도 잘 돌보지 못하면서 내 의무에만 집중하기도 버거운 신세가 된 거야.”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그녀의 표정은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아니, 그녀는 마치 자신이 엘사를 곁에서 더 도와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을 풀고 다시 진우를 바라봤다.

“내가 외국인, 그것도 외지인인 진우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게 염치가 없는 거 알아..
심지어 너는 죽다 살아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부탁할게.”
안나의 목소리는 갈라지면서 손은 떨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역시 간절함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제발...우리 언니를 지켜줘.”

진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죽다 살아났다는 말이 아이러니해 속으로 조금 웃기는 했지만, 그녀를 보니 일반적인 감정이 지나가는게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과도 손을 잡겠다는 절박함. 그걸 지금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그녀 앞에서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대조선국(大朝鮮國) 구(舊)종사관(從事官) 채진우, 비록 부족하오나, 제 모든 것을 다해 엘사 드 칼베르크 선왕폐하를 보호하겠다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숙였고,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녀는 조금씩 울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고마워”
진우는 그렇게 나갔고, 옆에서 지켜보던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뒤에서 안았다.
“꺼내기 힘든 말이었을 텐데 고생했어. 진우가 잘 해줄 거야.”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팔을 쓰다듬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씁쓸함이 더 컸다.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하기는 한데, 왜 언니가 재위 이후에 더 웃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아.”

///

준비를 하다보니 밤이 되었고, 진우는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아 글을 쓰고 있었다. 단지 이번에는 일기였고, 그는 상황 정리를 위해 여러가지를 끄적이고 있었다.
확실히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이것 만한 것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결국에는 종이에 낙서를 막 휘갈기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그의 머릿속이 계속 되는 거라면 더더욱.
인식한 첫날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아버지의 얼굴이, 형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그 집안 사람들이었고, 이제 자신의 옛 집 안이 어땠는지 어머니가 있던 방과 부엌을 빼면 가물가물해졌다.

기억의 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특히나 약간씩 있던 증상이 정령들의 말을 듣고 나서 뚜렷해지고 있었다.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그는 그 자신이 맞기는 하지만, 지금 그 심장의 대체에 대한 부작용인 듯 싶었다.
한마디로, 가면 갈수록 그의 옛 기억은 사라지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몸을 가진 마시멜로나 스노기와 같이 될 것만 같았다.
한 두번 쥐었다 폈다 하는 그의 손은 약간 떨고 있었다.

‘나는 분명 나인데, 그 날 이후로 점점 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주제를 바꾸려고 엘사를 생각하다가 언뜻 안나가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제발...우리 언니를 지켜줘.”
그녀는 여왕이었다. 그런데도 낯설다면 낯선 외지인에게 자신의 핏줄을 보호해 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가족애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엘사와는 떼고 싶어도 뗄 수 가 없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오늘 할머님이 말한 것까지 생각하니, 진우는 뒷머리를 빠르게 긁었다.

‘이런 나도 그들의 가족이 될 수가 있을까?’

지금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너무나 기가 막혀 고개를 한 두 번 흔들었다. 그러고는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일지를 적으러 엘사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방에서는 올라프가 조용히 손을 흔들었고, 진우는 같이 화답했다. 그는 조용히 앉아 램프 불을 빌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엘사를 바라봤는데, 그녀는 악몽을 꾸는건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이마에 식은땀이 난 것이 보였다. 진우는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옆의 손수건으로 그녀를 살짝 닦아주었고, 다시 일지를 다 적은 뒤 아까부터 계속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히려 잠시 엎드렸다.

///

얼마 뒤, 진우는 눈을 떴고, 몽롱한 눈으로 시계를 바라봤을 때는 한 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엎드린 채로 자서 그런지 허리와 목이 쑤셔 몇 번 돌리고 나서야 자신 건너편에 있는 안나를 알아차렸다.
잠옷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얼굴은 전보다 상당히 헬쑥 했다.

“언제 왔어?”
“한 30분 전쯤? 잠을 중간에 깨서.”
“악몽?”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 역시 궁금은 했지만 굳이 더 말해봤자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약한 농담 하나를 던졌다.
“크리스토프는 아주 그냥 푹~ 자고 있나 보네.”
안나는 그의 말투와 아주 그냥 코를 골면서 숙면하는 그의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잘 자는 게 좋기는 한데 오기 전에 한 대 치기는 하더라.”
“그냥 치고 오지.”

그렇게 대화는 약간의 웃음과 함께 끊겼다. 아무래도 새벽이고, 상황도 그렇다 보니 잠시 둘은 엘사를 바라보며 서로의 생각에 빠져들고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오늘처럼 엘사 언니가 계속 얼어있는 꿈을 꿔.”
안나가 시선을 엘사를 향해 고정시켜놓은 채 먼저 입을 열었다.
“분명히 언니는 여기 있는데, 꿈에서는 내가 댐을 부수고 아토할란에 가도 조각상인 언니가 있더라고. 게다가 그 모습이 내가 본 것도 아닌데 너무나도 선명해.
그러면 나는 또 거기서 조각상을 안은 채로 울고 있고.”
진우는 그런 안나를 바라봤다. 뭔가 위로를 바라기 보다는 그저 자신이 꾹 눌러왔던 감정을 더 이상 넣어놓지 못해 그 일부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어쩔 때는 그 속에서 이게 꿈인걸 알아. 그런데도 다시 가서 그 앞에만 서면 참지를 못하겠더라고. 그러면 똑같이 반복되고...
그러다가 일어나게 되면 얼마나 그렇게 안도가 되는지.”
“안나..”

그녀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데 차라리 그 때가 나았어. 그 때는 정 보고 싶다 생각하면 노덜드라에 편지를 보내서 같이 밥이나 먹고 하하호호 할 수 있었는데, 이게 뭐야.
언니는 또 쓰러져서 고통 받고, 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국민들이 같은 국민을 죽이겠다고 쳐들어 오려고 하고, 갑자기 웬 이상한 뱀 새끼가 세계를 없애버리겠다고 난리고.
아니, 도대체 왜 자꾸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는데?”

안나의 몸은 분에 못 이겨 조금씩 떨고 있었다. 그리고 진우는 거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자격이 없었다.
근 5에서 6년간 이들이 겪었던 것은 남들이 일생에 한 번만 겪어도 신기할 정도인데, 하물며 이런 걸 연속으로 겪으면 기분이 어떨지는 그 역시도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엘사를 보던 안나는 진우를 바라봤다.

“들어줘서 고마워. 확실히 새벽이라서 그런지 감정이 더 요동치나 봐.”

전에 엘사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제일 마음이 찢어질 때는 안나가 울 때가 아니라고. 안나가 웃을 때라고.
그리고 진우는 그 말의 의미를 지금 볼 수 있었다.
진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이를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 역시 끄덕이고 다시 엘사의 손을 잡고 바라봤다. 조금 있다 진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너는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자책은 마."
안나는 그말에 기가 약간 찼는지 실실 웃기 시작했다.
"지금 분위기가 이렇다고 칭찬해주는 거야?"
"아니, 아까 네가 말했잖아. 둘 다 못지켜서 슬프다고. 그런데, 만약에 너가 일을 못하고 있었다면 가족과 국민, 이미 둘 다 못지켰어."
안나는 반박을 더 하려다가 그의 얼굴을 봤다. 예전에 저것과 비슷한 느낌을 언니가 한탄할 때 본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안나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건 그렇지."
"엘사도 너도 이제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됐으니까, 너는 거기서 열심히 하고, 엘사도 여기서 열심히 하면 그걸로 되는거야. 알겠지?"
"알겠어. 그리고 그리 말해줘서 고마워."
“아냐, 나야말로 믿어 줘서 고마워.”
“잠깐, 뭐?”

안나는 다시 진우를 쳐다봤다. 다만 이번에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낮에 말해준 거 있잖아.”
“아! 아니야. 또 사실 언니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없더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언니의 마법을 황홀해 하지만,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도 있어서 그런지 약간 무서워 하던가, 아니면 그 힘에 취해 이상한 방향으로 호감을 가지거나 경외심을 갖는 게 대부분이더라고.”
안나의 눈에서는 엘사를 향한 안쓰러움이 비쳤다. 그러다가 그녀는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너는 달랐어. 처음 만난 방식이 방식이어서 그런지 그런 게 없었다고 하더라고.
자신의 힘이나 권력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고마움에서 나온 호감만이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그리고 그 때 언니의 표정은 나도 참 오랜만에 봤어.”
안나는 당시를 상기하며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돌렸다.
“확실한 건 최소한 언니가 너한테 긍정적인 신뢰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던 거고.”
진우는 엘사를 보며 조용히 조선어로 중얼거렸다.

“나만 처음으로 느낀 게 아니었구려.”
“응?”

그 때, 스노기 한 마리가 창문을 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창틀에 걸려 넘어져 바로 밑에 있던 올라프를 한 번 즈려밟고 착지했다.
올라프는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아 당황해서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안나 역시 난데없는 스노기에 의아했지만, 진우는 인상을 급격히 찌푸렸다.
스노기는 뭐라 방방 뛰면서 빽빽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올라프 역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둘 다 왜 그래?”
안나는 둘의 표정을 번갈아 바라봤지만, 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줄을 당긴 다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안나는 그제서야 갑자기 험해진 그의 인상을 알아차리고 눈치를 챈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 거야?”
“어.”
카이가 허겁지겁 온 건지 약간 풀린 넥타이를 맨 정복으로 찾아왔다. 전령 역시 급하게 달려온 듯 경례를 하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머지 인원들을 다 깨워주세요. 지금 숲에 진입했답니다.”

///

안나와 진우를 포함한 수장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프 역시 일어나 안나 옆에서 진지하게 얘기를 듣고 있었다.
밖에서는 군인들이 말을 타고 목벽으로 향해가고 있었고, 시종들은 왕궁 반파를 대비해 대피시켜 놓은 국가 자산과 유물 중 빠진 것이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다들 급하게 나가자, 진우는 나머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안나는 그런 진우를 걱정되는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로 혼자서도 괜찮겠어?”
“멀리서 저격만 할 테니 너무 걱정은 마.”
“어..잠깐만, 그런데 진우 너 지금 잠옷인데??”
"괜찮아!"
"?????"

그러고는 뛰어 내리기 직전에,

“게일!”

이라고 창문에다 대고 소리질렀고, 곧바로 바람이 날라왔다. 그는 창문 밑을 보며생각보다 높은 성에 순간 움찔했지만 그래도 다시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게일은 그를 받아 태우고 바로 숲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다가 중간에서 멈춰 달라고 한 뒤, 그는 눈을 꽉 감고 자신의 무장을 생각하면 양 손도 꽉 쥐었다.
양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그의 옷 역시 반짝이면서 검정색의 조선식 무복으로 바뀌었다.
등과 허리에도 그가 예상했던 대로 활과, 통아, 그리고 화살통도 같이 메어져 있었다.
날라가면서 그는 기가 막혀 조금 웃었지만, 이내 곧 생각을 가다듬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뒤 숲으로 향했다.

-------------------

1

처음으로 모바일을 통해 올려보는거인데 만약에 깨지면 내일 다시 올려야 될 것 같아요!
(링크등도 수정하면서 올릴게요!)

잘 부탁 드려요!
------------------
수정(20.02.26): 링크 추가 및 폰트 수정
통합링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3942362

- dc official App


추천 비추천

17

고정닉 1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공지 겨울왕국 갤러리 이용 안내 [200185/10] 운영자 14.01.17 128879009 3814
5488755 안녕하세요? 겨울왕국을 감명깊게 보고 입문한 뉴비입니다 [1] ㅇㅇ(222.107) 03:21 57 0
5488754 지금 자도 네시간 뒤 일어나야 하는데 [1] ㅇㅇ(118.235) 02:05 22 0
5488753 로또 1등 나도 당첨 [1] ㅇㅇ(221.152) 00:56 27 0
5488752 엘-시 ㅇㅇ(183.107) 00:22 15 0
5488751 엘-시 ㅇㅇ(183.107) 00:22 13 0
5488750 복권은 정해져있지 ㅇㅇ(223.38) 00:20 16 0
5488749 게임에도 나오는 횬다이 킹반떼 국뽕 뒤진다에~~~ Froz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9 0
5488748 이겼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연효모식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4 0
5488747 졌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7 0
5488746 PONY XL 간단평 ㅇㅇ(14.32) 04.25 40 0
5488745 안녕하세요? 겨울왕국을 감명깊게 보고 입문한 뉴비입니다 [2] ㅇㅇ(14.32) 04.25 70 0
5488744 통구이 멸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1 0
5488743 개방적인 사고가 은근 중요한듯 프로프갤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0 0
5488742 킹도영 리그최초 월간 10-10달성 ㅋㅋㅋㅋㅋㅋㅋㅋ [2] 천연효모식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5 0
5488741 저녁 해장 ㅇㅇ(118.235) 04.25 22 0
5488740 코구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연효모식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5 0
5488739 메랜 루디 나왔나보네 [2] Frozen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32 0
5488738 코구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8 0
5488737 고도로 발달한 분탕은 어쩌고저쩌고 [3] ㅇㅇ(222.107) 04.25 74 0
5488736 안-시 안-시 안-시 ㅇㅇ(118.235) 04.25 12 0
5488735 안시이이이 [1]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8 1
5488734 안-시 ㅇㅇ(118.235) 04.25 14 0
5488733 예쁜 누님이 말 걸어 순간 설랬는데 ㅇㅇ(118.235) 04.25 24 0
5488732 토비 스파는 진짜 전설이다.. [7] ㅇㅇ(221.152) 04.25 48 1
5488731 요즘 라디오헤드에 빠진듯 [6] 안나여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9 0
5488730 엘-시 엘-시 ㅇㅇ(118.235) 04.25 17 0
5488729 범도4 오프닝 82만 ㄷㄷ [2] Frozen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0 0
5488728 개조가ㅌ은 출근 ㅇㅇ(118.235) 04.25 23 0
5488727 ????? [1] ㅇㅇ(222.107) 04.25 49 0
5488726 모닝 프갤 프로프갤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9 0
5488725 퀸 엘 시 프로즌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1 1
5488724 정령님의 시간 엘시 프로즌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1 1
5488723 어저미 멸망ㅋㅋㅋㅋㅋ ㅇㅇ(221.152) 04.24 25 0
5488722 이겼삼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2]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35 0
5488721 오늘 모처럼 프갤에 뻘글 마니 썼다 [2] ㅇㅇ(218.158) 04.24 45 0
5488720 쥐 멸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39 0
5488719 쁘리니 2차는 엄마의 손길 ㅇㅇ(218.158) 04.24 31 0
5488718 탱탱볼의 마술사 유섬피주니어ㅋㅋㅋ ㅇㅇ(221.152) 04.24 22 0
5488717 프갤에 사람이 줄어드는 기간 ㅇㅇ(211.109) 04.24 35 0
5488716 역시 이 가게 시그너처 ㅇㅇ(211.109) 04.24 27 0
5488715 올해는 봄이 좀 늦게 왔네요? [6] ㅇㅇ(221.152) 04.24 49 0
5488714 알바 누님 보니 자꾸 태국 생각나네 ㅇㅇ(211.109) 04.24 26 0
5488713 대관시 ㅇㅇ(211.109) 04.24 16 0
5488712 동남아 알바 누나가 내 말 못 알아들어 [2] ㅇㅇ(211.109) 04.24 33 0
5488711 오랜만에 이 가게에서 입갤 [3] ㅇㅇ(211.109) 04.24 41 0
5488710 코구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26 0
5488709 안-시 안-시 안-시 ㅇㅇ(118.235) 04.24 19 0
5488708 안-시 ㅇㅇ(118.235) 04.24 20 0
5488707 안시이이이이잉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20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