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 승부욕, 성공 어시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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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이중재 변호사(32ㆍ나눔법률사무소). 그는 중고교 시절 \'날리던\' 축구선수였다. 김포 통진중, 통진종고 등 축구 명문에서 그의 명성은 빛났다. 전국고교선수권 결승전 대역전 우승을 이끌며, 경기도지사로부터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그의 동기. 이 무렵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가끔 경기에서 마주치곤 했다. 1994년 축구특기생으로 홍익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안정환과 동기생…고교때 최우수선수상 수상 홍대 특기생 입학 후 1학년때 치명적 부상 영어-한자 벽 넘으며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2002년 법무사 수석합격 … 2년 뒤 사시합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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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스펠링도 대학 와서 처음 써봤어요. 축구만 했으니까요. 친구들이랑 밥을 먹으러 갔는데 \'더치페이\'를 하자는 거예요. 뭔가 싶어 눈치를 보다 각자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에 저도 그냥 따라했었죠" 그의 \'포복절도\' 영어 해프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화여대 학생들이랑 신촌역 근처 카페 \'파라다이스\'에서 미팅을 하기로 했어요. 근처를 수십번 돌았는데 못찾겠더라구요. 알고보니 간판이 영어로만 씌어 있어서 못 찾았던 거예요. 휴대폰도 없었던 때니까…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데 정말 속상했죠."
일반학생들과의 \'갭\'을 인식하면서 존재감을 고민하던 1학년 2학기, 발목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에게 부상은 곧 좌절이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나니 당장 무엇을 할지 막막했다. 축구선수로도 살 수 없고, 일반학생으로도 살 수 없었던 그때, 그는 죽고 싶었다고 했다.
절망의 바닥을 치고 "이렇게 죽을 바엔 뭐라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공인중개사 시험이었다. 민법 과목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는 \'매매행위\', 길에서 벌레를 잡으면 \'무주물 선점 행위\' 식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4개월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후 민법이 들어 있는 종목을 찾다보니 법무사 시험이 눈에 띄었다. 반신반의하는 가족들에게 서른살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문제는 해독불능의 한자였다. 운전학원에서 만난 헌신적인 여자친구는 두꺼운 민법책 한자 아래 일일이 독음을 달아줬고 옥편 찾는 법도 일러줬다. 한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늦공부에 가속도가 붙었다. 2002년 법무사 시험에서 그는 놀랍게도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잡념이 없는 편이에요. 잡념이 생기면 바로 펜을 놓죠. 하루 8시간씩 공부했어요"가 수석 비결의 전부다. 법무사로 안주하려는 그에게 이번엔 부모님이 사법고시 도전을 권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4년 그는 사법고시 1-2차 시험을 동시에 합격하며 축구선수 출신 법조인의 신화를 열었다. "법무사 수석합격이 사법고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독을 품고 공부했죠. 축구에서처럼 끈질긴 승부욕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사법고시 최종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이변호사는 곧바로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청혼했다. "힘든 시절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친구니까요. 살다 보면 고마움을 잊을 수도 있고… 바로 실천에 옮겼죠." 8년 넘게 한결 같았던 사랑은 이듬해 봄 결혼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공인회계사에 합격했다는 인물이 있어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공부와 등을 진 프로게이머들인데 웬만큼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붙기 힘든 시험에 붙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침 역삼동의 모 회계법인에 면접을 보게 됐다는 프로게이머 출신 공인회계사 정완수씨와 연락이 닿아 강남 모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임요환의 첫승 제물
프로게이머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정완수라는 이름은 현재 프로게이머 팬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던 시기에 출전한 대회가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몰라요. 하지만 임요환의 첫승 제물 상대라고 하면 가끔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죠. 지금도 가끔 새벽 시간에 임요환 선수의 특집이 나올 때면 제 얼굴도 나오곤 합니다."
정완수와 함께 왕년에 함께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해설자로 변신한 김동준, 유병준, 임성춘이 함께 게임을 했었고 현 이스트로 김현진 감독과도 수 차례 스파링을 뛰기도 했다. 이벤트전에서 홍진호와 맞붙은 적도 있다고.
"예전 함께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습니다. 공부를 하느라고 스트크래프트도 제대로 보지를 못했죠. 하지만 이제 공부도 마쳤으니 다시 만나서 스타도 같이 했으면 해요."
◆MC스퀘어로 시작된 프로게이머
때는 1998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정완수는 부모님을 졸라 MC스퀘어를 사달라고 했다. 공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MC스퀘어라는 무기를 들고 있으면 성적도 올라갈 것만 같았다.
"당시 MC스퀘어는 대유행이었어요. 하나쯤 있었으면 했죠.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잃어버렸고 부모님께 혼날 것이 염려됐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동네 PC방에서 열린 스타 대회였어요."
동네 PC방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20만원의 상금으로 MC스퀘어까지 다시 마련했지만 정완수에게는 더 큰 기회가 열렸다. PC방 사장님의 지원으로 시작해 매니저가 붙었고 KPGL에도 참가하며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PC방 대회부터 나서 승승장구하다 한솔엠닷컴배 국제 게임랭킹 결정전에서 첫 상대 이기석을 16강에서 만나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8강에서 봉준구에게 패하며 좌절하고 말았죠. 이후 장진남, 장진수 형제와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까지 출전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탓에 프로게이머 꿈 접어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에서 패한 뒤 충격을 받은 정완수는 불투명한 미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두려웠다. 당시만 하더라도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게이머라는 일에는 자부심을 가졌었지만 사회의 시선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졸이라는 딱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줬고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더욱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죠."
정완수는 팀을 운영하던 회사로부터 받은 월급과 대회상금 등을 모아 경기도 광주의 모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재계약의 말도 있었지만 스스로 프로게이머의 길을 포기하고 학업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리고선 꼬박 1년 반 동안 책만 봤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째 되는 해에는 2002년 월드컵이 열린 해였죠. 독서실 밖에서는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사람들이 몰려 다녔고 독서실 안에는 저밖에 남은 사람이 없었죠."
하지만 정완수는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대학에 떨어질 경우 핑계로 월드컵을 댈 것 같아 차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기숙학원에 처음 들어설 때에는 갖 졸업한 중학생의 실력이었지만 이런 노력 끝에 수능에서도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었고 한양대학교 경영학부에 합격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습니다. 게임을 할 때에는 밤을 새도 전혀 졸립지가 않았는데 공부라는 것을 한다고 생각하면 책만 펼쳐도 잠이 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택한 길이었으니까요."
정완수가 공인회계사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복무를 하면서부터다. 전역을 앞두고 미래가치는 경영관리에 있다는 판단에 경영학과의 전공까지 살릴 수 있는 직업을 택하게 됐다고.
"군 전역을 앞두고 합격수기나 공부방법 등이 적힌 책들을 읽으며 준비를 했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2년 반만에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프로게이머라면 다른 분야에서도 대성할 것
피땀을 흘리며 공부에 열중한 정완수는 그래도 프로게이머 출신인 탓에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흘려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도, 공인회계사 공부를 함께 한 사람들 중에도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요 경기가 벌어지면 정완수의 의견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자주 경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기를 지켜본 결과 마재윤의 플레이에 반할 수밖에 없었어요. 마재윤의 운영능력은 최고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이제동이 단연 돋보이는 플레이를 하더군요. 제가 저그 유저라서 그런지 저그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정완수가 이번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마재윤과 이제동 등 잘나가는 선수들을 언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는 수많은 다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현재 프로게이머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선수들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머리를 갖고 있고 끈기와 열정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낭중지추\' 스타크래프트라는 좋아하는 일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도전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그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다른 분야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완수는 자신의 모습을 후배들이 본보기로 봐줬으면 한다고 했다. 현재 자신이 큰 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다른 일에서도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프로게이머로 성공을 못했다고 패비의식을 느끼지 말고 좋지 않았던 일은 모두 잊고 다른 분야에서도 대가가 되고 본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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