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gong.co.kr 공병호연구소

안녕하세요.
국방부가 영내 반입 금지 서적으로 지적한 책들의 목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교적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저에게도 아주 생소한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모두 23권 가운데 내가 정독보다는 뽑아서 읽어본 책이 \'나쁜 사마리아인들\'
\'세계화의 덫\' 정도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찾아서 읽을까?
앞의 두 권을 읽었던 경험도 저의 평소 지론과는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그다지 상큼한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지정하는 경위나 언론이 알려진 경위가 매끄럽지 않았던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군이라는 특수집단의 성격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저는 매년 500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이제까지 10여년 읽었던 책 가운데
23권 중에 2권 정도가 있다는 점은 한번 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 날부터 양서를 읽어야 하지요.
노암 촘스키라는 분이 언어학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명성을 얻었던 사람이란 사실은
저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그의 저서 몇 권을
읽다가 그냥 덮어 버렸습니다. 한 분야에서 획을 그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를
넘어서 인류의 스승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 시작할 때는 무척 주의해야 합니다.
아무튼 젊은 날 자신의 인식을 왜곡하는 책에 빠져들고 그것을 마치 신주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삶 전체가 왜곡되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곡된 인식\'이야 말로 빈한한 삶의 원천이 될 때가 많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들을 맹신하기 보다는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폴 존슨이라는 분의 <지식인의 두 얼굴>이란 책에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골라낸 10여명의 사람도 도덕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인텔리겐치아의 대표자만큼이나 사리에 맞는 관점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멀리 나아가고 싶다. 인류의 운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무고한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을 목격한 우리의 비극적인 20세기가 남긴 중요한 교훈은 지식인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권력의 조종간에서 멀찌감치 떼어놓는데서 그치지 말고, 그들이 집단적인 조언을 내놓으려 들 때는 그들을 특별한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한다. 지식인들의 위원회를, 회의를, 연맹을 경계하라. 그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박힌 성명서를 의심하라. ...집단을 이룬 지식인들은 여론과 압도적인 정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런 여론과 정설 스스로가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경로를 창출해내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망각하는 것, 즉 인간이 관념보다 중요하고 인간이 관념의 앞자리에 놓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만 한다. 모든 폭정 중에서 최악의 폭정은 사상이 지배하는 무정한 전제정치다."
-출처: 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 pp.627-628.

폴 존슨이 들고 있는 형편없는 지식인들은 여러분들의 목록에는 누구나 아무런 비판없이
선듯 선택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장 자크 루소, 카를 마르크스, 헨릭 입센,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 조지 오웰, 노암 촘스키 등 쟁쟁한 당대의 기라성 같은
지식인들이 포함된다.

아무튼 선택을 자유입니다. 그러나 좋은 저자의 좋은 생각을 읽어야 하겠지요.
특이 젊은 날의 독서는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산전수준 다 경험한터라 좀처럼 속지 않거든요.
근사한 이야기의 이면에 실린 의도를 읽어내는 지혜가 나이를 제대로 먹고 나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 날에는 순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확 쏠려들어가게 되거든요.

2008년 10월 28일... 공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