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담배냄새보다는 퀘퀘한 홀아비 냄새였다.
마치 사촌형의 옷장 깊숙한 곳에 숨은 누런 깔깔이에서 나는 듯한 그런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시끄러웠고, 게임기가 너무 많아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어떤 놈은 생전 처음 보는 요상한 기계에서 총을 쏴대고 있고
또 어떤 놈은 땅따먹기로 여자를 벗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스파2나 1945등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고막이 터질 거 같은 소음들 속에서, 나는 킹오파의 캐릭터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초 이오리의 거친 신음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오락기 4대가 앞뒤로 붙어 있었고
그건 전부 킹오파97이었다. 한 번에 8명이나 대전 가능한건가! 대단하군.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앉아 있는 건 각 자리에 하나씩 4명뿐이었다.
뭐지, 여기는 연습하는 사람들만 오나...
그러던 중 킹오파를 사람들이 오락기 너머로 대화나 욕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문화충격이었다.
이 기계들은 앞뒤로 대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선 이 곳 플레이어들의 동향을 살피기로 했다.
구경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순번을 기다리는 중고생들이었고, 나도 그 틈에 끼어 살짝 구경해 보았다.
한쪽 기계에선 베니 대 베니의 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문방구 킹오파에선 절정의 고수들이나 쓰던 베니마루의 앉아 약발 짤짤이 - 강 거합차기는 여기서 기본스킬인 것 같았다.
굴러오는 상대방에게 몇 번 맞추다 보면 상대방이 기절(스턴)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베니마루는 여유롭게 상대방에게 다가가
베닛코레더(일렉트리거)로 깔쌈하게 마무리하는데
지릴 지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옆의 기계는 약간 실력이 낮은 사람들끼리 하는듯.
문방구 기계에서 하던 수준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옳지, 저기서 대기하다 동전을 넣어야겠다.
HERE COMES
THE
NEW CHALLENGER!
랄프, 야마자키 그리고 혹시 몰라 급할때 발발발발(비연질풍각)로 상대방을 말려죽일 수 있는
'로버트 가르시아'를 순서대로 세팅했다.
통할까?
통한다.
끌거리 랄프킥 - 바리바리 발칸 초필살기로 상대방의 하단강킥을 씹는 플레이는 여기선 생소한 모양이었다.
기를 갖고 있는 내게 랄프킥을 가드당한 상대는 이 패턴에 두 번 정도 당하자 함부로 발악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서 후리야(슈퍼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나중엔 오류겐, 불이야, 오오스류의 대공기로 발악하기 시작했는데 난 굴러서 기다렸다가 다시 잡기로 상대방을 농락했다.
랄프로 상대방의 일본팀을 박살내버리는데 성공했다!
오락실이란 거 딱히 별것도 아니군.
자만감에 찬 내게, 옆기계에서 진 베니마루 플레이어가 연결을 해왔다.
한순간 긴장이 되었지만 짤짤이만 조심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에
괜히 어깨도 한 번 흔들어 보는 등 호기를 부렸다.
1라운드.
좋아 일단 뒤로 빠지다가 랄프킥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랄프킥이 닿기 전에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는 것이었다.
라인스크류(플라잉 드릴)이 나오려는 건가?
어? 이게 아닌데?
점프 강킥 - 근접 강손 - 삼단기리
역가드 점프 강킥 - 짤짤이 - 거합차기 - 스턴
점프 강킥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이런식으로 맞고 뻗었다)
내 랄프는 패턴도 보여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2라운드
랄프가 없어도 내겐 야마자키의 채찍(뱀술사)가 있지.
채찍 중단으로 우선은 견제다!
상대방은 달려오는 척 구르기로 내 채찍을 간단히 피해버렸다.
짤짤 거합, 삼단기리 연속기.
점프뛴 내게 라이코겐(뇌광권)
야마자키 사망
3라운드
이쯤 되니 거의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로버트로 발발발발만 갈긴다면 승산이 있다.
구석으로 몰아넣고 발발발발 한대만 가드시킨다면...!
발발발발은 커녕 발 한대 가드도 못시키고 개털리고 죽었다.
이것이 클라스의 차이인가?
마치 드래곤볼을 보는 듯하군.
강한 상대를 쓰러뜨리면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나서 그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는 내가 손오공이나 베지터가 아니라
오룡이나, 야무치나, 야지로베나, 미스터 사탄이나 하여간
잔챙이라는 거뿐.
패배가 주는 씁쓸함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누군가 잽싸게 100원을 집어넣었다.
비켜준다, 비켜줄거라고. 그렇게 빨리 꺼지라는 것처럼 동전넣지 말란 말이다.
울상으로 일어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낯익은 얼굴이 씩 웃고 있었다.
"XX이 아이가, 니 여서 뭐하노?"
낙타를 연상시키는 얼굴, 웅얼대는 목소리로 어눌한 사투리를 내뱉은 그 사람은...
누구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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