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략 4월~10월 까지가 은하수를 보기에 적당한 달이다.
겨울철에도 은하수를 볼 수는 있는데, 중심부가 안보이고 매우 희미한 끝 부분만 보이거든.
차도 면허도 없는 뚜벅이라 대중교통+도보로 갈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본 결과...
사실 선택지가 몇 군데 없었다.
은하수를 선명하게 보려면 대기 상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빛공해 그러니까 광해가 없는 곳으로 가야하거든.
그런데 대중교통이 다닌다->사람의 왕래가 잦다->보통 밤 늦게도 불이 환하다->광해있음.
이래서 정말 선택지가 없더라...
처음엔 태백산,소백산,함백산 이런 산도 생각해봤는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은 취사,야영은 물론이고 야간산행도 금지였다.
당연하게도 은하수는 밤에나 볼 수 있는데.
예전에도 가봤던 조경철 천문대를 가볼까 싶었는데
조경철 천문대는 두세번 가보니까 사실 좀 지루하기도 하고
관측지로 유명하다보니 사람 왕래도 밤늦게까지 많아져서...패스.
한참 알아보다가 결국 정한 곳은 임실 옥정호의 붕어섬.
검색해보니까 은하수도 잘 보이고...
매우 힘들기야 하겠지만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겠더라.
거기다가 운해 명소라 잘하면 운해가 깔린 은하수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짐을 챙겨서 인천 종합 터미널에서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행 버스를 탔다.
네이버에서 옥정호 대중교통으로 가는법을 검색해보면 보통 임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와 농어촌 버스를 이용하는 루트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간다면 혹시라도 터미널에서 버스 막차를 놓쳤을때 옥정호까지 가는 택시비가 3만원이 넘는거 같더라.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농어촌 버스는 진짜 하루에 한대~두세대 이렇게 있어서 택시를 타고 가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임실 시외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것이 옥정호까지 택시비는 덜 나올 것이다.
그리고 버스도 배차가 조금 더 많은 노선으로 잡히더라.
루트 설명은 대충 이 정도로 하고...
요즘 고속버스,시외버스 좋더라야.
앞의 모니터에 빈 좌석,예약 좌석도 나오고 교통카드인지 그냥 신용카드인지 그걸로 결제도 되고
출발할때 안전벨트 매는 법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출발 전에 검색해보니 인천 터미널에서 11시 50분 버스타면
2시 35분에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내가 타야할 버스는 3시 35분이 막차니까
1시간쯤 여유있을줄 알았는데...
그것이 실수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가 엄청 막혔다.
생각보다 꽤 늦어서 전주 시내에 진입할땐 3시 20분 가까이 된 시간이었다.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뛰다시피 나올땐 3시 30분쯤...
내 원래 계획은 여유있게 근처 편의점에서 물이랑 간단한 식량도 사고
여유있게 버스를 타고 가는거였는데...
그래도 다행히 버스도 정시각엔 안와서 편의점 들려서 물이랑 초코바를 살 수 있었다.
내가 탈 버스는 180분 간격으로 있네.
진짜 생각보다 늦게 터미널에 도착할 무렵엔 택시타고 가야하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거의 종점에서 내렸는데 뭔가 좀 시골 도로 한복판에 내려준 느낌?
제대로 오긴 왔는데 약간 이상한데 내렸다.
내가 가야할 곳은 국사봉 전망대.
여기서 하루에 몇대 없는 농어촌 버스로 갈아타면 국사봉 전망대 바로 근처까지 가긴 한다.
그런데 표지판 보니까 뭐 걸어가도 상관 없을거 같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 해보니까 농어촌 버스는 하루 한대더라? 근데 내가 봤을때 그보단 좀 자주 다니는거 같다...하루 두세대 이상?
물론 그래봤자 배차간격이 헬인건 변치않는다)
여기서 타면 되는건가.
근데 여기서 한참 기다려도 버스가 안오더라.
내가 놓쳤나보다...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루 한대인줄 알았다)
벚꽃은 많이 떨어졌는데...군데군데 겹벚꽃인지 매화인지 하얀 꽃들이 피어있었다.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포인트를 주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한참 국사봉 전망대 지도 보면서 걸어가는데 버스가 지나갔다.
놓친게 아니고 아직 안 온거였어...
시골이긴 하지만 국사봉,붕어섬 여기는 사람이 좀 오는 편이라
모텔이랑 민박도 좀 있더라.
버스를 탄다면 여기서 내리면 된다.
반대편 정류장.
저렇게 표지판만 덩그러니 있음.
어쨌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도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
처음엔 저 정자가 전망댄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저 정도 높이와 위치에선 붕어섬이 안보이지....
저 산 꼭대기가 국사봉 전망대다.
도로변에도 붕어섬을 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이게 겹벚꽃인가보다.
밑에 화장실도 있다.
용변 급할땐 잠깐 내려와도 되겠네.
여기로 쭉 올라가면 국사봉 전망대.
전망대 밑에 카페도 있음.
올라가는 계단이 생각보다 가파른 편이었다.
무거운 장비가 든 가방을 메고 올라가는게 그렇게 편하진 않았다.
헠헠거리면서 올라가는 도중에 본 붕어섬.
저 섬이 붕어 닮았다고 해서 붕어섬이란다.
국사봉 전망대에선 붕어섬을 아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기가 살짝 뿌옇게 보여서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날이 안좋아서 안보이고 헛걸음 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국사봉 전망대.
국사봉(꼭대기)은 여기서 더 올라가야한다.
일단은 온 김에 국사봉도 한번 찍어봐야지.
나무계단은 아까 전망대에서 끝났고 그 위로는 거의 등산로다.
전망대에서 생각보다 더 올라가야 국사봉이다.
올라가는 도중에 해가 산등성이에 걸렸다.
곧 날이 어두워진다는 생각에 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꽤나 돌이 많은 산이다.
밧줄잡고 헉헉거리며 올라감.
이 저질 체력...
여기가 바로 국사봉입니다 여러분!
도착하자마자 해가 넘어간다.
낮은 산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상을 정ㅋ복ㅋ
국사봉에선 붕어섬이 가려서 안보인다.
이제 볼거 다 봤으니 내려가자...
신박한 현수막...
林자 사랑해라니.
마누라처럼 자연을 소중히 여기자는 뜻인가보다.
이 나무데크는 바위 위에 지어놓은건데
난 이런데 건너가면 밑이 텅 비어서 삐걱삐걱거리는게 그렇게 무섭드라.
이때도 건너가면서 '간담이 서늘해진다'의 참뜻을 온몸으로 체험함.
위에서 보니 곳곳에 핀 매화인지 벚꽃인지...그게 참 이쁘다.
서서히 날이 어두워져서 전망대에서 삼각대를 세팅함.
일반 광각은 아무래도 좀 은하수를 담기엔 살짝 좁지않나 싶다.
역시 넓은 풍경을 찍을땐 어안렌즈지.
해가 지니 기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더라.
가져온 경량패딩을 꺼내입고 그 위에 다시 바람막이를 걸침.
4월 은하수는 새벽 한시가 넘어야 지평선 너머에서 보이기 시작하니
그때까지는 그냥 데크에 앉아서 라디오를 들으며 버텼다.
조금 무섭긴 한데 그래도 몇번 이런걸 하다보니 적응은 되더라.
밤이 깊어오고 별들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한다.
아직은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이 저녁 하늘에 떠있다.
서쪽 하늘(오른쪽 끝)에서 오리온 자리가 저물어간다.
겨울철 대삼각형도 아직은 보인다...
동쪽 하늘로 여름철 별자리인 전갈 자리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렸을때 들었던 오리온과 전갈의 일화가 떠오른다.
헤라가 자만심에 가득찬 오리온을 죽이기 위해 보낸 전갈.
오리온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그 공을 인정받아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고
앙숙인 오리온과 전갈은 같은 밤하늘에서 볼 수 없다.
오리온이 지면 그때 비로소 전갈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시 좀 넘은 시간에도 은하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별들은 잘 보이네.
낮에 괜히 하늘이 뿌옇게 보여서 걱정했는데...
살짝 은하수의 끝자락이 보이는 것도 같고...?
한 두시쯤 되니까 은하수의 끝자락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은하수를 찍으려는 사람들도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더라.
열두시 좀 넘어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친구가 올라온걸 시작으로
동호회에서 두세명씩 출사온 모습도 보이고...
아직 완전히 올라오려면 멀었다.
은하수 중심부는 세시쯤이나 돼야 보일거 같다.
그리고 이 날은 거문고자리 유성우가 쏟아지던 날이어서 그랬는지
유성도 심심찮게 보이더라.
사진에 찍힌건 별로 없지만.
이렇게 밤새도록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다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에 잠기게 된다.
주로,어렸을 적의 추억들...
어렸을땐 우주를 정말 좋아해서 초등학생때 여름방학만 되면 당시 '천문우주과학캠프'라고 불리는 여름 캠프에 참석했었다.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관찰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찾으며 별자리에 얽힌 신화-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들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내 꿈은 천문학자였지.
별자리에 얽힌 신화를 좋아했고 유성우가 쏟아진다는 뉴스가 나오면
별도 안보이는 도시 한복판 아파트 옥상에서 별똥별을 본답시고 새벽에 깨워달라고 하던 그 소년은
이제는 나의 추억에서나 볼 수 있다.
(범프 오브 치킨-천체관측)
일상에 묻혀 평상시엔 볼 수 없는 나의 추억들.
그 추억들이 은하수를 따라 흘러간다.
은하수의 저편에서 천문학자를 동경하던 그 소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저 은하수만큼 멀리 떨어진 나의 소중했던 지난 날이 보인다.
평소에는 도시의 광해에 묻혀 볼 수 없는 은하수.
일부러 멀리까지 나와야 겨우 볼 수 있는 은하수처럼
나의 어렸을 적의 추억들도 일부러 찾아내야 겨우 떠올리게 된다.
천문학자라는 창대한 꿈을 꿨던 소년은 이제 그럭저럭 먹고는 사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남자가 됐다.
새벽 세시...
은하수도 제법 높이 떠올랐고
붕어섬에는 서서히 운해가 끼기 시작했다.
은하수가 제법 호수 중앙까지 올라왔다.
서서히 운해도 짙어진다.
구름이 흐르는 바다 위를 별이 흐르는 강이 지나간다.
이런 광경,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아침이 밝으면 은하수는 멀어지고 나의 추억도 은하수와 함께 멀어지겠지.
운해가 제법 짙어졌다.
조금 더 오래 이걸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동쪽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이제는 추억에서 나와 지금으로 돌아오라는 듯이
아래쪽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가 점점 들려온다.
은하수도 많이 옅어졌다.
조금만 더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이제 끝인가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해야지.
별빛이 흐르는 강은 사라지고
구름이 흐르는 바다만 남았다.
이렇게 운해에 둘러싸이니까 저 숲도 산호초처럼 보이네.
한 폭의 동양화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내려가긴 해야 하는데 사진에 입문한 이후로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운해가
이렇게 멋지게 보이니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네.
여기까지 찍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어느새 제법 높이 떠오른 해가 운해를 몰아내고 있다.
진짜 수묵화같다...
전망대 바로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이번엔 빛내림이 나를 반긴다.
빛내림,운해,은하수...모두 내가 사진에 입문하고서 꼭 멋지게 찍어보고 싶었던 자연의 모습인데
이렇게 한 날에 다 찍어보네.
다시 버스를 타고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토요일 새벽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면증으로 두 시간밖에 못자고
토요일~일요일 꼴딱 샜더니 진짜 피곤하더라.
거의 꾸벅꾸벅 졸면서 반쯤 맛이 간 상태로 버스에 올라타면서 대체 무슨 꿈이라도 꾼건지
비실거리는 목소리로 버스기사님께 "...죄송합니다..."하면서 올라탄건 대체 뭐 때문인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대체 뭐가 죄송한건데?
그렇게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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