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도 이집에 들어온 이상, 도리는 다 해야한다고....아버님이...

다운은 더듬거렸다. 방바닥은 오늘따라 불이 잘 든 것 같다. 눈앞의 재신은 유난히도 기분이 나빠보였다. 그날따라 이제 사헌부를 이미 떠난 아버지가 참견을 해오신데다, 상관과의 갈등에 골치가 아팠던 재신은 오랫만에 성질을 좀 부리다가 돌아왔던 차에 황씨부인이 합방일을 잡아왔다며 봉투를 건넸다. 열어보니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하려던 일도 멍석을 까니 좀 어색하다. 재신은 허리를 숙여 다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반토막!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냐?

다운은 머리속으로 황씨부인이 일러준 것을 열심히 되뇌었다.

그럼요. 어머니께서 알려주셨는걸요.

재신의 얼굴에 순간 당황스런 빛이 스쳤다.

어머니가 뭐라고 알려주셨는데?

그러니까...음과 양을 잘 맞추어서....몸을 따뜻하게 해야하고...보름달이 뜬 날은 숨을 많이 들이쉬어서...

재신을 똑바로 보던 다운의 커다란 눈이, 재신의 눈과 마주치자 불안하게 이쪽 방구석과 저쪽 방구석으로 움직였다. 긴장한 것은 눈동자만이 아니었다. 살짝 벌어진 입으로 뵈는 하얀 이는 이번에는 저도 모르고 올라온 손가락을 깨물고 있다. 다운이 절절 매는 것을 보고 있던 재신의 입꼬리가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그래?

그럼 그 도리라는 것 좀 해볼까?

재신은 다운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철릭자락이 스륵 흔들렸다. 재신은 양팔의 손목싸개를 하나씩 빼 내던졌다. 다운은 깨물던 손가락을 내리고 철릭자락이 치마자락에 닿을 세라 뒷걸음질을 쳤다. 재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운에게 또 한걸음 다가서며 철릭 위의 광다회를 당겨 풀었다.

저, 저기...

다운은 재신이 철릭까지 벗어던지는 것을 보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가 그만 횃대가 걸린 벽에 머리와 등을 부딪혔다. 재신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다운의 양 옆으로 팔을 짚었다. 다운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홍화처럼 빨갛게 변한 다운의 볼록한 이마와 동그란 뺨을 보며 재신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좀 더 내밀었으나, 그때 다운은 아래로 스스륵 내려가더니 엉금엉금 도망을 쳤다.

반토막 너, 어딜 도망가!

재신은 울상을 하며 기어가는 다운을 꾹 눌렀다.

어이, 너 이래도 도망갈테냐?

재신의 말에 드디어 웃음기가 묻어났다. 낑낑거리던 다운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런거 안해요.

사락. 다운의 얼굴이 재신의 목덜미에 와 닿았다. 따뜻한 뺨이 목에 부드럽게 눌렸다. 동백향기가 나는 귀밑머리가 그의 턱에 까슬했다. 다운의 무게가 어깨에 실리고, 토해내는 작은 숨은 그의 가슴을 맴돌았다. 항라 저고리가 그의 목 뒤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었다.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갔다. 재신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다운의 옷깃 안쪽에서 올라오는 아련한 향기가 어지러웠다. 재신은 손을 들어 다운의 어깨를 감았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새처럼 다운은 그의 품속에 쏙들어왔다. 호롱불이 웃풍에 깜빡거리다가 지직 소리를 내며 작아졌다. 어두워진 방안에 자신이 벗어놓은 답호와 철릭이며 광다회가 바닥을 뒹굴고 있다. 피부를 뚫고 나올 것 처럼 맥이 달음질을 쳤다. 재신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운의 비녀를 당겨 빼냈다. 머리카락이 철렁 어깨와 허리로 떨어져내려 동백내음이 사방에 퍼졌다. 다운은 고개를 숙였다. 재신은 항라 저고리의 하얀 고름을 스르륵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