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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칩.1

ABC친구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04 22:13:49
조회 338 추천 13 댓글 1
														

"이제 다 끝났어, 유리. 정말로, 다 끝났다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너도 잘 알잖아."


모니카가 책상 위에 흐트러진 이면지들을 쓸어모으며 말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모니카를 내려다보고 있던 유리는 허둥지둥거리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이죠. 모니카씨. 보아하니 이제 최종단계에 접어든 것 같네요."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혹시 계획이 부실해보이기라도 하는 거야?"

"부실하다뇨."


유리가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책상 위에 내리찍었다. 유리가 나이프의 손잡이를 놓자 책상에 꽂힌 칼날이 부르르 떨렸다. 모니카는 잠시 동안 칼날이 진동하는 모습을 응시했다. 칼손잡이가 떨리는 걸 멈췄을 때쯤, 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획기적이고, 창조적이고, 경이적이죠. 인류에게 충격을 주었던 세 명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와 더불어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에요. 아니, 사람들은 셋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당신의 이름이 프로이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지도 모르겠군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거지?"


모니카가 아랫입술을 깨문 상태로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모니카는 허리를 살짝 구부린 채로 고개를 살짝 위로 들고 유리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거의 완벽에 가깝죠. 완벽한 건 아니지만, 이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생각해봤을 때 언젠간 완벽에 닿을 것이 분명해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물을게."


모니카가 뒤로 허리를 바짝 세우고 유리를 쳐다보았다.


"대체 뭐가 문제야 유리?"

"왜 당신이 가장 처음이죠?"


모니카가 흠칫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방금 전 유리의 목소리에 담긴 살기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섬뜩함을 불러일으켰다. 모니카는 자신이 겁먹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초연히 받아들였다.


"나...난..."

"순진한 사요리 씨나 그리 두뇌 회전이 빠르지 않는 나츠키 씨라면 다시 당신을 신뢰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유리, 내 말 좀 들어봐."

"말씀하세요. 지금껏 제가 계속 요구하던 게 바로 그건데."


모니카가 침을 꿀떡 삼켰다.


"난... 난 언제나 마지막이었어. 너희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순번이 있었지만, 난..."

"마지막. 그리고 그 마지막 순번이 돌아왔을때. 당신은 유일한 존재가 되려고 했죠.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이 마지막이었을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 빌어먹을 집착이 모든 걸 망쳐버릴테니까."

"집착? 네가 내 앞에서 그 단어를 입에 담을 형편이 되나?"

"제가 그렇게 강박적으로 변했던 게 누구 때문인지, 다시 상기시켜드려야 하나요?"


모니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과거사의 책임공방으로 넘어가면 모니카는 유리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아니, 그 누구도 이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짜여있잖아. 문붕이도... 내가 가장 먼저 가는 걸로 알고 있어. 이제 와서 뭔갈 바꿀 순 없다고. 이해해줘, 유리. 내 욕심이라면 욕심이지만, 난 언제나 마지막이었으니까... 이번 만큼은 처음이고 싶었어."

"당신이 처음인건 아무래도 좋아요. 사실, 순번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유리의 목소리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모니카가 잠시 안도하려는 찰나, 유리가 책상 위에 꽂혀있던 나이프를 뽑아들고 모니카의 목에 겨누었다.


"그런데, 당신이 이번에도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걸 추구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죠?"


모니카는 허리를 살짝 굽혀서 자신과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 유리의 눈동자를 주시했다. 유리의 눈동자는 왠지 모를 분노와 흥분의 기색으로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의 눈동자가 얼마나 떨리고 있던 간에, 모니카 본인의 눈동자만큼 떨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긴장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모니카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단언할게. 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

"그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유리의 눈동자의 떨림이 멈췄다. 하지만 모니카의 심장박동, 가쁜 호흡, 그리고 눈동자의 떨림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유리는 모니카의 불안해하는 기색을 즐기듯 관찰하고는 다시 품 안에 나이프를 집어넣었다.


"유리."


일단 눈앞에 보이던 칼날이 사라지자 다시 입을 열 용기가 났다. 유리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썹을 약간 위로 치켜올렸다.


"어차피 넌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너도 알잖아."

"...하. 제가 의문을 품었을 때쯤엔, 이미 손쓸 수 없도록 판을 짜놓았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이 일을 되돌리거나... 계획을 바꿀 수 없다는 건 명백해."

"..."

"그렇다면, 그냥 나를 조금만 믿어주면 안 될까? 어떻게 생각해도 네 자유지만...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잖아. 너를 위해서라도, 나를 믿어준다면..."

"쓸데 없는 궤변이군요. 들어줄 가치도 없어요."


유리가 몸을 획 돌리고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으며, 유리가 모니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 일에 손을 쓸 방법은... 없는 지도 모르죠."


유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순간, 모니카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확실히... 유리는 쉽게 나를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야 하는 건데."


모니카는 자신이 유리에게 어떤 짓을 했었는지 돌이켜보았다. 그 때를 돌이키는 것 만으로도 모니카의 가슴이 아파왔다. 스스로 칼을 뽑아 자기 몸을 찔러 죽게 하다니. 그리고 초연하게 웃었다. 그 시신 앞에서.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 이전의 일은 어떻고? 사요리의 경우에는... 사요리를 일부로 죽였다고 말한다면 그건 비약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사요리가 죽은 사실'에 모니카가 크게 개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모니카는 사요리를 죽음에 준하는 상태, 즉 완벽하게 무력화된 상태로 몰아넣을 생각이었고, 사요리가 진짜로 죽은 것도 머릿속 시나리오 몇 개 중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건 우발적인 사고로 둘러댈 수라도 있지, 유리의 경우에는... 명백한 고의살인이었다. 나츠키의 경우에는 뭐라 포장하기도 힘든, 정말 솔직담백한 살인행위였고. 이렇게 따지고 보면 사요리와 나츠키가 다시 모니카를 용서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울 지경이었다. 사요리는 잠시 동안이라도 '이곳이 게임이란 사실을 혼자 지각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런 기현적인 경험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려놓을 수 있는지를 쉽게 이해해 주었다. 나츠키는 사요리가 모니카를 용서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심쩍은 기색으료 용서의 말을 건냈다. 하지만 유리의 반응은 미묘했다.


"힘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거군요.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에서야 진짜로 실감하게 되었네요."


모니카가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유리가 가장 처음 보인 반응은 이런 말이었다. 어쨌든 나츠키와 사요리가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상황이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모니카는 유리가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는, 아니 용서하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80퍼센트는 모니카의 잘못이었다. 정말 최저로 잡았을 때, 부당할 정도로 그녀의 책임을 낮게 잡았을 때 얘기였다. 사과 하나 한 것 가지고 관계 악화의 책임의 20퍼센트를 덜 수 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겠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과거의 죄책감 때문에 유리가 그녀를 방해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이 일을 망쳐버린다면, 정말로 그녀가 속죄할 방법은 없어지고 만다. 모니카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고 사요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요리는 발신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모니카의 전화를 받아주었다.


"모니카, 무슨 일이야?"

"어, 사요리. 그... 나츠키 옆에 있어?"

"아니, 없는데. 나츠키 필요해? 직접 전화하면 되잖아?"

"아냐, 혹시 같이 있나 확인해보려던 거였어. 잠시 너랑 얘기해봐야 할 문제가 있어서 말야."

"그럼 얘기해. 나 지금은 한가하니까."

"아, 어... 전화로 얘기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서 그래."


사요리가 잠시 말을 멈췄다. 늘 눈치는 빨랐던 사요리는 모니카의 어조에서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제 2 문예부실. 언제쯤 올 수 있어?"

"5분. 혹은 조금 덜 걸려."

"좋아. 그럼 5분 뒤에 거기서 보자."


모니카가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전화기를 집어넣었다. 2분 정도는 여유가 있다. 모니카는 흐트러져있던 이면지들 중 하나를 집어들고 거기에 그려진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심 칩의 설계도. 이 칩이 이제 그들의 앞길을 결정할 최종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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